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론스타의 불법 ‘먹튀’를 부추겼는가

노동사회

누가 론스타의 불법 ‘먹튀’를 부추겼는가

편집국 0 3,552 2013.05.19 07:19

 


jnjeong_01.jpg론스타 회장의 ‘사회공헌기금 헌납다짐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외환은행 불법매각과 관련한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와 사법당국은 어정쩡한 봉합으로 사태수습을 시도하겠지만, 불거진 의혹에 대한 여론을 무시하기에는 너무 구체적인 정황 증거가 폭로된 상황이라 당분간은 녹록치 않을 듯하다. 검찰과 감사원은 ‘존재 이유가 뭐냐’는 항변이 터져 나올 시점이 되어서야 떠밀리다시피 수사에 나섰다. 이들 기관은 지금 여론의 추이를 살피며 ‘깃털’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 사건의 진정한 몸통인 청와대와 전직 부총리들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따라서 사정당국이 새롭게 밝혀낸 사실도 아직 없다. 언론이 보도하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따지고 보면 이미 지난 1년 반 동안 노동자들과 사회단체가 폭로한 내용에 불과하다.

론스타 ‘먹튀’사건을 바라보는 두 시각

2004년부터 외환은행 매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온 투기자본감시센터와 민주노동당의 노력과는 별개로, 보수 정치권에서는 ‘론스타게이트’를 놓고 정쟁을 벌이고 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의 불법성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은 채, “세금만큼은 내게 하자”며 사태가 적당히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반면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정부를 공격할 호재로 삼고 날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도 투기자본 폐해의 직접적인 배경인 ‘자본자유화 조치’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이견이 없다. 이들은 이미 드러난 부정할 수 없는 과실을 문제 삼는 한편, 외국자본 일반에 비난이 확대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정서법’보다는 ‘국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인데, ‘글로벌 스탠더드’ 확산을 위한 자본자유화, 규제폐지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이 같은 이데올로기적 반격에 동조하며 홍위병으로 나서고 있는 듯하다. 

실상이 이러니 노동자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는 심정은 또 다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론스타의 ‘먹튀’행각을 보면서 IMF 외환위기 이후 8년간의 구조조정이 강요한 삶의 퇴보를 떠올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해고되고,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어 삶에 허덕이게 되었는가! 투기자본이 거두는 막대한 차익은 노동자에게 대가를 떠넘기고, 구조조정 성과만을 가로챈 것이다. 여기엔 외국계 펀드든 국내자본이든 다를 게 없다. 국내자본도 강력한 구조조정이 시행되는 동안 착취율 증대로 이윤율을 만회했고, 그러는 사이 사회 양극화와 빈곤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론스타 ‘먹튀’사건은 자본의 수익률 회복을 위해 추진된 구조조정이라는 본질의 한 단면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사례다. 더불어 이 사건은 외국자본 유입이 고용확대는 물론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라던 정부 정책의 파산을 상징한다.  

그런데 청와대가 정말 몰랐을까?

‘론스타게이트’에 대해 검찰은 수사의 마지노선을 미리 정해놓은 듯 ‘외환은행 헐값매각사건 수사’라고 이름 붙였지만, 당시 매각은 명백한 ‘불법’매각이었다. 이것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다. 론스타는 사모펀드이기 때문에 국내은행을 인수·경영할 자격이 없었고 이런 자격제한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하자마자 미국 지점과 지사를 즉시 폐쇄했다. 그대로 두면 미국 연방준비은행(FRB)의 규제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길은 은행법상 예외조항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론스타도 은행을 살 수 있다. 따라서 론스타가 인수하기 위해서 외환은행은 ‘부실금융기관’이 되어야만 했고, 때문에 의혹을 밝히기 위해서는 당시 외환은행이 부실은행이었는가가 핵심 쟁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매각 직전 은행 이사회와 금융감독위원회에 보고 된 외환은행의 경영상태는 지극히 양호했다. 문서들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이 8% 이하로 떨어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게다가 이제 막 ‘경영개선 권고조치’를 졸업한 마당이었으니, 부실할 까닭이 없었다. 거꾸로 생각하면 더 명확해진다. 론스타 같은 투기자본 입장에서 다 망한 은행이라면 뭣 하러 사겠는가? 투기펀드가 눈독 들이는 기업은 한때 부실했지만 회생 중이거나, 일시적인 재정난으로 실제가치보다 저평가되어 있는 기업이 대부분인데, 외환은행은 전자에 속했다. 검찰이 수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부실했지만 회생 중이던 외환은행을 BIS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해 불법으로 인수했다는 사실이다.

매각 승인권한을 가진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은행을 매각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2003년 말 자기자본비율이 6.16%로 곤두박질 칠 것이라는 전망치를 들어 거래를 승인했다. 황당한 사실은 이 중대한 결정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금감위가 달랑 팩스 다섯 장을 내놓은 것이다. 누가, 어떤 근거로 작성했는지 아직도 밝히지 않고 있는 이 ‘의문의 팩스 5장’이야말로 불법매각의 명백한 증거이자, 론스타 게이트의 몸통으로 가는 열쇠다. 론스타게이트에는 청와대, 금감위, 재경부, 외환은행, 론스타가 모두 연루되어 있다. 이 가운데서도 핵심은 물론 청와대의 역할이다. 

외환은행 매각결정이 공식 보도되기 직전인 2003년 7월15일 개최된 ‘비밀 10인 회의’는 론스타의 은행 인수에 예상되는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 재경부, 금감위, 외환은행, 론스타 측 대리인 등이 참석해 도상훈련을 하고 각자 역할분담을 한 중요한 회의였다. 바로 이 회의에 청와대 행정관이 참석했고, 그 결과는 다시 서면으로 정책수석에게 보고되었다. 이 사실은 당시 매각에 청와대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10인 회의’가 열리기 일주일 전인 2003년 7월7일부터 10일까지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중국방문에 이강원 외환은행장이 동행한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청와대측의 ‘지휘’하에 매각작업이 추진되어왔음을 시사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관련 의혹이 해소되기를 바란다”, “고위공직자 가운데 잘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며 바람막이 노릇을 자처했던 것이다. 

jnjeong_02.jpg‘불법’매각의 합법적 해결방안

지금 진행 중인 검찰과 감사원의 조사태도를 볼 때, 하급 실무자 몇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고 적당한 선에서 사건을 무마하려는 듯하다. 거듭 말하지만 당시 매각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었다. 위법으로 저질러진 매각을 원천무효화하고,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서울 행정법원의 판결에 의해 2003년 금감위의 승인이 무효가 될 수 있다. 둘째, 검찰 수사에서 론스타의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역시 무효가 된다. 이 경우 론스타의 주식은 몰수대상이다. 셋째, 금감위가 론스타의 불법 혐의를 근거로 주식 매각 명령을 할 수 있다. 

첫째, 행정법원이 2003년 금감위의 매각승인을 무효화할 수 있는 근거는 정부(금융감독위원회)가 중대한 불법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매각을 최종 승인한 금감위는 재량권을 남용하여 법을 어기는 처분을 내렸다. 금감위는 외환은행 매각이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외환은행은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지도, 그에 준하는 사유도 없었다. 또한 거의 유일하고도 핵심적인 매각 근거인 BIS비율은 아무런 검증절차도 없이 정체불명의 자료에 의존했다(BIS비율 조작의혹이 커지자 감사원이 재산정한 결과 부실금융기관에 해당되지 않는 8% 이상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감사원은 발표를 미루고 있다). 게다가 론스타는 ‘탈세전력’이 있기 때문에 은행법상 대주주 자격의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었음에도 당국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정황증거가 있다. 2003년 7월22일 론스타 코리아의 스티븐 리가 이강원 외환은행장에게 발송한 문서를 보면 론스타가 자신의 탈세전력에 대해 은행과 정부에 해명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알고도 승인했다면 이는 명백한 배임이며, 역시 무효결정의 근거가 된다. 

둘째, 검찰수사 결과 은행인수 과정에서 론스타가 부정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주식취득 자체가 원천무효가 된다. 특히 BIS 자기자본비율 조작에 론스타(또는 대리인인 ‘김&장 법률사무소’)가 공모한 사실이 밝혀지면 거래자체가 취소될 수 있다. 이 경우 론스타에 사기죄가 적용되므로 론스타가 취득한 외환은행 주식은 장물로, 몰수대상이다. 

마지막으로 금감위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자격을 박탈하고 주식매각명령을 내릴 수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금감위는 은행지분의 10% 이상을 소유한 대주주에 대해 반기별로 한번씩 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도록 되어 있다. 형사처벌을 받는 등 대주주로서의 자격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금감위는 해당 대주주에게 10% 이상의 초과지분을 강제 매각하도록 명령해야 한다. 앞선 지적대로 론스타는 이미 대주주로서 자격 미달이었다. 금감위가 당장이라도 지분매각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여기 있다.
이상과 같은 해법은 법에 명시된 합법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대로 진행될지 여부는 전적으로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압력수위에 달려있을 것이다.  

 ‘386’이나 ‘이헌재사단’이나…

한미 FTA를 통해 정부가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조정을 더 한층 밀어붙이려는 시점에 불거진 론스타의 ‘먹튀’사건은 다소 모호하긴 해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대중적인 비판과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광범한 호소력을 갖은 입장은 ‘국민경제론’이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한국경제의 경쟁우위를 위해서 외국투기자본을 규제하자는 것이다. 이 주장에 동조하는 측은 노동자들과 일부 진보진영을 비롯하여 보수언론과 우파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투기자본 횡포문제는 단지 국적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자본도 같은 시기 투기자본의 수법을 따라하며 부를 축적했다. 국내자본 입장에선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한 셈이다. 조세회피지역을 이용하는 국내자본이 늘고 있으며, 아예 국내형 투기자본이 본격 육성단계에 접어들었다. 게다가 국부유출이 양극화와 빈곤화의 원인인 것만도 아니다. 400조에 달하는 국내 부동자금을 보라. 한국정부와 친 자본 언론은 일부 투기자본의 횡포에 사후적 조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일반적 규제강화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단지 외국자본의 압력 때문이 아닌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른 개혁이 이롭다고 확신하고 있다.

다른 한편, 론스타와 같은 투기자본의 횡포가 매판관료와 정통 수구관료 집단이 주도한 국부유출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론스타 사건은 단순히 일각에서 말하듯 ‘매판관료’와 일부 엘리트 집단의 사리사욕을 위한 일탈적 행위가 아니다. 정부는 외국자본의 유입이 한국자본의 자원재배치에 순기능을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도 ‘동북아 금융허브’나 ‘개방형 통상국가’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자본주의의 ‘전략’ 그 자체

외환은행의 매각도 외자유치확대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라는 정부정책의 큰 틀에서 결정됐다. 게다가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외자 순기능론’은 특정 관료분파만이 아니라, 총자본의 이해에 부응한 것이었다. 전·현직 관료집단 가운데 ‘이헌재 사단’이 매각을 실행하고, 뒷돈을 챙긴 것은 사실이지만, 노무현과 ‘386세력’의 반대를 무릅쓴 것도, 자본가 전체의 이익에 반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투기자본의 횡포에 단지 ‘정통 수구관료’들만 연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외자유치’ 4개월 만에 공장을 청산하고 1천3백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투기자본 횡포의 또 다른 대표사례, 오리온전기 매각의 경우, 이해찬 총리가 재직 시 주도했던 일이다. 그러므로 투기자본의 횡포문제에서 ‘매판관료’ 대 ‘자주적 관료’식의 구분은 무의미하고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 한다. 

한미 FTA 역시 한국자본주의 ‘자체의 필요’에서 추진되고 있다. 한미 FTA를 통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한국정부와 기업주들의 ‘전략’자체가 우리의 삶을 궁지로 몰고 있다. 따라서 투기자본의 횡포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려면, 다른 무엇보다 정부와 한국자본의 정책에 맞서는 것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한국정부와 자본가 집단전체의 논리와 우선순위에 맞서 노동자들의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증대하기 위한 투쟁을 광범하게 벌여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