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발걸음, 넓어진 기반

노동사회

더딘 발걸음, 넓어진 기반

admin 0 2,286 2013.05.07 09:18

2001년은 진보정당에 유례 없는 한 해였다. 2001년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길만한 해로 기록되지 못할 것임에도, '유례 없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말 그대로 진보정당이 경험해보지 못한 바, 즉 선거 없는 최초의 해였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 십여 년 또는 80년대 이래의 진보정당사를 뒤돌아보면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는데, 모든 진보정당과 정치단체들이 선거 직전에 결성되고 선거 직후에 해소되었다는 점은 가장 두드려지는 공통점이다. 우리당은 선거 후에 존속한 첫 진보정당이었고, 올 한 해는 일상 시기와 진보정당이 공존한 첫 시기였다.

아직 갈 길이 멀다

jylee_01.jpg정당의 정책담당자로서 한 해를 돌아보며, 유인물 몇 장 뿌린 것을 '대국민 선전'이라 주장하거나, 집회 참석자 수나 시위대와 전경과의 충돌 여부를 기준으로 '위력적인 투쟁'을 벌였다는 식의 자족·허장성세·아전인수의 평가를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릇 사업이란 특정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가에 따라 평가해야 하는 바, 우리당의 평가는 국민 인지도와 정책 지지도의 상승, 그리고 정책과 주장의 관철 정도, 공직 선거의 성패, 당원과 조직의 확대 따위가 기준이 될 것이다.

이에 따르면, 당의 2001년 사업 중 성공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상가임대차보호법 입법운동이다. 

10월23일까지 10개 중앙일간지에 민주노동당이 보도된 기사는 386건인데, '상가임대차'는 무려 204건에 이른다. 이것은 정당의 제 역할이라 할 사회적 의제 설정과 당론의 확산에 당이 성공한 유일한 경우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입법운동이 17개 사업 중 앞서가야 한다거나 절실하다는 판단이 당 안에 있었던 적은 없다. 이 운동의 성공은 사업을 추진하는 부서의 적극성과 능력이 객관적 상황에 부합한 데서 연유한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입법운동은 1만여 건에 이르는 상담이 웅변하듯 민주노동당의 지위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하였다. 

이에 비해 '의료보험료, 전월세 인상 등에 대한 대응과 사회보장제도 개혁' 사업은 별 성과를 내지 못했고, '정당명부제 등 정치관계법 개정' 사업은 제대로 시도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당에서 공식 확정된 대국민 사업 17가지의 상당 부분이 비슷한 처지다. 
이런 결과는 당이 처한 조건과 가진 능력을 정확하게 고려하지 않고, 여러 계급 계층 및 부문 단체의 요구를 끌어안으면서 사업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당이 움직인 데서 기인한다. 또한 사업을 담당할 주체 마련이나 대국민 여론 작업 같은 초보적인 사업이 제대로 조직되지 못한 상태에서 당력을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과제에 분산시키려는 흐름도 지지부진한 당 활동에 한몫 했다. 그리고 우선 순위를 세워 사업의 선후와 경중을 따져 실행하기보다는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진행시킨 사업 방식도 문제였다. 

이런 점에서 아직 당은 사업과 활동의 기획력과 집행력, 그리고 조직력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갖고 있지 못하다. 이로 인해 당은 선거가 없었던 올해를 조직의 골간과 체계를 바로 세우고 능동적으로 사업을 펼치는 한 해이자 2002년 양대 선거를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으로 만들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질 못했다. 

'정권 퇴진' 슬로건의 혼란

올해 당의 사업 목표는 명확히 정리되지 못하였다. 이것은 당 사업이 올바른 방향을 갖고 체계적으로 집행되는 것을 방해하는 주된 요소였다. 특히 '김대중 정권 퇴진'에 대한 방침이 깔끔히 정리되지 못함에 따라 사업의 채택과 집행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김대중 퇴진'이라는 구호 또는 노선의 근원지는 단연 민주노총이다. 야만적인 정리해고에 더해 하반기에는 수장까지 빼앗긴 민주노총의 선택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김대중 퇴진'이 논란을 빚은 것은 민주노총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였다. 민주노총은 정권 퇴진에 대한 내부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3월에 있었던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의 사업계획 심의에 '김대중 퇴진'을 제안하였다. 이에 대해 주로 민주노총 소속의 중앙위원들이 각각의 해석을 하며 찬반을 논했고,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압도적인 표차로 퇴진안을 부결시켰다. 그리고 원안인 '불신임투표의 추진' 역시 부결되어, 민주노동당의 사업은 목표를 상실한 채 떠다녔다. 이에 적지 않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섭섭함을 토로했고, 자칭 '좌파' 단체들은 민주노동당의 타협성을 비난했다. 하지만, 문제는 '퇴진'을 직접적인 행동 목표로 삼든, 선전 슬로건으로 채택하든 이것의 타당성과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점이다. 

먼저 김대중 정권 퇴진 슬로건의 타당성 여부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안의 일부는 김대중 통일정책에 대한 지지의 뜻으로 '퇴진'에 반대하였다. 한편 더 많은 사람들은 김대중 정권의 반노동자성에 더욱 주목하면서도 '누가 정권을 잡을 것인가'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정권 퇴진은 새로운 정권의 창출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를 수반한다. 그렇다면, 김대중 정권을 대체할 정치세력은 누구인가? 그 정치세력의 성격은 어떠하고, 새 정권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설혹, 정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한나라당까지 배제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우리 세력이 연합 집권하는 것이 타당하거나 무정부 상태를 감수할 수 있는가? 정치적 태도로부터 바로 전술을 세우려는 억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김대중 정권 퇴진이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너무도 쉽게 드러난다.

둘째, 김대중 정권 퇴진의 현실성 여부다. 심지어 선전 슬로건일지라도 특정한 정치 슬로건의 선전은 가까운 미래(이 경우에는 내년 대선 전)에 그런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 때, 운동 주체의 실천으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선전 슬로건은 행동 슬로건과 별개가 아니라, 행동 슬로건에 선행하는 것이다. 우리 실정은 정권 퇴진은커녕 조직 유지마저 급급하다. 물론, 김대중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반대가 폭넓게 자리잡고 있지만, 그것은 국정 운영에 대한 반대지 결코 정권의 진퇴에 관한 것이 아니다. 국민은 군사정권과는 달리 합법 절차를 거친 김대중 집권기에 정권 퇴진이라는 초헌법적 상황이 초래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우리는 그를 극복할 정당성, 선전력, 조직력, 물리력 중 어느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하다. 

셋째, 투쟁 주체 문제다. 퇴진 투쟁의 주체는 누구이며, 수권의 주체는 누구인가? 1987년 경험이 보여주듯 정권의 향배는 아무리 격렬하고 폭넓을지라도 사회세력 사이에서 다투어지는 게 아니라, 이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돼 있는 정치세력의 결집과 준비 정도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정치적 힘이 종속 변수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의 수준은 사회적 영향력을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결집시키려는 단계에 아직 머물러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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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월 30일 열린 민주노동당 창당대회에서 당원들이 '민주노동당 만세'라는 피켓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 민주노총 ]

10·25 재선거 경험과 꾸준한 당원 확대

지난 10월25일 동대문을과 구로을의 국회의원 재선거는 당의 지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계기였다. 조직력이 약한 두 곳에서의 득표 저조를 '위기'라며 위축될 필요는 없겠지만, 지난 총선 당시 서울의 득표나 평소 지지율보다도 낮은 성과를 얻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재선거가 주는 가장 소중한 교훈은 '지역의 선거 정치' 이상으로 '중앙의 여론 정치'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당과 그 전신 조직이 전에 내놓은 대선과 총선 평가는, 선거가 지역에서의 수공업적이고 물리적인 노력이 아니라 중앙 차원의 '정치 활동'에 의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중앙당 간부의 지구당 선거운동원 파견에 따른 중앙당의 공백은 '중앙 정치 활동의 공백'을 낳았다. 이는 인력과 자원의 부족이라는 당의 만성적인 고민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당이 인력 구조와 조직 운영, 그리고 일상 활동에서 아직 '아마츄어'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다행히, 중앙 정치 활동의 부재나 선거 '부진'이 민주노동당의 당세 확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올 초 1만 명을 조금 넘던 당원은 꾸준히 늘어 2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광역지부-지구당 체제로의 개편과 조직 확대 목표는 상당히 달성되었다. 아울러 전국연합 등 사회운동 세력을 합류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한국노총, 전농 같은 주요 대중조직의 참여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정치세력화에 소극적이던 사회단체들로부터 긍정적인 의사를 이끌어 낸 것은 다소 더디지만 '재창당'이라는 목표가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 사업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기반 확대가 이뤄지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이는 당 정치활동의 성과가 국민 속으로 확산되고 있다기보다는 애초 함께 했어야 하는 운동 진영들이 뒤늦게 합류하는 데서 연유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당이 본격적인 정치 활동보다는 여전히 이를 준비하는 내부 정비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뜻한다. 

'진화'를 넘어 '전환'으로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2등 한 김영삼은 1992년에 대통령이 되었고, 3등 한 김대중은 1997년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꼴찌 한 김종필은 십 수년 맹위를 떨쳤다. 내년 대통령선거는 '1987년 세대'가 물러나고 뒤를 이을 신진 정치세력이 자웅을 겨루는 첫 기회다. 그리고 그 결과는 1987년 대선이 그랬듯 향후 십 년 넘게 우리 사회를 규정할 것이다. 따라서 내년 대선에서 당이 얼만큼의 위세를 과시하느냐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와 민중의 삶이 어떻게 변해갈지를 판단하는 선행지수가 될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는 당에 큰 영향을 끼치겠지만, 당의 존폐를 좌우하지는 못할 것이다. 울산의 구청 두 곳을 장악하고 있는 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낼 것이지만, 주요 광역자치단체를 장악하는 데까지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대선 역시 지지표를 어느 정도 늘리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가늠될 것이다. 사실 내년 양대 선거의 진정한 성과는 2004년 총선의 성공에 얼마나 기여하느냐에 달려있다. 

내년 양대 선거를 통한 점진적 발전을 2004년 총선에서의 약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1997년에서 이어지고 있는 1단계인 창당·정비의 단계를 내년 대선을 끝으로 마감하고, 2단계인 안정·약진의 단계로 나아가는 과제. 둘째, 2000년 총선 울산 북구 사태 이후 계속되고 있는 조직적 혼란을 극복하고, 당을 수권을 향해 용의주도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으로 전환시키는 과제.

2001년은 당이 명확히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목적 의식적인 활동을 펴기보다는 객관적인 상황과 자생적이고 돌출적 요소들에 굴종하는 수준에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한해였다. 이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필자의 문제 의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87년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운동 역량을 총괄하고 있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민주노동당의 각급 조직과 당원은 그 시기에 훈련받았고, 그 시기의 감성과 관성에 의존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87년의 소부르주아적 열정, 경직된 노동자주의, 민족민주운동의 잔재들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그러나 30년이나 맹위를 떨치던 개발독재가 변화된 현실 앞에서 한 순간에 몰락했던 것처럼 우리의 재산들 역시 부실하기 그지없다.

민주노동당이 미래를 개척코자 하는 진보정당이라면 과거의 유산들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계급 이익을 여러 정치적 언술로 왜곡하거나 미화하던 한국 정치는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 노골적인 계급 이익이 벌거벗고 부딪히게 될 정상화된 한국 정치는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강요하고 있다. 지금은 축적적 보완이 필요한 정상시기가 아니다. 지금은 진화가 아닌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이재영,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성숙과 노동계급 정치의 지연], {이론과 실천}, 2001. 5.)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