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파동과 보수언론의 '인위적 지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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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파동과 보수언론의 '인위적 지린내'

편집국 0 3,578 2013.05.19 02:26

 


min_01.jpg지난 11월22일 MBC <PD수첩>에서 ‘황우석 신화와 난자의혹’을 방영한 이후 한달여만에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은 허위였음이 드러났다. 결과적인 얘기지만 <PD수첩>이 의혹을 제기했을 때 다른 언론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규명해 내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소모적 논쟁으로 인한 비용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한달 동안 언론을 통해 중계된 황우석 교수 관련 뉴스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가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출처 : 오마이뉴스 ]

연구윤리와 취재윤리에 대한 이중잣대

우선적으로 지적해야 할 문제는 이중잣대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 11월7일 주요 신문과 방송은 국내에도 조직적인 난자매매 사건이 발생했다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신문들과 대다수 방송사들은 국내에서도 여성의 난자를 사고 파는 행위가 시행되고 있다며, “돈이면 뭐든 … 난자까지 판 여대생”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상식이하의 사람으로 치부했다. 

‘이랬던 언론’이 MBC <PD수첩>이 황 교수 연구팀의 난자매매 의혹을 제기하자 판이하게 다른 태도를 보인다. 연구원의 난자가 사용됐다는 사실에 대해 “황 교수는 사전에 몰랐다”는 점을 강조하던 신문들은 11월24일 황 교수가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윤리논쟁 ‘불끄기’에 돌입한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11월24일자 <황 교수 “연구실 가기도 싫다”지만 … 시민격려는 쇄도>에서 윤리문제 일방 매도에 황 교수팀이 허탈해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다음날인 25일자 사설에서도 황 교수를 두둔하는 등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이 같은 언론의 이중잣대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황우석 지키기’ 거센 바람>(11월26일자 동아일보 1면), <눈물 씻고 … 다시 연구실로>(같은 날 조선일보 4면), <“난자기증 되레 늘어”>(중앙일보 2면) 등 황 교수에 대한 온정적 시각의 보도가 계속됐다. 같은 윤리위반이라 해도 황우석 교수 연구와 연관된 것이라면 국익과 성스러운 행위로 칭송하는 언론의 이중잣대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언론의 이중성은 연구윤리의 이중잣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황 교수의 연구윤리 위반에 대해 온정적인 시각을 보였던 이들 언론은 <PD수첩>팀의 취재윤리 위반에 대해서는 현미경과도 같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PD저널리즘에 대한 원색적인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조·중·동 등 보수신문은 “황 교수 죽이러 왔다” 등 선정적인 표현을 제목으로 뽑으면서 <PD수첩> 제작진을 ‘범죄자’로 몰아갔다. ‘전문가’와 ‘누리꾼’을 등에 업고 사법처리를 부추기는 듯한 보도도 대거 양산됐다. <“PD수첩팀 협박죄·명예훼손죄 가능”>(문화일보 5일자), <법조계 “협박죄·명예훼손죄 해당”>(중앙 5일자), <PD수첩팀 협박취재 “고소·고발 있으면 수사”>(중앙 6일자), <누리꾼 “도덕성 잃은 보도…법적 책임 물어야”>(동아 5일자)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PD수첩>의 취재윤리 위반과는 별개로 남겨진 의혹이나 과제를 지적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한겨레가 12월6일자 <과잉취재 ‘흙탕물’ 진실보도 ‘울상’>에서 “이번 일로 언론보도가 위축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언론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한국일보가 12월5일자 사설에서 “국내 과학계에 ‘윤리’ 경종이 울린 것은 제작진의 공”이라고 평가한 것 외에는 <PD수첩>에 대한 평가가 매우 인색했다. 난자매매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던 언론이 취재윤리에 대해서도 철저히 이중잣대를 적용한 것이다. 

입 씻는 속도는 역시 조선일보가 ‘최고’

언론의 이중잣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16일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기자회견 이후, 그동안 황 교수를 옹호하던 언론들은 ‘황우석 죽이기’로 갑자기 태도를 돌변했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옹호해온 태도에 대한 입장이나 사과문 하나 없이 또 다시 여론에 편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빠른 변화를 보인 건 ‘역시’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12월14일자부터 지면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날 양상훈 정치부장의 칼럼이다. 그는 ‘정치꾼’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황 교수를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양 부장은 <황우석은 과학자여야 합니다>라는 이 칼럼에서 “배아줄기세포가 과장됐느니, 허위니 하는 논란의 진실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지만 문제가 없는데도 일이 이렇게 된 것이라면 교수님의 그런 처신도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면서 “처음 네이처지가 연구원 난자제공 의혹을 제기했을 때 교수님이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하신 것이 거짓이었던 것으로 판명됐을 때,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면역이 돼 있는 저도 놀랐다”고 언급했다. 그는 “거짓과 과학은 양립할 수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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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2월 13일 한국언론재단 열린 '황우석 신드롬과 PD수첩, 그리고 언론보도의 문제' 토론회. 토론자들은 "언론이 황우석 신드롬의 강력한 공범" 이라고 주장했다.  - 출처: 프레시안 ]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동안의 보도태도를 반성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향신문이 12월17일자 사설에서 “진실 추구라는 언론의 본령에 우리 스스로는 과연 충실하고 철저했는가라는 자문(自問) 앞에서는 적이 부끄럽다”고 썼고, 헤럴드경제가 12월19일 편집국장 명의로 반성문을 냈다. 이보다 앞선 17일 조선일보도 ‘언론의 반성적 연구’를 언급했지만 ‘자기반성’이라기보다는 제3자 입장에서 비판하는 정도에 그쳤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치켜올린 황우석 보도는 애써 잊은 채 다시 ‘황우석 죽이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노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황우석 입만 바라봤던 ‘개혁언론’

이번 황우석 파문 보도는 개혁과 보수를 막론하고 비슷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른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항상 “이념과 코드를 내세우는 편가르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황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허위로 판명됐을 때는 일제히 방향을 전환하는 등 자신들의 논조를 사과 한마디 없이 뒤집었다. 하지만 과학보도 자체의 문제점 면에서는 이른바 개혁적이라고 평가받는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처럼 주요 국면마다 ‘물타기’를 하거나 입맛에 맞는 ‘권위지’ 인용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11월26일 한겨레가 1면에 게재한 <‘일그러진 애국주의’ 번진다>를 제외하고 개혁신문다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엄밀한 측면에서 보면 한겨레도 최근 들어서야 황 교수 연구성과와 관련된 의혹을 집중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황우석-노성일 공방 중계’에 그쳤던 지난 17일 한겨레는 <줄기세포 없이 논문 썼다>로 1면 제목을 뽑으면서 각을 세웠고 <황 교수 “5개 배양중” 원천기술 증거론 미흡>에서 황 교수 주장의 허점을 짚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한국일보의 ‘균형 잡힌’ 보도가 주목을 끌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른 신문들이 “파라포름알데히드를 사용한 MBC <PD수첩> DNA 검사 자체가 오류일 수 있다”는 서울대 강성근 교수의 말을 그대로 인용 보도할 때, 한국일보는 12월6일자에서 파라포름알데히드를 사용하면 DNA가 엉겨붙어 추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는 전문가 의견을 인용 보도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사이언스가 황 교수팀에 DNA 지문에 대한 해명도 요청했다는 기사도 한국일보가 12월10일자에서 단독 보도한 내용이다. 

이젠 ‘황우석 죽이기’와 ‘청와대 시비’로… 재밌냐? 

이중잣대와 사과 없는 보도태도를 보이던 다수 언론은 최근 황 교수 파문을 정치공세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인다. 파문 초기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가 황 교수를 지원하지 않는다며 비판에 열을 올린 조선일보는 황 교수 논문과 연구성과가 허위로 드러나게 되자 청와대와 정부로 타깃을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주장해왔던 논조를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돌변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7일자 <황우석 교수 ‘옆’에 정부는 없었다>(2면)라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정부가 뒷짐만 진 채 의혹만 부풀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한 뒤 사설에서 “정권의 비위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하는 언론사와 접촉하는 공무원, 글을 쓰는 공직자에 대해선 경위서를 받고 공직을 떠나라고 협박까지 하던 그 열성이 왜 MBC PD수첩 팀이 협박취재에 나선 것을 보면서 갑자기 사라져 버렸는가”(사설 <“황 교수 돕겠다”던 청와대, PD수첩 협박 땐 뭐했나>)라며 정부의 지원 부재를 비판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황 교수 논문진위 논란이 불거지고 결국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허위로 판명되는 등 불리하게 돌아가자 조선은 입장을 바꿨다. 사건의 모든 책임을 청와대에 돌리는 듯한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1차 책임이 물론 청와대와 정부에 있지만 언론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현재 조선일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성찰과 자기반성이 아닐까. 비단 조선일보만이 아니라 한국의 과학기자들을 비롯한 언론계 전체에게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황우석 교수도 언론이 만들어 낸 희생양이지 않을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