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보호 못 하는 비정규직 이야기

노동사회

법도 보호 못 하는 비정규직 이야기

admin 0 3,003 2013.05.07 09:38

이제 정규직이 되는구나

나의 이름은 김양경(가명, 25세), 지금은 실업자, 한 때 롯데호텔 면세점에서 근무했다. 지난 2000년 여름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자 나 같은 계약직 여직원들도 동참하였다. 생전 처음 파업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지만 노동자의 권리로 헌법에 보장된 것이라니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싶었다. 그러나 회사측은 일방중재조항을 이유로 불법파업이라며 교섭을 거부하였고, 이내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살인기술을 연마한다는 91명의 특공대가 투입되었으니, 그 결과가 어땠을까에 대하여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파업을 같이 하면서 나 자신이 노동자임을 알았고, 용기를 내어 롯데호텔에 근무하는 많은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회사간부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해온 사실을 밝히고 법원에 소송을 내는데 참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노동조합은 '계약직 3년이상 4년차 근무시 정규직화'라는 단체협약도 쟁취하였다. 가만히 있을 때 돌아오는 것은 성희롱과 차별이었지만 투쟁을 통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 이제 1년 반이 있으면 정규직이 되겠구나.…' 그런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2001년 1월 31일 '김양경'이란 이름이 적힌 계약해지 통보서를 받았다. 우수사원이라고 상을 줄 때는 언제고 인사고과 평가가 나쁘다니, 더구나 그 인사평가를 한 사람은 바로 내가 성희롱진정을 하고 소송을 건 회사간부였다….(호텔롯데노조, "성희롱 피해자 재계약거부, 정규직화 1년 앞둔 시점에 재계약 거부는 보복성 인사" 『매일노동뉴스』 2001년 2월 3일 자) 

하루아침에 계약 해지라니 

호텔롯데노조는 회사가 성희롱 사례로 판정된 면세점 계약직 노동자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일년 남겨둔 시점인 지난 31일, 구체적 근거 제시 없이 재계약을 거부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회사가 재계약을 거부한 5명 중 4명은 성희롱 피해 여성노동자들이고, 3명은 우수 사원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다며, 이들은 노사가 합의한 2000년 단협인 '비정규직 3년 이상 4년 차 근무자에 대한 정규직화'에 따라 1년 후면 정규직 사원이 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노조는 "해당자의 인사고과를 매긴 담당자들이 성희롱 가해자고, 민사소송에 계류중인 것을 악용한 것"이라며, "회사의 무더기 재계약 거부 전례가 없었던 것으로 볼 때, 명백한 보복성 인사로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또 노조는 "5명의 문제를 넘어 전 계약직들이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회사 인사과 관계자는 "인사고과가 낮게 나와 재계약에서 제외됐고, 구체적인 평가 결과는 회사 규정상 공개할 수 없다"며 "경영상 필요에 맞춰 명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향후 부당해고 구제 신청과 함께 5일 진행될 대의원대회에서 안건으로 상정, 원직복직을 위한 투쟁 방향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지방노동청이 1일 회사가 성희롱 행위자에 대한 노동부의 징계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과태료 3000만원을 부과했다. 

김씨는 노동조합의 간부들, 계약해지를 당한 동료들과 함께 대책을 상의했지만 모두 답답한 이야기뿐이었다. 계약직 노동자가 기간만료시 계약해지(갱신거부)를 당한 경우에 법적으로는 구제방법이 없단다. 계약해지는 단지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에 불과하고 근로기준법상 '해고'가 아니므로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소송을 낼 수가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고 했다. 성희롱 당했다고 폭로를 하거나,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못된(?) 계약직은 계약기간 만료시점을 기다렸다가 짤라버리면 된다니…. 그랬구나! 

노동조합도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 볼 테니 대법원까지 가는 한이 있더라도 소송을 걸어보자고 간부들이 설득했다. 그러나 김씨는 그만두기로 했다. 이젠 회사에 넌덜머리가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법원까지 3∼4년, 그 긴 시간동안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법으로는?

김양경씨와 같은 계약직은 근로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는 노동자들이다. 일용직은 매일매일 근로계약이 체결되는 노동자, 임시직은 계약직중에서도 3개월, 6개월 등 짧은 기간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아마 1년 계약직이 제일 많을 것이다.

이야기에서도 잠깐 나오듯이 대법원은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경우에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의 근로관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기간이 만료함에 따라 사용자의 해고 등 별도의 조처를 기다릴 것 없이 근로자로서의 신분관계는 당연히 종료된다(따라서 갱신거부는 기간만료의 통지이지, 해고가 아니어서 다툴 수 없다. 그 사유가 무엇이든 간에)"고 한다. 따라서 사용자는 기간만료시점에 갱신거부(계약해지)라는 형식으로 계약직을 마음대로 해고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해고의 위협 때문에 노조활동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김씨와 같이 성희롱을 당해도 회사를 계속 다니려면 참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해고의 위협을 앞세워 저임금을 강요한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은 지난 해 7,000명이 계약해지를 당했다. 아래위로 딸린 가족을 3명으로 보면, 대략 2만 명이 생존권을 박탈당한 셈이다. 길게는 15년 가까이 일한 사람도 있었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50%만 받았다. 언젠가는 정규직이 될 거라는 기대로 결혼도 미루었다.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오다가 2000년 들어서 6개월, 3개월로 계약기간을 줄이더니 결국은 계약해지를 당한 것이다. 

놀고 있는 정부

노사정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에 관한 법개정을 논의중이라고 한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현행법상 1년으로 되어 있는 근로계약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것이다(근로기준법 제23조는 "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과 일정한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제 정규직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기존 정규직까지 대거 3년 계약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되던 노동자들이 3년계약직으로 채용되거나, 여성은 아예 정규직을 없애고 3년계약직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결혼하거나 임신하면 짤라야 하니까 말이다.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복수노조금지조항 5년 유예문제처럼 어느 날 갑자기 개악안이 합의되어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개별사업장 문제에 매달려 있을 때, 아니면 난 그래도 정규직인데 하고 안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말이다. 

노사정위원회 이야기가 나왔으니, 정부 이야기를 좀 하자. 정부가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는 일을 보면 더하다. 통계청에서 조사한 비정규직 규모에 대한 결과(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58%가 비정규직이었다)를 숨겼다. 한 술 더 떠 노동경제학회에 자료를 제공하여 발표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26%였는데, 그 차이는 바로 김양경씨(2년 근무)와 같이 1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정규직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만들었는데

민주노총은 물론이고 '비정규 노동자 기본권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는 지난해 이미 근로기준법을 다음과 같이 개정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 내용은 출산, 질병 등으로 결원이 생기거나 일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있을 때, 1년에 한해서 계약직 채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거나 편법으로 계약직을 채용하는 경우에는 모두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법안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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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개정 청원안
근로기준법 제23조(근로계약기간) 
① 근로계약기간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경우는 예외로 한다. 
1. 출산.육아 또는 질병.부상 등으로 발생한 결원을 대체할 경우 
2. 계절적 사업의 경우 
3. 일시적, 임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있어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경우
② 제1항 단서의 경우에는 반드시 근로계약을 서면으로 작성하고 계약기간을 명시하여야 한다. 서면에 의한 근로계약을 작성하지 않거나 근로계약서에 계약기간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본다.
③ 제1항 단서에 의하여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를 고용하고자 하는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④ 제1항 단서의 경우 근로계약기간은 1년을 초과할 수 없다. 
⑤ 제4항의 기간을 초과하는 기간을 정한 경우나 그 기간을 초과하여 계속 근무하는 근로자는 그 기간을 초과하는 시점부터 근로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본다.
⑥ 사용자가 제1항 단서에 의한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근로자를 사용한 경우 그 기간 만료 후 2년 이내에 동일한 업무를 위하여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근로자를 채용할 수 없다. 이에 위반하는 경우에는 근로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본다.
⑦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근로자의 계약기간이 종료한 경우 사용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우선적으로 채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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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개정안은 만들었는데, 이것을 정부와 국회가 받을 전망을 별로 없어 보인다. 사실 법개정이 이뤄져도 제대로 지키도록 감시 감독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을텐데 정치권은 미동조차 하고 있지 않으니 답답함만 더해간다. 이러는 사이 김양경 씨처럼 계약이 해지돼 또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부초 인생이 더 늘어 갈 것이다. 하기야 법률이 있어도 무얼하겠는가? '배째라'는 막가파식 사용자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인데…. 어쨌든 무슨 수를 내야 할텐데, 엉킨 실타래를 풀기가 만만치 않다. 이번 여름은 덥다는데, 불면의 밤이 늘어날 것 같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