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시민사회운동 회고와 전망

노동사회

2001년 시민사회운동 회고와 전망

admin 0 2,721 2013.05.07 09:22

2000년 전국 1천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여 국민적 지지와 동참속에 벌였던 낙선·낙천운동은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정치의 '정'자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시민이 총선연대 운동을 통해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투표에 참여했다는 고백에서부터, 자신이 이 나라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었다며 격려와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모습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확대되었던 시민의식의 물결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몰아치게 한 사건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1. 지역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

sjyang_01_2.jpg작년 총선연대의 전국적 연대사업 전까지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운동가들은 서울이 곧 '운동의 중앙'이라는 의식을 암암리에 갖고 있었다. 물론 '서울은 중앙이 아니다', '단지 지역의 하나일 뿐이며, 누구도 서울의 시민사회단체들에게 한국의 중앙이라는 위치와 권한을 부여한바 없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운동의 인적·물적 자원의 역량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아울러 정치·행정·사법·기업 그리고 언론 등의 환경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 '서울=중앙'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2000년 낙천·낙선운동을 계기로 전국의 크고 작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운동에 결합하고 백일 가까운 기간동안 지역사회에서 밀도 높은 사업을 전개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바로 지역운동의 자생력과 독립성, 주체의식이 보다 견고해지고, 공고화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아래 지난 2월27일 전국의 2백여 단체들이 상설적인 연대체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를 창립했다. 그러나 지역 단체들은 서울의 운동방향을 그대로 쫓아가지 않고, 힘이 들더라도 오히려 자체적이고 자생적인 지역 운동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작년 총선연대의 사업 경험으로 전국적으로 단일한 운동의 전략과 전술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지역단체들이 연대회의 창립 후 서울단체들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은 모습은 서울에 있는 단체들에게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작년에 운동의 역량을 소진한 탓도 있겠지만, 필자는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이 새로운 발전과 성숙의 도약기에 접어든 상징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것은 곧 '자치'와 '분권'이라는 지역단체들이 주장하는 지방자치운동의 화두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 예로, 올해 서울에서도 제대로 하지 못한 'NGO대회'를 대전에서 먼저 주최하여 진행했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내용을 공유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운동의 저변을 확산시키고 성숙시키는 매개의 장으로서 NGO대회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좀더 주목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 서울에 근거를 두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의 운동이 한국시민사회운동의 중심에 서있거나, 중앙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식을 버려야 할 것이다. 비록 전국적인 산하단체 네트워크를 두고 있고, 국회와 중앙정부를 상대로 전국적인 운동의 이슈를 만들어 간다 할지라도, 서울에 소재를 두고 있는 단체도 서울이 하나의 지역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시 행정부가 있고, 서울시 의회가 있고, 서울 지방법원이 있듯이 서울연대회의를 통해 서울도 하나의 지역일 뿐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단체들의 경우 인적·물적 자원의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조건이 있지만, 보다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운동의 비전과 방향을 만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면, '○○ 대전지부'와 같은 단체명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서울에 있는 단체와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지역단체라 할지라도 지역에 필요하고, 지역 시민들이 요구하는 운동의 이슈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지역의 단체들과의 전국적인 연대운동을 형성하고 연대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것을 지나치게 경계해서는 안된다. 운동의 자기 중심을 잘 확보해야 한다는 측면의 제안이며, 한국 시민사회 운동 전반의 역량이 아직은 많이 취약하기 때문에 지역과 부분을 넘어 각 단체들 상호간의 연대에 힘을 쏟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2. 2001년 시민사회운동 정리와 평가

sjyang_02_2.jpg① 3대 개혁입법 운동


연초부터 정치권과 대 국민을 향해 전개한 3개 개혁입법 촉구 사업을 먼저 언급할 수 있다.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라는 화두를 내걸고 작년 말부터 진행했던 3개 개혁입법 운동은 부패방지법 제정, 국가보안법 폐지, 인권위원회법 제정이다. '종합적인 부패방지법을 제정하고 특별검사제 등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할 검찰개혁 조치를 단행하라'는 주장이 한계를 갖기는 했지만, 국내 최초로 종합적인 부패방지법이 제정되어 결실을 보았으며, 검찰개혁의 문제는 최근 특별검사제 법이 국회에서 합의되면서 일정부분 성취되었다. 그러나 검찰개혁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은 아직 미비한 상태다.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는 극우보수세력의 반발과 정부여당이 부정부패의 덫에 매몰되어 국민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그리고 인권위원회법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와 구성으로 성취되었으며,발족을 눈앞에 두고 있다. 

② 건강보험재정파탄

국민연금, 의약분업 등 작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복지정책과 함께 올해에는 건강보험재정 파탄과 관련 건강, 의료, 복지단체들의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아직 창립되지는 않았지만 보건의료연대 준비위를 구성하여 투쟁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보험 재정을 채우기 위해 도입하고자 하는 민간보험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③ 새만금간척사업반대 운동

강원도 영월에 건설하려던 동강댐 사업을 막아냈던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저항운동은 올해 새만금간척사업 반대를 위한 투쟁으로 이동하여 국내외 운동역량을 총 동원한 저항운동을 전개하였으나, 결국 강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④ 지역구 의원 정치자금실사 결과 발표

지난 몇 년 동안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당에 지급된 국고보조금이 제대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 바 있었지만, 올해 처음으로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주요 지역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사용 내역에 대해 구체적인 조사와 분석을 한 결과를 발표했다. 정치개혁의 핵심을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어떻게 여하히 확보하느냐의 문제로 볼 때 아직 초보적인 단계지만 정치자금의 사용 내역에 대한 의원 개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평가는 향후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⑤ 이동전화요금 인하 운동

3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가까이 싸워온 이동전화요금 인하 운동은 온라인-오프라인으로 100만명 가까운 시민들의 동참으로 올 한해 시민들의 일상에 파고들어가 뿌리를 내린 운동으로 평가할 만 하다. 어떤 면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해온 30%의 인하가 이루어지지 않고 8.5% 정도만 인하되고, 내년 상반기에 추가 인하를 검토하겠다는 정보통신부의 발표가 있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운동이라 할 수 있다.

⑥ 언론개혁운동

올 한해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는 언론개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편파, 왜곡보도를 일삼는 보수언론에 대한 저항운동은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함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보수와 개혁이라는 이데올로기 논쟁을 국민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신문개혁에 대한 이슈와 정간법 개정을 위해 전국 자전거대행진을 하고, 수많은 집회와 시위, 기자회견, 토론회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충분히 쟁점화 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냈지만, 뚜렷한 결실을 얻지 못한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언론개혁의 골간이라 할 수 있는 정간법 개정이라는 중요한 핵심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을 싸워가야 할 것이다.

⑦ 반전평화 운동

9.11 뉴욕과 워싱턴에 일어난 테러와 이에 대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공격이 시작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새로운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제 평화단체들과 연대하여 반전평화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 전쟁반대와 평화실현을 위한 기자회견과 토론회 등을 가졌으며, 1인 시위와 주말집회,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⑧ 연대회의 창립

마지막으로 전국의 296개 단체가 상설적으로 네트워크화 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출범을 들 수 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하여 경기, 대전, 충남, 전북, 광주전남, 경남, 제주 등의 지역에 연대회의가 구성되어 있으며, 인천, 부산, 대구, 강원 등의 지역에서 연대회의 구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지난 4월 해산을 한 시민협과 달리 연대회의는 전국적인 단체들의 참여로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이슈들을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며, 운동역량의 시너지를 창출해내는 매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연대회의는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공론의 장으로서 그리고 시민사회의 장기적인 전망과 비전을 만들어 내며 시민사회 전체의 확산과 성숙에 기여해나갈 것이다. 아울러 전국민중연대와 함께 협력과 연대를 통해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개혁과 평화통일을 위한 운동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3. 2002년 시민사회운동을 전망하며

위에 정리하지 못한 전국의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전개한 크고 작은 운동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혁하는데 더욱 큰 힘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002년 시민사회운동은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16대 대통령선거라는 큰 국가적 이슈가 있기에 어떤 면에서 보다 단순하게 전개될 양상도 없지는 않다. 이곳에서 구체적인 운동의 전망을 논하기는 어렵고, 다만 메타사회운동으로서 시민사회운동의 인프라 구축과 관련되어 힘을 쏟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시민사회단체의 힘은 참여하는 시민의 힘, 회원의 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시민들이 더욱 쉽고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의 다양한 형식과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야 한다.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은 조직화되어 일하고 있는 상근자들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일정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성찰적 시민운동, 위기의식을 가진 운동, 종말론적 운동 마인드를 갖고 운동을 해야 한다.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자칫 자신도 모르게 매몰되거나 경도될 수 있는 유혹에서 물러나 언제나 겸손하게 국민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구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내일 우리단체의 역할이 끝날지 모른다는 종말론적 운동마인드와 자기 성찰을 늘 견지하면서 현장에 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운동의 핵심은 사람, 인재양성에 있음을 기억하고 이 부분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사실 상근자 급여주기도 만만치 않은 시민사회의 척박한 재정 풍토에서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인재양성과 교육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결고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운동이 10∼20년을 내다보고 비전을 갖기 위해서는 상근자들의 전문성 고양과 함께 운동가로서의 자기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게 지속적으로 황금알을 기대한다면 거위가 건강할 수 있도록 먹이를 잘 주고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황금알을 한꺼번에 많이 얻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가른다면 그 순간 황금알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시민사회에 대한 전망과 비전은 아주 밝고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오늘도 이곳에 머물도록 하는 힘이 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