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산별교섭에 관한 연구(3)

노동사회

선진국의 산별교섭에 관한 연구(3)

편집국 0 4,702 2013.05.1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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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보건의료노조 연구프로젝트 결과물 중 일부를 요약한 것으로 세 차례에 나눠 싣습니다. 이번호는 세 번째로 마지막 순서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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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독일

1) 보건의료산업의 개관

독일의 의료제도는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오래되지만 대체로 1883년 프러시아의 오토 비스마르크 수상이 만든 국가적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으로서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때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883년에는 모든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질병기금들이 설립되었다. 이는 노사의 출연에 의해 기금을 조성하고, 이 기금이 의사들을 직접 고용하여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였다. 의사들은 스스로 ‘의사연맹’을 만들어 진찰료 수준에 대해 질병기금과 교섭을 벌이게 되었다. 

2차 대전 후 서독 정부는 종전의 분권화된 민영 의료보험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인 반면, 동독은 중앙집권화된 국영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였다. 1990년 통독 후 동독 지역에서도 서독과 거의 유사한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오늘날의 독일 보건의료제도가 수립되었다. 

현재 독일의 보건의료제도는 세계에서도 그 유례가 없을 만큼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연방정부/주, 정부/민간 등 세 수준으로 나누어진 운영체제, 공적의료보험/민간의료보험의 공존, 병원과 외래진료체계 간의 완전한 구별 등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하고 복잡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사회보험제도의 일환으로서 공적인 의료보험제도가 있다. 일정 소득 이하의 모든 국민은 의료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다. 의료보험은 크게 보아 일반 노동자, 직원(독일에서는 블루칼라와 구별하여 화이트칼라를 직원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실업보험 수급자, 연금 수급자, 학생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의료보험’과 자영농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농업의료보험’으로 나뉜다. 다만 고소득자는 민간의료보험 가입을 선택할 수 있으며 공무원은 정부가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의 의료보험제도는 제도상으로는 국민개보험제도가 아니지만 실제로는 전 국민의 90% 이상이 공적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공적 의료보험제도의 실제 운영은 질병금고(sickness funds)가 맡는데 이는 지역, 기업, 직종 등의 단위마다 설치된 의료보험 운영기관으로서 2004년 현재 독일 전국에 292개가 있다. 과거 질병금고는 1,000개가 넘었으나 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합병을 계속한 결과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질병금고의 운영은 보험가입자들이 맡는 조합운영방식이다. 1996년 이래 보험가입자는 가입하고자 하는 질병금고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되었다. 

공적의료보험의 재원은 기업의 경우 노사 절반씩 부담하는 보험료에 의해 충당되며, 당사자 자치의 원칙에 따라 국고보조는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보험료율은 각 질병금고 마다 다르지만 2004년 현재 평균 월급여의 14.2%로 되어 있다. 2004년까지는 보험료는 노사가 절반씩 부담하였지만 2005년부터 54:46의 비율로 노동자 쪽이 약간 더 많이 부담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질병금고는 수지균형을 원칙으로 하므로 지출이 증가하면 보험료율도 증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보험료율의 지속적인 증가를 막는 것이 현재 독일 의료보험제도의 최대의 과제로 되어 있다. 또 각 금고 마다 가입자의 소득과 건강상태가 다르므로 질병금고 사이에는 보험료율에 큰 격차가 존재하며 따라서 보험료율 및 보험급부 면에서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의료서비스의 공급 측면에서 살펴보면 연방정부는 보건의료정책 수립의 책임만을 지며, 실제 보건의료 시설 계획, 병원 및 요양소에 대한 투자의 조달 등 보건의료제도의 운영을 책임지는 것은 주 정부이다. 병원에 관한 정책결정은 종전에는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공동으로 책임져 왔으나 1986년 이후 주 정부의 책임으로 일원화되었다. 그러나 16개 주 가운데 14개 주에서는 공중보건제도 운영기능을 보다 하위의 지자체에 위임하였다. 

독일에서는 병원 의료 제도와 외래 의료 제도가 전혀 다른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외래 의료 제도는 주로 영리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개업 의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환자들은 어떠한 개업의사든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치료비는 환자가 가입한 질병금고에서 부담하므로 환자는 전액 무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외래 의료기관의 96%가 질병금고와 계약을 맺고 있으며 나머지 4%는 오직 민간의료보험 가입자나 자부담(自負擔) 환자만을 치료하고 있다. 외래 의사들은 지역별 의사협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개원시간 및 지역별 야간 의사 지정 등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지역별 의사협회는 외래 1차 및 2차 치료의 독점권을 가지며 여러 종류의 질병금고와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한편 입원환자의 치료를 담당하는 것은 여러 형태의 병원인데 2002년 현재 병상 수 기준으로 공공병원이 54%, 민간 비영리병원이 38%, 민간 영리병원이 8%를 차지하고 있다 (병원 수 기준으로 하면 약 3분의 1씩을 차지하고 있다. 즉 공공병원의 규모가 민간병원에 비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공병원은 대부분 지자체의 소유로 되어 있으며 의과대학 부속병원 및 기타 교육병원은 주 정부의 소유로, 그리고 소수의 특수병원은 연방정부의 소유로 되어 있다. 민간 비영리병원은 주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에 비해서도 독일의 인구 10만명 당 병상 수는 매우 높은 편이다. 병원 소속 의사들은 봉급을 받는 피용자들이며 근무시간 외에 개인적으로 외래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병원의 재원은 두 가지 방법으로 조달된다. 시설, 의료기기 등에 대한 투자의 경우 주 정부 및 연방정부로부터 재원이 조달되며, 운영 및 유지비는 질병금고들로부터 조달된다.

독일의 의료비 비중은 유럽 내에서도 높은 편이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독일의 GDP 대비 의료보건비 비중은 1960년의 5% 수준으로부터 1993년에는 9%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따라서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는 것이 정책당국의 최대의 과제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밖에 효율성, 적정성, 서비스의 질, 비용 절감 등이 중요한 과제로 되고 있다. 1980~90년대에 걸쳐 정책 당국은 의료제도 개혁을 통해 비용 지출을 줄이고자 강력히 노력하였다. 1982년과 1989년, 1993년의 보건의료개혁법 개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의료기관 간의 경쟁 촉진, 환자 부담분 증대, 의료 접근성의 증대 등을 위한 조치가 취해졌다. 이천년대 들어서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되어 다양한 개혁조치가 도입되고 있다. 특히 2004년 통과된 ‘공공 건강보험 근대화법’은 그 동안 취해졌던 다양한 개혁조치들을 법정화시킴으로써 의료부문 개혁 조치의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2) 보건의료산업의 단체교섭 구조및 그 특징

앞에서 살펴본 대로 독일의 보건의료산업, 특히 병원은 공공, 민간비영리, 영리병원 등이 혼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를 주도하는 것은 공공병원이므로 이를 중심으로 단체교섭구조를 설명하기로 한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독일은 전형적인 산업별 단체교섭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의 단체교섭은 주로 산업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그 효과는 산업내의 모든 기업과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산별교섭의 양 당사자는 중앙집중화된 산별 노조와 산별 사용자단체이다. 

독일에서 이처럼 산별 교섭체제가 발달한 것은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의 조직원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독일의 노동조합은 직업이나 기업 단위보다는 산업 단위로 조직되며, 특정한 정치, 종교, 인종,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문호가 열려 있는 산업 내 단일조직이다. 

독일에서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특별법의 적용을 받고 있지만 이는 민간부문의 산별 교섭구조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 공공부문 가운데서도 공공부문 직원, 임금노동자와 공무원 간에는 명확한 구별이 존재한다. 공공부문 직원 및 임금노동자들은 민간부문의 피용자와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단 긴급 서비스는 유지되어야 한다). 반면 공무원은 노동조합에 자유로이 가입은 할 수 있지만 단체교섭권이나 단체행동권은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 대신 공무원들은 종신고용 보장을 받는다. 보건의료 서비스 부문 직원의 대부분은 공공부문 직원 범주에 속해 있으며 따라서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독일의 경우 공공부문 단체교섭구조는 상당히 중앙 집중화되어 있으며 상이한 여러 요소들이 고도로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높은 중앙집권화로 인해 공공부문의 임금을 비롯한 모든 근로조건은 통일성이 매우 강하다. 노동자 그룹 간의 봉급 격차가 적을 뿐만 아니라, 매우 안정적이어서 시간이 흘러도 임금구조에 별다른 변화가 없으며, 특히 노동시간의 경우 매우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면 모든 공공부문 노동자가 동일하다. 공공부문에서의 이러한 임금 및 근로조건의 통일성은 모든 공공부문 노동자가 사업장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동일한 공동결정제도 규칙의 적용을 받는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기본적으로 임금 및 기타 근로조건 결정에 있어 특정 노동자 그룹 고유의 문제는 별로 강조되지 않으며 공공부문 노동자 전체 이슈 중심으로 단체교섭이 이루어진다. 그룹 고유의 근로조건 문제들(예컨대 보건의료부문에서 환자/간호사 비율 등)은 기존의 전체적 교섭 틀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그 결과 공공부문 내의 다양한 하위부문(예컨대 교육, 보건의료 등)이나 직종 그룹의 특유한 근로조건에 관한 연구는 발견하기 매우 힘들며 이는 독일제도 하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슈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독일의 경우 보건의료부문 노동자들만의 독자적인 단체교섭구조는 존재하지 않으며 전체 공공부문 단체교섭구조의 일부로서 존재할 뿐이다.

공공분문 직원과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전적으로 단체교섭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연방정부, 주정부, 기초 지자체 정부를 막론하고 동일하다. 단체협약의 형태와 효력은 1949년에 제정된 단체협약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이 법률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적용되는 법률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독일의 민간부문 노동조합들은 산별 단일노조 구조를 택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의 경우 그 구조가 다소 복잡하다. 보건의료부문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산별 노조는 2001년 이전까지는 공공서비스ㆍ운송ㆍ통신노조(?TV)다. 이 노조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광범한 서비스, 운송, 통신부문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는 산별 노조였으며 독일노동조합총동맹(DGB) 산하조직이었다. ?TV는 그 산하에 공공 및 민간부문의 보건의료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보건의료부회(部會)를 두고 있었다. 한편 주로 고소득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대표하는 독일봉급생활자노조(DAG)가 있었는데 여기에도 일부 보건의료노동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었다. DAG는 몇몇 다른 공공 및 민간노조와 더불어 단체교섭연맹을 결성하여 공동교섭을 하고 있었다. 그밖에 독일공무원노조연맹(DBB)은 공무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는데 그 산하에도 보건의료부회가 있다. 
DGB는 오랫동안 16개의 산별 노조를 거느리고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독일 노동조합에서는 대규모의 조합원 수 감소로 재정위기에 직면한 일부 산별노조들이 적극적인 노조 간 합병을 통해 비용을 절약하고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에 따라 1996년에는 광업, 피혁, 화학노조가 합병되었고, 1998~99년에는 섬유노조가 금속노조로 합병되었으며 다시 2001년에는 공공 및 민간부문의 5개 산별노조가 합쳐져서 독일통합서비스노동조합(Dienstleistungsgewerkshcaft: 약칭 ver.di)이라는 세계 최대의 거대 노조가 탄생하였다. ver.di는 3백만 명의 조합원과 1,000개 이상의 직종으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다. 이로써 16개에 달하던 DGB 산하 산별노조들은 모두 8개로 재편되었다. 이에 따라 ?TV와 DAG도 ver.di 산하의 부회로 재편입되었으며 따라서 단체교섭도 ver.di가 통일적으로 맡게 되었다. 그러나 ver.di는 워낙 다양한 영역으로 구성된 노동조합이기 때문에 실제 활동은 모두 13개 전문영역으로 나뉘어 전개되는데 그 가운데 보건 및 사회서비스 영역이 하나의 활동영역으로 되어 있다.

Ver.di 발족 이후 노조 측의 새로운 단체교섭 구조는 다음과 같다. 먼저 대의기구 측면에서는 △Ver.di의 전국대의원대회에서 기본적인 단체협약 정책안 및 입장을 의결→△중앙위원회에서 협약정책의 기본원칙을 결정(이는 단체협약위원회에 대해 구속력을 가진다)→△연방단체협약위원회에서 전문분야를 총괄하는 중심문제에 대한 협약정책의 기본원칙을 마련한다. 한편 집행기구인 연방집행위원회에서는 각 전문분야를 총괄하는 중심적인 협약정책의 기본원칙 하에 연방차원의 단체협약 업무를 조정한다. 전체 산별 노조 내에서 공공부문 단체협약의 실제업무를 맡는 것은 공공부문 단체협약위원회이다. 이는 13개로 이루어진 전문분야 대표들로 구성되며 기존 단체협약의 해지, 협약요구안의 작성, 교섭결과의 수락과 거부, 교섭 결렬 선언 및 단체협약의 종료 결정 등의 임무를 띠고 있다. 공공부문 단체협약위원회는 또 실제 교섭을 담당할 공공부문 단체교섭위원회를 선출한다.   

한편 공공부문의 사용자 측은 세 가지 범주로 조직화되어 있다. 즉 기초 지자체 수준에서는 각 주 마다 기초 지자체 사용자단체가 조직되어 있으며 이는 다시 기초지자체사용자연맹(VKA)이라는 전국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주 정부 차원에서는 독일 주(州) 교섭연맹(TdL)이 조직되어 있는데 이는 모든 주에서의 근로조건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1960년 이래 내무장관이 공공부문의 정부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으며 단체협약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책임도 맡고 있다. 내무장관은 공공부문의 임금소득자 및 직원과의 단체교섭에서 사용자 측 교섭위원회를 이끌 뿐만 아니라 공무원에 대한 봉급 및 기타 근로조건 결정을 위한 입법도 준비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독일병원협회(DKG)나 각 주 단위의 병원협회도 존재하지만 이들은 사용자단체로 간주되지 않으며 단체교섭에도 참가하지 않는다.

이처럼 공공부문의 사용자 측 단체는 세 범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 단체교섭 과정에서는 세 단체가 공동행동을 취한다. 따라서 연방, 주, 기초지자체 정부단체 사이에는 매우 복잡한 의견조정과정을 거치게 된다.

단체교섭 시 우선 세 범주의 공공부문 사용자들은 각각 내부적인 합의형성 과정을 거쳐야 하며 또 협약안에 대한 승인도 하여야 한다. 연방 차원에서는 1960년까지 재무장관이 단체교섭 책임을 졌으나 그 이후에는 내무장관이 단체교섭 책임을 지는 것으로 바뀌었다. 주 정부 차원의 독일 주 정부 교섭연맹의 경우에는 11명의 교섭위원이 있는데 단체협약안 승인을 위해서는 60%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기초지자체사용자연맹의 경우에는 26명으로 구성된 단체협약위원회가 단체교섭과 협약 승인을 책임지고 있는데 기초 지자체의 수가 많고 재정사정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의견통일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 연맹에 가맹할지의 여부는 각 기초지자체의 의사에 달려 있지만 일단 여기에 가입하면 개별적인 단체교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가 부과된다. 

세 범주의 사용자단체는 공동교섭을 해야 할 법률적 의무는 없지만 실제로는 최근까지 공동교섭을 해 왔다. 그러나 세 범주에 속한 정부의 이해관계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복잡한 내부조정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기초지자체인데 그 수가 많고 재정사정이 다양하며, 특히 쓰레기 청소같이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이를 다른 영역의 정부의 이해관계와 함께 조정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 각 차원의 정부단체의 의견이 다를 경우 연방정부를 대표하는 사용자가 비공식적인 교섭 지도부가 되어 의견통일을 이루고자 노력하게 된다. 노동조합은 끊임없이 세 범주의 사용자 간을 분열시킴으로써 사용자들의 교섭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략은 몇 차례 성공을 거두어 일부 기초지자체가 별개의 교섭을 벌인 경우도 있다.

공공부문 사용자 공동단체교섭 체제는 2003년에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되었다. 즉 이 체제가 성립된 지 40년 만에 처음으로 공동교섭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2003년의 공공부문 단체교섭에서 기초지자체사용자연맹(VKA)이 Ver.di와 직종연금에 관한 별도의 협약을 체결한 것을 이유로 하여 연방정부 및 주 정부 사용자연맹은 VKA와의 공동교섭 붕괴를 선언하였다. 주 정부 사용자연맹(TdL)은 또한 앞으로 단체교섭에서 연방정부의 지도적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앞으로 TdL은 공공부문 단체교섭에 있어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단체교섭연맹을 형성할 수도 있고 별개의 교섭을 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03년 1월 체결된 공공부문 단체협약이 지나치게 높은 임금인상률을 가져왔다는 주 정부 및 기초지자체 사용자들의 불만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대해 Ver.di는 사용자 측의 공동교섭 체제 붕괴를 비판하면서 이는 2003년 1월 모든 당사자의 참여에 의해 체결된 단체협약의 정신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공공병원을 포함한 모든 공공부문 직원 및 노동자들에 있어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간의 단체교섭은 다음과 같은 절차에 의해 이루어진다. 원칙적으로 양 당사자는 매년 1회씩 교섭을 행한다. 종전에는 DAG와 ?TV의 분열로 인하여 양 노조는 사용자 측과 별개의 교섭을 동시에 진행하였다. 즉 공공부문 교섭은 DAG를 주축으로 한 단체교섭연맹-사용자단체(3개 단체 공동교섭) 간의 교섭과 ?TV-사용자단체 간의 교섭이 동시에 병행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1년 이후 노동조합이 Ver.di로 통합되면서 공공부문 병원의 단체교섭은 주로 사용자 측인 기초지자체사용자연맹(VKA)과 통합서비스노동조합(Ver.di) 간의 단일교섭으로 바뀌었다. 연방정부 및 주 정부에 의해 소유되고 있는 소수의 공공병원도 Ver.di와 교섭을 하지만 이는 VKA와 공동교섭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독일의 단체협약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단체협약의 범주는 크게 보아 총괄단체협약, 임금범주협약, 임금협약, 특별단체협약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총괄단체협약은 일반적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협약인데 예컨대 노동시간, 휴가 및 휴가수당, 초과근무시간 및 초과근무수당, 교대수당, 휴일수당, 해고예고기간 등에 관한 조항들이다. 총괄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은 일반적으로 3~5년이다. ‘임금범주협약’은 직무의 특성에 따른 임금등급을 구분하기 위한 협약이다. 이는 노동자의 직무, 직위, 근속년수, 자격 등에 따른 임금등급을 정하며 각 임금등급 사이의 승급 등에 관한 규정을 정한다. 또 개별 임금등급 간의 관계를 규정하며 도급임금 및 성과급 규정도 정한다. 임금범주협약 역시 유효기간은 3~5년이다. ‘임금협약’은 임금인상률(혹은 액)을 정하고 추가 및 특별수당의 액수를 정하기도 한다. 이는 매년 1회씩 이루어지는 유효기간 1년의 협약이다(최근에는 1년 6개월로 연장된 임금협약도 나타나고 있다). ‘특별단체협약’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예컨대 합리화보호협약, 업적수당협약, 재산형성급부협약, 경영특별급부협약, 고령노동자 소득보장협약 등이 그것이다. 예컨대 금속노조(IG-Metall)의 경우 14개의 특별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공공부문 역시 총괄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을 체결하는데 전자의 유효기간은 3~5년, 후자는 1년을 원칙으로 한다. 직원의 경우에는 연방, 주, 기초지자체 소속 직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연방직원협약’이라는 전국단일협약을 체결하는 반면, 노동자의 경우에는 각각의 정부별로 세 개의 협약을 체결하지만 세 협약은 사실상 거의 동일한 내용이다. 

직원과 노동자의 교섭은 교섭주제가 어떤 직종을 다루느냐에 따라 함께 할 수도 있고 별도로 할 수도 있다. 독일에서는 산업안전, 연금문제, 건강, 모성보호, 실업급여, 노동시간, 휴일 등 다양하고 광범한 이슈들이 입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따라서 단체협약에서는 주로 임금문제에 집중하며 교섭 이슈를 넓히는 것은 피해왔다. 그 밖의 이슈들은 입법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노동시간, 휴일 등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되어 왔다.

임금은 공공서비스 봉급체계(BAT/BMT-G)라고 불리는 기본임금협약체계를 기초로 하고 매년 임금교섭에 의해 인상률이 결정되는 방식이다. 기본봉급은 네 개의 경력그룹(A, B, C, R)으로 나뉘며, 각 경력그룹은 다시 기초, 중급, 고급, 관리직 등의 임금계층으로 나뉜다. 각 임금계층 내에는 다시 4개씩의 세분된 층이 있다. 따라서 경력그룹 A의 경우 모두 16개의 임금계층이 있는 셈이다. 2005년 교섭에서는 이 임금계층이 15개로 구성되었다. 직원들은 그 자격조건에 따라 상이한 임금계층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컨대 관리직의 경우 대학졸업 및 특별훈련자격증이 필요하며 중급직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과 직업훈련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각 임금계층 내에서 봉급은 근속년수에 따라 달라진다. 근속년수는 21세부터 계산한다. 만약 그 후에 공공부문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진입 시의 연령으로부터 22세를 뺀 기간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비율로 기본임금에 산입한다. 이처럼 결정되는 기본임금 외에 직위와 성과에 따라 추가적인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임금구조 및 임금수준 결정방식은 모든 공공부문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며 공공병원 직원 및 노동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받고 있다. 다만 공공병원 직원들에 대한 수정조항이나 특수규칙 조항 등을 전체 단체협약 내에 포함함으로써 보건의료부문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간, 공공부문을 가릴 것 없이 독일에서는 각 개별 사업장(병원) 마다 종업원평의회가 설치되어 있고 이는 노사 동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단체협약 이슈(주로 임금)를 제외한 광범한 근로조건에 관해 협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종업원평의회에서 주로 다루는 이슈는 건강/안전문제 및 인사에 관한 문제 등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독일의 공공부문 교섭은 고도로 중앙집중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간부문의 경우 산별교섭이라고 하더라도 지역별로 협약이 체결되는 데 비해 공공부문의 경우 연방정부, 주 정부, 기초지자체 정부가 전국적 차원의 공동교섭을 행하며 그 결과 직원은 전국단일협약, 노동자는 거의 유사한 내용의 세 개의 전국협약을 체결하므로 민간부문에 비해서도 훨씬 더 집중도가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독일의 공공부문 단체교섭에서도 일부 분권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즉 민간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교섭구조의 분권화 현상이 공공부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민간부문의 경우 각 지역별, 기업별 조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반영하여 산별 단체협약에 하위 수준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각종 제도가 도입되고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개방조항(opening-up clause)’의 도입: 이는 기업 차원의 노사가 산별 기준으로부터 벗어나는 기업 특유의 조건에 합의할 수 있도록 산별 협약 내에서 허용하는 조항이다. 예컨대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기업에서 주당 노동시간이나 임금을 줄이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협정에 노사가 합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경영곤란 조항(hardship clause)’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2005년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기업의 75%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개방 조항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은 탄력적 노동시간제이다. 

둘째, 기업별 보충협약: 이는 개별 사업체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한 협약으로서 산별 노조와 산별 사용자 단체가 해당 기업 차원의 노사대표의 동의를 얻어 산별 단체협약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 산별 단체협약의 규제와 상관없는 내용(예컨대 기업 차원의 추가 임금인상)이지만 때로는 산별 협약에 어긋나는 내용도 있다.
셋째, 노동력 범주에 따른 임금 격차: 이는 신규 채용자에 대해서는 표준적인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하회하는 조건을 적용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에서 허용하는 조항이다.

이러한 단체교섭의 분권화를 가져온 요인들로서는 비정규직화의 진전 등 고용관계의 다양화, 제조업의 쇠퇴와 서비스산업의 성장에 따른 임금 및 근로조건의 다양화, 대규모 실업, 세계화와 유럽화에 따른 경쟁압력, 기업 민영화의 진전 등이 지적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도 역시 민영화와 규제완화에 따라 종전의 통일교섭구조에 일부 파편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노동시간 규제 등의 문제에서 지역 차원의 보충교섭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늘어났다. 또, 개방조항도 민간부문 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일부 지역차원의 교섭에서 허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TV는 일부 직종의 경우에 기존 노조원의 임금을 보호하면서도 신규 채용자에 대해서는 보다 낮은 임금을 수용하는 ‘2중 임금제’를 허용하였다. 그밖에 성과급제나 작업조직의 변경 등 유연성의 증대를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공공부문 교섭은 아직 민간부문처럼 급속한 분권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며 매우 점진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비영리 민간병원의 경우 대부분 신교 및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병원들인데 이들은 세속법이 아니라 ‘교회법’에 따르고 있으며 따라서 단체교섭구조도 전혀 다르다.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들은 전국 수준에서 ‘노동법위원회’라는 기구를 두고 있으며 여기서 교회운영부문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결정하게 된다. 이는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구이다. 노동조합은 교회 운영 병원과 교섭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이 부문의 임금기준(가톨릭계 병원기준과 신교계 병원기준으로 구분된다)은 일반적으로 공공병원에서 합의된 임금구조 및 임금인상률을 그대로 채용하게 된다. 이는 병원의 환자치료수가가 공공병원이든 민간병원이든 동일하기 때문에(양쪽 모두 질병금고들과의 교섭을 통해 결정되는 단일 수가 및 그 인상률에 의해 결정된다) 임금 역시 통일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의료비 상승의 압력에 따라 공공부문 임금수준 및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교회병원의 관행이 약화되고 있다. 

교회가 운영하는 개별 병원의 경우 전국 수준에서 결정된 임금 및 근로조건을 기초로 하여 다시 개별 병원의 임금 및 근로조건을 결정한다. 그 결정과정은 ‘제3의 길’, 즉 사용자의 일방적인 결정과 단체교섭을 통한 결정 사이의 중간 정도의 방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비영리병원에서는 노동조합 대신 개별병원 수준의 공동결정제 방식에 따라 종업원 대표들이 임금 및 근로조건 결정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교회는 공동결정법이나 종업원평의회법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병원에서의 종업원대표제는 민간 기업에 비해서는 훨씬 그 권한이 약화되어 있다. 예컨대 종업원대표들이 민간기업에서의 단체교섭과 유사한 방식으로 고용계약 가이드라인 설정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둘러싸고 노사간 이견이 있을 경우 사용자 측이 일방적으로 이 가이드라인을 수정할 수 있다. 더욱이 교회병원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교섭력 자체가 크지 못하다. 

이처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영리 병원에서의 노동조합 및 종업원 대표의 교섭력은 비교적 약하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이것이 이슈가 될 정도로 사용자 측이 압박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의료비용의 급상승과 더불어 병원의 수지악화가 나타나면서 비영리병원들이 공공병원의 임금을 준거기준으로 삼는 관행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교회병원의 경우 사용자의 일방적 임금결정권과 노동조합의 교섭력 약화 등을 발판으로 해서 임금 삭감이 단행되고 있다. 예컨대 교회병원 청소부의 초임이 공공병원의 초임에 비해 최고 25%나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공공병원의 경우 높은 노조 조직률과 종업원평의회법의 의무적용 등으로 인해 저임금 층에서 급속한 임금 및 근로조건 악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노동자 보호를 약화시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공공병원은 BAT/BAT-G 봉급체계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명시적인 임금저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청소, 세탁 등의 서비스를 외주로 돌리거나 혹은 병원관리를 담당하는 서비스회사를 자회사로 설립하는 등의 방법(이 경우에는 단체협약상 병원경영진이 임금을 최고 30%까지 인하하도록 노동조합에 요구할 수 있다)으로 실질적인 임금인하를 꾀하고 있다. 

최근 공공서비스부문의 단체협약 개혁에 관한 노사 간 의견접근이 이루어짐으로써 앞으로 이와 같은 현상은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협약개혁안에 따르면 공공서비스부문의 저임금층(청소, 세탁 등 병원관리 노동자)에 대해 사용자측은 민간부문의 청소업계의 임금과 유사한 수준까지 임금을 삭감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측도 적어도 신규 진입자에 대해서는 이러한 임금삭감을 허용할 의사가 있음을 비추었다. 이는 공공서비스부문에서 더 이상의 민영화와 외주·용역화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나온 것이다. 이 새로운 단체협약은 2005년 10월1일부터 발효되었다.  

특히 종전 공공병원이었으나 민영화된 병원의 경우 이행기간 동안 해고와 근로조건 악화를 막기 위한 노사 간 이행협약이 체결되어 있음에도, Ver.di의 조사에 따르면 임금격차의 확대가 나타나고 있다. 영리병원의 경우 대규모 체인병원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은데, 체인 소속 개별 병원의 사업장 협약에서 이러한 임금 및 근로조건의 악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부 병원의 경우에는 아예 사업장 단위 협약마저도 체결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Ver.di는 체인 전체에 걸친 단일 단체협약을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소규모 병원들이 모여 지역 민간병원단체를 만들고 여기에서 지역 수준의 산별 협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대규모 체인 병원의 사업장 단위 협약보다 오히려 임금 및 근로조건이 더 악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8. 요약과 시사점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선진국 보건의료산업의 단체교섭구조는 일대 변화를 맞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2차 대전 후 복지국가제도가 실시되면서 보건의료산업은 그 핵심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국민들에게 보편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해주기 위해서 이 부문은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국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산업에 종사하는 인력 역시 대부분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의 공무원 혹은 준공무원 신분으로서 고용의 안정과 상대적인 고임금 및 복지혜택을 누려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선진국 보건의료산업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휩쓸리게 된다. 세계화에 따른 자본 간 경쟁격화의 영향이 보건의료부문에도 영향을 미쳐 제한적인 민영화, 예산 및 인력결정권의 분권화 등이 나타나고 있으며 의료장비 및 치료기술의 고급화,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의료비가 급증하면서 비용절감을 위한 각종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즉 비정규직의 확산, 외주용역화, 성과급 도입, 책임성 강화, 다기능화, 노동강도 강화 등이 그것인데 이는 보건의료부문에서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급속하게 악화시키고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보건의료부문의 환경변화는 단체교섭의 구조와 내용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진국에서 보건의료산업을 비롯한 공공부문의 단체교섭은 노사 간 타협체제에 토대를 두어 왔으며 따라서 보건의료부문 노동자들은 상대적인 고임금과 고용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보건의료산업의 고용주는 대부분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인데 이들은 이윤동기보다는 국민여론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노사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단체교섭구조 면에서도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교섭구조가 창출되었으며 이에 따라 임금 및 기타 근로조건의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 역시 조직률이 매우 높고 안정적이며 강력한 형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앞에서 본대로 1990년대 이후 보건의료부문에서의 일련의 공세가 시작됨에 따라 단체교섭구조 역시 흔들리고 있다. 공공부문의 경우 민간부문 만큼 교섭구조 분권화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지만 개방조항이나 예외조항 등을 통해 일부 권한을 하위수준으로 이양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 단체교섭의 내용 면에서도 종전에는 주로 임금 및 복지에 집중하였던데 비해, 민영화, 시장화, 외주용역화, 비정규직 도입, 업적급 도입 등 고용관행의 유연화나 경쟁요소 도입 등에 관한 사항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보건의료부문을 둘러싼 환경변화 및 교섭구조의 변화에 대응하여 노동조합 역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조직률의 저하에 따른 재정위기를 해소하고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 노동조합 간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에서 5개 산별노조가 통합하여 통합서비스노조를 만든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한편 조직률 저하에 대응하여 전통적으로 조직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던 비정규직 등 미조직 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조직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역시 대부분의 선진국 보건의료부문 노동조합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또 단체행동 면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선진국의 보건의료부문에서는 민간부문에 비해 파업이 잘 일어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법률적, 제도적으로 단체행동이 제약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여러 선진국에서 보건의료부문의 노사갈등, 단체행동 등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주로 민영화 및 노동강도 강화에 대한 방어적 투쟁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 페이지의 [표]는 지금까지 살펴본 선진각국의 보건의료부문 단체교섭구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진국의 경우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공의료부문 사용자는 공공부문이 맡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공공부문의 비중이 미국보다도 더 낮고 민간부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결국 국민건강이나 복지의 보장이라는 목표보다는 자본의 이윤극대화 논리가 한국의 보건의료산업을 지배하는 원리가 되고 있음을 뜻한다. 노동조합의 경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보건의료산업에서 소수의 산별노조에 의해 사실상 산업별 노동시장이 독점화되고 있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비록 산별노조가 성립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전체 노동시장에서의 점유비율이 극히 낮으며 그 내용면에서도 진정한 산별노조의 내실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분산성이 강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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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단체교섭구조 면에서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보건의료부문에서 중앙집중교섭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지부보충교섭을 허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보건의료부문에서는 최근 산별교섭이 성립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사용자 단체의 미구성이나 소극적 태도 등으로 인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또 산별협약의 내용면에서도 미흡한 점이 많다. 임금결정방법 면에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전국단일협약 또는 산별협약+지부별 협약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며 따라서 임금의 통일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산별교섭에서는 임금인상률 정도만 결정하고 임금수준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못한 채 지부교섭에 맡기고 있어 임금의 통일성이 매우 낮은 편이다.

이상의 분석이 가지는 시사점으로서는 첫째, 한국의 보건의료산업에서도 공공성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민들이 값싸고 양질의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나 단체교섭제도가 보다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건이다. 둘째, 교섭구조 면에서 보다 내실 있는 산별교섭의 정착이 필요하다. 즉 교섭구조 측면에서도 보다 중앙집중적인 산별교섭으로의 발전이 필요하며 교섭내용 면에서도 산업 내 임금 및 근로조건의 통일성을 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노동조합의 대응 면에서도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 노력의 강화, 노동시장의 유연화나 보건의료서비스의 시장화에 대한 대응책의 마련, 보다 내실 있는 산별 노조의 건설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선진국의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