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여공’을 돌아본다 왜?

노동사회

2005년에 ‘여공’을 돌아본다 왜?

편집국 0 3,305 2013.05.19 01:58

YH옥상 위에 노총 깃발 꽂아놓고
사랑하는 동지들과 한 백년 살고 싶네
임금은 최저임금 생산량은 초과달성
연근 야근 다해줘도 폐업이란 웬말이냐
YH옥상에다 노총 깃발 꽂아놓고
사랑하는 동지들과 한 백년 살고싶어


book.jpg지금은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 않는, 하지만 70년대 당시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남진이라는 가수의 ‘저 푸른 초원 위에’라는 노래가 있다. 너무나 친근한 그 곡에 1979년 신민당사 점거농성을 벌이던 YH 여성노동자들은 “YH옥상 위에 노총 깃발 꽂아놓고~”라고 개사를 해 불렀다고 한다. 식모, 공순이, 산업역군, 타이밍, 악착스럽고, 곤궁하고, 야위고, 햇빛을 못 받아 하얘진 피부……. 몇 권의 책을 통해 뇌리에 새겨진 고정관념들을 뒤흔들 신선한 자극과 흥미를 주는 책이 바로 『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이다. 

없는게 없는 여공백과사전

저자 김원에게 산업화 시기 여성노동자들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남의 집살이하던 식모, 타이밍 먹어가며 동생들 학비를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던 후덕한 누이의 모습만은 아니다. 국가와 자본, 남성 지식인이 만든 여공의 이미지를 ‘벗겨 내’고, 1970년대 민주노조 신화를 ‘뒤집어 보’며 여공들이 진정 ‘투사’였는지에 대한 당돌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여공들의 저임금 실태가 유교적 담론에 기초한 음양설의 변용이라며 바람직한 ‘표준적 여성’을 위한 ‘여공보호담론’에서 벗어난 여성노동자들이 반민족행위자로 지탄받는 세태를 지적한다.

지난해 한 강좌에서 당시의 주역인 YH무역의 최순영의원이나 효성물산의 김영미 전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마침 한 노동조합 간부가 그 어려웠던 시기에 어떻게 노동조합 조직활동을 했었는지 묻자 색다를 것도 없는, 그러나 의미심장한 대답을 들려줬다. 그 어느 무엇보다 조합원들과 살 부비고, 티격태격하며 일상의 작은 부분부터 그들과 함께하는 모습속에 쌓이는 신뢰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먹고, 마시고, 노래부른다고 될 일은 아니다. 저자는 여공의 문화를 살펴보는 장에서 당시 읽혔던 책부터 불리던 노래, 토론문화까지 세세하게 나열해 주고 있다. 이 자체로도 사료적 가치가 충분한 내용이다.

한국사회 지배담론과의 한판 싸움

신병현 홍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노동사 연구의 새 장을 열어 가고자 하는 산물이자 여공 담론의 계보학을 그려냄으로써 우리 사회 남성중심주의 노동 담론과 노동운동 담론에 의해 몰수되었던 ‘익명적 지식’들을 들춰내고 있다. ‘여성’과 ‘노동’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통해 한국사회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그간의 지배적 담론들을 들춰내고 질문을 퍼부어 댄다. 

그 중에서도 ‘민주 대 어용’이라는 산업화 시기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지배적 담론을 반추해 봄으로써 여공에 대한 담론이 오늘날 어떻게 현재화되었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되새겨 보게 된다.(김원 짓고, 이매진 냄. 3만5천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