‘방침’과 ‘반발’ 사이 작두춤 추는 보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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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침’과 ‘반발’ 사이 작두춤 추는 보수언론

편집국 0 2,924 2013.05.19 07:38

 


gom_01.jpg우선 전제할 것 하나.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주한미군 재편은 물론이고 미국의 동북아지역에 대한 군사전략적 재편과정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은 사실 매우 중요하다.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벌어진 대추분교 강제철거가 단순히 국방부와 주민들 간의 대립에서 그치는 ‘국내적 사안’이 아니라 ‘국제적인’ 측면까지 함께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국방부와 주민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위주로 보도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범대위의 주장은 ‘미군기지 확장 반대’로 요약된다. 평택을 주한미군 기지로 만들 경우 지리적으로 가까운 오산 비행장과 연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주한미군의 신속한 군사적 이동이 가능하다. 이는 그만큼 유사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개입 가능성 또한 커질 수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정부와 시민사회단체·평택 대추리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허나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는 평가받고 있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이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전제’가 사라진 상태에서 현상의 단순전달은,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하는 일에 대해 대추리 주민들이 반대를 한다는 등의 피상적인 보도에만 ‘치중’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다보니 전 세계 미군 재배치계획에 따른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라는 큰 틀은 사라지고 정부와 평택 주민들 사이의 갈등으로만 사안이 축소됐다. 한겨레 등 ‘극히’ 일부 신문을 제외하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라는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해 언론보도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바로 이것이다. 

‘음식물 찌꺼기’만도 못한 시위대?

gom_02.jpg개혁·보수 언론 구분 없이 평택 미군기지 이전문제의 본질적인 측면을 주목하지 않긴 했지만, 보수신문의 평택 관련 보도는 왜곡과 편파의 정도가 극심했다. ‘공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강경·폭력진압을 부추기는가 하면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시위대를 일방적으로 ‘반미’로 연결시키는 등 고전적인(?) 색깔공세 수법마저 취했다. 

평택 대추리 지역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진행된 지난 5월4일 상황과 관련, 보수신문은 경찰의 과잉폭력 진압은 문제 삼지 않고 시위대의 폭력성만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군 “두들겨 맞더라도 민간인과 맞대응 말라”>(동아 5월5일자 5면), <“피해 줄여라” 해 뜬 뒤 경찰 병력 투입>(중앙 같은 날 4면)과 같은 기사는 대표적이다. 국제사면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의 강제철거 과정에서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경찰의 폭력성 또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보수신문은 이를 무시했다.

폭력진압과 강경 대응을 부추기는 보도도 이어졌다. 동아일보는 지난 5월8일자 <군과 검·경 국기 수호의 시험대에 섰다>는 사설에서 “반 국가범죄에 대한 응징은 국가조직이 마땅히 할 일”이라며 시위대를 반 국가범죄자로 규정, 강경 진압을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5월9일자 <“군인이 왜 매를 맞나” 군심은 지금 부글부글>, <팔 부러지고…죽봉에 찔리고>(4면)에서 평택 시위를 진압하던 도중 부상을 입은 전·의경 상황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5월14일 평택의 미군기지 이전 반대 집회와 관련해서도 보수신문의 ‘편파왜곡’ 보도는 계속됐다. 이날 집회는 대규모 시위대와 대규모 경찰병력이 정면으로 맞설 경우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개최 이전부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날 평택 시위는 평화적으로 마무리됐고, 집회 참가자들도 비교적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입장을 전달했다. 주요 조간신문들도 집회가 평화적으로 마무리 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5월15일자 14면 <대추리 시위 봉쇄했더니 옆 마을 본정리 ‘난리통’>에서 “마을 일대에는 시위대가 버린 음식물 찌꺼기가 악취를 풍기며 수북이 남겨졌다”며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많았던 불청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주민들은 하나 둘 집 밖으로 나와 시위대가 남긴 쓰레기 등을 치우느라 바빠졌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또 “평택 미군기지 부근 본정리 500여 주민은 14일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난데없이 마을을 덮친 시위대가 하루 종일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조용한 시골동네가 난장판이 돼 버렸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중앙일보의 보도대로라면 평택으로 집결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한총련 및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주민들에게 음식물 찌꺼기나 남기는 존재일 뿐이다. 묻자. 중앙일보가 그렇게 바라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주한 미군’ 언급조차 두려워하는 보수언론

보수신문의 속내가 집약적으로 드러난 곳은 5월15일자 조선일보 사설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반미·좌파세력의 ‘평택 속셈’ 국민은 바로 봐야>라는 사설에서 “4년 전 미선·효순양 사건을 그렇게 써먹었던 것처럼 ‘평택’ 문제를 반미 이념투쟁의 불쏘시개로 쓰겠다는 것이다. 국민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누구에 의해 무슨 의도로 벌어지고 있고 이걸 막지 못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를 바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이 평택문제를 반미공세로 연결시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대목에서 맨 처음 언급한 대전제로 돌아가 보자. 이번 사안은 국내적인 측면 못지않게 국제적인 측면이 함께 작동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관점에서 평택 문제를 보게 되면 주한미군 문제가 거론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번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논함에 있어 주한미군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최민희 상임공동대표는 “주한 미군이나 한미동맹의 문제를 지적하면, 보수언론은 무조건 ‘반미’ 또는 극악무도한 좌파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주한미군 규모는 줄었는데 왜 기지 규모는 늘어났는지, 환경분담금 문제 등 협상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등 국민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언론은 최소한의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반국익적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사실 엄밀히 말해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는 것과 반미는 전혀 차원이 다른 얘기임에도 조·중·동 등 이른바 보수언론은 평택에서 주한미군을 자의적으로 철저히 분리한 다음, 이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반미로 연결시켰다. 심한 논리적 왜곡이다. 설사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반미’라는 정치적 용어를 끄집어냈다고 해도 이는 하나의 정치적 입장일 뿐, 무조건 잘못된 것이 아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다루는 보수신문의 보도가 단순히 편파적인 차원을 떠나 왜곡의 경지에 이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원인과 분석에는 거의 손놓아 

다시 한 번 강조하자.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 있어 국제적인 관계가 한 축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이 같은 중심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현지 주민들의 생존권이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이 두 가지 중심축은 언급하지 않은 채 강제대집행과 시위대의 반발만을 주목했다. 심각한 직무유기이자 사실왜곡이다. 

한국과 미국이 용산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키로 합의한 것은 지난 2004년 7월이다. 정부와 국방부가 행정대집행을 ‘강행’하기로 한 것은 2년이 다 돼 가는 시점. 하지만 아직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국회 비준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만 항변해 왔다. 정부 입장이야 그렇다 해도 적어도 언론이라면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정부가 해당 지역주민은 물론이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동의를 구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벌였는지 ‘검증’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동안 벌어진 공청회를 비롯한 여론수렴 과정이 요식 행위에 그친 것은 아닌지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토지 강제매입과 관련해 갈등이 있는 지역을 군사시설로 간주하고 군을 출동시킨 정부의 방침 자체가 위법일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 같은 ‘기본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단순 상황 전달에만 치중했을 뿐이다. 

‘해법’은 고사하고 사실보도만이라도

정리하자. 언론에게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해법을 제시하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현재처럼 꼬이게 된 원인과 이에 대한 분석을 ‘심층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한 마디 더 덧붙이면 원인과 분석과는 별개로 현지 주민들이 느끼는 구체적인 입장과 심정에 대해 ‘정보 차원’에서라도 알릴 필요가 있었다. 대다수 언론에는 그것이 없었고, 보수신문은 ‘일부’는 반미 때문에 ‘또 다른 일부’는 보상권 문제 때문에 시위를 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보도를 해왔다. 

해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부의 문제해결 방식을 비롯해 언론의 보도가 지금처럼 계속될 경우 당장은 평택문제가 강제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적지 않은 후유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이 같은 점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적인 낭비를 초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까지도 언론의 지면과 화면에는 정부의 ‘방침’과 이에 대한 시위대와 주민들의 ‘반발’만이 있을 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