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대의원대회와 임원선거 파행이 제기하는 쟁점들

노동사회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와 임원선거 파행이 제기하는 쟁점들

편집국 0 2,986 2013.05.19 03:10

민주노총의 ‘내홍’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한해의 사업을 총화하고 새로운 결의의 장이 되어야 할 대의원대회가 안건 하나도 처리하지 못한 채 무산되고 말았다. 2월10일 대의원대회가 이런 파행을 겪게 된 원인으로 △현대자동차노조 대의원 자격 시비, △KT노조 대의원에 대한 참석 저지, △걸러지지 않은 특별 안건의 남발, △미숙한 회의 진행 등 다양한 요인이 지적된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그동안 수면 아래 잠재해 있던 노동운동 주체들의 정파적 이해관계가 ‘임원 선거’를 계기로 폭발한 데 있다. 

민주노총 내부의 주요 의견그룹들은 민주노총 건설 10년을 경과하면서 상호를 인정하는 최소한의 게임 규칙도 형성하지 못할 정도로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처럼 민주노총의 위기는 외부의 탄압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부의 대립과 갈등에서 촉발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2월10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나타났던 파행이 2월21일 대의원대회에서 극적으로 봉합된다고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분열양상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조직적 성과인 민주노총의 발전은 80만 민주노총 조직구성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비정규직의 확산 그리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리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중심 세력을 이야기할 때, 누가 뭐라 하던 최대의 조직역량을 갖추고 있는 민주노총을 빼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위상 약화와 내부 혼란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제기된 다양한 논점들을 객관화하여 내부토론에 기초한 합의를 형성하는 방법밖에는 우회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의원대회 파행의 값비싼 교훈을 발전의 디딤돌로 만들 수 있는가의 여부가, 향후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과 계급적 대표성을 결정짓는 지표가 될 것이다. 

이번 대의원대회와 임원선거에서 표출된 쟁점들은 지난 시기 ‘노동운동 위기’ 논쟁에서 제기된 내용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데 다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노조 민주주의 즉 내부 의사결정 구조의 민주화 문제, 둘째 조직발전으로서 산별노조에 대한 시각 및 이행 문제, 셋째 조직률 하락과 비정규직 확산에 따른 노동조직 대표성의 문제, 넷째 사회적 의제 제시와 투쟁을 선도하는 중앙조직의 역할 등이다. 

총연맹 임원 직선제는 답이 아니다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제기된 핵심 논점은 ‘노조 민주주의’ 문제이다. 민주노총이 80만 조합원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는 내부 지배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 결과 소수 상층 간부들의 ‘관료주의’와 ‘패권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대의원의 직접선출과 조합원 직선제를 통한 임원선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우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이끌어 왔던 노동조합운동에서 조직내부의 민주주의가 의제로 제기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1995년 민주노총 건설의 뿌리가 87년 대투쟁을 통해 탄생한 ‘민주노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너무도 당연한 요구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도 모두 원칙적으로 임원 직선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며 그 실현에 있어, ‘즉각 실시’, ‘검토 후 실시’, ‘차기 임원부터 적용’이라는 차이만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임원 선출을 직선제로 하는 것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화’에 기초해 있으며, 직선제를 노동운동의 관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중앙조직(national center)인 민주노총의 임원 직선제 도입은 민주성 회복의 한 방편으로 제기될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 더 큰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첫째, 임원 직선제는 중앙조직의 조직 구성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단위노조나 조합원의 결사체가 아닌 ‘연맹의 결사체’라는 조직구조를 갖고 있다. 직선제를 도입하게 되면 조직의 구성원은 연맹인데, 위원장 선출은 조합원이 하는 이중 시스템을 갖게 된다. 이런 점에서 세계 어느 나라 중앙조직도 임원 선출을 조합원 직선제로 실시하는 사례는 없다. 

둘째, 임원 직선제가 도입되면 중앙조직인 총연맹의 역할이 혼란스러워질 위험성이 크다. 총연맹은 연맹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운동이념을 정립하고 정책참가와 정치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직선제가 도입되면 현장의 이해관계, 특히 주요 대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총연맹 사업이 좌지우지되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 결과 지도력이 상실되거나 현실주의에 노동운동이 매몰될 수 있다. 임원 직선제를 요구하는 많은 동지들은 민주노총의 대의원 구조가 ‘정규직’과 ‘대기업’의 이해만을 대변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및 여성, 중소사업장에 대한 할당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직선제는 ‘1인 1표’라는 기준 이외에 다른 어떤 여과 장치를 도입할 수 없다. 이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셋째, 총연맹 임원 직선은 요구되지만 왜 그 가맹조직인 산별연맹의 직선제는 요구되지 않는가? “대의원에 의해 선출되는 총연맹 임원은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면, 대의원 간선으로 선출되는 연맹 임원의 정통성은 어떻게 보장받는가? 또한 임원 직선제를 통한 노조 민주주의 실현을 고민할 때는 ‘조합원 직접선출을 통한 현장조합원의 의견수렴’이라는 장점과 함께 ‘그 제도가 노조의 효율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역시도 고려하여야 한다. 만약 어느 후보의 주장대로 임원의 임기를 2년으로 단축하고 중앙조직과 산별연맹의 직선제를 도입하면 민주노총 산하의 노동조합들의 활동은 그야말로 “선거로 시작해서 선거로 끝나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넷째, 현실 적용의 문제점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란에서는 앞에서 제기한 직선제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직선제 실시에 있어 실무기술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쟁점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이는 기술 실무적인 것만이 아니라 ‘조직 문화=선거 문화’의 문제이다. 과거 사무금융연맹이 임원 직선제에서 다시 대의원 간선제로 회귀한 이유, 일부 민주노총 지역본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선거결과에 대한 불승복 문제, 많은 선거 비용 등은 심사숙고할 것들이다. 더 큰 문제는 직선제가 한번 도입되고 나면 총연맹의 중요 방침이 ‘대의원대회’가 아닌 현장조합원의 ‘총투표’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조합원의 대중적인 요구와 노동운동의 지향점을 통일시켜야 할 중앙조직의 사업이 방향타를 상실할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승자독식 선거, 의사결정구조 공동화가 해결돼야  

이런 점에서 임원 직선제 요구는 노조 민주주의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보다 본질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춰보면 숙고해야할 부분이 많다. 먼저 민주노총 대의원 선출이 일부 연맹에서 아직도 조합원 직선이 아닌 위원장 임명이나 이중 간선제로 실시되고 있는 점은 시급히 보완·교정되어야 한다. 또한 민주노총 대의구조의 계급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여성 및 비정규직 그리고 중소사업장에 대한 일정 비율의 ‘대의원 할당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노조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임원 직선제 도입이 아닌, 현재의 승자독식의 선거 구조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로 발전시켜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의 임원선거는 과거 권영길, 단병호 등 대중적 명망가가 지도자로 선택되어 조직통합을 이루었던 단계에서 각 정파(의견그룹)들의 후보 간 경쟁구도로 변화하였다. 이에 따라 선거 기간의 후보 간 경쟁이 의견그룹 간 지속적 대결구조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것이 ‘정파 간 발목잡기’라는 부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효과는 차이를 인정하는, 소수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부재를 통해 더욱 확대되고 있다. 현재의 임원 선거 방식의 문제는 간선제 또는 직선제라는 선거방식의 것이 아니라, 지지율과 관계없이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경쟁하는 두 후보 중 어느 편이든 51%만 차지하면 나머지 49%는 완전히 무시되는 결과가 나타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을 걸고서, 필요하면 ‘원칙’을 훼손해서라도 ‘승자’가 되어야 하며, 다른 조직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를 통한 경쟁이라는 통합적 규칙이 아닌, 배제와 패권의 논리만 양산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노선과 방침 중심으로 진행되고 정파별 지지율이 반영되는 브라질 노총(CUT) 선거와 프랑스 사회당의 사례가 주는 함의는 크다고 할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노동사회』통권83호에 실린 김태현의 “선거·정파·민주주의”를 참고 할 것). 배제의 리더십이 아닌 ‘통합의 리더십’을 제도화할 수 있는 시스템 변화를 고민할 시점이 된 것이다. 

노조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대의원대회 안건 상정의 절차와 과정에 관한 문제다. 이번 대의원대회에서는 공식 조직단위에서 결정된 안건 이외에도 ‘직선제 도입’, ‘KT 노조 징계’ 등 무려 5가지의 특별안건이 제기되었다. 대의원대회에서 제기된 안건 수가 많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지적되어야 할 것은 민주노총의 ‘상집-중집-중앙위원회’ 등 조직 구조에서 충분히 검토되고 성안될 수 있는 안건들이 공식단위에서는 제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공식 의사결정 시스템이 공동화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것도 공식 조직의 공동화 현상만큼 조직의 위기를 촉발하는 요인은 없다.
 
“비계급적 산별노조” 현실부정은 비판을 위한 비판 

기업별노조의 파행성을 극복하기 위한 산별노조 전환 추진사업이 2006년 들어 가속화되고 있다. 그것은 2007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에 따른 노동운동의 자구책이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자의 분단화 극복 그리고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를 촉진하기 위한 대응전략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현대차, 대우차 등 완성차 4사 노조는 2006년 상반기 중 산별전환 총투표를 실시할 것을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하였으며 공공연맹, 화섬연맹 등도 산별전환을 위한 조직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선거과정에서 그동안 민주노총 산하 가맹조직들이 추진해왔던 산별노조 건설의 방향 및 의미 부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것은 현재의 산별이 “무늬만 산별”이며 비정규직 및 미조직노동자를 포괄하지 않는 기업노조 연합체에 불과한 비계급적 산별이라는 것, 산별노조 전환을 ‘건설 투쟁’이 아닌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방식은 관료주의 사업작풍이라는 것, 산별노조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업종이 아닌 ‘지역 중심의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주요 논거로 하는 주장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제기는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 등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이 추진해온 산별노조운동의 취약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리 있는 비판처럼 보인다. 그러나 산별노조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구분하지 못한 채 기존의 노력을 깡그리 무시하는 전형적인 ‘비판을 위한 비판’이다. 한국의 산별노조운동은 아직 전환기적 이행 국면에 놓여 있다. 기업별노조의 산업별노조 전환은 조직체계라는 ‘형식’만 바꾸는 것이라, 조직 구성원의 ‘의식과 관행’을 극복하는 장기적인 과정을 수반하는 일이다.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에서 추진되었던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와 비정규직 차별철폐 및 조직화는 그 어떤 조직에서도 수행하지 못했던 소중한 성과이다. ‘무늬’도 바꾸지 못한 채 ‘계급적 산별’이니 ‘투쟁을 통한 조직 건설’이니 하는 비판을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현재의 조직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일부 세력에게 면죄부만 부여하는 또 다른 패배주의적 발상이다. 누구도 현재의 산별노조가 완성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지역’의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현재의 산별노조가 극복하려고 고민하는 지점에 대한 토론보다는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산별노조의 성과 및 노력을 폄하하는 발상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하는 아이에게 “뛰지 못한다”고 질책하는 것은 머릿속 관념으로 현실을 재단하는 일이다. 비판자들이 지적하는 기존 산별노조들이 당면한 문제는 한국노동운동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들이다. 산별노조의 건설을 통한 재정과 인력의 집중화 노력 없이는 그 어떤 진전도 가능하지 않다. 물론 산별노조 건설은 그 ‘출발점’ 이상의 어떤 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산별노조의 건설은 계급적 연대의 회복, 산업별 정책의 의제화 그리고 미조직 조직화를 위한 미래의 가능성만을 제시한다.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은 구조가 아닌 그 속의 주체들의 노력에 달려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오늘도 중단 없이 지속되고 있다.

  계급대표성 구현, 주장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으로 

1989년 이후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는 노동조합 조직률은 노동운동의 약화를 가늠하게 하는 주요지표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을 포함한 조직노동운동의 대표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11%의 낮은 조직률과 조직노동의 울타리 바깥에 존재하는 비정규직·여성·영세사업장·외국인노동자 등 89%의 미조직노동자들 문제가 그것이다. 조직운동의 대표성 논란은 낮은 조직률과 함께 단체교섭 적용범위가 14%에 불과한 현실에서 더욱 증폭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또한 정규직·대기업 중심의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이 비정규직 등 미조직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있지 못한 많은 사례들은 이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임이 틀림없다.  

이에 따라 이번 선거에서도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 과제와 함께 민주노총 대의체계와 집행기구에서 비정규직, 여성 등에 대한 할당제도가 제기됐다. 대의체계 할당제에 대해서는 민주노총 혁신(안)도 지적하고 있으므로 별도의 쟁점이 형성되지 않는다. 문제는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한 ‘재정과 인력의 집중’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이다. 4대 집행부 당시 결의되었던 비정규조직화를 위한 ‘50억 특별기금’ 모금운동이 10%의 납부율도 채우지 못한 채 갈지자를 걷고 있는 모습은, 민주노총이 지난 5차례의 ‘비정규직 보호 입법 쟁취 총파업’에서 최악의 조직 동원력을 보여준 것과 무관하지 않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민주노조운동의 현 주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민주노총의 계급대표성 확보와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담보되어야 한다. “우리 정파는 비정규직과 미조직을 대변하지만 너희들은 비계급적 관념에 빠져 있다”는 비판은 어떤 대안도 제시 못하고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종업원의식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기업별노조로 포괄되지 않는 비정규직 및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권익 향상과 조직화를 위한 방도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조장하는 정권과 자본에 맞선 대항 전선은 어떻게 구축되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주도면밀하고 치밀하게 실천을 고려한 ‘사업계획’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조직노동운동의 계급대표성 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투쟁과 교섭의 이분법 뛰어넘기  

이번 민주노총 선거에서 제기된 또 하나의 쟁점은 당면한 현안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응전략이다. 여기서는 교섭과 투쟁의 병행, 투쟁 우선의 제한적 교섭, 투쟁을 통한 정면돌파 전략이 서로 맞서고 있다. 후보들 모두 비정규직 법안 및 노사관계로드맵 저지라는 당면 상황을 투쟁으로 돌파할 것을 이야기하면서 교섭(노·정 또는 노·사·정)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각 후보들은 자신들의 투쟁은 ‘진정성’이 있으나 다른 후보들은 교섭에 매몰되어 있고 현장투쟁에 나서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투쟁을 중심으로 한다고 혹은 교섭을 중심으로 한다고, 그렇게 방침을 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지난 시기 민주노총 사업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사실 ‘교섭이냐 투쟁이냐’의 이분법적 대립구조를 상정하는 한 민주노총의 진로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미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한 민주노총은 국가 및 자본에 맞선 다양한 선택지를 적극 활용해야하며, 이것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민주노총이 당면 투쟁의 요구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가 논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별 과제에 매몰된 현장 동력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외화시킬 수 있는 내부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가가 고민되어야 한다. 

지도부의 확고한 ‘투쟁의지’도 중요하지만 투쟁 동력을 어떻게 복원하느냐에 대한 폭넓고 구체적인 답을 찾는 게 지금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단위사업장과 각 산별연맹들로 분산된 투쟁을 총연맹으로 집중할 수 있는 조직체계의 연계성을 구현하지 않는다면 ‘총연맹’의 총파업은 ‘종이호랑이’라는 오명을 극복할 수 없다. 덧붙여 노동운동의 투쟁이 작업장의 범위를 뛰어 넘어 사회개혁과 공공성의 과제를 전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법안 저지와 노사관계 로드맵 저지라는 방어적 수세적 투쟁을 뛰어 넘는 ‘민주적 노사관계 쟁취투쟁’으로 나가야 한다.  

이제 각 의견 그룹들의 주장은 ‘실천’을 담보로 검증되어야 한다. 거리의 투쟁만이 아닌 ‘현장의 동력’을 기반으로 상황을 다양하게 돌파하는 모범적인 실천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남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쉽게 하겠지만 자신의 정당성은 입증 받지 못한다. 

민주노총의 도약을 위하여  

현재 겪고 있는 민주노총 내홍의 뿌리는 근본적으로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자본의 공세에 대한 대응전략 차이에서 비롯됐다. 더불어 그동안 민주노조운동의 간부 육성과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정파조직 간의 분열과 대립이 이를 더욱 증폭시켰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대응전략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쟁점이 됐다. 파편화된 기업별 노조체계를 극복하고 계급적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조직역량과 정치 자원을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이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그러한 차이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취약한 현장역량과 기업별 분단화 그리고 정파조직 간 분열은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제약 요인이다. 그러나 시간은 더 이상 민주노총의 편이 아니다.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로 집약되는 새로운 노사관계 환경은 노동운동 진영의 새로운 준비태세와 전략정립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닌 행동, 비난이 아닌 비판과 상호존중의 조직문화, 앎과 삶이 분리되지 않은 노동자의 삶과 정신이다. 그것이야말로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을 막고 한국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앞당기는 노동조합운동의 자산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