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거인을 깨워 행동하게 하라!

노동사회

잠자는 거인을 깨워 행동하게 하라!

편집국 0 2,510 2013.05.19 02:47

최근 전교조 교사 한 분에게 전해들은 말이다. 어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노조 지부가 민주노총으로의 상급단체 가입에 반대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자신들은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조합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선생님도 그곳 지부장을 설득하러 가는데 같이 가기로 했단다. 그나마 선생님이 얘기하면 같은 공무원이니 설득이 쉬울거 같다며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고 접할 수 있는 일이다. 공무원이나 일부 사무직 노동자의 경우 스스로 ‘노동자’임을 자각하지 않은 채 권리보장만을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조합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스스로가 부정한다고 해도 노동자인 것은 분명하다.

반대로 차별 속의 역차별도 존재한다. 제조업 사무직 노동자들이다. 사측 편에 서서 구사대로 차출되기도 하고, 현장노동자들이 라인을 멈췄을 때 대체인력으로 라인에 투입되기도 했던 사람들. 그런 전력이 있어서인지 현장노동자들에게 사무노동자라는 말보다는 ‘관리직 사원’이 친근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역시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는 영락없는 노동자이고, ‘동지’이다.

산업발전과 함께 성장해 온 사무직 노동자

과거 제조업하면 제품을 생산만 하는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제품의 기획, 연구, 디자인, 판매, A/S, 생산관리 등 다양한 사무, 판매, 서비스를 통합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제조업 현장노동자의 비중만큼이나 사무/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수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2005년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제조업에 종사하는 현장노동자의 수는 422만명인 반면 일반 사무직을 포함한 서비스/판매 노동자는 742만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까지 노동운동의 주력군으로 활동하는 제조업 현장노동자들 사이에서 사무직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어떠할까? 반대로 비제조업 특히 사무직 노동자들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해 줄 하나의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바로 GM대우자동차 사무직노조의 건설이다. GM대우자동차에는 1999년에 결성된 부장급을 포함해 4천3백여명이 가입한 ‘사무직장발전위원회(이하 사무노위)’라는 이름의 사무직 노동자 조직이 존재해 왔다. 이 사무노위는 형식적으로는 ‘사우회’ 또는 ‘노사협의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규약, 대의원, 총회 등은 노동조합과 유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협상’이 아닌 ‘협의’를 추구할 뿐이다. 이런 조직형태는 IMF 경제위기를 전후해 고용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진 사무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하자 이를 막기 위한 사측의 고육지책으로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고육지책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 사무직노동자 스스로 자신들은 노동자이고, 자신들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조합뿐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사무직노조 건설을 방해하는 것들

지난 2004년 GM대우 사무노위에서는 회원들을 상대로 ‘회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소 자신을 사무직 ‘노동자’로 생각한다”가 62%로 나타났다. 그리고 사무직 노조 설립 필요성에 대해 85.7%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이유에 대해 임금, 후생복지 향상과 고용안정을 꼽고 있다. 또 사무직 노조가 설립된다면 75.8%가 가입을 희망하고, 노조설립 과정에서 회사의 방해가 있다면 57.9%가 투쟁에 동참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사무직 노동자들의 노조설립 의지가 높음에도 GM대우자동차 사무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가로막았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같은 사업장 내 현장노동자들의 사무직 노동자에 대한 불신을 꼽을 수 있다. 과거 대우그룹 부도사태로 회사가 매각의 기로에 놓였을 때 현장노동자와 사무직노동자 간에 의견 차이가 있었다. 당시 현장 노조원들은 해외 매각에 대한 반대 입장이었던 반면, 사무직은 조속한 매각을 통한 회사 정상화를 주장함으로써 상호 불신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더불어 현장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사무직노동자들이 구사대로 투입되거나 현장라인에 투입되어 파업을 위협한 뼈아픈 기억과, 언제 자본의 편으로 돌아설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이런 불안과 불신은 2004년 대의원대회에서 사무노위가 요구해 상정된 노동조합 규약개정안이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 사측의 집요한 방해공작이다. 사무직의 노조결성 움직임을 막기 위한 당근으로 탄생한 사무노위가 2003년 유길종 집행부 당선 이후 노조결성을 위한 구체적 행보를 이어가자 인사상 불이익을 암시한다거나 사무노위 내부의 반대파를 통해 내부분열을 시도하고 있다. 더구나 개별연봉제를 강압적 분위기 속에 통과시켜 사무직의 발을 묶는 등 전방위적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다. 2006년 들어서도 사무노위 해산 총회를 선포하자 협박과 방해를 일삼고 사이버 총회조차 무산시켰다. 사측이 이렇듯 사무직 노동자의 노조결성을 막는 이유는 뻔하다. 회사의 여러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경영상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게 사무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사측의 비리를 감추기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손발이 되어 ‘개’처럼 부릴 수 있는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 사무직노조 조직화

현재 금속노조에는 사무직 노동자의 조직편제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무직 노동자의 특성상 상급단위에서 내려오는 총파업 지침 등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GM대우 사무직지부(준) 외에도 조직화 투쟁이 한창인 두산인프라코어 사무직지회, 기아자동차 사무관리직지회, 대우버스 사무직지회 등을 포괄한 조직적 위상에 관한 논의이다.

이와 관련한 외국의 제조업 내 사무노동자 조직화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경우 금속노조(IG Metal) 내 지역지부로 제조업과 사무직이 함께 편제되어 있고, 스웨덴의 경우엔 생산직은 금속노조(Metall)에 제조업 내 사무직은 공업부문사무기술직노동조합(SIF)에 가입하고 있다. 호주는 직종별 체계가 강한 산별노조에 가입하고 있다. 네덜란드나 프랑스의 경우 특이점은 사무직 중간 간부 이상의 간부노조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세계 각국 사무직들의 조직화 양상은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에 따라, 국가별 특성에 따라, 조직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이는 곧 사무직 노동자의 조직화에 정답은 있을 수 없고 상황에 맞게 가장 합리적인 수단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임금노동자는 극소수의 임원을 빼고는 모두가 노동자라는 그들의 의식일 것이다.

사무직 노동자의 권리획득을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선 그들에게 가장 큰 힘은 바로 다른 노동자들의 동지애일 것이다. 비록 과거엔 자본의 앞잡이로 활약했다 하더라도 이제 당당한 노동자로 바로 서겠다는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힘찬 박수와 굳건한 연대의식이 필요할 것이다. 현장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의 벽을 허무는 길이 곧 노동운동의 질적 도약을 위한 큰 걸음이 될 것이다.
현재 금속노조 GM대우차 사무직지부(준)을 이끌고 있는 유길종 위원장의 ‘거인론’은 되씹어 볼만하다. 사무직 노동자들을 ‘잠자는 거인’에 비유하며 이제 잠자는 거인의 눈을 뜨게 했으니 행동하는 일만 남았다는 말이다. 비단 잠자는 거인이 GM대우차 사무직 노동자들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 땅 잠자는 수많은 거인들이 눈을 뜨고 행동할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