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동조합 재정자립인가

노동사회

왜, 노동조합 재정자립인가

편집국 0 3,504 2013.05.19 02:24

연구소로부터 재정자립에 관한 원고청탁을 받는 순간, 6·29 선언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사회개혁 요구가 치열했던 시기가 잠시 떠올랐다. 당시에는 정치탄압으로 숨죽였던 노동운동이 분출하기 시작했고, 절정기에 접어들면서 노조 수는 급증하여 2~3년 만에 8천개 이상 증가하였다. 그 후 매년 춘투에는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 요구가 분출했고, 급기야 1998년에는 IMF라는 최대의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국가의 온 분야가 뒤틀렸다. 특히 경제에 미친 영향은 심각했는데, 금융그룹과 재벌공룡을 포함하여 2만5천개 이상의 기업체가 붕괴되고, 금리는 30%에 육박하는 등의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이후 고용불안으로 전체 경제인구의 20%에 해당하는 4백만명 이상이 실업상태로 길거리에 내몰렸고, 비정규직의 폭발적인 증가와 기간산업의 해외매각, 국부유출 등 산업의 핵심역량이 축소되면서 정치·경제·사회불안이 가중되었고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현상까지 두드러졌다.

자연히 노동자들의 불만이 표출했고 사회개혁 요구가 구체화되면서 정권과 재벌에 치명적인 투쟁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물론 이를 주도한 세력은 노동조합, 시민사회, 재야단체였고 특히 노동운동을 주도한 것은 대기업노조와 노동조합 전임자들이었다.

역사를 상기하면서…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정부나 재벌 자본들로서는 노조의 전임자를 축소시키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예상대로 1996년에는 노동법 개악을 시도하더니, 이듬해 3월에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서 1999년 신규노조부터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존조직에 한해 2002년부터 금지하고 사용자가 이를 어기면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하고 2천만원의 벌금만 내도록 명문화했다. 물론 노조가 거세게 저항함으로써 이 내용은 2007년부터 노사자율로 정하자는 식으로 정리가 되었지만, 노동조합의 사업장 규모별 조직률이 지금과 같은 상태(조직된 노조 중 300인 미만 사업장이 85%에 달한다)라면, 2007년부터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간판’을 내려야 할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나라 노조가 기업별 위주로 조직되어 있고, 설사 산업별이나 전국단위로 조직되어 있더라도 일부 대기업이나 재정이 다소 넉넉한 지역·산업별 연맹을 제외하고는 거의 영세한 노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재정자립’의 의미를 오로지 ‘자본가’적으로만 해석하는 편견에 빠져 있어, 95%이상의 조직이 ‘조합비’에만 의존하여 활동하는 빈약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재정자립에 대한 대책을 노조가 수립하지 못한다면, 향후 노조활동이 전면 위축될 수 있고 재정이 취약한 노조나 지역·산업별 연맹이 총체적인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원칙과 대의를 지키면서도 시대적 상황에 맞는 방안, 대내외적인 자주성과 민주성, 책임성, 효율성, 투명성을 전제로 한 자립 방안을 조속히 모색해야 한다. 

노동조합 전임자 실태 및 임금지급 현황

1989년도에는 약 8천여개에 달했던 노동조합이 점차 줄어들어 현재는 약6천여개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가운데 12%(1백 5십만명)에 해당되며, 노동조합 전임자(노동계에서는 약 1만여명 추산)에 대한 임금은 연간 약 2천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또한 신규노조에 대한 전임자의 임금지급 금지는 1998년부터 적용되고 있어 사실상의 조직 확대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이전에도 노사 간에 노동조합 전임자의 급여지급에 대한 다툼이 치열하였다. 노동조합에서는, 기업별 노동조합이 압도적이고 2002년 기준으로 노동조합의 평균 조합원수가 1개 노조 당 약 260명에 지나지 않고, 300인 미만의 노동조합이 전체 노조의 86.6%, 특히 100인 미만의 노조가 62.2%에 이르고 있는데다가, 이들 노조의 월평균 조합재정이 월 5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노조전임자의 임금을 조합재정에서 부담하라는 것은 사실상 노동운동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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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사용자측에서는 노조전임자의 급여는 노조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고 국제적으로도 보편화된 관행이라면서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 관행은 비록 노사합의에 의한 것이지만 노조의 자주성·독립성에 배치되는 것으로 반드시 개정 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 노동조합 가운데 재정자립기금을 적립하도록 단체협약에 명문화하고 있는 경우는 전체 대상 중에서 1.4%밖에 안 되어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노조 재정은 노동복지 운동

노조의 재정자립은 돈을 벌고 자본을 축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노동자 공동체, 나아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자 방법으로서 추구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계 일부에서는 단위노조의 재정자립을 모색함에 있어 무분별하게 이익이 날법한 사업을 찾아서 하면 된다는 식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접근방법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당면해 있는 재정문제는 영리단체가 아닌 대부분 비영리단체의 재정문제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노조의 재정문제는 노조의 대의와 원칙에 기반한 문제이므로 이 원칙에 따라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노조와 노동운동은 ‘개인이 아닌 우리’의 공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존재의 이유가 있으므로 노조의 재정문제도 공동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재정은 공동분담이라는 공평성과 경쟁보다는 협력과 연대, 수익금의 환원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한편으로 생산, 유통, 소비과정에서 노조 역시 다른 자본주의적인 대상들과 경쟁하면서 수익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경쟁력 있는 사업체 운영과 수익을 위한 효율성을 무시할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향후 노조의 재정문제는 사용자로부터 일체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고 조합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리될 것이다. 따라서 바야흐로 재정사업을 통해 노조와 노조전임자에 대해 지속적이고 강력한 지원을 하여야 하고, 자주적인 입장에서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구체화하며, 재정자립에 대한 의식을 민주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재정 문제는 자주적인 노동운동의 수단으로 이용하되,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책임성, 투명성, 효율성을 철저하게 견지해 나가야 한다. 이는 향후 노동운동의 방향이 개인적인 사명이나 헌신적인 정의감과 투쟁력에 사로잡혀 조합대중을 이끌었던 과거의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는 시대변화에 따라 노동운동의 이념을 재정립하고, 노조 재정의 방향을 노동복지운동과 연계해야 한다.

조직과 재정의 통합에 나서야.

강조하지만 노동운동의 조직적 측면과 법적 측면에서 변하지 않는 기본 원칙이 있다면, 조합원 대중을 중심에 두고 모든 문제를 생각해야 하고 본질상 사용자에게 지배받지 않고 대항하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조가 본래의 기능을 다하려면 조합원 숫자가 많아야 하고 조합비를 비롯한 재정 상황이 양호해야 한다.

사용자는 노조전임자 임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노조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회사가 임금을 지급한다는 것이 명분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전임자 임금을 주지 않을 경우 노조 재정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노조가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물론 사용자의 이런 태도는 전근대적인 사고로서 실제 그렇게 된다면 기업들에게 일시적인 승리감을 안겨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노사관계가 불안정해져 사용자에게도 득이 없는 짓이다.

따라서 이런 의도에 대처하는 일차적인 방법은 대규모의 조합원수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기업별로 흩어져 있는 조합원을 현재보다 더 정교하게 지역, 업종, 산업별로 집결시키는 것이다. 산업별, 업종별, 지역별 조직으로 전환하게 되면 규모라는 양과 노조의 집합체라는 질이 변화되어 대처 가능성이 고도로 높아진다. 재정사업도 마찬가지다. 자산, 수익, 조합비의 규모가 비교할 수 없게 거대화되고 정책적 대안 제시와 교섭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어 노조의 재정자립 토대를 확충시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산업별 조직에서 출자한 별도 법인체가 수익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전임자의 임금은 물론이고 사무실, 비품집기, 출장비까지 회사로부터 지급받아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혀 있다. 물론 경비 원조를 받더라도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해칠 우려가 없다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용자로부터 받은 원조를 당연시한 채 이를 타개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자주성의 관점에서 다양한 오해가 발생 할 수 있는 소지가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노동조직과 재정통합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사업장 노조와(중앙, 산별, 지역 포함) 노동운동의 기득권을 갖고 있는 전임자들이 ‘재정의 대의와 원칙, 그리고 자주성을 지키고, 어렵고 힘든 자의 편에 서고자 하는 노동운동의 정신을 복원, 지원, 발전시킨다’라는 대명제를 세워야 한다. 

재정자립의 효과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은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과 같은 중앙단위의 총연합단체와 업종이나 지역단체와 같은 산업별 연맹 등으로 조직되어 있으나, 이들은 기업단위 개별 노조의 ‘형식적’ 연합단체에 불과하여 강력한 통제권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중앙과 상급단체의 재정이 거의 단위 노동조합의 조합비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자체적으로 재정자립을 도모하지 못하는 노동조합들은 생존을 위해 언젠가는 통합과 연대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갖고 있는 조직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재정이 취약한 노동조합들이 조직과 예산을 통합함으로써 산업별노조 건설을 앞당길 수 있고, 노동운동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질적·양적인 발전의 가능성과 노조재정 자립에 관한 민주적 경영체계를 확립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재정자립은 그 자체가 사용자가 취득하는 법인격의 지위를 확보한 것이므로 노사관계가 실질적으로 대등한 위치를 점유한 것이기 때문에 법인 상호 간에 신뢰를 쌓고 대립은 크게 줄여 나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한 근로의욕 증가를 통해 불만을 해소할 수 있으며, 노사 쌍방의 합리적인 노력으로 노조의 재정·복지 자립을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고용안정과 경영참여에 대한 이해를 넓혀 나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재정지출과 통합을 합리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고, 노동조합 상호 간의 조직 강화와 전임자 임금 해결에도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이밖에도 세계화 상황에서 매우 어려워진 노조재정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며, 향후 조합비에만 의존해 왔던 안일한 노조운영 태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실천했다.

필자가 속한 노조는 현재 조합원이 약 5백여명(전임자 5명/재정복지 담당자 포함)이며, 노조를 설립한 지는 17년이 흘렀다. 물론 우리 사례가 노동조합 전체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으나 모쪼록 참고가 되었으면 마음에 적어 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노조 초창기에 종자 자본을 모으기 위해 아래처럼 결의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관점을 관성적으로 ‘요구하고 타결하는’ 구태의연한 노동운동의 방식이 아닌 전략적인 노동복지운동으로 전환하는 신개념의 노조활동을 도입하기로 했다. 1998년 당시 재정자립을 위해 결의했던 중요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를 통해 단순한 전임자 임금 지급을 위한 단기적인 계획이 아닌 실질적이고 노조 장래와 발전을 위한 항구적인 계획을 치밀하게 실천해 나갔다.

① 향후 3년 동안 5억을 모은다. 
② ‘Agency-Shop(대리기관-숍 제도: 단체협약의 혜택을 받는 모든 비조합원의 조합비를 공제하는 제도로서 조합원의 이탈을 막는 방법이기도 하다)제도’를 도입한다. 
③ 재정자립을 위해 2006년 말까지 상여금에서 조합비 1.2%를 공제한다. 
④ 각종 노동복지제도(학자금 지원, 결혼 및 주택자금 장기저리대출, 질병치료비 한도 이상 무상지원, 동우회 활동 강화, 건강프로그램 개발, 노동복지 용역사업 전개, 미니은행 운영, 대출·대여사업, 무상콘도미니엄 운영 등)를 도입한다. 
⑤ 노동복지위원회(8명/자주복지를 위한 재정투자·운영 수립)를 운영한다 
⑥ 회사보험(자동차, 근재, 건설공사, 화재 등) 유치를 위해 보험대리점을 운영한다. 
⑦ 자주복지 실현을 위해 노동복지센터를 운영한다. 
⑧ 휴양소를 운영한다. 
⑨ 사회 연대를 위해 불우단체 및 이웃돕기, 노동단체를 적극 지원한다. 
⑩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고 제로베이스식 회계관리를 지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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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위기 극복의 한 축

노조의 재정자립은 대단히 힘든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노조로서는 갑작스런 외부환경 변화에 지혜롭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노조의 재정자립을 통해 노조 활동을 자주적으로 확보하는 계기로 삼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정자립 방안의 기본적인 전제는 노동조합 활동의 자주성 확보와 효율성 구현이다. 노조의 자주성 확보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는 재정자립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노조활동의 자주성을 담보하지 못해 어용시비에 휘말리거나 다른 방해요인으로 작용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노조활동의 효율성 구현은 노조 내의 조직과 운영을 규모 있게 하자는 것이다. 

방만한 운영, 무계획적인 활동 등 기존의 노조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과감하게 개혁하여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을 갖춘 노조 활동가를 중심으로 운영하여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야 한다. 다소 엉뚱한 발상일지도 모르겠으나 더 욕심을 낸다면, 경색되어 있는 노사정 관계를 풀기 위해서 현재의 노사정위원회를 노동조합 재정복지와 관련한 의제를 담은 실질적인 내용으로 복원하여 기구의 위상을 한층 높이고, 노사정 간에 통 큰 대화를 통해 현재의 난제들을 위에서부터 풀어가는 극적인 반전을 기대해 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물론 비정규법안이라는 큰 난제 앞에서 무엇이 소용 있겠냐는 생각도 들지만.

결론적으로 현재의 기업별 형태의 타성에 젖은 노동조합이 조직 이기주의나 현실주의를 박차고, 2006년 이후의 노동운동을 산업별로 전환시키면서 재정의 자립을 완성하고 이를 토대로 자주적인 노동운동과 민주성을 구축할 수 있느냐가 조합원의 권익은 물론 노동운동 발전의 원동력을 판가름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는 정말 현실과 조직 이기주의에 안주하는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최소한 기업별이든 산업별이든 조직의 합병이나 확대를 통해 몰락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전체 노동조합을 재정자립을 통해 일으켜 세우고, 분열된 노동운동 세력의 통일된 위상과 세계화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삶의 질과 사회정의를 부활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