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문제로 짜맞춘 조합원 의식조사 보고서의 재구성

노동사회

비정규문제로 짜맞춘 조합원 의식조사 보고서의 재구성

편집국 0 3,062 2013.05.19 02:38

 

“특수고용 노동3권 등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을 쟁취하고,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사업을 전면화한다.”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하는 노동운동의 통합주체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해결은 이제 우리 한국노총에 있어서나 노동운동에 있어서 조직적 사활이 걸린 문제다.”

 

앞의 문장은 지난 1월11일 중앙위원회를 통과한 <2006년 민주노총 사업계획>에서 7개항의 ‘사업방향과 목표’ 중 가장 첫 번째 항목이다. 뒤의 인용문은 지난 1월18일 광주에서 열린 <지역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활성화를 위한 한국노총 시도지역본․지부 및 지역노동교육상담소 워크숍>에서, 첫 번째 시간이었던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특강 중에서 뽑은 내용이다. 이처럼 비정규직노동자 문제는 지난 몇 년간 그래왔듯이 2006년에도 노동조합운동의 사업계획을 가로지르는 핵심의제다. 또한 이런 노동조합운동의 노력 덕택 때문인지 최근에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사회를 ‘고민’한다는 사람들이 한번씩은 들먹이는 ‘화두’가 되기도 했다.

 

“전면화”와 “사활이 걸린 문제”

그동안 노동조합운동은 부족하나마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해 자기 역량을 투여하는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최소한 상급조직의 최우선적인 목표로서 천명하고 조직화나 제도개선을 위해 실천 계획을 세우는 데까지는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조합운동의 노력들도 비정규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하기는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국가와 자본의 ‘노동시장 유연화’와 ‘단기수익 극대화’ 전략이라는 벽은 노동운동이 ‘기업별노조 체제’라는 돌덩이를 메고서 뛰어넘기에는 너무 높았다. 때문에 한국 노동운동은 한편으로 보수언론에게조차 “정규직, 그들만의 운동”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그와는 다른 맥락에서 아래로부터 보다 근본적인 ‘체질변화’를 요구받았다. 특히 2005년에 곪아터진 내부비리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2007년 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의 충격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은 노조활동가들의 심리적인 압박감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체질변화는 만화 주인공의 ‘변신’처럼 주문(원칙)을 외친다고 순식간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체질변화는 신진대사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진행해온 작지만 힘겨운 실천들이 축적된 결과다. 2007년 전환의 압박을 맞이하게 될 한국 노동운동은 정규직 중심에서 비정규․정규 ‘통합주체화’로, 기업별노조 체제에서 ‘산별노조 체제’로 체질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동안 제대로 준비해왔던 것일까? ‘그렇다’ 혹은 ‘아니다’ 중 한가지로 단정지어 대답하기에는 지난 활동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복잡하고 앞으로의 가능성은 너무 넓게 열려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비정규직문제와 관련된 조합원들의 ‘의식변화’ 추이를 객관화된 지표를 통해 살펴보는 게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단순하게 가늠하는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을 바꾸자. 노동조합의 실천은 비정규직문제와 관련된 조합원들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아니 더 단순하게, 비정규직문제와 관련한 조합원들의 의식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갈수록 묵직해지는 ‘차별철폐 당위성’의 무게


민주노총의 조합원의식과 관련하여 현재 1999년(1,109부 분석), 2001년(739부), 2002년(920부)에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들이 보고서로 발간되어 있다. 여기서 비정규직문제와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1999년 보고서>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을 “부당하다(52.9%)”고 여기는 비율이 “불가피하다(34.7%)”거나 “정당하다(10.0%)”, 혹은 아예 “차별이 없다(2.3%)”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의 비율을 합한 것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별’에 대한 인식은 2~3년 후 조사결과인 <2001년 보고서>와 <2002년 보고서>에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2002년 보고서>에서 “정규직원이 임금 및 근로조건이 더 좋은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에 대해 조합원들은 “매우 그렇다(11.0%)”, “그런 편이다(44.5%)”, “그렇지 않은 편이다(26.1%)”, “전혀 그렇지 않다(18.4%)”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비정규사업이 비교적 활발한 금속노조의 최근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차별과 관련하여 ‘의식변화’가 감지된다. 금속노조에서 2002년 2월에 발간된 보고서(7,445부 분석)의 경우에는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더 좋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같은 해 민주노총 의식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2006년 1월에 발간된 의식조사 보고서(4,155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매우 그렇다(46.2%)”와 “그런 편이다(45.5%)”라고 생각하는 조합원의 비율이 90%가 넘은 것이다. 설문조사는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매우 상이하긴 하지만, 이 조사에서 나타난 차별철폐 ‘당위성’에 대한 ‘90% 이상’의 수긍을 감안할 때, 2006년 민주노총 전체 차원에서 차별의 ‘부당성’에 대한 인식 역시 최소한 2002년 수준보다는 훨씬 더 높아졌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민주노총의 <2001년 보고서>와 <2002년 보고서>를 비교해보면 더욱 격심해진 당시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유추할 수 있기도 하다. 불과 1년 새에 “나도 언젠가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조합원들의 뇌리에 더 깊숙이 새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에 비해 2002년에는 이 주장에 대해 동조하는 조합원이 양적으로 크게 늘진 않았지만, 동조하는 대답의 구성에 있어서 ‘강한 긍정’의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14.2→28.9%, [표1] 참조). 물론 표본의 수가 그리 크지 않은 조사를 두고 이렇게 유추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에서 “공기업 민영화 반대(56.0→56.1%)”나 “조합활동 참여 의지(83.3→86.2%)”, “주한미군을 통일의 걸림돌이거나 이제는 불필요한 존재로 보는 견해(29.4→51.2%)” 등 다른 부문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식은 거의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노동조합활동에 유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것들과 비교할 때 [표1]에서 드러나는 비정규직과 관련한 ‘내부 긴장’의 증가는 매우 눈에 띄는 것이다.        

          

[표1] 2001년, 2002년 비정규 관련 민주노총 조합원 의견 (단위: %)

 

매우 그렇다

그런 편이다

그렇지

않은 편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2001

2002

2001

2002

2001

2002

2001

2002

감원이 필요한 경우 비정규직원을 먼저 해고

11.8

16.5

36.3

41.0

31.9

21.9

13.4

20.6

우리 회사의 정규직원과 비정규직원은 운명공동체

11.8

21.4

45.9

36.1

26.3

30.5

9.3

12.0

정규직원이 임금 및 근로조건이 더 좋은 것은 당연

9.9

11.0

41.7

44.5

33.4

26.1

8.7

18.4

비정규직원의 정규직화는 기존 정규직원의 고용 불안정 요인

5.4

9.7

32.1

31.3

42.6

37.4

13.3

21.6

비정규직원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인다면 노조활동에 문제발생

4.5

7.3

20.6

22.3

46.5

37.9

21.9

32.5

나도 언젠가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14.2

28.9

59.5

47.6

12.4

15.2

7.2

8.3

 

*출처: 『민주노총 조합원 생활실태․의식조사 보고서』(2002, 2003)에서 재구성 

 

비정규 전략조직화, 준비 되셨습니까! 


2001년에는 한국통신 계약직노조, 전국건설운송노조, 캐리어 사내하청노조 등 초기의 대표적인 비정규노조들의 파업과 투쟁이 있었고, 2002년 들어 모두 ‘패배’했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 패배는 이전에는 자주 경험하지 못했던 노동자 내부의 격렬한 갈등을 동반한 것이었다. 자발적으로 떨쳐 일어났던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의지는 봉쇄됐고, 정규직들의 연대의지는 움츠러들었다. <2002년 보고서>에 나타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의식변화는 이러한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2005년 완성차대공장에서의 비정규노조 건설투쟁과 그 와중에 벌어진 정규․비정규 노동자들의 내부갈등의 경험은 조합원들의 의식에 어떻게 반영됐을까? 2002년과 마찬가지로 불안을 자극하고 연대의지를 꺾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앞에서 인용한 2006년 1월 발간된 금속노조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합원들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먼저 해고하면 안 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67.2%가, “비정규직을 지회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노조의 힘을 키우고 회사의 분할통치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87.3%가 “매우 그렇다” 또는 “그런 편이다”라고 대답했다. 즉,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고용안정판’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비정규직 문제 대책마련과 조직화에 대해 보다 더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합의가 존재하는 것이다([표2] 참조). 

 

[표2] 2005년 금속노조 조합원의 비정규직 관련 의견

 

매우 그렇다

그런 편

아닌 편

전혀 아니다

정규 비정규직 임금 격차 없애야

46.2%

45.5%

6.6%

1.7%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먼저 해고 안돼

25.4%

41.8%

22.3%

10.4%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으로 가입시켜야

54.9%

32.4%

9.1%

3.6%

*출처: 『2006년 투쟁방침 준비를 위한 조합원 대상 설문 결과 보고서』(2006)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부분은 “비정규직 지회 조직화”와 관련하여 ‘강한 긍정’(“매우 그렇다”, 54.9%)이 약한 긍정(32.4%)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사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정규직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관심(56.5%)”이라는 민주노총 조직혁신위원회의 의식조사 결과(2005년 5월 설문실시, 175부)와도 맞물려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조금 억지를 섞어 비약하면, 조직혁신위원회의 설문조사 결과는 정규직 활동가와 조합원들도 비정규조직화에 ‘책임’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의미이고, 금속노조 조합원 의식조사 결과는 그 책임감을 털어 내기 위해 ‘실천’에 나설 마음준비가 돼 있는 조합원들이, 금속노조의 경우만 하더라도 절반은 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를 드러내는 노동자 의식변화 추이


현실을 돌아보면, 비정규직 조직화의 물꼬가 트이긴 했지만 그 물줄기는 ‘전략적 부당노동행위’의 거대한 장벽에 막혀 번번이 스러졌다. 노동자들 가슴속에 똬리를 튼 ‘고용불안’은 21세기에도 굳건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건재한 장벽과 불안심리를 조소를 띄고 손가락질하며, 거기서 노동자들의 이기심과 노동운동의 절망을 보길 권한다. 그러나 우리가 따라와 본 노동자들의 의식변화 추이는 그 피묻은 장벽에 나있는 미세하지만 ‘무수한 균열’과, 고용불안이 자리잡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응축되어 있는 ‘정의로운 에너지’의 꿈틀거림을 드러냈다. 2006년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이 추진하는 ‘비정규사업’은 그러한 에너지를 그 장벽의 틈새로 밀어 넣고 점화시킬 수 있을까?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전면적”인 문제고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모쪼록 성과가 있길 기원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