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해일에 튕겨 나간 프랑스 소외계층

노동사회

신자유주의 해일에 튕겨 나간 프랑스 소외계층

편집국 0 4,060 2013.05.19 02:11

지난 10월27일 파리 교외에서 두 청소년의 죽음으로 촉발된 이번 소요는 일부 지역에서 야간통행 금지령이 시행되면서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9천대의 차량과 약 2억유로(2천4백억원)의 손실을 낸 이 소요에 대해 일부 영미언론과 국내언론은 ‘불타는 파리’, ‘약탈과 방화가 들끓는 무법의 천지’ 등으로 묘사했지만, 이번 소요들은 나름대로 일정한 규칙을 지녔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체포된 소요 참가자들을 보면 대부분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의 이민 2, 3세들로,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 학업에 실패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의 소요는 늦은 저녁과 새벽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소요 대열과 경찰간의 충돌만 있었을 뿐 일반인들과의 충돌은 별로 많지 않았다. 

소요 참가자들의 TV 인터뷰를 보면 방화를 통해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고 경찰과의 대치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적이지 일반인에 대한 폭력과 약탈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화의 대상 역시 보험을 통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자동차, 불평등한 공공서비스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대중교통, 빈약한 투자로 인해 시설이 낡은 학교와 체육관을 비롯한 관공서, 낙후된 지역에 세웠다는 것을 빌미로 많은 세금혜택을 챙기면서도 동네 사람들을 고용하는데 인색했던 대기업 상점 등을 주로 겨냥하고 있었다.  

우파정부의 이슬람에 대한 몰상식과 빈민을 ‘심문하는 경찰’

이번 소요들은 경찰의 검문을 피하고자 변전소 담을 넘어 들어가 감전사한 두 소년의 죽음으로 시작되었고, 이슬람교 성전에 최루탄을 발포한 사건과 내무부 장관이 과도한 발언을 하면서 심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은 전국적인 소요가 점화되는데 도화선이 되었을 뿐 이미 이들의 불만은 극도에 달해 있는 상태였다. 2002년 대선을 통해 들어선 프랑스 우파정부는 이전 조스팽 정부의 이민자, 도시빈민자들에 대한 포용적 정책에서 배제적 정책으로 급선회하였다. 

라파랭 정부는 먼저 2003년 ‘학교 내 종교적 상징물 착용금지 법안’을 제출하였다.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이 법은 십자가를 항상 가슴에 지니고 다니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 가톨릭과 달리, 집 밖에서 여성들이 이슬람 스카프를 항상 착용하는 것을 교리로 하는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톨릭 문화를 기준으로 형성된 비종교적 교육제도에 이슬람 문화를 강제로 통합시키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이 법안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종교에서 찾고자 하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강한 반발을 가져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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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소요의 한 원인을 제공한 사르코지 내무부장관과 그를 패러디한 포스터 ]

그리고 강력한 치안정책으로 우파 유권자에게 인기를 누려 온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부 장관은 우파 정부 초기에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사회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조스팽 정부시기의 ‘근거리 경찰(la police de proximit?)’에서 ‘심문하는 경찰(la police d'interpellation)’로 경찰근무체제를 변경하였다. 근거리 경찰제도는 프랑스 경찰이 나쁜 인상을 줄이고 대중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 조스팽 정부 시절에 제기되었지만 사르코지 장관은 그 실효성을 문제삼으며 더욱 강력한 경찰제도를 채택한 것이다. 변화된 경찰제도는 주로 빈민거주지를 범죄의 온상으로 단정하고 이에 대한 검문과 단속을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역 청년들의 반발과 마찰을 불러일으켰으며, 소요의 발단이 된 두 청소년의 죽음도 이러한 경찰체계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체제 밖으로 내팽개쳐진 도시교외 청소년들

더불어 비위생 건물에서 거주하는 빈민 퇴출정책을 들 수 있다. 지난 8월 사르코지 내무부 장관은 안전상의 이유로 파리에서 빈집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영세민 세입자들에게 퇴거를 명령하고 경찰은 이를 강제 집행하였다. 이러한 집행은 지난 4월 이래 영세민 주택에서 지속적으로 화재가 일어나 사망자가 늘어난 때문인데, 주거권시민단체는 이러한 영세민 주거문제의 원인이 2000년 조스팽 정부 때 제정된 ‘도시신개발과 연대 관련 법(SRU, la loi de la solidarit? et du renouvellement urbain)’이 지켜지지 않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이 SRU 법안은 프랑스 모든 도시에 영세민주택을 의무적으로 20% 이상 짓도록 한 법이다. 

그런데 영세민주택이 건설됨으로써 유색인종들이 도시에 유입되는 것을 걱정하고, 이에 따른 주택가격의 하락을 바라지 않는 유권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일부 도시들은 이 법을 어기고 벌금을 내는 것을 선호하기도 했다. 특히 불법거주자들에 대해 일방적인 퇴거를 명령한 사르코지가 시장으로 있었던 뇌이이(Neuilly)시는 영세민 주택율이 겨우 1.3% 밖에 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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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강제퇴거에 항의하는 시위모습 - 출처 : 오마이뉴스 ]

실업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곳 도시교외 청년실업률은 일반 청년실업률에 비해 두 배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비숙련 노동자들이기에 구조적 실업에 아무런 보호망 없이 노출되기 쉽다. 조스팽 정부에선 비숙련 노동자의 자활을 위해 많은 시민단체와 함께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취업대책을 세우며 이들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이들의 취업은 범죄의 감소 문제와도 직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파정부는 집권과 함께 이들 단체의 정부지원금을 30%이상 감소시켰다. 

물론 과거 조스팽 정부의 정책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파정부에 의해 이러한 최소의 생활 보호망이 사라지면서 이들이 체제 밖으로 튕겨져 나온 것이다. 2002년 우파정부가 구성된 이후, 지방선거와 유럽의원선거에서 역대 최대의 참패, 유럽헌법에 대한 거부를 통해, 또한 올 3월과 10월의 100만에 가까운 노동자들의 시위를 통해 이러한 우파정부의 정책은 정치적으로 문제제기된 바 있다. 

즉 우파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이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이러한 압력이 가장 소외계층인, 유색인종이면서 빈민이며, 높은 실업의 최대의 희생자인 도시교외 청소년을 통해 폭발한 것이다. 또한 우파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이 이민과 유색인종에게 차별적으로 겨냥되면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관용이 아닌 배제중심의 정책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이것이 가톨릭 문화에 대항해 이슬람 문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청소년들에게 ‘인종차별’로 인식되면서 소요를 가중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 거세진 극우파의 목소리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2007년에 5만명의 자발적 공익활동을 중심으로 한 청년고용을 창출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모든 지방이 SRU 법안을 준수할 것을 뒤늦게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도미니크 드 빌팽 수상이 제시한, 청소년들이 취업으로 유인될 수 있도록 현재 16살부터 가능한 직업실습 연령을 14세로 낮추는 방안과 함께 소요에 대한 대표적인 정책이다. 하지만 35시간 노동제의 유연화, 해고를 용이하게 한 새로운 고용계약제도의 도입 등 이미 신자유주의적 변형이 급격하게 진행된 상태에서, 이러한 미봉책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한편 이번 소요에 대해 영미언론에선 프랑스의 경제시장구조를 문제삼고 나섰다. 현재 1만원(8.03유로)에 달하는 높은 시간당 최저임금이 미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 생성을 막고 있고, 또한 한시적 성격을 지니는 특정분야의 노동에 한정해서 계약직을 허락하는 노동법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즉 최저임금 인하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많은 미숙련 노동 일자리를 만들어, 교육을 받지 못한 아프리카계 미숙련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으로 편입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장 마리 르펜의 노쇠와 더불어 영향력이 줄어들던 극우세력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극우정당 중 하나인 ‘프랑스를 위한 운동’ 대표 필립 드 빌리에는 방리유의 질서를 다시 잡기 위해 군대 파견을 정부에 요청하면서, 소요에 참가한 청소년들의 가족에 대해 정부보조금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르코지 장관의 퇴진을 주요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소요의 요구와는 달리 아직도 57%의 프랑스인이 사르코지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오히려 사르코지는 “프랑스 시스템 자체가 한계에 다다랐으며, 30년간의 정치·사회·경제 체계 때문에 프랑스는 실업, 빚, 퇴보주의에 빠져있다”면서 과거 프랑스 복지주의와 단절하는 새로운 혁신을 추진할 것을 암시했다. 

소요는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에 반해 사회단체들은 지난 시기 신자유주의적 재정 구조조정으로 인해 삭감된 미숙련 노동자들의 자활사업 기금을 포함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사회단체 지원금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종차별담당 특별경찰을 만들자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가난하면서 인종차별을 받는 이들이 변호사를 고용해 법에 호소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많은 인종차별반대 단체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종차별을 고발하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구조적으로 사회에서 배제되어 빈곤을 대물림하고 있는 가난한 유색인들을 위해, 즉 체계적인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이들에게 교육이나 직업에서 예외적 기회 같은 특혜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특히 이번 소요의 발생지인 생 드니 시의 시장이며 공산당 출신인 디디에 펠라는 “그들의 부모가 투표할 권리가 없는데 어떻게 그들의 자식들에게 공화국의 법을 준수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라며, 내년 3월에 외국인 거주자에게도 지역의회 선거권을 제공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특히 유럽연합에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5천만 유로(600억원)를 즉각 지원하고, 이후 프랑스 정부가 이 문제를 유럽연합과 함께 해결하기 위해 공동계획을 갖는다면 10억유로(1조2억원)까지 투자할 용의가 있음을 발표했다. 이번 소요는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업보에 기인한 예외적 상황이 아니다. 세계화에 기반한 미래 ‘유목사회’에서 인종별 혼합이 가져올 문제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프랑스의 소요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극단화에 대한 거부, 소외계층의 사회적 지위 상승기회 박탈과 사회적 격차의 증가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