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 그리고 차별철폐의 사이에서

노동사회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 그리고 차별철폐의 사이에서

편집국 0 4,682 2013.05.19 01:40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운동의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당위적인 상식’이 대우캐리어 노동조합,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GM대우 창원지부, 기아자동차 등 정규직 노동조합 집행부(조합원)의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뒤집어지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정규직의 ‘직접’적인 반응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의 구호 밑에서 많은 투쟁을 일어나고 있고, 굴곡은 있지만 실제 축적되는 성과도 있었기 때문에 최근 벌어지고 있는, 특히 GM대우 창원지부의 집행부 사퇴와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총회 부결은 비정규직 투쟁을 새롭게 조망할 필요를 제기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 걸까? 이 글을 쓰기 위해 몇 가지 자료를 찾던 중 민주노총의 2003년 11월 조합원 의식조사 결과를 보게 되었다. 이 가운데 비정규직과 관련된 내용만 살펴보자.

비정규노동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69.3%)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시(81.5%) 
파견제폐지(49.1%) 
파견노동자 보호(43.7%) 
정규직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일할 가능성(76.5%)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공동운명체(57.5%)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70.4%) 
감원 시 비정규직 먼저 해고해야(57.5%) 
비정규직노동자가 정규직화하면 정규직노동자의 고용이 불안정해 질 것(41.0%),


거칠게 요약하면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아져 고용불안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고, 비정규직 ‘차별철폐’는 압도적으로 동의하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내 고용이 불안해지니까 감원 시에는 비정규직을 먼저 해고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설문조사 결과를 좀 더 찾아보지 못해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적어도 ‘당위적으로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정규직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식은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가면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고용불안에 대해 단순한 정서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할 수 있다.

98년 정리해고 투쟁 이후에 현대자동차 조합원들 사이에 “회사도 노조도 못 믿겠다”는 정서가 확산되었고, 조합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집단(노조)이 아닌 개인적으로 풀기 시작했다는 진단이 ‘막연한 정황’을 표현한 예라면, GM대우 창원지부의 지도부가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서다가 조합원으로부터 지도부 불신임을 받고 총사퇴한 것과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공동투쟁을 결의하기 위한 총회가 부결된 것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조합원들의 인식이 부족해서? 이러한 문제제기는 합당할 수 있지만 뭔가 부족하단 느낌이 든다.

두 가지 사례가 주는 교훈

장황하지만, 두 개 조직의 사례를 보자. 민주노총 17차 대의원대회(2000.1.18)에서는 “비정규직 사업을 위해 조합원 1인당 1,000원을 특별모금한다”고 결정했었다. 꼭 1년이 지난 19차 대의원대회(2001.1.18)에서 보고된 모금 액수는 목표액의 24%였다. 23차 정기대의원대회(2002.1.30)에서는 모금 현황을 총괄보고 하고, 납부 촉구공문 발송, 각종 간담회와 교육홍보를 통하여 납부하도록 한다는 안건이 제출됐지만 이날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이 안건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이날 사업계획안 토론과정은 투쟁 수위와 관련해 ‘총파업’이냐 아니면 ‘총파업에 준하는(또는 포함한) 총력투쟁이냐’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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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대우자동차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 모습 - 출처 : 금속노조 GM대우 비정규지회 ]

2002년 말 현재 수입 총액은 1억 6천3백만원으로 애초 목표액의 32.6%에 불과했다. 3년간 전체 조합원 대비 모금률이 4분의 1에 불과했으며, 절반을 넘긴 연맹은 금속산업연맹(54%), 병원노련(57%) 두 곳뿐이었다. 2003년 제1차 중앙위원회(2003.1.14)는 미조직 5억 기금 모금사업을 실제 올해 완료할 수 있도록 대의원대회에서 특별결의로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으나 뒤이어 소집된 제28차 정기대의원대회(2003.2.11)에서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다만 제4차 중앙집행위원회(2003.2.26)는 “미조직 5억 기금 모금에 박차를 가하고, 조직별로 미조직 비정규 사업담당자를 배치하는 것을 주요하게 결의한다”고 재차 결의했을 뿐이다. 그리고 미조직 사업비 5억원 특별모금은 여기서 사실상 종료된다. 사업평가에는 “왜 우리가 돈을 내야 하는가”라는 문제제기도 있었다는 표현이 나오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다.

다른 사례로서 금속노조 12차 정기대의원대회 회의자료(2004.10.28)에 정리된 비정규, 미조직사업에 대한 평가 내용은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미조직사업의 비중이 높고 활발한 조직화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지역지회의 미조직사업지원을 위해 1, 2기에는 조합원 1인당 1천원에 해당하는 사업비를 매달지원 하였으며, 3기 1년차에는 지역지회 규모 및 사업과 활동에 따른 사업비를 지원하고자 하였다.
비정규직 조직화 양상은 ① 임단투 및 노사협의회를 통한 장기고용 임시직노동자의 정규직화(VDO, 캄코 등), ② 신규가입 시 비정규직까지 조직대상 포함, 공동투쟁 전개(대정고분자),  ③기존지회(분회) 사내하청가입 추진 → 공동투쟁(일성테크), ④ 자발적 조직화 → 공동투쟁 모색(현자, 동남엔지니어링), ⑤불법파견 대응을 통한 일부정규직화, 직접고용 전환(경주지부)이다.
아산사내하청지회의 2004년 투쟁선포식을 충남지부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지부 임단투와 전진대회를 결합시켜 현자아산공장 앞에서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산별 최저임금 월 통상임금 700,600원 합의는,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사실상 최초로 산별 최저임금을 확보해냄으로써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소외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노동자간 격차를 줄여나가려는 산별노조로서의 방향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어느 조직이든 자원을 배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조직 내의 권력 지형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이다. 정부의 예산편성 과정에서는 예산배분권한과 집행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치집단과 관료집단이 자신들이 확보할 수 있는 인센티브에 비례해 예산을 배분한다고 한다. 즉, 가장 예산배분이 적게 되는 영역은, 예를 들면 저소득층의 건강보호를 위한 사업이 되는 식이다. 저소득층에 대한 예산배분을 크게 해봐야 정치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산을 배분하더라도 최소한의 구색 맞추기 이상 나아가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어떠한가? 사회적으로는 물론이고, 노동조합 운동 내에서도 소수이며 권력이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기금 ‘모금’은 지지부진하다. 조합원들 정서만 탓할 일인가? 조합원 정서를 뛰어 넘지 못하는 ‘조직’의 문제가 있다. 돈을 내거나, 돈을 걷는 것에만 집중한 것은 아닐까? 자원은 사업을 집행하기 위한 최대의 무기이다. 결정이 아니라 결정을 담보하기 위한 실천이 있어야 한다.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전국단위 조직의 자원은 기업별노조의 틀에 갇힌 노동조합과 조합원들로부터 나온다. 확보된 자원의 집행은 중앙단위가 담당하지만 문제는 자원이 확보되는가에 있다. 그 어떤 방침과 정책도 자원이 없으면 공허한 문구에 불과하다는 것은 어느 조직에서나 당연하다.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조합원들의 정서가 현실을 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의식적인 자발성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금이 아니라 이에 대한 제도를 갖추는 것이 한 방식일 수 있을 텐데 금속노조가 하나의 답을 제시하고 있음을 주목하자. 산별노조에서 집중화된 자원은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조직적, 물적, 인적 지원을 ‘제도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조직구조는 자원을 집중하고 배분하는 채널로서의 역할을 한다. 구조가 모든 것을 규정하지는 않지만, 구조가 바뀌면 구성원들의 자발성에만 의존해야 하는 자원집중과 배분을 ‘조직’이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장과 현실 사이의 간극

예전 비정규센터에서 발행하는 『비정규노동』에 실린 좌담 글을 읽다가 “비정규직 철폐인가, 차별철폐인가”라는 소제목을 본 기억이 있다. 이 둘은 화해할 수 없는 대립물인가? 4년 전의 사건부터 최근의 사건까지 일련의 흐름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금속산업연맹에서 제명까지 당했던 대우캐리어 노동조합. 계절적 사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일시 고용했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순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동등하게 고용불안의 칼날 위에 서게 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게 해달라고 노심초사 하는 것 이상으로, 정규직은 자신들의 고용불안 때문에 노심초사 하게 된다. 누구의 노심초사 하는 심정을 더 고려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물음은 이렇게 돌려볼 수 있다. 비정규직을 조직하기 위해 조합 가입원서를 직접 받으러 다닐 정도로 열심히 했던 정규직 노동조합이 왜 연맹에서 제명당할 정도로 태도가 돌변했는가? 

금속노조에 있을 때의 경험이다. 대우캐리어와 비슷하게 계절적 수요 때문에 임시직을 고용할 필요가 있다는 집행부의 판단에 따라 회사와 노사협의회에서 임시직 고용에 대해 합의한 지회가 있었다. 해당 지회의 일부 세력으로부터 문제제기가 올라왔다. 금속노조의 방침을 어긴 것 아니냐고. 여기까지만 들었으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현장활동가들의 충심어린 고민’으로만 들었을 지도 모른다. 해당 지회 집행부에게 확인해본 결과, 3개월 정도의 한시적 고용으로 정규직 조합원들에게는 영향이 없고 기존의 관행이라는 답신이 왔다. 문제를 제기한 쪽은 권력의 대척점에서 경쟁하던 쪽이었고, 집행부는 기존대로 회사와 협상을 하는 의례적인 관행을 반복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행에서는 문제제기한 쪽도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이들의 생각 밑바탕에 임시직의 고용조건에 대한 문제인식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관행이고 필요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고용을) 인정해야 한다. 

정규직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지회 집행부의 판단은 정규직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요, 옳은 것’이 된다. 하지만 이들의 고용조건이 정규직과 견주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파악하고 이것이 미칠 영향을 고민하지 않으면 저임금에 기반한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높여 정규직 고용불안의 요인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 밑에서 현실적인 문제-비정규직에 대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개량적 조치(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조폭에 의한 칼부림의 원인이 되었던 월차휴가 사용의 문제가 대표적일 것이다)가 방치되어 버리면 구호를 구체화하기 위한 실천은 아예 이루어지지 않거나 과잉실천이 되어 조합원들로부터 고립을 당한다.
현실을 ‘무시’하자는 쪽과 현실에 ‘매몰’된 관성 사이에서 놓치고 있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가 비정규직에 대해 쏟아 붇고 있는 이념적 사탕발림과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부메랑이 되고 있다.

완성차의 경험이 남긴 것

현대자동차 이상욱 집행부가 2년 연속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처리와 관련해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2005년 임단협 합의안 중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비교할 수 있는 내용을 간추리면, 정규직은 △임금 89,000원 인상, 추석·설 휴가비 각 50만원 인상, 경영목표 달성 성과금 200%, 하반기 목표달성 격려금 100%, 3사 제도개선 격려금 100만원, 품질향상 및 생산성 향상 격려금 100만원 △주간연속 2교대제 2009년 1월1일 시행 △강병태 해고자 석방 후 본인 요청 시 1개월 이내 복직 △정규직 13명 고소고발 쌍방 철회, 손배 가압류 철회 등이고, 비정규직은 △기본급 82,770원 인상(시급 344원 인상, 정규직 대비 93%) △성과급: 2005년 경영목표 달성 격려금 200%(연말),  2005년 하반기 생산목표 달성 격려금 100%(체결 즉시), 일시금 60만원(체결 즉시), 별도 격려금 60만원(11월 중) △8월12일 이후 4공장과 연동한 비정규직 징계 최대한 선처, 고소고발 철회 등이다. 불법파견과 관련한 특별교섭은 3자(현자노조, 비정규직, 현대자동차) 실무단위 협의를 통해 1개월 이내 개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합의내용만 보면, 이상욱 집행부는 할 만큼 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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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 비정규너동자였던 류기혁열사 49제 - 출처 :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 ]

“그럼에도 불구하고, 105명의 비정규직노동자 해고(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10월12일 3공장 2명, 4공장 2명이 복직을 쟁취하여 현재 울산공장 비정규직 해고자는 98명이다), 235일 간의 5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투쟁, 류기혁 열사의 자결 등 처절하게 투쟁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현자노조 이상욱 집행부의 배신으로 교섭 한번 못해보고 끝나고 만 것이다”(현장투 평가서).

이들의 평가는 틀리지 않다. 벌어졌던 사안에 비추어 볼 때, 임금인상액의 격차해소라는 ‘돈’문제로만 축소시켜 버린 대응방향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으로 물어보자. 현대자동차에 고용되어 있는 9천여명의 비정규직을 당장 정규직화 할 수 있는가?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비정규 사업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왔던 한 활동가를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9천여명 가운데 산재자 2천여명과 소위 빨간조끼로 표현되는 대의원 등 간부 500명을 대체하기 위해서만도 2천5백명의 상시 비정규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중에는 군대에 가야 될 연령대서부터 40, 50대 연령층까지 그 분포가 다양하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9천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라고 요구하는 게 타당한가? 그의 판단으로는 9천여명 중 정규직화 할 수 있는 요건에 부합하는 인원이 대략 1,500명쯤 된다고 한다. 이러한 수치를 놓고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전원 정규직화 요구에서 출발해, 현실적인 ‘타협’을 하는 방식과 현실적인 요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조합의 통제 하에 이루어지는 비정규직의 엄격한 사용제한을 이루어 나가는 방식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많이 요구하고, 적당하게 타협한다는 교섭전술로만 접근하기에는 비정규직의 절박함이 너무 크지 않은가?

노동부에 의해 불법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전원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힘든 일을 비정규직에게 떠넘기거나 바로 옆에서 일하는 비정규노동자와 눈을 마주치길 피하며 마음속에 감추어 두었던 원죄의식은 다 어디로 사리진걸까? 이 때문에 올해 1월 전·현직 위원장 및 노조간부들이 불법파견과 관련해 반성한다는 기자회견까지 한 것 아닌가?

노동조합의 교섭결과에 대해 집행부가 책임져야 하다는 측면에서 이상욱 집행부가 비판받을 여지는 많다. 집행부에 당선되기 전, 현장조직에 몸담으면서 자신들이 주장해왔던 내용에 견주어보면 비판의 여지는 더욱 크다. 그러나 집행부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전체 노동조합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이상욱 집행부만 경험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반대로 GM대우 창원지부의 경우는 그 의지와 추구하는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그러한 의지를 현실화하기 위한 조직화 과정이 없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차별 철폐를 가로막는 비정규직 철폐의 ‘철폐’

가장 최근의 기아자동차, GM대우 창원지부의 경우는 주장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데 무엇이 필요한가를 절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주장을 현실화하기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과 이러한 실천은 주장의 반복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해 우리가 기울였던 노력을 생각해보자. “우리의 권리를 찾으려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현장의 동료들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누가? 라는 문제에 부닥치면 늘 막막했고, 우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수한 학습과 다양한 견학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주장은 당연하고 지속적으로 외쳐야 하는 구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의 실천을 가로막는다면 차라리 비정규직 철폐를 ‘철폐’하자. 주장은 추상적이고 실천은 구체적이다. 추상적 목표는 실천이라는 구체성이 없으면 공허하다.

비정규직 투쟁에서 진짜 문제는 비정규직 철폐의 주장을 조합원이 수용하기 어려울 만큼 맹목적인 요구로 구체화시킨다는 데 있다. 이념적 지향과 연대의 긍정성을 주장하면 그걸 모르는 조합원이 있으랴마는 그것 자체로 다수 조합원의 정서를 한순간에 뒤집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에 만난 완성차노조의 현장 활동가는 조합원의 상태를 이렇게 전한다. 휴식시간에 휴게실이나 탈의실에 비정규직이 자리 잡고 누워 있으면 최소한 상대방을 향해 나가라는 식의 노골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러 들으라는 것처럼 욕 한마디 하고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것이 현실이다. 알게 모르게 정규직 내부에 잠재해 있는 차별의식과 우월감에 고용을 갉아먹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겹치면 “니들이 하는 말은 다 옳다”는 냉소만 돌아오는 것이다. 물론 치우친 예를 들어 전체를 폄하하지 말라는 비판을 한다면 달게 받겠다. 그럴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현실을 극복할만한 실천보다는 주장에 치우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원칙 밑에 깔린 비현실성을 경계하라

한 가지만 더 보자. 이 글에서 언급된 완성차기업으로 추측되는 ‘A’라는 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를 연구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A기업과 A노조에 대해서 과잉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러한 과잉기대는 가능한 혹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현실’을 넘어서는 과도한 기대를 품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품고 있는 정규직화에 대한 강한 열망과 정규직 노동조합에 대한 요구는 이런 기대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현장에서부터 무너진다.

“노동조합이 마련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회사 측의 합의조치 이행지연과 현장대의원들의 호응결여, 비협조로 인해 제한된 성과만을 거두게 되었다. 이들 대의원들은 조합원의 표를 의식하여 작업장 내 정규직노동자들과 하청노동자들 간의 차별적인 지위를 보다 고착화하는데 적잖은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이병훈·윤정향, 「비정규노동의 작업장 내 사회적 관계」, 정이환 외(2003), 『노동시장유연화와 노동복지』 )

집행부를 견제하기 위해, 혹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공식 조직체계인 대의원 구성에서 다수를 차지하려고 노력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위 인용글에서 보이는 대의원은 어느 조직 소속인가. 그리고 이러한 대의원들을 배제하지 못하는 현장조직의 역량은 무엇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주장과 구호로 내세우는 소위 계급적 연대의식과 투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투쟁과정을 통해서라는 경험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계급성을 망각한 경제주의에 매몰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미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조합원들보다 반보 앞에 서서 의식적 투쟁과 활동을 한다는 활동가들조차 전투적 실리주의에 빠져 있다는 진단은 이제 술자리 안주감이 될 정도니까. 

필자의 생각에 비정규직 문제이든 아니면 그 어떤 다른 문제이든 원칙적인 것처럼 보이는 주장 밑에 깔려 있는 비현실성의 문제를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개별’ 사안을 혁명적인 혹은 계급적인 투쟁처럼 떠들어대고,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개량이고 비판의 대상인 것처럼 제기하는 조급성이 문제이다. 이것은 소위 ‘계급적’이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 타협해서는 안 될 것, 개량에 불과한 것으로 몰아가고 실천의 양과 폭을 극도로 제한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조직은 이기적이다. 조직 자체가 이념적일 수는 더더욱 없으며, 조직을 구성하는 인간들의 수준만큼 조직은 움직인다. 그리고 구성원의 이해관계가 불일치할 경우 조직은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움직이며 현실에 안주한다. 문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되, 그러한 경로에 조직원 다수를 동참시키기 위한 실천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개량투쟁을 하되 개량에 머물지 않는 것, 여기엔 싹이 있다

직종별 노조가 자신의 생존위기에 닥쳐 산별노조로 전환했듯이, 정규직 기업별 노조의 수명은 이미 다해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노동운동의 미래와 새로운 주체에 대한 희망은 비정규직에게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는 단순한 우려가 아닐지 모른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은 연대의 강화라는 적극적 방식과 개별적으로 살아남으려는 소극적 방식이 있다. 현재 조합원들이 선택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현장활동가들의 선택은 조합원과 다른가? 조합원들이 개별화되고 있고, 실리주의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으며,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들이 회자되고 있는 내용이다. 현장활동가들 또한 이러한 조합원들의 표에 매달려 어떤 형태로 선택을 하든 기존 현장조직들 중에서 집행부가 나올 수밖에 없는 권력의 독과점 구조 내에서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금속노조가 보여주고 있는 모범을 확산시키기 위한 산별전환, 그 어떤 주장을 하든 권력을 향해 이합집산하면서 특권화 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활동가집단의 자기성찰과 새로운 정파운동의 모색, 개량투쟁을 하되 개량에만 머물지 않는 것, 경제투쟁의 과정에 정치투쟁의 싹을 키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