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노동운동의 문제제기를 기다린다.

노동사회

세금은 노동운동의 문제제기를 기다린다.

편집국 0 2,799 2013.05.19 03:14

연초부터 ‘증세·감세’ 논란이 뜨겁다.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나 어떻게 증세를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와중이고, 한나라당은 전통적인 보수정당답게 오히려 감세를 통한 경기활성화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당은 총선, 대선과정에서 공세적으로 부유세를 제기한 것에는 못 미치게,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늘려야 한다는 소극적 입장 정도를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입장 차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문제는 이러한 증세·감세 논란 과정에서 보수당들의 정쟁 와중에 논점이 기형적으로 변질되면서 또 노동자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조차 소극적인 입장으로 일관하는 속에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에게 세금문제가 혼란스럽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보다 정확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증세는 필요한가? 둘째, 증세가 필요하다면 어떤 부분에서 증세가 이루어져야 하는가? 

증세가 필요한가? 어느 부분에서? 

먼저 증세가 필요한가 하는 문제다. 세금이라고 하는 것은 한 국가나 공동체의 입장에서 그 공동체의 유지 발전을 위하여 마련한 재원이다. 때문에 수요와 필요성이 있다면 얼마든지 증세를 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IMF 구제금융 이후에 진행된 심각한 양극화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증세의 필요성은 어느 정도 합의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적으로 비교하여 보아도 2003년 OECD 국가들의 조세부담률(사회보장기여금 포함) 평균은 36.3%였는데, 한국은 25.3%에 불과해 대략 11% 정도의 차이가 났다. 11%라는 수치는 GDP를 700조로 봤을 때 약 77조에 달하는 것이다. 

OECD에서 2006년 2월 발표한 1인당 GDP 기록을 보면 한국은 명목으로는 1만4천 달러지만, 실제 가치를 나타내는 구매력 기준으로는 2만4백 달러를 기록했다. 이미 한국은 1인당 GDP 2만 달러를 달성했다. 어쨌든 이 조사에서는 1인당 GDP가 한국과 비슷하게 나타난 나라인 그리스(21,600 달러)는 조세부담률이 35.7%였다. 그리고 한국에 못 미치는 체코(18,600 달러)는 37.7%, 포르투갈(18,900불)은 37.1%에 달했다. 즉 1인당 GDP를 감안해서 비교하더라도 한국이 조세부담률이 높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2003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에서 조세부담률이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제일 낮다. 이러한 통계들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선진국에 비해 낮지 않다”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어느 부분에서 조세부담을 늘려야 할까?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는 주세와 LNG특별소비세, 소수자 추가공제 폐지로 증세를 하려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조세의 수직적 공평성을 확보할 수 없는, 주세를 늘리는 방식이나 맞벌이 부부의 부담을 늘리려는 정책은 노동자와 서민의 부담 증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여론의 비판을 받은 후, 모든 면에서 모호한 열린우리당 정부는 지금 증세에 대해서도 단순한 탈루 세원 포착을 제외하고는 명확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술 묻은 돈으로 양극화 해결한다는 참여정부 코미디 

증세논란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가 얼마나 허약한 기초에 서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다. 이들은 이미 소득세와 법인세를 지속적으로 인하시켜왔다. 2004년에는 소득세율을 구간별로 1%씩 인하시켜 누진율을 약화시켰고, 당연히 이로 인한 혜택은 고소득자들에게 주로 돌아갔다. 1억원이 과세표준인 사람은 100만원의 세금혜택을 본 반면, 과세표준이 1천만원인 사람은 10만원의 혜택을 보는 데 그쳤다. 2003년에는 법인세를 기본세율 27%에서 25%로, 2% 인하하였다. 전체 과세대상 법인들의 1%가 전체 세액의 77.5%를, 소득이 1조원 이상인 법인 198개가 전체 법인세의 53.1%를 내는 상황에서 법인세를 인하한 것은 소수 재벌기업에 대한 특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가 벌여놓은 상황이 이렇다. 이런 상황에서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미명 하에 주세와 LNG특소세, 그리고 담배에 대한 부담금을 인상시키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를 더욱더 심화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주세를 인상하여 재원을 확보한다는 발상은 박정희 정부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부족한 경제발전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박정희 군사정권은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세법을 전면 개정하여 주세를 전년도 보다 무려 101%나 더 걷은 바가 있다. 참여정부가 과거사청산은 하고 있는지 몰라도 정책은 박정희 시대의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세제 면에서 보면 그보다도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명목으로 간접세를 지속적으로 인상하기도 했지만, 직접세 또한 상당한 정도로 인상하였다. 박정희 시절인 1966년, 법인세의 세액은 국세청으로 설립으로 전년도에 비해서 91.1%가 증가하였다. 또 1967년에는 법인세율도 35%에서, 비공개 법인의 경우에는 최고 45%까지(당시는 비공개 법인이 대부분이었다)로 올리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주세를 통하여 사회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아마도 열린우리당 정부 하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탈루세원 줄이려면 간이과세 잡아라

세금문제에 있어서 소득이나 재산에 대한 과세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특히 소득세의 경우 많이 버는 사람이 보다 높은 비율의 세금을 내야 한다. 한국은 소득세(법인세, 양도소득세 포함)의 GDP 대비 비중이 2003년 기준으로 7.1%다. 같은 해 OECD 국가 평균은 12.6%이다. 사회보장기여금(국민연금, 건강보험)도 OECD 국가들은 GDP 대비 비중이 9.5%인데 비해 한국은 4.9%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소비세 비중은 OECD 평균이 11.5%인데 한국은 9.4%에 달한다. 간접세인 소비세의 비중은 OECD 평균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한국에서 증세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은 주세나 LNG특소세 같은 분야가 아니라, 소득세, 법인세, 양도소득세 등이라는 의미다. 한국에서 증세는 탈루소득을 찾아내거나 아니면 비과세부분의 과세를 확대시키고 또는 세율을 늘리는 식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탈루세원 문제는 간이과세자(연 매출규모 4,800만원 이하의 개인사업자를 말함. 일반과세자에 비해 간편한 방법으로 부가가치세를 납부할 수 있다)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아예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전제되지 않고서 국세청의 세무조사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신용카드 사용확대나 현금 영수증제도 같은 것들도 간이과세제도가 축소 내지 폐지되지 않고서는 세원을 노출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즉 간이과세제도 문제를 손질하지 않고 탈루세원을 파악하겠다는 주장은 그 신뢰성에 있어서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소득세 납부보다도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제도의 형평성 유지를 위해서 더욱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저소득층은 일반적으로 근로소득세의 면세점은 비교적 높다. 때문에 소득세로 내는 돈보다는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보험료에 대한 부담이 훨씬 큰데, 간이과세제도 때문에 소득파악이 잘 안 되는 자영업자들은 각종 보험료 부담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보험료 납부에서 현저한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저소득층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회보험제도가 정작 단기적으로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측면까지 있는 것이다. 

현실적 증세안은 법인세 인상과 부동산 부유세 도입

이 외에도 소득세율의 과세구간을 하나 더 창설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최고세율 35%로 과세의 수직적 공평성을 충분히 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44% 정도의 과세구간을 하나 더 늘리는 방안을 도입하여야 한다. 이 외에도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물리는 범위를 현행의 연 이자 및 배당소득 4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낮추는 방안도 다시 한 번 주장되어야 한다. 또 IMF 이후 완화된 금융실명제를 새롭게 강화하여 차명거래의 금지 강화하는 방안이나 양도성예금증서제도의 폐지 등을 통해 사전 상속의 방지하는 방안 등도 고려해 봄직하다. 아니, 아예 프랑스처럼 모든 거래에 있어서  일정 액수 이상의 현금거래 금지를 도입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증세방안은 아무래도 법인세 인상이다. 세계적으로 법인세가 인하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은 한국의 실효세율은 22%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고용 없는 성장, 고용 없는 수출로 인하여 주로 혜택을 보는 것이 수출위주의 일부 재벌기업인 점을 고려한다면 법인세의 인상은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법인세를 인상하기 위해서 반드시 세율을 늘릴 필요는 없다. 법인세 감면규모를 축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는 매출 1조원 이상의 법인에 대해서 부가세 형태로 사회양극화해소세 같은 것을 부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8천억원을 출연하겠다는 이건희 회장에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8천억 기부 안 해도 뭐라고 안 할 테니 당신을 비롯한 한국의 재벌기업들 매년 법인세로 2조씩만 더 내라고.

또 다른 실효성 있는 방안은 부동산 부유세 도입 등 부동산 관련 과세의 강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미 작년에 이뤄진 법 개정으로 주택과 토지에 대해서 별도로 매겨지는 종합부동산세가 강화된 바 있다. 한국처럼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부의 창출이 크고, 이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가 일반화된 사회에서는 이러한 과세는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종합부동산세를 부동산 부유세로 확대 개편할 필요가 있다. 모든 주택, 토지, 건물에 대해서 합산하여 누진 과세하는 부동산부유세를 도입하고, 이를 기초로 모든 재산에 대해서 부유세 과세를 확대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노동운동이 조세문제에 나서야 

나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조세논란과 관련하여, 노동운동이 내부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보다 공세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으면 한다. 작년에 사회공공성투쟁이 일정하게 의제를 형성했다면 이제는 이것을 조세개혁투쟁으로 연결시켜 가진 자에게 보다 많은 부담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진 자들이 자기 책임을 부담한다면, 노동자들도 조세를 더 부담할 수 있음을 공세적으로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현재의 근로소득세는 면세점이 지나치게 높아, 소득이 낮은 노동자들에게는 월급이 조금 올라가면 갑자기 세금이 증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차라리 소득이 낮은 노동자라도 단지 1~3%라도 세금을 내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다. 영국 최초의 광부출신 하원의원인 케어하디가 귀족과 부르주아로 둘러싸인 의회에서 초지일관 주장한 것은 누진적 소득세의 도입이었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오늘날의 한국 노동운동에게 매우 크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