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동, 노동이다 아니다 (2)

노동사회

장애인 노동, 노동이다 아니다 (2)

편집국 0 5,826 2013.05.19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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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순서
 Ⅰ. 장애인 노동실태, 어디까지 왔나
 Ⅱ. 정부 장애인 고용정책의 허와 실
 Ⅲ. 외국 장애인 고용·노동정책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Ⅳ. 장애인의 보편적 노동권 확립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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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1990년대 중반 이후 IMF 구제금융으로 대표되는 경제위기는 사실상 두 가지 방향성이 충돌하는 시기였다. 생산성 및 경쟁력 논리의 전면화를 위해 노동의 양보를 확보하는 것이 한 방향, 국가와 시장의 실패를 통해 역설적인 의미에서 보다 실질적인 복지와 민주주의가 담보되는 사회로 진전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른 방향이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몇몇 근대적인 의미의 복지제도가 외양상 구축되는 것에 그쳤으며, 결과는 자본의 위기가 노동의 위기로 이전되는 과정이었다. 즉, 비정규직 등 고용불안이 확산되었으며, 노동시장의 극단적 분화가 진척되어 주변화된 노동력으로 변화되는 특징적 집단은 보다 명확해져만 갔다. 

그렇다면 1990년대 이후의 극단적 시장논리가 다양한 의미의 고용차별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한국의 정부정책이 적절한 완충장치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는가 혹은 그럴 수 있는 정책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취업취약계층에 대한 고용정책의 큰 방향을 논할 때, 정부의 주된 입장이 되어 온 것은 무조건적인 ‘선고용’의 논리이다. 즉, 일단 취업취약계층에 대한 고용실태의 심각함을 인정하는 외양을 취하면서 이에 대한 논리적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은 고용의 질과는 관계없이 어떤 형태로든 취업시키고 보자는 논리이다. 임금수준, 고용의 유지여부 등 일련의 노동조건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제외된다. 결국 장애인뿐만 아니라, 청년, 여성 등 대부분의 취업취약계층이 비정규직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용 이후 다양한 지점들에서 온전한 노동자로서의 자기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2. 장애인 노동권의 법적 환경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은 노동을 통한 것이며, 그 결과로 시장에서 임금이라는 형태의 대가를 받아야한다. 따라서 일할 수 있는 권리 즉, 노동권의 확보는 장애/비장애의 구분과 무관하게 기본적인 것이다. 장애인에게 있어 노동권이 확보되기까지는 교육권, 생존권, 이동권 등의 포괄적 권리에 대한 집합적 요구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법적 보장형태들은 아래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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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양한 법제들이 장애인노동권의 확보를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을 공백 없이 규정하고 있는가와 별도로, 장애인노동권의 확보가 보편적 노동권의 관점에서 법적으로 명문화되고 있는가이다. 즉, 평등한 노동과 노동기본권을 확립하고자 한 헌법적 보편성이 각각의 법률들에 충분히 삼투되어 있는가에 있다. 결국 장애인 노동권확립을 위해서는 다양한 법들에 존재하는 항목들의 통일성을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장애개념에 대한 법적 정의부터 장애인의 노동조건에 대한 제한규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3. 정부의 장애인고용정책

(1) 장애인의무고용제도

일반적으로 장애인고용을 위한 제도적 형태는 △장애인의 노동숙련을 향상시켜 일반적 노동시장으로 진입시키는 경쟁고용, △노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일련의 제도적 지원책 혹은 사용자에 대한 유인을 활용하는 지원고용, △노동시장에 즉시 진입하기 어려운 계층을 대상으로 한 보호고용, △특정 직종을 장애인에게 할당하는 유보고용 등으로 나뉠 수 있다. 현재 장애인 고용정책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일정비율의 장애인노동자에 대한 고용을 강제하는 의무고용제도로서 ‘장애인고용촉진제도’이며, 이는 경쟁고용을 위한 고용지원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 논의에 앞서 지적할 것은 의무고용제도가 가지는 제도적 기반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즉, 정책의 기본적 관점 문제이다. 장애인의무고용제도는 ‘시장의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생존권의 위협에 대해 국가가 온전히 부담해야 할 책임의 물질적 표현이다. 즉, 국가의 헌법적 책무인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낮은 생산성에 대한 정책적 보완의 논리나 시혜적 복지의 논리 등은 불필요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는 상시 5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로 하여금 근로자 총수의 2%(‘장애인 의무고용률’) 이상 장애인을 상시근로자로 고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2%에 미달할 경우 비례하여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부과하고, 2%를 초과할 경우 ‘장려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는 기금 운영의 형태로서 ‘장애인고용촉진기금’이라 하며, 누적된 고용부담금을 장려금으로 지급하는 동시에 장애인 고용촉진사업에 활용하는 제도이다. 관리는 노동부 산하에 있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주관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장애인의무고용제도는 지루한 저발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된 1991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용장려금 규모, 장려금지급대상 및 원칙에 있어서의 잦은 변동은 정부의 일관된 정책방향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제도의 시행은 10년이 넘었지만 장애인고용은 실질적으로 정체되어 있으며, 법적 목표치라 할 수 있는 의무고용률 2%는 한번도 달성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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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제도가 가지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현재의 의무고용률이 대단히 낮은 수준에서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제도 시행이후 전혀 상향조정되고 있지 않다. 의무고용률 2%는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장애인노동자의 잠재적 규모를 포괄하기에 턱없이 낮은 수치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최소한 전체 국민에서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만큼의 의무고용률이 확보되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2005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통해 발표한 장애인 출현율은 4.59%로 의무고용률의 2배가 넘는다. 더불어 호주(4%), 프랑스(5%), 독일(5%)의 절반정도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현행 의무고용제도에 내포되어 있는 ‘적용제외’ 규정이다. 정부는 2005년 1월 기준으로 정부부문의 장애인 고용율이 2%를 돌파했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제도시행 15년 만에 이루어진 목표달성이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실소를 금할 수 것은 바는 정부부문에서 장애인에 대한 의무고용이 면제되는 부문의 비율 즉, 적용제외비율이 유례없이 높이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적용제외 규정은 장애인고용과 관련된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2004년 5월 국가인권위가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2004년 12월 현재 한국의 적용제외율은 정부부문이 68%, 민간부문이 22%로, 일본의 민관 구분 없는 10%, 적용제외가 없는 독일에 비해 대단히 높은 수준이다. 결국, 정부는 전체 정부부문에서 34%에 대해 의무고용률 2%가 15년 만에 달성될 것을 자축한 꼴이다. 비록 2005년 법개정과 당정협의를 통해 정부부문의 적용제외비율을 68%에서 15.5%로(대상규모 60만명에서 15만명으로) 대폭 축소할 것이라 설명하고 있으나, 이 역시 장기간에 걸친 단계적 축소방안으로 사실상 적용제외부문이 줄어드는 만큼의 고용만을 증가시켜 법적 의무고용비율을 형식적인 2%선에서 유지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셋째, 장애인고용촉진기금의 고갈 가능성 문제이다. 기금운영을 통해 나타났던 다양한 문제는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고용정책의 실행원칙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지난 2002년 장려금을 지급하는 대상에 대규모 산재장애인을 포함시켜 지출요인을 대폭 증가시킨 이후, 2004년 기금 고갈문제가 가시화되자 고용장려금을 절반수준으로 인하하여 장애인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극대화시킨 사건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위 장려금인하 파동으로 불릴 만한 정부의 조치로 인해 장애인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장애인 취업이 크게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장애인마저 해고의 위협에 노출되게 되었다. 

장애인고용촉진기금은 제도의 성공이 재원의 고갈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독특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주지한 바 있듯이 부담금과 장려금이 주요한 수입과 지출요인이며, 이에 따라 장애인 고용이 증가할수록 장려금이 증가하는 반면 부담금이 줄어 기금의 고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제도가 원래 한시적인 것이라거나, 고용장려금 축소가 불가피했다거나 하는 논의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장애인고용이 제도의 목표치를 충분한 수준으로 넘어섰을 때 가능한 얘기이다. 장애인의 고용이 의무고용률에 도달되기도 전에 기금고갈문제가 현실화되었던 것은 장려금대상 계층 선정을 포함하여 정부의 방만한 기금운용, 장애인규모 변화에 대한 정부예측의 실패, 일반회계 투입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법은 장애인의무고용률을 상향조정하거나 적용대상기업을 확대하여 수입요인을 늘이거나, 일반회계의 투입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선택은 최악의 선택지였던 장려금 축소였으며, 이는 정부의 정책운영이 그 대상이 되는 당사자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제도 운영의 실패를 은폐하면서 저항이 가장 적은 방식으로 무마해가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끝으로 의무고용제도는 중증장애인 및 여성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미비하게 발전되어 있다. 즉, 장애인의 고용에 따른 장려금 및 부담금을 산정하는 데 있어 중증 및 여성 장애인에 대한 가산치를 두고 있기는 하나 그 정도가 상대적으로 저발전되어 있다. 낮은 생산성을 이유로 차별받는 장애인 노동자 중에서도 여성이거나 중증장애인이거나, 중증 장애여성일수록 노동시장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아진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정책적 배려라고는 장려금을 높게 책정한다는 것이 전부이며, 그 폭 역시 장려금 인하 이후 축소되었다. 

불행하게도 정부의 장애인정책방향을 보면 이상의 문제들이 올바프게 해소되지 않는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예를 들어 △기금운영과 기금압박의 문제를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으로 이전시키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 △탄력적 운영이라는 명분아래 ‘연계고용’이라 하여 장애인사업장의 생산설비와 원료·기술 등을 제공하거나, 생산관리 및 생산품의 판매를 전담 및 도급을 주어 그 생산품을 납품받을 경우 장애인을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등 보편적 제도와 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주지한 바 있듯이 의무고용률 상향조정이나 부담금 대상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의 실행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추진하는 것은 운영의 실패를 여타부문으로 전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연계고용과 관련하여서도 사실상 공공부문이 의무적으로 납품 등을 전담하는 것이 타당하며 이를 민간에 유인책의 형식으로 떠넘기는 것은 손안대고 코푸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작업은 적극적인 고용조치를 실행하는 데 있어 사회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드러나지도 않은 자본의 저항을 우려하여 거의 모든 제도가 유인의 제공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방식은 사실상 국가의 책무유기라 볼 수 있다. 

(2) 보건복지부 직업재활기금사업

직업재활기금사업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 사업이다. 이는 수행기관 특성에 따라 직업지도, 지원고용, 취업알선, 직업적응훈련, 취업 후 적응지도 등의 사업을 의미한다. 대단히 중복되고 있기는 하나, 노동부와 달리 보건복지부의 사업은 중증장애인을 중심으로 하는 ‘보호고용정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보건복지부의 직업재활기금사업은 중증장애인의 고용활성화 및 직업재활기관 접근성 제고를 목적으로 2000년 법 개정을 통해 지금까지 시행되어오고 있다. 그러나 시행 5년째인 동 기금사업은 지역 중증장애인의 고용활성화 자체가 미흡할 뿐 아니라, 보건복지부의 일반회계 직업재활사업과 거의 대동소이한 내용에 대해 별도의 기금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간의 장애인고용정책의 ‘역할 분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장애인정책을 포함한 복지정책이 전면 재편되던 1998년 이후부터 양 부처 간 밥그릇 챙기기는 도를 넘어섰으며, 다양한 부문에서 정책을 반반씩 나누어 가지는 방식으로 절충된 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활사업과 장애인 고용정책이다. 

어쨌든 이러한 부처중복의 비효율성은 사업계획수립, 예산편성, 사업수행기관 선정 및 평가는 보건복지부가, 예산집행과 정산업무는 장애인공단이 담당하고 있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로 인해 이중적 지도·감독, 평가기준의 이중성 등이 발생해 담당기관의 반발과 행정력 낭비가 초래되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 담당사업 중에는 고용촉진과 관련성이 낮은 기초재활에 해당하는 사업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사업효율성이 대단히 낮다. 정부 각 부처가 다양한 재원을 바탕으로 유사한 사업을 서로 다른 전달체계를 통해 실시하는 꼴이며 이로 인한 불필요한 예산의 낭비는 그대로 장애인 고용정책의 저발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장애인정책은 노동과 복지, 혹은 고용과 재활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단일부처에 의한 통합운영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적절한 역할 분담과 연계강화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장애인 고용정책은 노동부가 통합 운영하되, 노동시장적 고용정책이 아닌 지역에서의 재활과 관련된 사항들을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며 양자 간의 긴밀한 정보교류를 확보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고용사업을 거론하는데 있어 반드시 지적할 사항은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 대한 것이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은 사실상 작업장이 아닌 장애인 복지시설로 분류되는데, 그 종류와 역할이 대단히 복잡하다. 장애인작업활동시설, 장애인보호작업시설, 장애인근로작업시설, 장애인직업훈련시설, 그리고 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역할은 세분화되어 있으나 기능은 전혀 세분화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각 시설들의 역할에 따른 전문화된 서비스를 전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작업활동시설로 신고된 곳도 실질적으로 보호작업시설이나 근로작업시설의 형태를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실제로 노동이 행해짐에도 대가가 전혀 지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불필요한 세분류는 노동법의 보편적 적용을 대단히 어렵게 만들고 있어 보편적 노동기준의 준수여부를 감독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그만큼 줄이고 있다.

4. 고용권과 노동권의 총체적 사고의 필요성

장애인에 대한 고용창출 역시 이러한 정부정책의 한계로부터 예측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취업취약계층 일반이 그러하듯 장애인노동권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서는, 정부의 신규고용창출 노력은 고용의 질이 확보된 ‘온전한 일자리(decent work)’를 중심으로 취업을 확대하는 방향을 견지해야 한다. 이것은 또한 노동시장 내에서 발생하는 장애인에 대한 의도적·결과적 차별,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다양한 측면의 ‘낙인’을 사전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절대적 고용증대와 노동3권의 확보에 대한 ‘단계론적 사고’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노동기본권은 어느 정도의 고용수준을 이룬 후에야 논의할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3권으로 대표되는 노동기본권 확보노력과 함께 가지 않는 우선고용의 원칙은 위험하다. 설사 장애인노동자들의 절대적 고용수준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저임금의 불완전노동과 실업상태를 반복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반복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로서 자기결사 및 자기표현 기제를 확보하지 못한 운동은 지속적인 생존권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추가적으로, 장애인 고용의 문제가 온전한 일자리와 무조건적인 채용지향은 양자택일의 문제인가 할 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개입과 차별시정노력 및 재원의 과감한 투자, 그리고 공공부문을 통한 고용흡수의 방식을 통해 어느 정도 문제의 해소가 가능하다. 문제는 정부의 기본적 ‘정책의지’에 있다. 우리 정부의 정책적 접근에서는 서구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사회적배제 반대(against exclusion)’를 위한 다양한 정책적 모색은 부재한 반면, 취업취약계층에 대한 이중수혜의 과도한 감시만이 발견될 뿐이다. 

5. 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위한 대안적 정책생산 

현시기 장애인 노동권확보 관련 대안적 정책을 생산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사항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노동시장 진입 전과 진입 후의 차별에 대한 동시적인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이는 장애인노동권의 확보는 시설 접근권, 사회보장수급권, 교육권 등의 권리에 대한 확보노력과 동시적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특히 노동시장 진입 후의 임금차별과 관련하여 현행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의 개정이 요청된다. 현행법은 장애인에 대한 채용, 승진, 전보 및 교육훈련에 대한 차별을 규정하고 있을 뿐, 장애를 이유로 임금차별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명문화하고 있지 않다. 장애인에 대한 임금차별의 예방은 사실상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먼저, 현재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임금격차는 투여된 노동의 차이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남여고용평등법’처럼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장애인에 대해 최저임금의 적용제외를 명시하고 있는 ‘최저임금법’의 개정이 요구된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에 대해 최저임금제도의 적용을 제외시키고 있는데, 최저임금이 노동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최소한의 권리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해당조항은 개정안을 통해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취업취약계층에 대한 고용 및 실업대책 일반이 그러하듯, 장애인의 고용증대는 신규고용창출과 온전한 일자리(decent work)의 확보가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셋째, 현행 장애인고용에 대한 정책적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평면적이고 유일한 장애인고용지원제도인 현행 고용촉진제도의 전면적 개편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주지한 바 있듯이 △의무고용률의 상향조정, △적용대상기업의 실질적 확대, △적용제외율의 대폭 축소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또한 보다 심각한 고용불안에 노출되어 있는 장애여성 및 중증장애인에 대한 차별화된 정책 도구를 구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넷째, 장애인고용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동일한 작업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재원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국가인권위 보고서에서 나타나듯, 현재 ‘편의증진법’은 국부적인 물리적 요소나 시설만을 충족시키도록 강제화함으로써 사용자에게는 불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장애인노동자에게는 접근성 증진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결과를 양산하고 있다. 더불어 실질적으로 장애인 노동자의 작업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는 작업장 내 작업시설에 대한 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장애인 노동자의 작업환경개선은 장애인노동의 동일노동·동일임금·동일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하며, 작업장 시설개선을 통한 ‘작업장 기본권’을 재확립하는 것을 뜻한다.

끝으로, 노동을 통한 장애인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현행 제도가 어느 정도 수준의 생계권을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법적·정책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고용장려금 축소는 제도를 통해 확보되는 사회보장의 수준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수준이 과감히 하강하는 것은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빈곤계층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선언적 의미로 왜곡시키는 중대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은 사회보장제도의 구비된 종류와 유형을 보면 이미 초 인류 복지국가라 할 수 있으나, 실제 그 보장 수준에서 보면 복지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히 특정한 제도를 구비하고 있음을 근거로 낮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용인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를 방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기존의 노동법과 장애인 관련법안의 통합적 정비를 통해, 노동을 통한 복지가 보장할 수 있는 노동권과 생존권의 수준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