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차별을 뚫고 세상 바꾸는 투쟁으로

노동사회

비정규차별을 뚫고 세상 바꾸는 투쟁으로

편집국 0 3,021 2013.05.19 02:21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며 비상식적으로 국회 거부사태를 만들고 있지만, 그 명분도 없고 반개혁적인 정쟁은 국민적 외면을 받고 있다. 머지않아 국민적 심판으로 확인될 것이 분명하다. 이와 더불어 2005년 12월은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무분별한 확산을 막기 위한 입법쟁취 투쟁이 최고점에 이른 시기였다.

그 와중에 각양각색의 세력들마다 자신들의 계급적 입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너무나도 상식적인 요구인 기본권조차도 흥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을 만든다고 하면서도 결국 자본의 입김과 영향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정당도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선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거대정당도 있다. 각 세력의 입장이 가장 첨예한 시기에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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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 1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서 불타는 '비정규직철폐' ]

비정규 차별 방조하는 ‘공범’들의 사회

비정규직노동자가 해마다 수십만명씩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04년 8월에 비해 2005년 8월까지 꼬박 일년 동안 25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났다. 추산컨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수백만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였고, 해마다 늘어나는 비정규직 문제는 어느덧 사회문제로 발전했다.

1천5백만 노동자계급의 권익을 위해 혼신을 다해 온 민주노총으로서는, 비정규직노동자가 늘어만 가는 현실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비정규직노동자의 설움과 한숨, 차별과 가난을 해결하는 것은 향후 한국노동운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며, 노동자계급의 양심에 비춰보아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문제였다. 또한 가난이 대물림되고 재생산되며 전사회적인 빈부격차가 커져가는 원인으로 비정규직 확산이 지목되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절반의 국민만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구멍 뚫린 사회보장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른바 ‘4대 보험’조차도 비정규직노동자에게는 이렇다할 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 이것이 바로 IMF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 노동자의 현실이었다.

수출은 늘어만 간다지만, 내수는 꽁꽁 얼어서 땀흘려 일해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서민들의 아우성에 아랑곳없이 10%미만의 고소득층들에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살기 좋은 나라였다. 국민의 절대다수인 서민들의 호주머니가 얇아지니 소비는 줄어들고 이는 부메랑이 되어, 체감경기는 요지부동으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1천만 비정규노동자시대’가 곧 도래하여 심각한 사회적 분열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천박한 수준의 대한민국 자본은 값싸고 손쉽게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공공연히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행정기관은 돈 가진 사람들의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당장 국민의 대다수가 차별과 가난, 생존권 위기에 내몰리는 비정규직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세계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기성정당들은 자본의 뒷돈과 지원을 받기 위해서 비정규 확산구조를 ‘개선 불가능한 일’ 정도로 여기며 아무런 법적 장치도 마련할 엄두도 내지 않고 있었다. 이들 모두는 오직 가진 자들의 돈벌이를 위해서 다수에게 고통을 가하는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고 서로 눈감아주고 비호하는 ‘공범’들이다.

비정규입법투쟁과 다시 태어나는 민주노총의 성장통

지난 6년간 민주노총은 비정규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고, 아무런 법적 보호장치가 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2004년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안을 민주노동당을 통해 국회에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입법쟁취에 들어간 민주노총은, 그동안의 헌신과 노력이 헛되지 않아 부족하지만 적지 않은 성과를 남기게 되었다고 자평할 수 있다. 

2004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했지만, 단지 기쁨을 나누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곧바로 7월12일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안을 제17대 국회에 제출하고, 850만 비정규노동자를 위한 법적 보호장치를 쟁취하기 위해 총파업투쟁에 돌입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민주노총의 많은 간부들과 조합원들은 당시 비정규직문제를 잘 알고 있지 않았다. 5년, 6년 전만 해도 비정규직이라는 말뜻조차도 제대로 몰랐던 동지들이 더 많았었다. 교육과 선전을 하고 스스로 찾아서 공부해야 하던 시절을 몇 년간 보내야만 했다. IMF 외환위기는 노동자 개개인에게 정리해고 구조조정 명예퇴직 희망퇴직, 그리고 악랄한 자본의 탄압에 맞선 투쟁 그 자체였다. 때문에 정규직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라면 비정규직은 ‘안전판’ 취급을 해도 된다는 ‘안일한 착각’에 빠진 경우가 번번이 나타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과반을 넘어서는 현실 앞에서 더 이상 ‘안일한 착각’ 속에 빠져 있을 수 없었다. 조직노동자의 노동3권마저도 위협하는 자본의 비정규고용정책은 구체적인 현실이었으며, 비정규노동자동지들의 처절한 ‘권리찾기 투쟁’ 앞에서 스스로의 비계급적인 착각을 한방에 날려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비정규노동자문제는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이 나라 민중들의 삶의 위기로 되어버린 것이다.

민주노총의 역사에 비추어 2004년과 2005년은 매우 의미 있는 기간이었다. 1987년 이후 노동자해방을 위한 투쟁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싸워왔지만, 정작 돌아보면 소속 조합원의 권익에 매몰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주변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노력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IMF 외환위기 때는 옆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확보된 권리라도 지키기’에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90%에 육박하는 미조직노동자들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든 사실상 무권리 상태에서 무방비로 정권과 자본의 공세에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조직된 힘으로 더 나빠지지 않으려고 코피 터져가며 방어전을 펼치는 민주노총에 비해서도, 눈비를 고스란히 다 맞으며 생존권 위기, 기본권 박탈 상황에 내몰린 90%의 노동자의 입장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민주노총은 제 앞가림을 하느라고 소중한 90%의 노조조차 없는 노동자동지들의 어려운 처지를 가슴 뜨겁게 헤아려 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안일함이 그대로 정권과 자본의 ‘조직노동자 포위전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최근 들어 더욱 거세진 ‘귀족노조’니 하는 일련의 이데올로기 공세나, 사업장 내에서 노조원들이 자신들보다 몇 배 많은 비정규직 미조직노동자에게 포위된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2004년과 2005년 민주노총은 거의 모든 힘을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에 쏟아 부었다. 정권과 자본, 수구언론들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위한 총파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보기 좋게 그들의 악의적인 왜곡선전을 실천으로 극복해냈다. 2005년 4월과 6월, 그리고 얼마 전 12월에 실시된 국민여론조사에서도,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확산방지를 위한 민주노총의 주장에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비난과 왜곡을 일삼던 거대 정당들, 수구언론들도 이제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은 민주노총의 주장 앞에서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사실 지금 민주노총 내부는 많이 지쳐 있는 상태다. 2005년 12월만 해도 벌써 40차례 이상의 전국적인 집회와 세 번의 총파업을 감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하면서도 긍지 높은 민주노총의 투쟁은 80만 조합원과 전체 진보진영의 앞길을 개척하는 방향타가 되고 있다. 조합원 속에 비정규문제 해결 없이는 세계화 신자유주의적 노동탄압을 이겨낼 수 없다는 자각과 확신이 넘쳐나고 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투쟁을 통해 다시 태어나고 있다.

비정규투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제대로 밝히려면, 그동안의 활동이 무엇을 남겼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똑똑히 해명해야만 한다. 그래야 성과는 더욱 발전시키고, 부족한 점은 개선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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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특수 고용직노동자 노동기본문제는 2006년 어떻게 될 것인가. - 출처: 민중의 소리 ]

우선 지난 6년 동안의 투쟁에서 거둬들인 성과가 적지 않다. 첫째, 범국민적인 계급적 자각과 비정규 불안정 노동현실에 대한 분노가 확산된 것이다. TV 드라마에서조차 비정규직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현실을 소재로 다루는 세상이 되었다.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우려와는 달리 대다수 국민들은 자기 자신과 가족, 형제자매들이 차별받는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노조원이 아닐지라도, 빼앗기고 있는 권리를 찾아야 하며 인권유린적인 노동현실을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계급적 자각과 권리의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라는 계급적 처지를 망각하고 살아왔던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 큰 성과는 없을 것이다. 이런 성과들은 노동운동 발전의 든든한 토대가 되고,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권리보장을 위한 사회적 감시와 비판의 토양이 될 것이다.

둘째, 비정규노동자 스스로 권리쟁취의식이 확산되었다. 2005년 한 해 동안 가장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은 비정규직노동자이다. 그리고 비정규권리쟁취투쟁의 제1의 주체는 누가 뭐라 해도 비정규노동자 자신이다. 자신의 노동현실 앞에 체념과 한숨으로 살아온 수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이 권리보장 입법쟁취에 앞장서고 있다. 2005년에는 40년 동안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 길들여졌던 건설플랜트노동자들이 세상을 향해 인간다운 삶,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의 피어린 투쟁도 그렇고, 불법적인 파견노동을 철폐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동지들도 바로,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투쟁의 주역들이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자 투쟁의 길을 선택한 비정규노동자의 노력은 앞으로도 더욱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머지않아 비정규노동자가 자주적 단결권을 쟁취하고 자기 운명을 주인답게 개척하는 노동자의 길로 속속 들어 설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셋째, 조직노동자대중의 노동운동에 대한 ‘계급적 안목’을 한 단계 끌어 올린 투쟁들이 있었다.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비정규노동자문제를 더 이상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노동자의 노동3권 문제는 한국노동운동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조직된 자기 자신 외의 다른 노동자의 권리문제가 스스로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말이 아닌 실천으로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가 동지적 연대성과 단결을 실현해 나가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구호로서 1천5백만 노동자를 외치는 단계를 넘어서, 조직하고 함께 투쟁하는 속에서 외치는 계급적 단결의 위력적 힘을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이 느끼고 있다. 향후 조직노동자가 목적의식적으로 비정규노동자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또 다른 해법들을 모색하는 토양이 될 것이다.

넷째, 미국식 세계화 신자유주의정책의 반노동자성, 비인간성을 폭로하는 성과가 있었다. 비정규투쟁은 정권과 자본의, “돈벌이가 되면 최고”라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신화를 여지없이 폭로하고 무력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세계화 신자유주의 신화의 이면에 감춰진 비인간성, 반노동자성, 몰상식하고 추악한 얼굴을 여지없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만들었다. 비정규문제의 본질은 미국식 세계화 신자유주의정책에 있다. 정권과 자본, 수구언론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들을 사지로 몰아넣고는 마치 그 모든 책임이 조직노동자, 노동운동에 있는 것처럼 진실을 호도하기에 급급했지만, 민주노총의 강력하고 끈기 있는 투쟁으로 인해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 투쟁을 통해 미국식 세계화 신자유주의정책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더욱 높아졌고, 노동자 투쟁의 과녁이 어디로 맞춰져야 할지가 더욱 뚜렷해졌다.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와 신화가 깨어지고 정권과 자본의 반노동자성 반민중성 비인간성이 폭로되었다. 

향후과제의 기본은 ‘주체역량’을 강화하는 것

입법이 어느 수준에서 이뤄지느냐는 향후 노동자 고용살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입법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착취와 억압이 있는 사회에서 착취자 억압자들의 물리적 탄압은 악법보다도 더한 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현실, 불법과 비상식적 폭력이 양심과 상식보다 더 우세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현실이, 바로 천박한 대한민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비정규권리보장을 위한 향후사업의 기본방향은 ‘주체역량’을 강화하는 것에 있다. 즉, 비정규노동자의 조직적 힘을 강화하는 것을 어떤 순간 어떤 환경에서도 주목하고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사회적 강제력을 갖춘 법과 제도를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고쳐나가는 투쟁을 동시에 펼쳐야 할 것이다.

이에 몇 가지 점에서 향후 민주노총의 대응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민주노총의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투쟁은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쟁취’ 없이는 마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으로서는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과 기간제, 파견제 관련 법안을 분리해서 생각해 본 적이 단 한순간도 없다. 이 점은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의 요구에도 특수고용 노동3권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에 2005년 12월 임시국회에서든 2006년 2월 임시국회에서든 기간제, 파견제 관련 핵심쟁점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함과 동시에, 특수고용 노동3권 보장을 위한 입법쟁취투쟁을 진행해야 한다. 2006년도 상반기 최단기간 내에 입법안을 제출하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있는 지금 투쟁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또한 비정규권리보장 입법내용이 민주노총의 요구, 비정규노동자의 요구를 충분히 담지 못한 상태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거대정당들의 자본 편들기로 인해 온전하지 못한 법이 만들어지면 그 법을 활용할 대책도 세워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선할 대책과 투쟁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비정규노동자의 주체역량을 강화하는 종합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힘이 없으면 제아무리 좋은 법이 있어도 소용없는 세상이다. 돈을 가진 일부의 사람들은 있는 법조차도 서슴없이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에게서 힘이란 바로 조직된 역량, 투쟁할 수 있는 역량이다. 비정규노동자 스스로 자주적 단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할 뿐만 아니라, 조직노동자가 책임 있게 대책을 세워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내하청노동자를 노조에 가입시키고 미조직노동자 조직화사업을 대중적 방식으로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05년과 2006년 민주노총 사업계획에 이미 담겨져 있듯이, ‘산별노조 전환’을 통해 미조직노동자를 대대적으로 노조에 가입시키는 대중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것도 위력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2005년 봄 현대자동차노조 울산공장 간부, 활동가들이 사내하청비정규노조 가입운동을 조직적으로 도왔던 사례나 현대자동차노조 전주본부가 나서서 사내하청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조직사업을 성공적으로 전개했던 사례 등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산별노조의 근본목적에 비춰보아도 기업별노조의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계급적 단결을 실현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의 민주노총 사업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2006년 사업에서 반드시 실천으로 돌파해야 할 지점이다.

셋째, 조직노동자의 생각이 더 바뀌어야 한다. 2005년 민주노총 사업계획은 “민주노총은 80만 조합원만을 위한 민주노총이어서는 안 된다. 전체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직노동자의 권익을 지켜내는 것은 조직의 근본목적상 당연히 변할 수 없는 임무이다. 하지만 80만 조합원의 권익이란 당면한 현안에만 있지 않다. 전체 노동자의 미래, 노동운동의 사회정치적 과제 또한 마땅히 조합원의 권익이다. 노동시장을 심각히 교란하고 왜곡할 뿐만 아니라, 조합원의 기본권마저도 포위 고립하려는 정권과 자본의 음흉한 계획이 담겨져 있는 비정규정책을 적극적 공세로 분쇄하지 않는 한 미래의 민주노총을 기약할 수 없게 되며, 80만 조합원의 권익보장도 어렵게 된다. 조합원대중에게 적극적인 교육선전사업을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계급의식과 비정규 문제를 깊이 결합시켜 노동운동에 대한 주인다운 관점과 태도를 더욱 고취시키고, 비정규투쟁과 민주노총의 조직발전문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바꿔내야 한다.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하는 조합원이 없어야 하며, 투쟁을 간부들만의 것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2006년 단위기업별 임단협에서 대중적인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와 권리보장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조합원을 비정규투쟁과 조직화의 강력한 주체로 세우는 것이 바로 열쇠가 될 것이다.

넷째, 50억 기금을 통한 활동가 양성사업의 효과를 조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50억 기금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며, ‘의지’이다. 50억 기금 모금운동을 펼치고는 있으나 결의했던 시점으로부터 일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 모금운동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대책이 요구된다. 50억 모금을 통해 비정규조직화를 위한 활동가를 양성하고 그 활동가의 헌신적이고 목적의식적인 현장활동, 조직활동을 통해 전략적인 비정규사업, 비정규 다발사업장을 조직하고자 하는 방침을 힘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수백만에 이르는 비정규노동자를 한꺼번에 조직하기란 불가능하다. ‘선도적인 사업장’, ‘모범적인 사업장’을 만드는 전략이 50억 기금에 녹아 있는 정신이다. 2006년 임단협을 계기로 모금운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비정규 조직화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누가 감히 ‘노동운동의 미래’를 부정하는가!

2005년 10월26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진 곳 중 하나인 울산 북구에서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 길거리에서 “비정규노동자를 외면하는 ‘노동귀족’을 심판하고 비정규노동자를 옹호하는 ‘한나라당’을 지지하자”는 현수막이 내걸린 것이다. 노무현 정권과 자본, 수구언론은 지난 3년간 호시탐탐 ‘노동귀족’, ‘집단이기주의 세력’, ‘대기업이기주의’니, 그리고 “노동운동은 한국사회 민주화에 기여한 바 없다”는 식의 악의에 찬 왜곡선전을 가해왔다. 정권과 자본의 무지막지한 폭력과 가공할만한 융단폭격에 주눅 들고 패배감에 빠진 일부 사람들은 “노동운동의 미래가 없다”, “민주노총은 끝장났다”며 가장 먼저 실망하고 가장 먼저 패배감에 빠져 세계화 신자유주의 신화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이 와중에도 민주노총은 2004년과 2005년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투쟁을 전개해 왔던 것이다. 돌아보면 다사다난했던 과정이지만, 흔들림 없이 노동자의 길을 꿋꿋이 걸어왔고 승리하는 과정이었음을 똑똑히 알 수 있다. 조합원 대중은 결코 흔들리지도 패배감에 빠지지도 않았고, 험난한 길이지만 투쟁으로 화답하였다. 그리고 승리의 돌파구를 열어내고 있다. 많은 간부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진보운동을 고민하는 이들이 함께 되새겨 보아야 할 교훈이라 여겨진다. 과감한 혁신과 함께 긍지를 잃지 않고 노동자의 길을 흔들림없이 걸어 나가는 것이 2006년 민주노총의 자세다. 2006년 1월이면 80만 민주노총으로 성큼 성장하는 민주노총은 투쟁하는 노동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귀중한 850만 비정규노동자와 함께 쉼없이 나아갈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