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지배개입 대가를 비싸게 치르게 하기 위하여

노동사회

노조지배개입 대가를 비싸게 치르게 하기 위하여

편집국 0 4,233 2013.05.19 02:13

11월 말의 어느 늦은 오후, ‘대해동’을 방문했다. 대해동? 대방동 옆에 있는 동네 이름이 아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개화산 역 근처에 사무실이 위치한 대해동은 ‘대한항공해고자동지회’의 줄인 이름이다. 대해동에 소속된 이들의 해고사유는 표면상으로야 다양하지만, 이름에 동지라는 단어가 들어간 데서 짐작할 수 있듯, 공통적으로 ‘노동조합활동’이다.  

기내 흡연, 신문기사 게시가 해고사유?

현재 주식회사 대한항공에는 대한항공(일반)노동조합과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이렇게 두 개의 노조가 존재한다. 일반노조는 41년의 전통과 1만명에 육박하는 조합원을 자랑하고, 조종사노조는 2000년 조종사들의 청원경찰 신분 해지와 함께 공식화됐다. 현재 대해동에는 두 노조의 해고자들 11명이 소속되어 있다. 이중 조종사노조 해고자 3명은 모두 2001년 파업의 지도부로, 그 여파 때문에 구속수감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왜 해고됐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나머지 일반노조 해고자들의 상황은 좀 다르다. 대의원 혹은 노조전임자였던 이들의 해고사유는 무단결근, 기내흡연, 회식 중 성희롱(당사자는 적극 부인, 재판 중)혐의, 회사 허가 없는 사내모금과 전용 혐의 등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해고된 류승택 대의원(부산지부)의 경우에는 황당하게도 회사를 비판하는 신문기사를 사내직원전용 자유게시판에 올렸다는 것과 대의원 홈페이지를 운영했다는 게 그 이유가 됐다. 이렇게 표면만 봐서는 이들의 해고사유가 노조활동하고 관계가 있는지 알기 힘들다.  

어쨌거나 이들의 혐의가 설사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몇몇은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도 절대로 해고까지는 가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고용이 비교적 안정적인 ‘괜찮은 일자리’라는 대기업에서 징계과정을 거쳐 직장을 잃었다. 그런데 41년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항공일반노조는 그 과정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왜? 해고 당사자들이 노조위원장 불신임 추진 경력이 있는, 이른바 ‘노조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고자들은 자신들의 해고를 사측의 적극적인 노무관리전략과 노조의 의도적인 방조가 결합된 계획적인 ‘숙청작업’의 결과로 인식하고 있었다.   

좌절된 노조활동과 침묵 강제하는 ‘X맨 제도’ 

“당시 경험이 없다보니까, 너무 인정적으로,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노무관리자들이 객실지부만 합의 해주면 평화롭게 지내겠다고 한 것을 믿고 회사도 그 정도에서 멈추겠지 했던 거죠. 그런데 6개월도 못 가서 다시 시작될 줄은…, 파업도 해보고 탄압과 시련을 거치면서 노조를 만들어 갔으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는데, 조종사파업에 사측이 정신이 없었던 것을 포함해서 내외적으로 유리한 환경으로 인해 객실승무지부에 민주화세력이 ‘무혈입성’했고, 또 활동 첫해부터 노사협의회를 통해 많은 것을 따내다보니까, 그걸 ‘정상적인’ 노조활동으로 착각하고 안주했던 거죠. 그런 상태에서 회사가 숙청작업을 들어오니 상대적으로 더 흔들렸던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합의를 해준 건 최대의 실수이고, 노동조합 하는 사람들이 절대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될 과오죠. … 지금 상태는 그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2000년 운항승무원(조종사)과 마찬가지로 객실 남자승무원들도 노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당시는 IMF 경제위기를 빌미로 회사가 개악시켰던 노동조건 회복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높은 시기였고, 이 열망은 기존의 순응적인 노조에 불만을 갖고 있던 이들을 노조 내부로 밀어 넣었다. 2000년 대의원 선거에서 객실승무지부 대의원은 30명 모두 소위 ‘민주파’가 당선됐다. 활동의 성과도 좋았다. 처음으로 각 지부별 노사협의회를 통해 이뤄진 교섭에서 객실승무지부는 다른 지부에 비해 요구조건을 훨씬 많이 쟁취했다. 노동조건이 나아지니 병가나 사직서를 내는 승무원들이 줄어들었다. 노조활동은 뿌듯함을 주는 것이었고 대의원들은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받았다. 그렇게 탄력을 받은 그 힘은 ‘위원장불신임’을 추진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결국 사측의 지배개입이 시작됐다. 첫 목표물은 당시 객실승무지부의 중심인물이었던 박성진 당시 노조부위원장이었다. 위원장불신임 추진 때문에 본조 전임자들과 불편한 관계였던 박성진 부위원장은 노무관리자들과의 타협과 묵인 하에 노조사무실이 아니라 객실승무지부가 있는 본사로 출근을 했는데, 이게 꼬투리가 됐다. 법원의 결론은 “285일 무단결근”. 대의원과 조합원들이 거세게 항의했지만 박성진 부위원장은 결국 해고됐다. 객실승무지부에서는 이를 박성진 부위원장이 2002년 위원장선거에 출마 못하도록 하기 위해 사측이 준비한 ‘조작사건’으로 판단하고 ‘노조민주화’를 위해 위원장선거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당연히 압박은 계속됐다. 기금모금행위를 이유로, 회사를 비방하는 승우회 홈페이지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객실승무원을 상대로 만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방순석, 김민종, 길현섭 등에게 사규위반을 걸어 ‘해고위협’이 가해졌다. 이렇게 노무관리자들의 압박이 거세지자, 객실지부는 동료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회사가 원하는 합의를 했다. 2002년 대의원 선거에서 해고위협 무마와 대의원 10석을 교환(후보등록 포기)한 것이다. 대한항공노동조합은 간선제라 대의원들이 위원장을 선출하기 때문에 그런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2002년 그 해 위원장도 그렇게 선출되었다. 그리고 그 합의는 해고자들이 지금 시점에서 회고하는 “최대의 실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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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대해동 활동가 하요열(2001년 7월 해고), 김태수(2005년 10월), 최원봉(2005년 10월), 임영선(2005년 9월) ]

돌이켜보면 “안이하고 인정적으로 판단한 결과”였다. 당연히 회사는 멈추지 않았고, 대의원 선거 이후 6개월도 채 못 가서 노조설립추진기금모금에 대한 ‘익명의 투서’를 근거로 관련자 5명에 대해 징계와 해고를 이어갔다. 그 후 몇몇 사건에서 밀리면서 노동조합 내에서 ‘민주파’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고, 올해 9월 류승택 대의원이 해고된 이후에는 ‘민주파’ 대의원이 부산지부에 두 명 남아있는 상태다. 현장은 갈수록 서먹해졌고, 사측은 일명 ‘X맨 제도’라는 ‘타 팀원에 의한 팀업무 및 팀장 평가제도’를 만들어 자신 있게 회사에 대한 불만 표출을 감시하고 상호고발을 부추기고 있다. 2000년 대한항공을 들끓게 했던 에너지는 한여름 밤의 꿈인 양 그렇게 스러졌다. 

“견고해 보일지라도, 이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어리석은 사람은 찰나를 영원한 것으로 생각한데요. 지금 객실여승무원 인턴제 도입이다 뭐다 해서 많이들 어려운데…, 민주노조에 대한 기억과 열망을 갖고 있는 조합원들이 단지 노동조합의 현재만 보지말고, 미래를 보고 서로를 만나고 조직해갔으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신명나는 일터, 일할 맛 나는 일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가꿔 나가는 거잖아요.”   

“결국 밀리고 밀려서 여기까지 온 건데…, 저는 이제 바닥을 쳤다고 생각해요. 민주노조를 조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들이 아주 소수만 남아 있어도 그 이야기들은 전설처럼 떠돈단 말이에요. 그걸 막으려고 하는 게 ‘X맨 제도’라고 생각해요. 회사가 그렇게 악랄한 수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현장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 우리가 반격할 틈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해요. 해고시켜 놓고 자기들도 부담이 되는 거죠.”


곧 12월이 되면 공항에서 진행 중인 류승택 대의원의 1인 시위는 100일을 넘긴다. 1인 시위 사이사이 대해동에서 발간하는 소식지도 꾸준히 배포됐다. 이렇게 이들이 소수자로서 노조내부에서, 이제는 복직싸움을 통해서 주장하는 ‘민주노조’는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올해처럼 임금협상을 교섭 없이 사측에 위임하는 것, 노조전임기간이 끝나면 ‘승진’이 보장되는 것, 그리고 집행부 반대세력이 거의 발붙이기 어렵도록 개정된 선거제도 등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즈그 맘대로 하는 회사이니 튀지 말고 적당히 직장생활하면서 실익만 챙기면서 최대한 장수하는 게 제일이다”라는 강퍅한 현장분위기를 바꿔보자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험은 우리나라 같은 현실에서 대기업이 노조에 ‘지배개입’하려고 마음먹으면 우습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그러한 사측의 지배개입이 더욱 비싼 비용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이들이 보여줄 수 있을까? 물론 바닥을 쳤다고 저절로 오르는 것도 아니고, 아직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자주적 노조활동에 대한 기억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쉽게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기회가 다시 만들어지면 언제고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노력이 새잎을 틔워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