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의 무법자’에서 희망을 나르는 노동자로

노동사회

‘도로의 무법자’에서 희망을 나르는 노동자로

편집국 0 3,147 2013.05.19 02:29

 


oh_01.jpg전국의 덤프트럭은 대략 5만2천대다. 현재 국내 건설 경기의 하락으로 평균 가동률은 52% 정도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의 건설노동자들처럼 덤프운송노동자들도 건설 현장을 중심으로 전국을 부평초처럼 떠돌며 움직인다. 하루, 이틀 정도만 작업을 하고 끝나는 현장도 있고, 대형 국책사업 같은 경우에는 2, 3년 정도 머물면서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선택 아닌 선택, “신용불량자냐 실업자냐” 

이렇게 작업기간의 편차가 다양한 만큼, 고용이나 업무의 형태도 다양하다. 여러 건설 현장을 다양하게 이동하는 그룹도 있고, 석산이나 골재장을 중심으로 골재 운송업무만 전담하는 그룹도 있다. 그 외에 폐기물 수집운반, 도로포장에 사용되는 아스콘 운반 등의 일을 하기도 한다. 또한 15톤, 25톤 차종에 따른 고용형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고용형태의 구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화물의 경우 제조업 생산기지나 항만 등을 중심으로, 레미콘의 경우 레미콘 생산공장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덤프트럭은 셀 수조차 없는 전국의 수만 개 현장 중심으로 움직이다보니 기본적인 현황 파악마저 쉽지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일이 현실화됐다. 기름값은 10년 전에 비해 5배 이상 올랐는데 운반비는 거꾸로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은 시장경제 논리만을 앞세우고 자신들의 정책 오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한달 일하고 나면 통장에 입금되는 금액이 600만원에서 700만원 정도다. 얼핏 보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평균 잡아 기름값 60% 정도를 빼고, 타이어와 차량 수리비 및 운영비 등을 제하고 나면 오히려 적자다(참고로 25톤 트럭은 타이어가 12개가 움직인다, 타이어 한 개 비용이 46만원 정도다, 1년 평균 2개 정도 소모가 된다). 

건설교통부 자료에 의하면 덤프트럭의 경우 월 94만원 적자를 보고 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빚더미에 쌓여 신용불량자로 전락을 하고, 적자라고 운행을 포기하면 실업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결국 덤프노동자들은 운행을 포기하더라도 차량 할부금, 세금 등을 꼬박꼬박 내야하기 때문에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차라리 죽여라! 총파업이다! 

덤프운송노동자 4명 중 한명이 신용불량자다. 더 이상 당하고만 살수는 없다.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 수는 없다. 벼랑 끝에 내몰린 덤프운송노동자들의 선택의 여지는 더 이상 없었다. 2005년 5월1일, 마침내 덤프운송노동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막상 ‘총파업’에 돌입하긴 했지만 사실 모든 것이 모험이었다. 당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6개 지부 1천5백여명의 조합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조직체계 및 간부역량, 조합원 교육상태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야말로 “차라리 죽여라”라는 구호만큼 절박함 하나로 투쟁에 돌입했다. 

△ 도로법 개정(과적 관련), △ 유가보조 지급, △ 운반비 현실화 등 우리의 3대 요구안을 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준비는 부족했고 어려움은 산재해 있었다. 하지만 파업 첫날 수도권에서 1만여대 이상의 덤프트럭이 운행을 멈췄다. 지하철역공사, 도로공사, 터널공사, 수도권 신도시 현장 등 대부분의 건설현장이 멈춰 섰다.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간부 및 열성조합원들이 진행한 한달여간의 선전전이 효과를 보인 셈이다. 또한 덤프운송노동자들의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사례이기도 했다. ‘해볼 테면 해봐라’라며 수수방관하던 권력과 자본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대정부 교섭이 시작이 됐고 합의가 이뤄졌다.

2차, 3차 파업을 유도한 정부의 합의 불이행

그러나 1차 파업이 끝나고 정부는 덤프연대와 합의한 사항에 대해서 그야말로 입을 싹 닦아 버렸다. 도로법 개정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고, 유가보조금 문제는 정부 마음대로 발표해버렸다. 정부와 국회에 덤프노동자들의 생존 문제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 일수밖에 없었다. ‘진리’는 간단했다. ‘덤프노동자들의 문제는 덤프노동자 스스로가 풀어낸다.’ 

법은 썩어빠진 국회에서 통과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별 노동자가 얼마나 투쟁하느냐에 따라서 법개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1차 파업과 더불어 조직체계를 정비하고 짧은 시간이나마 교육을 통해서 ‘3대 요구사항’도 변했다. '운반비 현실화' 대신에 '노동3권 쟁취'가 3대 요구안에 포함이 되었다. 스스로 노동자가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라는 것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1차 파업은 수도권 중심의 파업이었지만 2차 파업은 그야말로 전국적인 총파업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전국의 광역시마다 지부가 설치되었다. 1차 파업 때 1천5백여명이었던 조합원은 4천여명으로 확대되었다. 마침내 10월13일, 조합원들의 합법과 비합법을 가리지 않는 헌신적인 투쟁을 통해 전국에서 덤프트럭 4만대 이상이 운행을 멈추었다. 당황한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까지 열어가며 도로법(과적악법)개정을 약속했다. 또한 덤프노동자들의 염원인 수급조절문제를 포함하여 여러 현안이 거론이 되었다.

그러나 당정협의를 통해 도로법 연내 개정을 공언해 왔던 정부는 자본의 로비에 밀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막상 법개정 논의가 시작이 되자 여당은 위원회 참석조차 하지 않고 정족수 미달로 몰고 가기 시작했다. 보수 야당은 도로법개정 불가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다시 총파업에 돌입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덤프연대와 마찬가지로 도로법 개정을 정부와 합의했던 화물연대와 처음으로 낮은 수위이지만 공동 투쟁이 논의되었다. 결론은 전국 광역시도당 점거 농성이었다, 마침내 11월30일 열린우리당 11곳, 한나라당 3곳에서 1백여명의 화물연대·덤프연대 동지들이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도로법개정에 공개적인 반대를 천명한 한나라당 중앙당사 앞에서는 긴급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하지만 자본의 로비는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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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프연대와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의 열린우리당 지역 당사 점거 현장 - 출처 : 덤프연대 ]

급기야 12월4일 24시, ‘덤프트럭 국회 집중투쟁 계획’이 각 지부로 전달되었다. 그 내용은 “전체 조합원은 경찰의 폭력진압에 맞설 준비를 하고 전원 서울 집중투쟁을 전개할 것” 등의 투쟁본부 결정사항이었다. 동이 트고, 150여대의 덤프트럭이 여의도에 집결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 조합원들은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가며 격렬히 투쟁했다.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에 물대포를 맞은 옷은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머리카락이 얼어서 부러졌다. 

그 와중에 마침내 국회 법사위 소위에서 도로법 개정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집회 장소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지난 1년간의 투쟁 성과로 12월8일 도로법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도로의 무법자’에서 희망을 나르는 노동자로

덤프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이 ‘과적’, ‘과속의 주범’, ‘도로의 무법자’라는 이미지다. 사실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덤프노동자들 눈앞에는 과적을 거부하려 해도 구조적인 모순으로 할 수 없는 상황, 제대로 신호 지키며 운행을 하다가는 입에 풀칠도 할 수 없는 현실들이 놓여있다. 무리한 과적과 무리한 운행으로 한순간 아차하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게 덤프노동자들의 현실이다. 한 손에 김밥 들고 한손에 운전대 잡고 운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야만적인 현실 앞에서, 덤프운송노동자들이 이제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뭉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스스로가 노동자이어야만 하는지, 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한발 한발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서투르다. 그렇지만 졸린 눈 비벼가며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교육을 받는 늙은 덤프운송노동자가 많아지고 있다. 본인 부담으로 기름값, 휴대폰비용을 부담하면서 활동하는 이름 없는 중간 간부들이 늘어 가고 있다. 부족하고 서투르지만 희망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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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프연대 3대 요구 사항

과적 원인 제공자 처벌이 가능하도록 도로법 개정

건설자본은 차량과적을 통해 연간 8,000억원의 불법 이익을 챙긴다. 정부는 과적으로 인한 도로·교량 파손으로 연간 2조7천억원의 유지·보수비용을 지출한다. 대부분의 건설현장은 부당이득을 목적으로 덤프운송노동자들에게 과적을 강요한다. 과적 강요에 항의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현장에서 당장 쫓겨난다. 건설자본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막무가내로 과적을 강요한다. 덤프운송노동자들이 과적 때문에 받는 피해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과적으로 인해 차량에 무리가 가서 운영, 수리비가 과다하게 지출되는 것은 물론, 유류소비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평균 과적 전과 4.8범’이라는 사실에서 드러나듯 대부분의 덤프운송노동자들이 형사범으로 처벌을 받고 벌금도 수백만원씩 물어야만 하는 형편이다. 도로법은 과적으로 인해 막대한 부당이득을 보는 자들은 처벌하지 않고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과적을 해야만 하는 덤프노동자들만 처벌을 해왔던 악법이다.

덤프노동자에게 직접 유가보조금 지급

정부는 그동안 유류세를 계속해서 인상해왔다. 1999년도 유류세를 인상하면서 내건 사유는 공적기금 재원 마련이었다. IMF사태 이후 재벌총수의 전횡과 비리로 인한 기업 구조조정을 하면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여했다. 비리 재벌집단을 살리기 위해 가난한 운송노동자들에게 세금을 걷고 나섰다. 이제는 정부가 죽어가는 덤프노동자 및 운송노동자들에게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화물운송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인식하고 화물운송노동자들에게 유가보조를 지급했다. 따라서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더욱더 열악한 건설 관련 운송노동자들에게도 유가보조를 지급해야 할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

과거에 덤프운송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자본은 자신들의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정규직에서 특수고용노동자로 전환했다. 고용형태가 변했어도 작업방식이나 사용자들의 지시 사항은 변한 것이 전혀 없다.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이다”라고 해놓고 해고와 임금체불 등을 자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덤프노동자의 분노는 우려의 수준을 뛰어 넘어 폭발 직전에 와 있다. 임금을 받지 못해도, 현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도 어디가서 하소연조차 할 수가 없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최소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루 빨리 노동3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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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