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4년' 넘어, 재가동된 금속노련 산별 추진

노동사회

'잃어버린 4년' 넘어, 재가동된 금속노련 산별 추진

편집국 0 4,127 2013.05.19 03:37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거대한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2005년 말 ‘제3노총’ 출현이 예고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2006년 초에는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의 가입을 결정함으로써 1996년 이후의 양대 노총 체제에서 10년간 제1노총의 지위를 지켜왔던 한국노총은 이제 제2노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실제 노조활동가와 조합원들이 체감하고 있는 지각변동은 이러한 ‘뉴스거리’에 있지 않다. 노동조합운동 내부로부터 위기 증후가 드러나고 있다. 노조운동 자체가 대표성과 정당성, 도덕성 등 위기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고, 산별노조 전환을 비롯한 각종 개혁과제들이 중단된 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단위노조와 현장조직의 일상활동이 위축되고 중단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현장을 중심으로 해서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 소위 ‘노조운동 위기’에 대해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고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노사관계로드맵 등의 노동법 개폐투쟁과 산별노조 전환의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대로 몰락할 것인가, 아니면 혁신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도약의 고삐를 움켜 쥘 것인가! 이러한 절체절명의 물음 앞에서 한국노총 금속노련은 지난 2월16일 중앙위원 및 중집위원 연석회의를 통해 2006년도 방향과 과제를 정하면서 ‘선택’을 내렸다. 즉 금속노련은 조직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2006년 내에 산별노조 체제를 마련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중단됐던 산별노조 전환노력을 재추진하여 3월28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구체적인 건설안을 놓고 대중적인 결의에 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산별노조, 왜 다시 끄집어내는가

금속노련의 산별추진 노력은 4년 전 더 이상의 성과를 진척시키지 못한 채 장기간 답보상태로 접어들고 말았다. 당시 연맹은 2000년 전국노조대표자회의,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산별추진을 공식 결의했고, 산별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2001년에는 산별추진기금으로 약 3,800만원을 모금했다. 그러나 산별추진은 순회교육과 조합원 홍보책자 및 선전특보 제작 그리고 정책을 정리하는 책자를 발간하는 수준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산별추진이 답보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이를 비판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006년 2월16일 개최된 연맹 중앙위원 및 중집위원 연석회의에서 연맹에 가맹되어 있는 총 417개 노조 중 143명의 노조대표자 연서명으로 “산별노조 건설 재추진”과 “연맹 대의원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임시대의원대회 소집 요청이 제출되었다. 그 결과 이날 회의에서는 ‘규약개정소위원회’와 ‘산별노조 재추진단’을 구성하여 구체적인 계획안을 내고 이를 3월28일 임시대의원회에 상정하기로 하는 등의 결정이 이루어졌다. 

금속노련이 ‘잃어버린 4년’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이날 회의는 금속노련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가맹노조 대표자 1/3이상이 조직적으로 핵심 개혁과제를 제기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임시대의원대회 개최 소집을 요구 것은 45년 금속연맹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금속노련 조직내부에서 개혁을 갈망하는 요구가 매우 절박하고 그 의지가 높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2000년 산별노조 건설추진 평가와 시사점

jmj_01.jpg금속노련의 산별노조 건설추진은 1997년 연맹 중앙위원회에서 단위노조의 요청에 따라 일부 지역본부에서 의안으로 제출한 것을 사업으로 채택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이는 당시 2002년도부터 시작될 것으로 여겨졌던 ‘노조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로 인해 불가피하게 조직구조를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1년 2월28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과정에서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 문제에 대한 결정이 2006년 12월31일 이후로 5년간 미뤄졌다. 때문에 금속노련 뿐만 아니라 화학노련 등에서도 진행되던 산별노조 건설추진 사업은 탄력을 잃고 유예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요인만이 산별추진의 장애물인 것은 아니었다. 작은 부분이라도 조직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내부 관성이 없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전환이라는, 조직의 작동원리 전체를 변화시키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연맹 지도부와 상근간부들이 “산별노조 전환을 통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확실한 대답과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단위노조의 지도부들과 조합원들에게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연맹 상층단위에서는 산별노조를 자신 있게 추진하지 못했다. 심지어 내부에서 이견이 제기되는 상황까지 연출된 바 있다. 이는 산별노조 건설이 조직의 주체적ㆍ발전적 변화 속에 놓여있음을 망각하고, 다분히 임시적이고 정략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열악한 인적 역량과 통일적인 활동의 결여라는 조직 시스템의 문제도 지적할 수 있다. 당시 금속노련의 정책, 교육, 선전일꾼은 각각 한사람이었다. 그나마도 다른 부서(산업안전, 국제, 조사통계 등)들을 겸직하고 있었으며, 또한 매 시기마다 벌어지는 노동현안에 대응해야 했다. 당연히 산별노조 건설사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전국단위 6개 업종을 포괄하고 12만명 조합원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한계를 조직의 인적 구조에서부터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연맹은 인적역량 확보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했고, 그 결과 산별추진은 최우선순위의 집중된 사업으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또한 진행된 사업들도 통일성 없이 전개되었다는 부분 역시 지적할 수 있다. 조직∙쟁의사업이 2~3년간 전무했고 지역본부들에서도 두 세 개 본부를 제외하고는 산별추진 사업이 거의 진행되지 못했었다.

그리고 단위노조들의 ‘저항’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대안을 갖고 있지 못했다. 특히 산별노조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해가 엇갈리는 쟁점은 교섭권과 조합비의 집중문제 등 소위 ‘기업별노조의 기득권’을 산별노조에 집중시키는 문제였다. 자율성을 인정하자는 주장은 산별노조가 힘의 집중을 통해 역량을 극대화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취지와 대치되는 것이었지만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또한, 2001년 2월 노동관계법 개정 과정에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복수노조 허용이 5년 동안 유예되면서 위기의식이 옅어진 단위노조들은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의지가 급격히 식어버리고 말았다. 

2006년도 금속 산별노조 건설 계획안

이러한 지난 경험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지난 2006년 3월6일 금속노련 산별노조 추진단 1차 회의에서는 현재 금속노련의 조직구조와 상황 속에서 산별노조 건설을 △가장 빨리, △가장 많이, △가장 운동성(7대 운동성: 자주성, 민주성, 집중성, 통일성, 대중성, 실천성 등) 있게 추진하고 전환하는 것을 ‘3대 원칙’으로 설정하였다. 또한 3월13~14일 열렸던 산별노조 추진단 워크숍에서는 산별노조 건설의 기본방향과 목표에 대하여 논의하고 가닥을 잡았다. 산별노조를 추진한 국내 조직들의 사례를 검토하고 ‘실현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한 결과, 연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완전히 산별노조화할 때까지 △연맹과 산별노조가 병존하는 2원화된 체계, △업종단일노조로의 재편, △기업단위의 자율성을 인정한 산별노조 체제 등의 단계와 과도기를 두기로 한 것이다([그림1] 참조). 

[그림1] 금속 산별노조 전환 흐름도

 

 

 

 

 

 

 

 

 

 

 

 

 

 

 

 

 

 

 

 

 

 

 

 

 

 

 

 

 

 

 

 

 

 

 

 

금속 
대산별노조

 

 

 

 

 

 

 

 

 

 

 

 

 

 

 

 

 

 

 

전자단일노조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