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세상』

노동사회

『길에서 만난 세상』

편집국 0 4,107 2013.05.19 03:42

언제부터 우리나라를 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하게 됐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확실한 건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기간 동안 전 국민이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이라고 외칠 때는 왠지 자랑스러움과 가슴 벅참이 함께 있다.

book_01.jpg『길에서 만난 세상』의 부제는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이다. ‘인권’이라니! 우리나라가 대단한 인권국은 아니지만,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지 않는가? 인권은 이라크나 북한, 또는 미국에 가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이 책에서의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움이나 가슴 벅참과는 달리 ‘부끄러움’이라는 주소를 꼬리표처럼 달고 있다.

정규직이 제과점 빵을 먹을 때 옆에서 구멍가게 빵을 먹어야 하는 비정규직,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산업재해·체불임금·불법체류자 단속에서는 사장님만 바라봐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 강퍅한 세상 속에서 어린 생명과 함께 스스로를 키워나가는 10대 비혼모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시집와 농촌에서 힘겹게 삶의 터전을 가꿔가는 외국인 주부들과 그 자녀들. 이렇듯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길을 걷다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이들이며, 또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이들이다. 평소에는 스쳐 지났던 이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의 이면, 흔히들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들이 사실은 ‘차별’의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읽는 내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쩔 수 없음”이 아닌 ‘차별’의 문제

경상도 농촌 출신의 친구네 집에 놀러 갔던 적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정말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니며 전원의 여유를 즐겼던 그곳 학생들은 사실은 문화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네들의 ‘청춘’이 부럽기만 했던 고등학생들이 실은 강요된 타율학습 속에서 인권을 침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가 자랑스레 갖고 다닌 ‘인권 안테나’도 사실은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임을 함께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에 실린 사례들은 당사자들의 증언을, 이라크 파견 작가, 탈학교 청소년, 보안관찰처분자라는 독특한 이력의 작가들이 새롭게 해석해서 정리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정리 글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각 장의 말미에 따로 묶어 두어, 작가들이 그들과 만나며 상처받고, 분노하고, 공감했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노동문제를 인권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 역시 신선한 경험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해소하자는 것도,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것도 사실은 그들이 “인간으로 태어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차별받는 곳까지 그 시야를 더 확장시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연대며, 노동자계급의 정신일 것이다. 노동운동이 가져야 할 인권의 안테나를 좀 더 날카롭게, 더 높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강추’할만한 책이다.

[ 박영희, 오수연, 전성태 짓고, 김윤섭 찍고, 우리교육 냄. 1만2천원 ]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