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의 본질과 그 파장

노동사회

한미 FTA의 본질과 그 파장

편집국 0 3,702 2013.05.19 07:27

*************************************************************************************
이 글은 한신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주최로 지난 5월4일 열린 ‘한미 FTA, 어떻게 볼 것인가’ 심포지엄의 발제문을 요약·보완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나 참고문헌을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원문을 참고하십시오. -편집자
*************************************************************************************


chjeon_01.jpg
[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제작한 한미 FTA 반대 포스터.   - 출처: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

1. 문제제기

2004~05년에는 양극화문제가 전사회적 의제로 부상하면서 많은 관심과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올해에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정책처방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양극화해소를 위한 결정적인 방안으로 등장했다. 즉 한미 FTA 체결이 시장경제 및 개방경제의 확대를 통해 생산성 제고와 소득증대를 가져와 사회안전망만 적절하게 정비되면 양극화 문제가 쉽게 해소될 수 있다(한덕수, 2006)는 급조된 억지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한미 FTA를 면밀한 사전연구와 공개 토론 없이 밀실에서 조급하게 추진한 것을 보면 2006년 초 한미 FTA가 갑자기 급부상하게 된 데에는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보수언론과 재계,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그들 이외에 대다수가 반대하는 한미 FTA에 노무현정부가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 시점에서 한미 FTA를 추진하게 된 배경과 동기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한국의 사정과 미국의 사정을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한미 FTA의 추진 동기에는 재정경제부의 논리와 외교통상부(통상교섭본부)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 재정경제부가 한미 FTA를 강조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상황논리가 깔려 있다. 첫째, 중국이 제조업부문에서 한국의 지위를 따라잡을 것이 필연적일 것이 때문에 기존의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수출주도 발전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이로부터 낙후된 서비스산업 특히 사업서비스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여 이를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추구하겠다는 기본 방침(2005년 4월 선진통상국가구상)이 나온다. 즉 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필 왜 이 시점에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에 비해 외교통상부의 논리는 정태인 전 청와대비서관이 폭로한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간의 직거래’ 속에 담겨 있겠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바로 이 부문이 당초 한미 FTA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미국의 입장과 관련되어 있다. 사실 5~6년 전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미국무역위원회보고서가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이 한국과 FTA를 체결하여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어떤 이유로 이 시점에서 한국과 FTA를 체결하고자 하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미국이 추진하는 FTA 모델을 일본과 중국이 추진하는 FTA모델과 비교해 봄으로써 미국 FTA 모델이 갖는 차별적인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할 것이다. 끝으로 한미 FTA의 파장과 이로부터 2006년 6월 워싱턴DC에서 개시될 한미 FTA협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짚어 볼 것이다. 

2. 미국 주도 FTA의 본질과 한미 FTA의 효과 

1) 미국 주도 FTA의 본질 

FTA의 성격은 형식상 같은 FTA라고 하더라도 어떤 국가가 추진하는 FTA인가에 따라 성격이 아주 상이하다(Dent, 2005, pp.301-2).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FTA는 미국, 일본, 중국이 추진하는 FTA이다.

우선 한국이든 싱가포르이든 호주이든 미국과 체결하는 FTA는 본질적으로 비대칭적이다. 즉 미국은 협상 상대국에게 농산물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서비스, 의료, 문화, 정보통신 인프라, 투자자유화, 노동·환경 조항까지도 포함한 포괄적인 시장접근을 요구하나, 자신들은 민감한 산업부문과 생산라인에 관련된 원산지규정에 의거하여 얼마든지 선별적이고 차별화된 일정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협상상대국에 비해 관세율이 낮고 시장개방 정도가 훨씬 높은 미국으로서는 여타 국가들과 FTA를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일부 품목과 산업을 제외하면 피해를 입을 부분이 거의 없다. 이에 비해 협상 상대국은 미국과 정반대로 시장개방도가 낮아 대폭적인 관세양허를 제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협상상대국이 금융, 법률, 회계, 컨설팅 등 서비스 산업을 개방할 경우 기존의 각종 규제와 룰을 개정해야 한다.

미국과의 FTA 체결이 초래할 더 심각한 문제는 FTA 체결을 위한 협상이 그 나라에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즉 미국은 협상상대국에게 금융, 의료, 교육, 방송 등 중요한 공공정책분야에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요구한다. 일례로 미국은 싱가포르와의 FTA 협상과정에서 시장개방은 말할 것도 없고 핵심공기업의 민영화까지 언급했다(Dent, 2006, p.106). 나아가 미국은 1997년 동아시아 외환금융위기 시 위기의 파급을 차단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싱가포르 통화당국의 자본통제장치마저 철폐할 것을 요구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농업부문이 없어 협상에서 큰 부담이 없는 데다 FTA에 대한 반대나 거부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Tongzon, 2003, p.177) 불과 몇 차례 협상만으로 협상은 빠른 시일 내 종결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포괄적인 개방요구에 따른 협상 지연으로 2001년 3월에 개시된 협상은 2003년 1월에서야 비로소 종결되었다. 

미-호주 FTA에서도 미국의 포괄적인 시장개방요구로 의약급여제도, 검역, 지적재산권 보호, 해외직접투자관리 등 호주의 핵심적 제도가 다 허물어졌다. 또한 호주의 정부조달제도에서 미국의 요구가 대폭 반영되어 국내 및 국민기업을 대상으로 한 산업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적재산권보호 요구의 경우, 호주가 미국의 지적재산권 보호관련 법안(Digital Millenium Copyright Act)을 그대로 도입한 것과 다름없는 조치를 단행했다, 저작권 기한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였으며, 지적 재산권보호 법을 위반한 호주 사람들에 대해 형사 처벌하기로 했다. 이밖에 예상했던 것처럼 투자자유화 등의 이슈에 대해 호주가 미국에 대폭 양보했다. 이로써 신기술도입이나 기술고도화, 고용창출을 가져오는 해외직접투자보다는 주로 기존 호주 기업의 인수·합병, 기업자산의 단순한 인수 등의 투자가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걱정스러운 것은 미국이 싱가포르보다 시장과 경제규모가 더 큰 한국에 대해 훨씬 더 강도 높은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최근의 양극화가 1997년 외환·금융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IMF의 구조조정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실행했던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미 FTA 체결을 통한추가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양극화의 해소는커녕 사회통합의 기반을 송두리째 허물어버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둘째, 미국 주도 FTA는 일본, 중국이 추진하는 FTA와 달리 과학기술발전이나 인적자원개발 등 상대적으로 발전수준이 낮은 협상상대국의 경제발전 지원이나 경제협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미국이 추진하는 FTA 모델을 비대칭적 신자유주의 FTA 모델로 특징지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일본이 추진하는 FTA는 협상 상대국의 경제발전, 과학기술발전, 인적자원개발 및 인적 자원교류 등 발전지향적(developmental) 협력관계를 많이 고려하고 있다. 즉 일본은 FTA를 추진할 때 경제협력협정에 기초하여 무역자유화와 함께 경제·기술협력을 동시에 강조한다. 발전주의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 싱가포르 모두 일본이 추진하는 FTA의 이런 성격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한 것처럼 보인다. 이 외에도 일본이 추진하는 FTA에서 특징적인 것은 미국, 중국과 달리 농업부문 개방을 가능한 협상에서 배제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농업부문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일본정부 경제정책의 특성상 자칫 농업부문을 개방하여 농업부문이 피해를 볼 경우 여당이든 야당이든 커다란 정치적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일본과 FTA 협상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끝으로 중국이 추진하는 FTA의 차별적 성격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FTA 체결을 제안할 때 협상 상대국 및 지역에 대해 긴밀한 경제협력을 강조한다(Cai, 2005, pp.587-8). 지금까지 중국은 홍콩, 마카오 등과 관세 및 비관세장벽 철폐 등을 포함하는 경제동반자협정(Closer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을 체결했다. 원래 이 협정에 대만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대만은 중국과의 FTA 체결을 거부했다. 그러나 대만은 동아시아의 지역통합에서 배제 내지 고립화되지 않기 위해 미국, 일본, 싱가포르와 FTA를 체결하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아세안과 2010년까지 FTA를 체결하기로 합의함과 동시에 보다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FTA를 최종목표로 잡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중국은 단순한 관세·비관세장벽 철폐 이외에 광범위한 지역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chjeon_02.jpg
[ 지난 5월4일 한신대 사회과학연구소 ‘한미 FTA 어떻게 볼 것인가’ 심포지엄.   - 출처: 참세상 ]

2) 한미 FTA 효과와 파장

한미 FTA가 한국 및 미국에 어떤 효과를 가져 올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파급효과가 워낙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파급효과를 어떤 모델로 어떤 가정 하에서 추정하는가에 따라 추정결과도 상이하게 나온다. 정부가 한미 FTA 체결에 따른 효과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 연구결과에 자의적으로 개입하는 등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우선 양국 간 관세 및 비관세 철폐에 따른 시장개방의 확대가 가져올 거시 경제적 효과가 문제가 된다. 대체로 미국이 한미 FTA로부터 얻게 될 잠재적 이득은 아주 미미해 미국 GDP의 0.03%의 증가가 기대되는데 비해, 한국은 경제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미국과의 FTA 체결로 얻게 될 잠재적 이득은 GDP의 0.4%(Choi & Schott, p.193)로 미국보다는 크다.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추정과 관련하여 연구결과의 임의적인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기존의 CGE정태모델에서의 결과(0.42%의 GDP증가) 이외에 CGE자본축적모델에 의거하여 생산성증대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때의 분석결과(1.99%)와 생산성 증대효과를 고려했을 때 분석결과(7.75%)를 추가적으로 공표했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6, p.1). 예상한 대로 정부와 KIEP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데 급급했다.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국내외 연구결과의 공통적인 결론에 따르면 FTA 체결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문은 수출산업이다. 특히 전자, 자동차, 섬유·의류 부문 수출업자들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01년 미국 상원 금융위원회의 요청으로 미국의 무역위원회(USITC)가 작성한 보고서(2001)에 따르면, 한미 간에 FTA가 체결될 경우, 4년 이후 미국의 대한 수출이 54%, 한국의 대미수출은 2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대한수출 중 특히 농산물 수출이 20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예측전망은 한국 농업부문의 평균관세율이 미국에 비해 아주 높기 때문에 FTA에 따른 관세인하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 반대로 한국의 대미수출의 경우 FTA 체결로 미국 내 섬유·의류부문에 대한 각종 보호조치가 완화 내지 철폐되어 한국의 섬유·의류수출이 125%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가장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는 부분은 한국의 농업부문이다. 연구결과에 따라 많게는 8조원에서 적게는 1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최세균, 2006, p.44). 1조여원의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는 우리가 협상을 잘 해 쌀을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하고 고율관세 품목인 기타곡물류의 관세가 10%만 감축되고, 채소, 과일, 축산 가운데서도 중요한 품목의 관세가 50%만 감축될 경우(최세균, 2006, p.44)이다. 하지만 현재의 협상 준비상태에 비추어 볼 때 이런 협상결과를 얻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농업의 궤멸과 농민의 재앙은 불을 보듯 뻔하다(박진도, 2006; 이해영, 2006). 

의료, 교육, 금융 등 서비스분야에서의 개방에서는 농업부문에서처럼 당장 확연한 피해를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서비스산업의 개방이 재정경제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것처럼 낙후한 서비스산업경쟁력 제고, 추가적인 고용창출,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증대 등을 가져올 수 있을까?

한국경제에서 GDP대비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9.3%이지만 70% 내외에 이르는 여타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주 낮은 편이다(삼성경제연구소, 2006, p.7). 특히 미국과 비교해 보면, 2003년 미국 서비스산업의 규모는 한국의 41.2배에 달하며 한국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전기·가스·수도업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미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김상조, 2006, p.27). 

이처럼 내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비스업부문이 억압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제조업부문을 중심으로 한 수출주도 공업화 전략이 경제발전전략의 대부분을 규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주도 공업화전략을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정부는 원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했다(고환율정책). 그 결과 한편으로는 소비억제와 저축증대를 통해 이루어진 자본형성이, 자본통제와 금융규제 하에서 실행을 통한 학습을 주도했던 제조업의 교역재 부문으로 흡수되어 생산성이 높아지고 수출이 증가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수와 서비스업이 구조적으로 취약해졌다. 

게다가 최근 경제의 서비스화와 금융화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진행되고 제조업 교역재 부문에서 중국의 수출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높아짐에 따라, 국내 교역재 부문이 더 이상 학습효과를 적극적으로 확산하는 주된 원천이 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소프트웨어개발, 금융, 회계, 법률서비스 등 서비스부문 쪽으로 투자가 더 다변화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인위적인 고환율정책(원화가치 상승억제)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자원이 학습효과가 소진된 교역재 부문에 집중되면, 고환율정책에 기초한 수출주도 공업화전략은 필연적으로 수확체감에 직면하게 된다(Eichengreen & Park, 2004, 418-9). 요컨대 제조업의 교역재 일변도의 수출촉진책은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지경에 달했다. 

향후 투자와 경제성장은 서비스산업의 확대·발전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창출효과도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이 더 크다. 특히 이중에서도 IT관련 서비스(SI), 엔지니어링, 광고, 컨설팅, 회계 법률서비스, 디자인, 사업서비스는 성장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의 경쟁력제고에도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사업서비스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6%(고용기준 6.5%)로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여기에는 앞서 지적한 제조업 교역재 위주의 수출촉진정책과 이에 연계된 수출부문 제조업 교역재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자금 및 세제지원 이외에도 여러 가지 규제가 서비스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발육부진 상태에 빠진 서비스업을 한미 FTA 체결이라는 외부충격을 통해 성장·발전시킬 수 있을까? 사업서비스를 포함한 일련의 지식기반 서비스는 제조업의 지속적 성장과 제조업 쪽에서의 서비스업에 대한 지속적 수요를 통해 성장 발전하는데, 기본적으로 협소한 국내수요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과 고용창출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물론 서비스업의 교역확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별 문제가 없지만 사업서비스의 국제 분업이 주로 영어사용국을 포함한 영미권 국가들 사이에만 이루어져 수출에도 큰 한계가 있다. 서비스업의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통한 일자리 창출도 서비스업의 수요 및 고용창출의 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가능한 지역 역시 캐나다, 인도, 호주, 이스라엘, 필리핀 등 대부분 영어사용권 국가들이다(정준호·이병천, 2006, pp.28-40). 공교롭게도 이들 나라들이 주로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한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하여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이를 통해 서비스업이제조업을 대신하여 수요 및 일자리창출의 주역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3. 요약 및 맺음말

6월 본 협상을 앞두고 한미 양측은 농업과 금융 부문을 포함한 17개 협상분과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시시때때로 민감한 품목과 사안에 대해서는 최대한 협상에서 배제하거나 양허를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마지노선을 지킬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마지노선 자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어 홍보성 발언 이상의 의미를 두기 어렵다. 협상 팀을 강화하기 위해 협상인력을 대폭 충원했다고 하지만 보강된 인력이 협상경험이 없거나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협상능력을 강화하기에는 애시 당초 역부족이다. 

딜레마는 현재와 같은 준비부족 상태에서 협상력을 극대화하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협상에 따른 모든 책임은 정부가 지기하기로 한 이상 미국의 신속협상권한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진지하게 협상을 해야한다. 극단적인 경우 스위스 케이스가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세계에서 가장 혹독하다고 평가받는 미국식 FTA 모델, 즉 비대칭적인 신자유주의적 FTA 모델과 맞서 유리한 협상 결과를 이끌어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다. 동아시아 차원의 지역협력을 강화해 이를 기초로 해서 미국의 FTA 모델에 맞서는 것이 순리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과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가 경쟁적으로 미국식 FTA 모델을 받아들이려고 함으로써 아세안+3(한중일)에 의한 치앙마이협정 등 지난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축적해온 동아시아 협력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아시아의 지역통합과 연대는 동아시아가 자유화·세계화 물결에 합류하면서도 동아시아 특유의 다양한 발전모델들을 확립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통과지점임에도, 한미 FTA 체결은 모처럼 활성화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차원의 협력과 연대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아세안 내에서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했거나 협상 중인 싱가포르, 태국과 그 밖의 아세안국가 간에 동아시아지역 통합방식을 둘러싸고 경쟁과 대립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급부상과 한·중 간 경제교류의 강화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한미 FTA 협상에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 역시 동아시아의 지역협력과 연대 나아가 남북 간 화해협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지역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여러 형태의 지역통합에 말려드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국이 일본, 한국과의 군사·안보 차원의 쌍무적 동맹 체제를 FTA를 포함한 경제영역에까지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