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여유로운 미소를 되찾는 한해를 기원하며

노동사회

노동자가 여유로운 미소를 되찾는 한해를 기원하며

편집국 0 2,609 2013.05.19 02:23

우리의 세기는 정의와 평등이라는 이상의 승리가 언제나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유를 어떻게든 유지한다면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전혀 절망할 필요가 없다.

이탈리아 역사가 레오 발리아니(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중에서


새해가 밝았다. 주인을 맞는 강아지의 반가운 몸짓처럼 포근한 마음으로 해맞이를 하고 싶지만 현실은 너무도 춥다.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하지만, 무지막지한 폭설의 피해가 악몽이 되어 또 다시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부글부글 나라 안팎이 끓고 있지만 전혀 뜨겁지가 않고 하룻밤 사이에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사건들로 전율만 더해간다. 사건에 배인 선정성이 사람들의 뇌리를 휘저어 혼란의 극치를 경험하게 하고, 극단의 대립과 갈등이 곳곳에서 분출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살다보면 악다구니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다. 평화롭고 고르게 살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과 효율성의 추구 끝에 주어지는 차별과 불평등이 사람들을 갈라놓고 싸우게 만들기 때문이다. 올해는 잠시라도 차디찬 낙망을 털고 따뜻한 희망을 듬뿍 가졌으면 좋으련만, 또 다시 꿈으로 그치고 말 것인가.

끊임없이 다가오는 미국의 전쟁 위협 

지난해 12월 들어 미국 권력자들의 입에서 북한에 대해 소름끼치도록 위협적인 발언이 튀어나왔다. 알렉산더 브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관훈클럽 초청간담회에서 북한을 '범죄정권(criminal regime)'이라고 한 데 이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한미정책포럼에서는 "6자회담의 진전과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문제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경협속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004년 미국의회가 북한인권법을 확정하고 2005년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된 것과 관련지어 보면 결코 심상한 정치적 발언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단순히 남북한의 빠른 화해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지나치게 직접적이다. 범죄정권이라는 규정은 '폭정의 전초기지'와 같은 맥락이면서도 훨씬 자극적이다.

여기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지난해 12월12일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총선에 대한 연설'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세계의 (다른) 정권들의 교체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은 대담하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했고 우리의 화폐를 위조하고 있고 자기 국민들을 굶주려 죽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제 나라 이익 챙기기에 따라 끊임없이 제국주의 살육전을 주도하면서, 한편으로는 북한의 인권을 말하는 이중성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 정권은 이를 넘어서서 한 나라 정권 타도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 권력자들의 잇따른 발언들은 이라크전쟁 반대여론의 격화와 인기하락에 초조해진 부시 정권이 상황타개를 위해 '긴장조성용'으로 내놓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부시의 발언은 이라크전쟁이 교착상태에 들어가고 새로운 전쟁터를 찾아 헤매는 무기상인들의 탐욕스러운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과 결부되어, '한반도 불장난'에 대한 우려와 위기감을 한정없이 키우고 있다. 

이러한 미국 부시 정권의 노림수는 한국 안팎의 보수세력의 발호로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불안감과 조바심을 부채질할 것이다. 수구 냉전세력들은 미국의 전략대로 북한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서슴없이 주장한다. '새로운 보수'라고 자처하는 세력들은 미국의 전쟁위협을 무원칙한 남북협력정책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여 개방과 체제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 이래 남북한 화해를 저지하고 정부를 압박하여 평화세력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아 왔고, 어느 정도 그 세를 결집시켜냈다. 미국 부시 정권의 대북 강경정책이 현실화하거나 또는 그럴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게 되면,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이념공세를 펼침으로써 민심을 혼란과 불안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할 것이다. 

물론 매사가 미국과 그 추종자들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부시의 위협에도 남북장관급회담이 예정대로 제주도에서 열려 남북경협에 대한 양측의 약속을 재확인한 것도 그 한 예다. 우리나라 민중들의 역량은 미국의 전쟁놀음에 쉽게 놀아날 만큼 낮은 수준이 아니다. 또한 전쟁의 참상을 너무도 처절하게 실감한,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민중들도 미국의 엉뚱한 불장난을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년 9월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쟁 이후 최대규모의 반전시위가 벌어졌고 11월에는 아르헨티나에서 반부시 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어 부시가 황망히 도망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인류의 전쟁 반대 염원은 언제나 '국가 이익'을 명분으로 하는 국제 전쟁광들의 도발 앞에 무력해지기 쉽다는 게 역사의 경험이고 보면 불안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남한 민중세력의 역량확대와 세계 평화세력과의 연대 강화, 그리고 북한의 정확한 대응과 남북 간 화해 협력을 더욱 키워 가는 것이 미국의 위협에 대비하는 필요조건이 될 것이다. 

차별과 불평등 속에 강조되는 법과 원칙 

역대 정권들은 정책수행과정에서 예외없이 법과 원칙의 적용을 강조했다. 독재정권은 불의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자유와 인권의 포기를 강요하고 민주화이행기의 정권들은 독재정권이 물러갔고 민주화가 되었다는 이유로 더욱 법과 질서의 준수를 요구한다. 이른바 법치주의가 서야만 공평하고 안정된 민주주의 사회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지금도 유효한 판결의 원리로 원용되고 있고, 그로부터 야기된 사회적 갈등과 불신은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만연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얼마 전 사법부는 대한상공회의소 수장이자 두산중공업 회장인 박용성 등의 불법자금 유용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하여 덮어두었다. '도청사건 엑스파일'에서 폭로된 삼성재벌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과 관련하여서도, 검찰은 법률상 횡령과 뇌물공여에 의한 중죄가 분명함에도 무혐의 처분하였다. 국내 최대 재벌 총수 이건희 회장은 소환조사 한번 없이 미국에서 요양 중이시고 홍석현 전 주미대사,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도 형식상의 조사로 마무리하였다. 여기에는 '시효만료'라는 법률상 요건도 있었지만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참작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 대신에 도청테이프 내용을 공개 보도한 문화방송 기자와 녹취록 전문을 게재한 월간지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가히 삼성공화국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케 하면서 삼성재벌에 대한 거부감이나 반기업정서의 원인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노동자, 농민에게는 어떤가? 얼마 전 쌀협상 국회비준저지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했던 전용덕이라는 농민과 홍덕표라는 소작인이 경찰에 맞아 사망하였다. 마치 5공시대로 돌아간 듯 한 참상이었다. 다른 상품수출을 위해 쌀시장 개방은 불가피한 것이고 쌀협상 비준을 지연시키는 것은 나라망치는 짓이라고 아우성치던 사람들에게, 농민 한 두 사람 죽음이야 무슨 대수이겠는가? 경찰은 감추기 바쁘고 정부 수뇌부들은 경찰의 소행이 드러나서야 유감을 표명하는 전래의 부정직한 작태를 되풀이하였다. 농민들의 요구란 쌀협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농민이 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정부로서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응당 해야 하는 일일 터다. 그런데 정부는 농민들의 절박한 요구를 공권력으로 짓눌렀고, 결국 목숨을 앗은 것이다. 

박상윤, 민한홍, 정종태, 김태환, 류기혁 등등 노동자들의 죽음이 지난해에도 내내 이어졌다. 대부분 비정규직노동자들이다. 구속 노동자 숫자는 김영삼, 김대중 정권 때보다 더 많아졌고 형량도 높다고 노동계는 격분해 한다. '경제살리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동기본권이 송두리째 희롱당하는 일도 연거푸 일어났다.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노동쟁의에 대한 '긴급조정권' 발동이 그 대표적인 예다. 2005년 이전 50년 동안 단 두 번이었던 파업금지령이 2005녀 한 해난 두번 발동된 것이다. 파업이 벌어지자마자 건교부가 긴급조정권의 필요성을 운운하는 판국에 노사자율교섭을 통한 타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현저히 국민경제를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하는 때"라고 적시한 긴급조정권의 요건에도 전혀 맞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법과 원칙" 테두리 내에서의 "대화와 타협"에 의한 노사문제 자율해결기조를 유지한 결과 "노사분쟁이 크게 줄고 노사관계가 전에 없이 좋아졌다"고 자평했다. 그리고는 이해찬 총리가 "회사 노무관리에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노동부는 "항공사 노무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며 뒷북치는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처절한 요구투쟁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동자의 저항도 때와 장소를 가림없이 잠복해 있다. 공공연히 자행되는 파업참가자에 대한 보복이 방치되고 전근대적인 노조파괴공작은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횡행하는 형국이다. 이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제대로 만들어 실천하고 충실한 사회안전망을 갖출 경우에만이, 법과 원칙이 신뢰를 얻고 노사관계의 실질적인 안정을 확보함으로써 '사회통합적 노동정책'의 목표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보수 기득권세력의 발호는 더욱 거세지고 

연말에 터져 나온 황우석 파동이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았다.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진상 자체의 시시비비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낸 보수세력의 발호는 극단으로 치달았다고 평가할만하다. 처음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의문을 갖고 달려든 것은 문화방송 피디수첩 팀이었다. 이 팀은 나름대로 미심쩍은 부분을 짚어내고 그 진상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였다. 곧바로 거대한 공격의 파도가 밀어닥쳤고 문화방송은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공격의 선봉에는 보수세력과 그를 대변하는 보수언론이 있었다. 이들은 문화방송에게 뭇매를 가하면서 차제에 프로그램도 없애고 내친 김에 문화방송마저 없애버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들은 진실 자체의 규명이 아니라 '생명과학의 희망'이자 '국민적 영웅'인 "황우석 교수를 죽이려 한다"고 윽박지르고, 취재과정에서의 과민함을 언론윤리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마구 질타하였다. 

이들의 배후에는 난치병을 고치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맺힌 소망과 이들을 동정하는 누리꾼들의 분노가 있었다. 이들의 아우성 속에 "무엇이 우리에게 유리한가라는 질문보다는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는 문화방송 노조의 항변은 철저히 묻혔다. 보수세력과 수구언론의 목표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결과에 대한 진실규명이 아니라 문화방송의 '괘씸죄'를 준열하게 응징하려는 데 있었다. 문화방송은 개혁을 추진하면서 때때로 기득권세력의 신경을 건드려 온 데다 피디수첩은 부정부패, 신문개혁, 환경감시, 종교문제 등 이 사회의 음지에 가려진 부분들을 들추어내 공론화하는 문화방송의 간판 개혁 프로그램이었다. 

황우석 교수 사건은 전모가 드러나더라도 생명과학을 잘 모르는 우리들이 이해하기에 꽤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과로 보면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듯 하다. 난치병을 고치고 싶어하는 간절한 열망은 우리만이 아니라 가히 세계적이며 누구도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런데 황우석 교수 일행이 이제 아주 작은 가능성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는 연구성과를 '난자제공 윤리문제'까지 무릅쓰면서 부풀려 발표함으로써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1999년 이후 역대 정부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칙칙한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카드로 여기고 조바심을 내며 대대적인 지원을 해왔다. 이를 통해 연구를 촉진시키고 빨리 성과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여기에 아무런 과학적 검증력을 갖추지 못한 언론매체들의 선정적 보도가 '난치병 치유'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거기에다가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라는 감동적 애국주의 언사를 결합시켜 황 교수를 영웅으로 부각시켰다. 

이제 황 교수 일행이 벌인 줄기세포 파동의 파노라마는 그 진위가 드러날 순간에 와 있고 보수세력의 벌집 소동은 잠잠해졌다. 이번 황우석 사건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개혁과 진보를 파괴하려는 보수세력의 공격이 얼마나 기회주의적이며 선정적인가 하는 점이다. 엄밀한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만 작동해야할 분야에서마저 곡필을 휘저으며 아노미현상을 번지게 한 이들의 행태는, 이제 다시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 열심히 움직일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의 추한 탐욕

국민을 우롱하는 보수 기득권층의 농단은 과거사 정리와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한 태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는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 과장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한마디로 가치 없는 것",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우리 역사를 왜곡해 함부로 발표하는 자체가 과거사가 될 것"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이 무엇인가. 1974년 유신반대투쟁이 격화하자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는 학생들을 대거 연행 구속하고 고문하여 "좌경폭력혁명을 시도했다"고 덮어씌우고 그 배후 조종세력으로 인민혁명당 재건위를 지목했다. 그리하여 8명을 잡아다가 온갖 못된 고문을 가한 끝에 1975년 4월9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바로 다음날 목숨을 앗아갔던 사건이 바로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이다. 이 날은 국제적으로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될 만큼 큰 충격을 던졌고 박정희 독재정권의 죄과를 상징적으로 집약한 가장 잔혹한 행태로 지적되어 왔다. 

'유신의 딸'답게 박근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그 아버지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강변한다.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위인인데 잘못한 게 뭐냐, 오히려 사형당한 사람들이 국가전복을 꾀하는 잘못을 저질렀고 사형은 당연한 대가라는 투였다. 그는 지금의 국무총리와 보건복지부장관이 민청학련시대 사람들이어서, 현재의 상황을 대권 꿈에 다가서려는 자신의 권력기반을 허물어뜨리기 위한 음모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보수언론들은 박근혜의 발언을 대서특필하여 엄호하였다. 이들의 배후에는 경제성장의 신화를 칭송해마지 않는 '박정희 신드롬' 제작자들의 지원과 지지가 가로 놓여 있고 이들을 대변하여 유신공주 박근혜는 거의 악다구니에 가까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를 대표주자로 하는 보수세력들의 면모는 사립학교법에 대한 반대에서도 분명해진다. 박근혜는 2005년 12월9일 사립학교법(사학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사학법은 헌법에 규정된 우리체제를 뒤흔드는 법안으로 반미 친북이념을 주입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라며 "국가보안법이 우리체제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사학법은 우리 미래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리고 '사학법무효투쟁 및 우리아이지키기 운동본부'를 구성하여 국회의장실에서 농성에 들어가는 한편 장외투쟁에 나섰다. 

사학법을 반대하는 사학재단 소유주들과 보수언론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사학법이 사유재산권, 경영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이사장의 직계존비속 및 배우자의 교장 임명금지에 대해서는 "직업선택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것이고 종교사학들은 외부인사가 이사회에 참여하면 "건학이념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또 "전교조가 학교운영위원회를 장악하여 빨갱이교육을 시킬 것"이라고 역설한다. 사립학교법 개정은 그동안 자행되어온 사학들의 비리를 원천적으로 예방하자는 의도일 뿐,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궤변이다. 사학재단이 학교에 내는 돈은 초·중·고의 경우 연간 운영예산의 2%이고 대학은 평균 8.5%라는 사실은 이들의 '사유재산권' 주장의 허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마치 2%도 안 되는 지분을 갖고 수조원, 수십개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재벌총수들의 탐욕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개방형 이사제나 이사장의 직계존비속의 교장직 금지에 반대하는 논리는, 교육을 공공재산이 아니라 사유재산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전교조 장악론도 현재 초·중·고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가운데 교원이 35.9%이며, 그 중 전교조 교사는 15.5%에 그치고 교총회원이 71.7%이어서 전교조 교사가 이사로 선임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데서 그 억지가 드러난다. 건학이념 문제도 같은 종교인을 이사로 추천할 방법이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한나라당, 사학재단, 보수언론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내 것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기득권층의 탐욕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진보진영, 자기혁신으로 역량 강화 정진을

미국 부시 정권의 전쟁음모와 위협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반도에 드리우고 차별과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지는 현상은 보수 기득권세력의 발호와 함께 삶의 의욕을 꺾어버리는 주범들이다. 어차피 사라져야할 대상인데 그냥 넘겨버리면 될 것 아니냐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바로 그 틈바구니를 타고 세력을 키워간다. 여기에 현 정부의 개혁후퇴가 이들의 기를 살려놓아 갈수록 기고만장이다. 이제 '뉴 라이트'라는 조직으로 재무장하여 권력창출에 도전한다는 웅대한 포부까지 내놓고 있는 판이다. 진보를 갈망하고 변혁을 꿈꿔온 사람들에게는 심난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낙망할 필요까지는 없다. 어차피 세상이란 지배자와 지배를 받는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치열한 대립과 투쟁의 장이다. 전자는 국경을 넘는 결속과 논리로 자기 이익을 옹호하고, 후자는 기존 질서를 바꾸어 그 주인공이 되기 위해 분투 노력하기 마련이다. 결론은 어느 쪽이 더 정당성을 확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가에 있다. 강자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것 같지만 세계최강 미국의 턱 밑에서 미국의 세계화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정권들이 자주와 자립을 외치며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도 새 변화의 조짐에 틀림없다. 

새해에도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녹록한 일이 없다. 당면한 과제들에 맞닥뜨려 해결하는 일도 그렇거니와 실의와 좌절감 속에 방황하는 허기진 민중들에게 희망찬 전망을 제시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진보정당과 대중조직의 자기혁신이 주목되는 이유다. 운동역량의 성장은 스스로의 결연한 개혁과 과감한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광범한 현장 대중토론과 활발한 교육은 허망한 관념의 유희나 무모한 종파의 분열갈등을 극복할 핵심요소이며, 이를 통해 구성원들의 냉소주의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새 설계들이 제대로 이루어져 보람있고 여유로운 미소로 서로를 보듬어 안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