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타협은 문제의 ‘해결’이 아닌 ‘연기

노동사회

현실 타협은 문제의 ‘해결’이 아닌 ‘연기

편집국 0 2,671 2013.05.19 01:33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라는 명칭은 아직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공공연맹의 역사를 반영하고 이후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공공연맹을 하나의 노조로 만들자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현재는 ‘공공산별노조’라는 약칭을 쓰고 있다.

산별노조 건설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가 난무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어느 순간 현실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젠 산별노조 건설에 대해 비판적인 문제제기와 회의적인 시각보다는 ‘어떤 산별노조를 만들 것인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ihe_01.jpg공공연맹의 산별노조 건설 논의는 1999년 3개 연맹 -정부산하기관 중심의 공익노련과 사회보험노조, 조폐공사, 한국통신을 중심으로 한 (구)공공연맹, 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 철도노민추를 중심으로 한 민철연맹의 통합을 말한다.- 의 통합과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공공연맹의 정식명칭이 ‘공공운수사회서비스연맹’으로 불리는 것도 이러한 역사를 반영한 것이다. 그 후 공공연맹은 1999년에는 ‘공공연맹 발전특위’를 구성하고 활동결과 보고서를 채택하여 2001년말까지 산별노조 건설을 위해 ‘산별노조건설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2004년에는 두 개의 ‘공공산별노조 건설 경로와 일정(안)’을 제시하였다. 두 안은 모두 ‘공공산별노조’ 건설을 목표하고 있지만, 첫째 안은 연맹 내부의 몇 개 업종을 묶는 소산별노조 -‘소산별노조’라는 명칭의 의미는 지향에서 대산별노조의 과정에 있다는 것과 규모의 면에서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건설 단계를 거쳐 2006년까지 공공산별노조를 건설하자는 내용이었고, 둘째 안은 2006년에 공공산별노조를 바로 건설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두 안 모두 공공산별노조의 조직체계는 업종본부를 중심체계로 하고 지역본부를 수평적인 연대단위로 설정하였다. 

공공연맹은 이 안을 바탕으로 소산별노조 건설을 지원하였고 2004년에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산별추진위원회’로 재편하는 등 실천활동도 함께 진행해왔다.
두 안은 모두 산별노조 건설 목표시점을 2006년말로 잡고 있어서 남은 기간 동안에 다양한 실천을 할 수 있다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업종별 소산별노조들이 속속 건설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판없이 실현되어 왔다.      

공공산별노조가 필요한 이유들

그러나 ‘산별노조 건설’의 문제는 노동조합을 둘러싼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과거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 고민거리가 되었다. 변화의 내용과 노동운동의 현재 상황을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첫째, 현재의 노동조합이 한국사회 노동자계급을 진정으로 대표하고 있는지에 대해 반성을 해봐야 한다.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자 중 11%만을 조직하고 있는 현실, 게다가 500인 이상의 중대규모사업장이 이 가운데서 72.5%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 또한 노동조합 조합원의 80% 이상이 정규직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상황은 단지 수치의 높고 낮음의 문제는 아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 노동조합들의 투쟁 성과가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또한 자본의 전략이 1998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수출을 중심으로 한 확대투자전략에서 단기이익을 중심으로 한 수익관리 방식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대규모기업들의 성장수익 가운데 일부가 중소규모의 기업과 이익으로 돌아가던 부분마저 사라졌다. 오히려 대규모기업들은 단기수익증진을 위해 정규직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외주용역 등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사업장의 노조은 경제위기 이후 ‘고용안정’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안감 증대로 인해 기업내에서의 고용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같은 사업장에 있는 하청,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침묵하였다. 그 결과 단위노조의 임단협 투쟁이 해당 사업장 조합원 이외에는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들어 노동조합들이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내용을 의제로 삼고 투쟁에 나서기도 하지만, 투쟁의 정도나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조직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멋쩍은 면이 있다.  
게다가 한국은 새로운 단체협약이 특정한 지역, 산업까지 적용되는 ‘구속력’이 OECD국가중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기업별노조 체계를 가지고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각 기업단위의 투쟁이 기업단위의 문제로만 치부되는 탓이 가장 큰 문제이다.

둘째,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공공부문의 상시적 구조조정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선택문제가 있다. 정부는 공기업에 대한 경영평가와 예산지침,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노사관계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어, 지금은 공기업의 개별적인 단체협약마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단위노조가 여태껏 활동해오던 방식으로는 이러한 한계를 더이상 극복할 수 없으며 새로운 선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셋째, 교섭내용과 교섭구조의 불일치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과 ‘저성장 고실업’이 구조화되면서 ‘고용안정’과 ‘사회안전망 강화’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으나, 이것은 기업단위 교섭에서 해결할 수 없는 과제이다. 산업적, 사회적 요구를 기업별 교섭에서 다루기도 어렵거니와, 다룬다 해도 해결방안이 나오기 어렵다. 즉, 요구되는 교섭내용은 산업별, 사회적 수준인데 교섭구조는 기업별 수준이라는 불일치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넷째, 2007년부터 시행되는 기업단위의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노동조합을 뒤흔들어, 새로운 노사관계 지형이 짜여질 것이란 불안감이 불거지고 있다.

공공산별노조의 교섭 대상은 부처가 아닌 정부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연맹은 그동안 주로 ‘논의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공공산별노조 건설 문제를 이제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려 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어떤 공공산별노조를 건설할 것인가’이다. 2005년 공공산별노조 건설토론(안)(이하 토론(안))은 이상과 같은 현실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조직적 무기는 무엇이고, 어떤 내용이 채워져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한 결과다.

공공연맹은 이미 건설된 여타의 산별노조와 다른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2만5천명의 조합원이 소속한 노동조합부터 5명으로 구성된 노동조합까지 약 170여개의 노동조합이 있고, 업종 또한 다양하며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노동조합이 30여개에 이르는 등 어느 하나 새로운 조직을 설계하는데 만만한 조건이 없다. 그러나 다행히 공공연맹에 가입되어 있는 노동조합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좌지우지 되고, 그 결과 공공서비스의 질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산별노조 조직 설계의 핵심은 정부의 정책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구조, 힘을 최대로 모을 수 있는 조직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연맹을 해체하고 하나의 노동조합’을 건설하자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 전제 속에서 모든 내용이 파생된다. 이렇게 하나의 노동조합을 만들 경우 전국에 사업장이 있는 노동조합 또는 전국에 가맹노조가 있는 연맹이 그렇듯이 기본체계 또한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설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라 생존이 좌우되는 기업별 노동조합체계를 극복하고 산별 체계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내용적으로도 개별 기업단위의 임단협보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대응이나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사회적 요구’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요구 등을 중심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조직화 영역에서도 열려진 체계 속에서 노동운동의 최대 해결과제인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비정규직을 적극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역량을 집중 배치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현장단위의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현장위원제도’ 등의 새로운 체계를 도입하여 자칫 발생할 수 있는 ‘현장 공동화’ 등을 방지해야 한다.

현장위원이란?
 - 도입취지: 현장민주주의 실현, 현장 조직활성화, 현장 투쟁 조직화를 위한 것이다.
 - 위상: 현장활동가로서 사업장 단위에서 노조와 현장 조합원을 연결하는 고리, 노조활동과 투쟁조직의 기본단위, 현장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기본단위의 임무를 갖게 된다.
 - 선출방식: 사업장(지회, 또는 분회) 단위로 조합원 20명당 1명을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로 선출
                           <2005년 공공산별노조 토론(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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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2월 산별추진기획단 출범을 결정한 중앙위원회 - 출처 : 공공연맹 ]

지역 본부 중심의 일시전환이 필요한 이유

 아직 토론(안)을 제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토론(안)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토론(안)은 그동안 노동운동 진영에서 벌여졌던 산별논쟁과 큰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은 관계로 토론(안)에 대한 비판의 지점은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첫째는 업종 소산별노조 건설의 단계를 거쳐 조합원들의 의식과 경험의 차이를 메꿔가며 궁극적으로 하나의 노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논지는 이전 공공연맹 1차 보고서의 공공산별건설 추진전략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대로라면 10여개의 업종 소산별이 건설되어야 하는데 그 규모의 편차가 너무 크다. 예를 들어 운수업종산별을 만들면 조합원이 4만 6천명 정도로 공공연맹의 46%를 차지하고 에너지업종 산별의 경우 약 1만 5천명으로 15%가 넘는 상황에서 나머지 업종 소산별의 경우는 소속 조합원의 수나 역량의 면에서 산별노조의 효과는 차치하고라도 전국단위를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또한 이렇듯 편차가 심한 몇 개의 소산별노조는 경험적으로 지금보다 더욱 각 조직의 문제에 매몰되어 사실상 현재의 연맹체계보다도 노조 사이의 연대가 더 어려워 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둘째, 업종을 중심으로 조직을 설계해야 교섭구조를 구성하는데 유리하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공기업 또는 공공부문에 일관되게 적용되어 어느 하나의 정부부처가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이 없다. 또한 각기 다른 정부부처를 중심으로 교섭구조를 구상하기 위해 업종별로 조직을 구성하자고 하는 것은 정부라는 하나의 대상에 분산적으로 대응하자는 논리와 마찬가지다. 토론(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노조를 만들어 정부에 대응하고 공공산별노조가 완전히 정착하기 전까지는 업종본부를 설치하여 업종에 해당하는 교섭과 정책생산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셋째, 산별노조의 기본체계를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기업별 노동조합의 경험을 당장 버릴 수 없다는 현실론과 나아가 기업별 노동조합의 장점을 살리자는 얘기까지 다양하다. 토론(안)은 이 문제에 대해 산별노조는 ‘전환’이 아닌 ‘건설운동’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비판이 근거로 삼고 있는 ‘이제까지 기업별 노동조합의 운영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일정 정도의 권한과 재정만을 산별노조 중앙으로 모으자‘는 사고로는 현재의 변화에 극히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변화에 대해 주관적인 해석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자세라고 판단한다. 또한 이러한 소극적 자세로는 노동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미조직,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추구할 수 없을 뿐더러 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다. 현재의 기업별 노동조합의 어려움을 ‘좀더 큰 기업별 노동조합’을 통해 극복하자는 주장에 불과하다. 

구체적 실천활동을 통해 현실이 될 공공산별노조

현재 공공연맹의 산별노조 건설 논의는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각각 다른 노조 또는 연맹에 가입되어 있어 너무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공운수사회서비스영역의 노동조합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각 조직들의 조건을 들여다보면 아직 이러한 논의를 하기에 앞서 많은 장벽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따라서 공공연맹은 다른 공공운수사회서비스영역의 노동조합과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하나의 산별을 만드는 과정을 계속 진행하고 공공연맹의 산별노조 건설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산별토론(안)은 이러한 지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공공연맹은 구체적인 실천활동을 통해 지향을 현실화 할 것이다.

토론(안)에 대한 실현가능성의 문제,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현장의 무관심 문제, 간부들의 현실인식의 문제, 산별노조에 대한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문제 등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수도 없다. 토론(안) 또한 현장조합원까지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는 (안)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여러 가지 헛점들이 많다.

그러나 어려움의 문제는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현실적인 조건에 맞춰 적당히 타협하는 자세로는 단지 어려움의 시간을 당분간 유예시키는 결과만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토론(안)은 현재의 기업별노조의 물리적 통합이나 전환이 아닌 새로운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는 ‘산별노조 조직 건설운동’을 실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후 공공연맹의 산별건설 토론(안)에 대한 많은 비판과 보완이 이뤄질 것이다. 이 과정이 건설적인 비판과 진취적인 대안으로 한국사회에서 공공부분 노동조합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소중한 역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