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경쟁체제' 앞에서 현명한 선택을!

노동사회

'노동조합 경쟁체제' 앞에서 현명한 선택을!

편집국 0 2,745 2013.05.19 03:24

2007년, 10년을 주기로 또 다시 노동운동과 노사관계 대변화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1987년의 변화가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요인에 의해서, 1997년의 위기가 경제체제의 문제에 따른 외환위기라는 요인에 의해서 촉발되었듯이, 노동운동은 지금까지 주로 외부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2007년은 노동운동 내부의 요인에 의한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 그렇기에 노동운동 진영의 주체적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변화의 방향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2007년 이후 노동운동이나 노사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름 아닌 복수노조의 허용으로 ‘노동조합의 경쟁체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기업이 전적으로 부담하던 지금까지의 관행이 깨지고 어떤 형태로든 노동조합이 책임지게 되는 상황이 전망된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까지 기업별노조를 근간으로 구축된 한국의 노사관계를 뿌리부터 흔드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임금 및 주요 노동조건의 결정이 기업단위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노동시장의 분절성과 이중구조가 심화되어 온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노동조합의 개별화와 분산성이 극대화되어 노동운동이 사회경제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본격적인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게 될 현실의 모습은, 그 변화의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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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창립 60주년을 맞은 한국노총 정기대의원대회 ]

노동조합끼리 ‘경쟁’하는 시대가 열린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현재의 기업별 체제는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조직이기주의의 극대화가 문제다. 기업의 존속이 노조 존재의 전제조건이 됨으로 인하여,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노동자 연대의 틀을 구축하는 것이 근원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1985년도 구로연대투쟁에서 싹을 틔운 작업장 울타리를 넘어서는 노동자연대와 정치의식이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은 기업별노조라는 좁은 조직 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수노조의 태동은 무엇보다 노동조합 간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낼 것으로 전망된다. 모든 사업장에서 복수노조가 만들어질 것이라 볼 수는 없겠으나 대기업의 경우는 적지 않은 노조에서 복수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기존의 집행부에 대한 반대그룹은 물론 나름대로의 정파를 형성하고 있는 집단이 노동조합으로 전환되어 독자적인 근거지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하나의 조직으로 포괄되지 않는 사업장 내부의 다양한 집단들이 별도의 조직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복수노조의 인적, 물적 기반이 취약하고 분리하려는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지 않아 복수노조의 가능성이 크지 않으나 대기업은 이와 사정이 다르다. 복수노조가 된다 해도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적, 물적 기반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조합원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수단으로 복수노조를 선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나아가 상급단체의 적극적인 ‘조직활동’이 대기업 사업장에서 복수노조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노동조합은 지금까지의 기업별 노조 중심의 조직형태를 다양화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는 기업별노조를 강제하고 있던 조직형태 강제조항이 사라지는 것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이미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기업노조만으로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존재조건에 기반한 요구를 수렴하여 해소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기업별노조의 조직이기주의와 연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산별노조 전환을 추진하는 것과는 별도로, 전환기의 불안정성을 틈타 기존 조직형태의 파괴가 나타날 가능성 또한 높다 할 것이다. 즉, 제조업 노동자의 감소와 서비스업의 확대, 새로운 세대의 개인주의 성향과 문화다양성 등의 변화 속에서 지금까지의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노동조합의 문화와 활동으로는 노동자의 요구를 담아내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노동조합에게 다양한 사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을 변화시킬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기업단위 노조분열, 초기업단위 노조통합이 동시에

아울러 복수노조와 조직형태의 다양화는 양 측면을 갖는다. 기업노조는 이기주의로 기업외부에 대하여는 벽을 쌓아왔다면 기업 내에선 다양한 직종과 업무의 차이를 하나의 단일한 단체협약으로 덮어버린 측면이 있다. 따라서 복수노조가 허용됐을 경우 기업 외부에서는 연대를 강조하는 초기업단위의 다양한 조직형태가 나타나 활동 폭을 넓힐 것이고, 기업 내에서는 직종에 따른 업무에 따른 노동조합이 복수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직종별, 업종별 조직은 외부의 동일하거나 유사한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초기업단위 노조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동조합의 다양화는 사용자의 노무관리 전략과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된다. 사용자가 노동자에 대한 분할지배 전략을 사용한다면 복수노조의 가능성은 높아지고 노동자 간의 통합전략을 구사한다면 복수노조의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조직형태의 출현은 당연한 귀결로서 노동조합의 이합집산을 통한 구도개편을 촉진할 것이다. 국제 산별노조와 서구의 노동조합들이 조합원 감소와 운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조직 통폐합을 널리 진행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우리의 경우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의 기업별노조체제라는 단단한 벽에 균열이 생기고 다양한 이해관계의 반영을 위한 여러 가지 형태의 조직으로 분화한 이후에는, 이합집산의 과정을 거쳐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노동계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는 2007년에 당장 나타날 현상은 아니다. 당분간은 분산되고 다양화되는 형태가 우선될 것이다. 적지 않은 기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집중과 대규모화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행위주체인 노동조합과 관련 당사자인 사용자의 전략에 따라 촉진되기도 하고 지연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규모가 작으면서 유사성이 높은 노동조합 간의 통합은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의 경쟁체제’에서 활동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 확보에 필요한 조직의 규모를 키우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조직의 통폐합은 유사한 산업과 업종의 범위를 넘어 더욱 광범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이미 국제 산별노조들은 서로 다른 업종과 산업까지 포괄하여 통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좁은 지역성과 산업, 업종 간 높은 연관성으로 인하여 통합의 기초는 갖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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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확대강화를 위한 지역순회간담회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노총 - 출처 : 매일노동뉴스 ]

더욱 커질 기업의 노사관계 영향력

다음으로 복수노조와 다양한 형태의 노조는 상대적으로 노사관계에서 기업의 영향력을 증가시킬 가능성을 높인다. 기업단위의 1대1 노사관계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수적이지만 복수화된 노동조합체제에서는 기업이 모든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고도 노사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경쟁이 있을 경우 경쟁하는 집단들은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노사관계를 기업이 특정전략으로 주도할 가능성은 그 전략에 노동조합들이 일관되게 대응을 하느냐 아니면 차별화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1960년대 일본의 기업들이 강경 좌파노조를 순치시키기 위해 구사한 ‘제2노조 전략’의 경험에서 보듯이, 만일 한국의 노동조합들이 사용자의 넓어진 전략선택 폭에 적절하게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기업주도의 노사관계’로 재편될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고 할 것이다.     
복수노조 시대를 맞아 노동조합의 상급조직들은 통합과 집중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다양화되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기업별노조의 오랜 관성은 통합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힘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힘이 경합하여 어느 방향으로 작용하는가에 따라 노동운동 및 노사관계의 구도가 새롭게 짜일 것으로 전망된다. 

산별 집중과 비정규 조직화로 뚫는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을 헤쳐 나가는 최선의 전략은 무엇보다 산별노조로의 조직전환과 유사산별의 통합으로 노동조합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나아가 미조직 분야를 개척하고 이를 노동조합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조직률을 제고하여 노동조합의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 
첫째, 산별노조 건설이다. 한국노총 내에서는 제조산별 건설이 추진됐던 적이 있으나 조직 내부의 이견으로 성사되지 못하고 무산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시급한 상황에서는 한국노총이 주도적으로 산별노조 건설을 추동해 나가야 한다. 특히 지부와 분회가 독자적으로 활동기반을 갖는 형태의 ‘무늬만 산별’을 넘어서 명실상부한 산별노조를 건설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산별노조는 노동자 간 연대를 강화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함은 물론 전임자 임금 규제를 돌파하기 위한 대안으로서도 필요하다. 또한 영세중소사업장의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틀거리로서도 의의를 갖는다. 복수노조 시대를 맞이하는 노동조합의 중심 조직전략은 산별노조의 건설이 가장 유력하다. 
둘째, 유사산별의 통합이다. 앞서 지적한 산별노조 건설이 필요한 이유를 넘어서 조합원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유사산별의 통합을 통해 조직규모를 키워야한다. 한국노총 산하에도 조합원 수 1만명 미만의 산별이 8개나 있다. 통폐합의 필요성이 크며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한국노총의 목표는 산별을 8개 부문으로 통합하여 궁극적으로는 8개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재편하는 것이다. 
셋째,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 사업 역시 중요하다. 기업별노조라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 다양한 조직형태를 통하여 미조직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포섭해야 한다. 우선 조직대상이 되는 것은 광범한 사무직노동자와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다. 기존의 기업별 노조에서는 현실적으로 현장 생산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있을 경우 사무직노조의 조직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직 노동자들의 삶은 과거에 비하여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특히 고용불안에 노출되어 안정적 일자리 확보의 욕구가 적지 않은 만큼 조직화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기존 생산직 노동자 중심의 노조문화나 활동과는 다른 방식을 만들어내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될 것이다.
또한 영세사업장과 비정규노동자들은 사실상 사업장단위 조직이 불가능하므로 지역노조를 건설해 가입시키는 형태로 조직화할 것이다. 특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고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는 비정규노동자를 노동운동이 포괄하지 못한다면 향후 노동운동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노동운동의 주된 흐름이 비정규직노동자로 넘어가고 있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근래에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노동쟁의와 분쟁은 거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문제다. 이는 비정규노동자의 비중이 높아진 탓이기도 하거니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와 규칙이 아직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비정규노동자 문제는 아직도 해결 당사자가 누구냐에 대해서조차 합의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비정규노동자의 적극적인 조직화를 통하여 복수노조시대의 조직 강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갈림길에 선 노동운동, 현명한 선택을!

복수노조라는 상황변화를 노동조합이 슬기롭게 극복하면 체질을 강화하고 운동영역을 확장하며 사회개혁의 선도세력으로 우뚝 설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를 실현하지 못한다면 운동진영의 최하부단위인 단위노조조차도 여러 갈래로 찢겨져 분열과 갈등으로 노동운동의 쇠락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갈림길에 서 있다. 물론 모두가 전자가 되길 희망한다. 한국노총 역시 그러한 선순환의 노동운동을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2007년 이후 노동운동에게는 ‘집중’과 ‘분산’의 상반되는 힘이 동시에 작용하게 될 것이다. 노동조합은 조직으로서 통합전략을 구사하되 내용과 활동의 다양성으로 집중과 분산의 양 측면을 통합해 나가야 한다. 기업에서도 변화된 노사관계 환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적극적인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차원을 벗어나 노사관계 전체 차원에서 노사 간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나타날 것이다. 어쨌거나 2007년은 노동운동과 노사관계의 큰 분수령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이 변화에 대한 주체의 대응에 따라 이후 판도가 180도 달라질 것이라는 점도 명백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