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보조원 우리도 노동자입니다!”

노동사회

“경기보조원 우리도 노동자입니다!”

편집국 0 3,031 2013.05.19 02:08

 


dkg_01.jpg우리들의 투쟁은 오늘 11월24일자로 꼭 58일이 됩니다. 날짜로는 겨우 58일이지만 저희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다짐한 날부터 지금껏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경기보조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보고 누가 ‘사장’이라 말할 수 있는지 저는 감히 묻고 싶습니다. 

저는 15년의 세월을 골프장의 필드에서 노동을 한사람이지만 소위 ‘사장’에 걸맞은 대접을 한번도 받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우리한테 누가 노동자가 아니라 말할 수 있습니까? 법을 집행하는 법조계 여러분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분들. 이 분들 중 골프를 한 번도 쳐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일반 국민보다는 그분들이 우리가 노동자임을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렇지만 최일선에서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이분들이 우리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회사 대표이사는 우리들의 투쟁에 대해 법대로 하자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노동법은 노동자를 위한 법이 아니고 가진 자를 대변하는 법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투쟁을 합니다. 이 일은 결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에 사는 모든 비정규직, 특수고용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법으로부터 보호를 못받고 피해를 당하는 노동자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휴지조각이 된 합의문서

성원개발 상떼힐 익산CC 노조는 2003년 5월, 정규직과 경기보조원이라는 특수고용직이 함께 설립한 노동조합으로 설립 당시엔 부실경영으로 인해 경영자가 구속된 상태였습니다. 이에 노동조합은 고용보장,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며 80여일간의 투쟁 끝에 임단협을 체결했습니다. 

그 후 2004년 2월에 성원건설이라는 회사가 부도상태의 골프장을 인수했고, 노동조합 인정과 단협보장, 고용보장을 약속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서에 서명하고 돌아서자마자 노동조합을 없애기 위한 각종의 방법을 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경기보조원들의 업무배치를 나이 순서대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부당한 처사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예정돼 있던 ‘BMW 골프대회’가 경기보조원 없이 진행되었고, 회사는 그 책임을 노동조합에 전가시켰습니다. 위원장은 해고되고 조합간부들에게는 무기한 배치중지라는 처분을 받았습니다. 경기보조원에게 배치중지는 정규직의 해고와 같은 일입니다. 

익산CC 노동조합은 끊임없는 사측의 탄압 속에서도 투쟁을 전개했고 2004년 11월 노사협상을 통해 위원장을 제외한 경기보조원 간부들이 12월4일자로 업무에 복귀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위원장의 해고 역시 2005년 9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특수고용직은 노동자가 아니다?

승리의 환호도 잠시, 사측의 탄압은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2005년 3월 단체협약 기간이 만료되어 4월부터 2005년 임단협 교섭이 진행되었는데, 회사측의 요구는 그야말로 노동조합을 없애라는 것과 같았습니다. “경기보조원은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가 아니니 단협에서 경기보조원에 관한 모든 사항은 삭제하고 그 대신 경기보조원들이 상조회 같은 조직을 만들면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0여 차례의 교섭이 있었으나 회사측의 주장은 일관됐고, 교섭과정에 대표이사는 단 한차례도 나오지 않는 불성실한 교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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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지 사장님! 제발 피해만 다니지 말고 얘기 좀 합시다!" 사장의 차를 대화 좀 하자며 가로막고 있는 노동자들 ]

2005년 7월12일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조정심의가 있던 날, 노동조합은 결심하기 어려웠지만 회사와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공익위원들의 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조정의 내용은 임금동결과 현행의 단협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위원장이 해고되어 있는 기간에 노동조합을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공익위원 조정안을 거부했습니다.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회사 운영에 관하여 모든 책임이 있는 대표이사가 노사간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조정의 자리에는 나오지 않고 그 시간에 클럽하우스에서 술파티를 열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추태를 벌여 모든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회사는 드디어 7월13일 단협해지 통보를 보내 왔습니다. 노동조합에서는 8월18일부터 준법투쟁에 돌입했고, 9월18일엔 하루파업을 진행했습니다. 노동조합을 탄압할 빌미를 노리고 있던 회사측은 합법적인 파업에 대해 조합간부 및 조합원 12명을 업무방해로 고소·고발하고, 근거도 없는 1억8천만원의 손배가압류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이것도 모자라 이후 진행된 총파업 출정식을 빌미로 54명의 조합원에 대해 배치중지를 가하는 등 지금까지도 부당노동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노동조합은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회사는 노동조합이 설치한 천막 등을 이유로 전기와 물을 끊었으며 업무방해 가처분을 법원에 요구해 놓은 상태입니다. 우리들은 조합원의 단결력과 지역의 연대투쟁으로 지금까지 지탱하고 있습니다. 회사측의 부당한 업무방해 가처분 또한 의연하게 맞서 싸울 것입니다. 

노동자면 노동자지 ‘특수한’ 노동자는 뭐람

투쟁을 하며 느낀 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은 우리들의 투쟁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만약 해결된다 해도 그것은 완성된 투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수고용직이라는 정말 특수한 형태의 고용관계가 지속되는 한 우리들은 똑같은 투쟁을 계속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에게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은 특수고용직이라는 노동형태에 맞선 전체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입니다. 노동자면 노동자이지 특수한 노동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특수하다면 특수한 만큼의 댓가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동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특수한 우리 골프장의 경기보조원들! 고급스포츠라는 인식 이면에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하루하루를 힘든 노동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경기보조원들이 있습니다. 열악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권리와 노동법의 보호를 받고자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만큼 더 많은 투쟁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투쟁이 특수고용직이라는 이름의 외로운 투쟁이 되지 않도록 많은 연대와 지지를 부탁합니다. 우리 또한 열심히 투쟁하여 특수고용직이라는 굴레를 벗겨 내고 환하게 웃으며, 골프장의 당당한 노동자로 다시 노동하며 살수 있도록 온힘으로 투쟁을 하겠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