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공성투쟁의 실천적 개념화를 위하여

노동사회

사회공공성투쟁의 실천적 개념화를 위하여

편집국 0 3,739 2013.05.19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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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해 9월22일 시설민주화연대에서 공공성과 이에 기초한 사회운동에 대한 개념정의를 목적으로 발표된 발제문을 축약·보완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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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지난 10년간 ‘공공성’ 혹은 ‘사회공공성’이라는 의제는 노동운동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전체적인 자기 방향을 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노동운동에 국한하더라도 철도, 보건의료, 교육 등의 주요한 영역에서, “이윤보다 생명을” 혹은 “돈보다 안전을” 등 사회공공성의 기치를 내걸며 운동의 전술을 도출하고, 사회담론에서 헤게모니를 간취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 운동들은 위치한 영역의 다양함만큼이나 사회공공성에 대해서 각기 상이한 정의들이 존재하고 있는 형편이기도 하다. 

이 같은 현상은 운동진영의 처치 곤란한 내부 혼란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각 운동이 처해있는 다양한 현실 여건을 반영하여 그 활용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공공성의 의미는 보다 명확하게 정리되어야 한다. 실제 공공성투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반론과 불필요한 내부 혼선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그렇지만 사회공공성을 노동운동의 정체성으로 실천적으로 개념화하고자 하는 평가들(오건호, 2004; 신광영, 2002)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음에도, 현실 운동에서 그 인식의 확산이 기대보다는 더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 글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존의 논의들을 충분히 재론하면서 노동운동 내에서 차지하는 사회공공성투쟁의 의미를 환기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2. 공공성에 대한 시론적 개념화

(1) 공공성의 형성 
근대적인 의미의 공공성 개념은 공중(public), 공론 혹은 여론(public opinion) 등과 마찬가지로 ‘계몽주의 사상’이 팽배해진 17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형성되었다. 역사적 맥락에서 봤을 때 공공성 개념은 국가권력의 사사화(私事化)를 견제하는 과정을 통해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고자 하는 경향과, 시민사회 내에서 합리적 소통가능성을 정립하고자 하는 경향을 동시에 가리킨다. 즉 ‘다수이익 부합성’과 ‘합리적 소통가능성’은 각각 공공성의 외적/내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먼저 공공성은 “다수의 이익이 사회적인 정의로 인식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즉, 근대의 태동과 더불어 형성된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사회적인 것’에 대한 환기와 함께 시민사회 내에서의 소통가능성이 다수의 이익과 사회정의의 기본이 될 수 있다는 이념을 탄생시켰다. 
또한 공공성은 사회철학적 의미에서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이념을 내포하고 있다. 상호주관성의 이념이란 자율적 개인의 형성, 해방으로서 계몽,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의사소통 등 이른바 “근대성의 보편적 원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복수 주체들 간의 자유로운 소통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주관성으로서 공공성은 ‘자율적 사회운동의 형성’, ‘지배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연대의 형성’으로 부활될 필요가 있다. 이는 뒤에서 논하게 되겠지만, 사회공공성투쟁의 이념적 당위를 형성하게 된다. 
한편 역사적 의미에서 공공성 거론할 때 ‘시장’과 ‘국가’를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시민사회에서 발원된 공공성의 이념은 태동과 함께 시장과 국가에 의해 왜곡되고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시장의 교환논리는 공공영역의 정치적 토론기능을 축소시키고, 이와 함께 대중을 시장소비자로 전락시킨다. 둘째, 국가는 ‘국가=공공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확장시키며 공공성의 기초를 자신의 것으로 찬탈해 간다. 이는 ‘사회’의 자원을 추출하고 집행해낼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 성장하는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에서 역사적 맥락의 ‘현실’과 국가가 공공선을 구현해야 한다는 ‘당위’가 뒤섞이고 위치가 역전되면서, “국가가 공공성을 독점한다”는 신화적 해석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는 공공성을 재생산하는 시민사회 자율적 연대의 가치를 훼손시킨다. 
이상을 거칠게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시장이 공공성의 기초를 허물어 버린다면, 국가는 공공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뒤집어 구성한다”일 것이다. 따라서 본래적 의미의 사회공공성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시장 및 국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2) 공공성의 현대적 규정, 반(反)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완전 자유화 및 시장주의적 원칙의 전 사회적 확장을 기도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조치는 기존의 케인즈주의적 개입국가에서는 탈시장의 영역이었던 공공재원, 사회복지, 기간산업서비스, 사회복지부문에서 시장주의적 원칙을 확산시키고자 한다.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해체하고 기본공공재의 공공적 성격을 탈각시키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과정은 생산성 논리에 기초한 ‘원자화된 개인’의 창출을 유도하며, 지역과 사회, 계급과 공동체라는 관계망을 끊임없이 해체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지적할 부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국가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국가와 시장은 불가분의 관계로 동반성장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의 행위는 자본 축적에 이바지하는 동시에 이를 정치적으로 정당화하는 과정을 통해 연속성을 보장받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결국 시장과 국가가 동반성장하는 만큼이나,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는 상호 연관된다. 즉 신자유주의의 강화는 국가영역에 제도화되어있던 다양한 갈등을 시장과 사회로 되돌려 보내지만, 이에 대한 국가적 실천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시장을 전면화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국가주의적 조처를 추가적으로 취한다. 
예를 들어 ‘과잉공급’의 문제라는 시장의 실패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는 ‘이윤과 가치의 차이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이윤을 늘이되 실제 노동가치의 창출은 줄이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생산의 측면에서는 고숙련과 저숙련의 분명한 경계 긋기, 수요의 측면에서는 선택적인 유효구매층만을 배타적으로 승인하기 등이 정치적으로 실행된다. 또한 상향된 생산성 기준에 미달한 대다수 빈곤층에 대해서는 ‘정치적 괄호 치기 전략’, 즉 그들의 사회경제적 갈등이나 이익이 이슈화되지 못하게 하기(non-decision) 등이 수반된다.
이렇듯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대안은 사회적 배제이며, 여기에는 이러한 배제를 정치적으로 유지할 만큼 “강력하고”, 공공성을 포기할 만큼 “작은”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 핵심적 과제로 등장한다. ‘급진적 시장주의’에 수반되는 ‘급진적 국가주의’가 기존에는 국가부문에 포함되었던 공공부문과 사회복지의 영역을 시장의 영역에 강제적으로 반환시킴으로써 공공성의 핵심적인 물적 기반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엄밀한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국가주의 혹은 국가정치 자체를 거부한다기보다는 공공성 혹은 공공성과 국가정치의 결합관계를 공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운동의 측면에서 공공성을 정립하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노력은 바로 신자유주의와의 헤게모니 투쟁이라는 외양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공공성은 그 현대적인 속성으로서 ‘탈시장성’이라는 속성을 부여받게 된다.

(3) 정리: 공공성의 세 가지 이념
이상의 이론적 경유를 정리하면, 공공성은 다음의 3가지 하위개념을 내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① 공익성, 즉 다수이익 부합성, ② 상호주관성(sub-subjectivity), 즉 합리적 소통가능성 ③ 탈시장성, 즉 반신자유주의 등이다. 앞의 두 가지가 공공성이라는 이념에서 복원된 본래적 의미라면, 탈시장성은 공공성이 가지는 현대적 의미의 개념화라고 할 수 있다. 

 - 공공성의 3가지 하위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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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개념화가 공공성에 기반한 사회운동에 주는 함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공익성의 추구는 임금과 복지급여를 포함한 높은 수준의 보상(remuneration)체계와 서비스의 보편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상호주관성의 추구는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과 자유로운 개인(혹은 조직) 간의 사회적 연대 전략을 말한다. 이는 제도 운영의 민주화와 조직 내부 민주주의의 확보, 그리고 넓게는 소유와 통제의 사회화(socialization)에 이르는 전략을 아우른다. 마지막으로, 탈시장성은 시장적 교환원리에 대한 탈시장적 원칙의 확립을 의미하며, 필요에 기초한 재화의 공급 및 ‘집합적 소비(collective consumption)’ 영역의 확장을 통한 탈상품화 전략을 의미한다. 즉 공공성에 기반한 현실의 사회공공성투쟁은 이상의 세 가지 개념과 원칙을 관철하고자 하는 과정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사회공공성투쟁의 위상과 좌표

노동운동은 민주노총의 건설 이후 1기 집행부부터 세상을 바꾸는 투쟁 즉, 사회개혁투쟁에 전력해 왔다. 그 이후에도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맞서 사회공공성을 전면에 부각시켜 왔고, 철도, 보건의료,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공공성투쟁의 양적 증가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내부 혼선과 질적 발전의 병목현상 또한 자주 발견된다. 이는 오건호(2004)가 지적하듯, 사회공공성에 대한 인식의 저발전, 운동의 당위에 준하는 조직자원의 부족, 기업별 노조체제라는 굴레, 심지어는 공공성투쟁에 대한 정파적 이해 등의 많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따라서 사회공공성에 기초한 노동운동의 필요성은 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고민까지도 포함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사회공공성투쟁은 위에서 잠정적으로 정의한 공공성의 이념을 현실에서 재현하는 투쟁이다. 즉 반신자유주의적 기치를 중심으로 탈시장화를 강제하고자 하는 외부적 지향성과 조직민주주의의 문제를 포함한 진보적 연대라는 내부 좌표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공공성에 기초한 노동운동 즉, 사회공공성투쟁이라는 표제는 현재 노동운동이 겪고 있는 다양한 질곡과 계기들, 비정규 및 정규직간, 정파 간의 내부적 분절, 조직전환을 둘러싸고 노동운동의 새로운 이념 수혈의 필요성, 교섭 중시와 조직화 중시의 균형과 조절, 초기업단위 노동운동이 가져야 할 활동방식 등의 측면에서 대단히 많은 함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1) 사회공공성투쟁 그리고 노동운동의 두 방향, ‘초기업’과 ‘지역’ 
사회공공성은 초기업단위 노동운동의 핵심적 지향이다. 사회공공성투쟁은 자신의 활동범위를 울타리 밖으로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운동이다. 이는 기업단위의 굴레에 갇히고 분배교섭에 매몰된 노동운동의 왜곡을 극복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러한 초기업단위 노동운동에는 두 가지 방향이 존재할 수 있다. ‘산별노조 건설’과 ‘지역적 노동운동’이다. 
첫째 산별노조 건설은 단순히 2007년 복수노조 시대의 도래에 대비하는 수동적 의미에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의 현재 지형에서 조직노동자의 고용안정 및 생활보장 요구로는 노동조합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비정규직의 대폭 확대 등 노동시장의 분절화가 노사관계의 양극화로 연결되어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담아내기에 어려운 내부구조를 갖게 됐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초기업단위 노사관계는 “제도화된 노사관계를 넘어선다(신광영, 2002)”는 점이다. 즉 그것은 노동자의 경영참여 및 공동결정권의 확립을 넘어, 산업정책과 환율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개입, 그리고 기금설치 등의 방식을 통해 자본에 대한 통제를 확립하는 작업이다. 
둘째 사회공공성은 지역적 노동운동의 합당한 지향점이다. 주택, 교육, 의료 등에 파고드는 시장논리의 확산은 지역사회에서 불평등을 확산시키는 것은 물론, 노동력 재생산의 차이에 따라 지역을 새롭게 구획해나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공공성투쟁은 ‘집합적 소비’ 영역의 확장을 통해 시장논리를 제어해 나가는 운동이며, 이러한 과정은 특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추진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공공적 의제를 제기하는 것은 지역적으로 산개해 있는 미조직 중소영세노동자를 조직화하는 것은 물론, 지역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중간계급의 지지를 확보해내는 유망한 과정이다. 물론 지역적 의제의 특성상 노동자계급은 지역적 수준에서 중간계급에 비해 자발적으로 결합하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하기 힘든 특징을 가진다.(K. Moody, 1990) 그러나 노동운동 주체들이 이러한 의제들을 보다 공세적으로 제기하는 것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우선 그 주요한 방향은 지역단위 빈곤과 불안정노동에 대한 개입이다. 

(2) 사회공공성투쟁, 한계적 인식을 넘어서
한편 사회공공성투쟁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기존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쉽게 말해 다양한 ‘오해’를 넘어서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공공성투쟁은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요구인가”, 혹은 “사회공공성투쟁은 사회복지투쟁, 반시장화 투쟁, 다수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투쟁 등과 동일한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사회공공성투쟁이 철도, 교육,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독점적 이념인가 하는 점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사회공공성투쟁은 새로운 사회운동적 좌표라 볼 수 있으며,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장원칙의 전면화에 대한 유망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천적 의의가 있다. 이러한 조건은 사회공공성이라는 이념적 측면이 당연히 전체 노동운동으로 확장될 필요성가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회공공성투쟁은 단순히 공공부문 노사관계 혹은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이념적 좌표로 환원될 수 없다. 
사회공공성에 기초한 노동운동이란 집합적 소비의 사회적 규정을 갱신시키고 그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집합적 소비의 확산은 구매능력이 아닌 사회적 필요에 따라 재화가 공급되는 부분이 늘어나고 소비상의 불평등이 감소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더불어 탈시장성에 기초한 사회공공성투쟁은 사회보장성(사회임금, 혹은 사회보장)의 최소기준을 상승시키는 과정을 통해 사회구성원의 시장의존성을 점진적으로 제거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내용은 공공부문의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운동이 지향해야할 바인 것이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특정한 노동조합이 가지는 고유의 산업별/업종별 특성이 존재하며, 이 때문에 각각의 공공적인 의제에 대해 갖는 거리감은 상당히 다양할 수 있다.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요구안이 보다 사회공공성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제출될 가능성이 많은 것은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그러나 다수 민중의 시장의존성을 점진적으로 제거해 나가는 운동은 단순히 공공부문 노동운동만의 몫이 될 수는 없다. 사회공공성투쟁과 공공부문 노동운동을 동일시하는 인식은 ‘서비스 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예컨대, ‘무상의료’는 보건의료노조의 고유 업무이고, ‘무상교육’은 전교조가 전담하는 것이 결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의 좌표는 지향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자 하는 발전적 운동주체의 측면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으며, ‘지역’은 모든 노동운동에게 사회공공성의 의제를 실천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듯 노동운동이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운동들과의 연대 속에서 지역의 빈곤과 불완전노동에 개입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현재 국면에서, 사회공공성의 의제는 ‘초기업’과 ‘지역’을 통해 해석되어질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해외에서 대안적 지역노동운동으로 언급되고 있는 ‘지역사회 노조주의(community unionism)’는 노동운동이 지역에서 공공정책에 대해 광범위하게 개입할 것을 주창한다. 그 주요한 의제에는 ‘지속적 발전’, ‘이주노동자의 권리’, ‘직업훈련 및 교육의 강화’, ‘경제발전’, ‘보건의료’, ‘저렴한 주택공급’, ‘노동안전’, ‘공적 교육’ 등 대단히 포괄적이며, 이는 사실상 사회공공성 의제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김현우, 2005).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공공성투쟁과 사회복지요구와의 관계 역시 추론할 수 있다. 사회복지를 적극적 의미에서 ‘노동자계급 투쟁의 결과’인 동시에 자본주의적 시장관계에 대한 의존성을 줄여나가는 일종의 ‘탈상품화 전략’으로 이해하는 것이라면, 이는 사회공공성투쟁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회복지가 일부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 차원에서 진행되는 잔여적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라면, 이는 사회공공성투쟁의 내용과 큰 차이를 갖게 된다. 즉, 사회공공성투쟁은 시장 내에서 민중이 갖는 지출요인들을 제거해 나감으로써 시장의존성을 점진적으로 제거해 나가는 동시에, 이를 조직의 자기요구와 일치시켜내는 정치적 작업이다. 따라서 사회공공성이라는 명목 하에 몇몇 복지요구를 임단협에 추가하는 방식은 올바른 의미의 사회공공성투쟁이라 볼 수 없다. 

(3) ‘정치적인 것’의 복원
그런데 이렇게 노동조합이 자신의 요구를 사회공공성에 입각하여 해석하고 제기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정책적 기획력이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정책 기획력 속에는 생산 중심적 사고를 넘어서는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포괄적 고려, 그리고 특정한 공간에서 발생한 노동과 소비의 상관관계에 대한 면밀한 고찰 등이 포함된다. 더불어 집합적 소비영역의 확장을 위한 구체적 전략 역시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준비는 단순히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의제 제기와 교섭을 반복하는 방식을 통해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몇 가지 복지정책적 이슈에 국한된 의제를 제기하고 지도부의 정치력으로 해소하는 방식은 소폭적인 개량의 축적은 될 수 있을지언정 ‘미시적 조합주의’로 귀결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오건호, 2004) 즉 사회공공성투쟁의 성패는 의제의 참신함이 아니라 이러한 의제를 실천해나가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조직화를 달성하며, 운동주체를 형성하고,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는 노동운동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공공성투쟁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대안적 방향으로 유효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실용주의적 노선이 강화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넘어서 ‘정치적인 것’을 복원해낼 필요가 있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사회적 승인이나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 등을 넘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더욱 고양된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공공성에 기초한 노동운동은 그 다양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정책에 대해 목적의식으로 개입해야 한다. 이는 당위라기보다는 ‘현실’이다. 노동자들의 빈곤을 제거하고 노동력 재생산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들은 필연적으로 상당한 정도의 사회적 자원(즉, 예산)과 집행력을 필요로 하며, 현대사회에서 이를 담보하고 있는 유일한 주체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 국가가 ‘공공성의 담지자’로 표상되는 신화가 가능한 것은 국가 폭력의 유지와 압도적인 자원의 추출/활용 능력에 기인하는 것이다. 즉 공공성과 국가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강제와 이에 대한 정치적 정당화라는 국가행위의 구조적 한계 내에서 때때로 접합되고 분절되는 ‘구성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사회공공성투쟁이란, 국가가 불완전하게 전담해 온 공공성의 사회적 형성과정에 사회운동이 개입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공공성이 제도화되고 현실에서 활용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전환을 계획하며, 그 물리적 실행능력을 활용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한편 시선을 조금 돌려보면, 사회공공성투쟁은 좌파정당과 노동운동 간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요청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이해와 요구를 단순히 좌파정당이 입법하는 기계적 측면 지원방식을 넘어서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한 대안은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이 지역의 수준에서 ‘조직’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노동운동 속에는 기업별노조의 사업관행이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어서 사회공공적 의제를 지역적 차원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지역위원회로 편재되어 있는 현재 진보정당의 구조와 조직자원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즉 지역차원에서 정책생산과 그 실천을 매개로 조직자원이 결합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적 결합은 초기업적 의제에 대한 일상적 정치토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정규 및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지역차원의 실천을 구상하는 것이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차원에서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 자원을 투입하여 실태를 조사하고 정책대안을 제출하는 방식, 지역 비정규 및 미조직 노동자들의 교섭경로 마련에 당 지역위원회가 지원하는 방식, 비정규직 저임금 구조개선을 위한 실천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방식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지적하고 넘어갈 것은 지역차원에서 진보적 자원들의 결합양상은 대단히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진보정당과 지역노조 뿐만 아니라 시민운동 내의 다양한 조직들, 노동운동에 발전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공무원노조, 그리고 다양한 전문가 집단들이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사회공공성투쟁은 지역 내에 존재하는 자원의 차이에 따라 그 형태가 매우 달라질 수 있으며,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다양한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발굴될 필요가 있다.

4. 나가며

사회운동이 진일보하기 위한 전략적 지향으로서 사회공공성투쟁은 몇 가지 중요한 위상을 가진다. 첫째 국가와 자본에 대해 수세적인 반작용의 주체로 남아 있던 사회운동이 공공성을 매개로 행위의 주체로 나서는 투쟁이라는 점이다. 둘째, 사회공공성투쟁은 기존의 민주화운동을 포함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과제를 넘어서는 실질적 사회권 확보투쟁이다. 즉, 형식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넘어서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전략과제이다. 셋째, 사회공공성투쟁은 자본과 시장이 양산하는 불평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으로서 ‘생산과 소유의 사회화(socialization)전략’의 하위단계로서 의미를 부여받는다.

요컨대, 사회공공성에 기초한 노동운동은 자유로운 연대에 기반한 탈시장화의 관철이다. 다시 말해 근대적 기획을 계급적으로 급진화하여 공공성의 본래적 의미를 복원시키는, 즉 “공공성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작업이다. 이러한 새로운 운동의 방향성은 노동운동의 조직전환과제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과 좌파정당, 노동운동과 지역사회, 노동운동과 자본의 통제 등에 대한 전반적 인식전환을 필요로 한다. 결국 문제는 이러한 지향성을 갖는 경험들을 축적하는 것을 통해 운동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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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