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델나무처럼 튼튼하게 은행나무처럼 풍성하게

노동사회

바델나무처럼 튼튼하게 은행나무처럼 풍성하게

편집국 0 3,313 2013.05.19 01:14

오늘 이 나무는 대나무, 소나무, 바델나무처럼 튼튼하고 은행나무처럼 열매도 많이 있습니다. 특별한 것은 이 나무 열매는 한 가지가 아니고 여러 가지 열매가 자란다는 것입니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을 때는 나라의 문화와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누구나 자가 자신이 필요로 할 때 따먹을 수 있습니다. 이 나무의 이름은 외국인이주노동자상담소라고 합니다. 오늘, 이 나무 15년째 생일날, 제 나라 파키스탄과 한국에 있는 여러 다른 나라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이 나무를 심은 주인공과 함께 고생하고 계시는 천사 같은 한국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파키스탄 이주노동자 존
  

한국사회라는 지옥과 “고생하는 천사들”

존이 조금 틀렸다. 존이 축하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하는 곳의 정확한 명칭은 ‘외국인이주노동자상담소’가 아니라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대표 석원정, 이하 인권모임)이고 2004년에 15주년을 맞았던 것은 인권모임이 속해 있는 노동인권회관(이사장 홍근수, 소장 박석운)이다. 인권모임은 1992년에 설립됐고 1998년 11월에 노동인권회관의 부설기관이 됐다. 존의 글은 노동인권회관 설립 15주년 기념 자료집 『첫 걸음을 딛는 마음으로』(2004년 10월)에 실린, 인권모임 한글교실에서 공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축사 중에 하나다. 

어쨌거나 한국사회 격변의 격랑 속에서 ‘노동’과 ‘인권’이라는 불온한 화두를 끈질기게 쥐고서 15년 이상을 버텨왔다는 것, 그리고 1990년대 초반,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존재’로조차 잘 인식되지 않았을 때부터 씨앗을 뿌리기 시작해서 뿌리가 넓은 튼튼하고 풍성한 나무를 키워냈다는 것,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고용허가제도 실시 1년을 맞이하여, 사람들 속에서 나누는 삶이 좋아서 인권모임에서 일하게 됐다는 한분수 상담국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존은 인권모임 활동가들에게서 “고생하고 계시는 천사”를 봤다고 했다. 백인이 아닌, 존과 같은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사회에서 부딪히는 현실은 ‘지옥’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심각한 인권유린의 빌미를 제공했던 산업연수생제도가 2007년에는 폐지되고 외국인력관리정책이 고용허가제도로 일원화될 것으로 보인다. 분기탱천한 몇몇 중소기업인들은 헌법재판소에 고용허가제의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일단 제도마저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연수생, 즉 온기가 있는 인간이 아니라 푸석푸석한 인력으로만 취급했던 현실에서는 한발 나아가는 셈이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도를 실시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35만 외국인 노동자들 가운데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사람은 5%도 되질 않고 대략 25만명에 달하는 소위 ‘불법체류자’들도 줄어들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분수 국장이 요즈음 만나서 이야기하는 이들의 어려움도 상담을 처음 시작했던 2002년의 사례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한다. 때리고 떼먹는 한국 사장들, 지극히 형식적인 행정 때문에 겪는 어려움들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산업연수생제도가 완전히 폐지되고 고용허가제도가 전면화된다고 해서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고용허가제도 하에서도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사업장 이전의 자유’가 없을 뿐더러 3년이면 여길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방침이 ‘외국인력 단기순환’이라서 그렇단다.  

“정부가 아예 외국인노동자들의 정주화 방지 때문이라고 공식적으로 명시를 했어요. 고령화, 저출산, 3D업종 기피 때문에 외국노동자들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거고, 정부나 기업인들 입장에서 봐도 3년이면 이제 이윤을 뽑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숙련공인데…. 그런 발상이 나올 수 있었던 데는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뿌리깊은 허상이 있는 거죠. 신라시대 박연은 네덜란드 사람이고 고려시대에는 수많은 몽고사람들이 한반도에 정착했잖아요. 그리고 작년 통계를 보면 한국에서 결혼하는 10쌍 중에서 1쌍은 국제결혼을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이미 이런 뒤섞임은 사회적인 흐름이 됐다고 생각해요. 정주화 방지한다면서 인신구속하는 제도를 설치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이처럼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둘러싼 벽은 아직 높기만 하다. 한분수 국장이 일을 하면서 가장 답답한 경우는 “같은 하늘 아래 어떻게 이렇게 상식이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들과 싸워야할 때, 그리고 고용안정센터 등의 행정기관에서, 손짓발짓 해가면서 이야기하다 보면 다 파악이 되고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인데도 “사용자의 도장을 받아 오라”며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서 외국인노동자들이 상담소로 올 수밖에 없었을 때라고 한다. 의사소통조차 가로막는 벽은 제도변화조차 못 따라가는 ‘우리’ 속에 있는 것이다. 

talk_01.jpg
[ 자신의 모국문화에 대해서 한국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 출처 : 인권모임 ]

친구가 되는 즐거움

그러나 한국사회는 변하고 있다. 외국자본에게 열려있던 문은 외국노동자들에게도 열릴 수밖에 없고, 이제 외국인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양대 노총이 결합할 정도로 중요한 이슈가 됐다. 한국사회에서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자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인정될 것이고 이들의 인권 역시 급격한 진전을 보이지는 않겠지만 차츰 나아질 것이다. 우리 사회는 스스로를 옭아매고 짓누르는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얄팍한 시선을 거두고 이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제가 사람들을 참 좋아하는데, 외국인들과 상담을 하면서 함께 아파하고 문제가 풀리는 과정을 보면서 함께 기뻐하고… 그러면서 친구의 영역을 외국인이주노동자들로까지 넓혔다는 것, 그게 개인적인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죠.”  

새로운 문화와 만나고 친구가 되는 그러한 즐거움, 우리 모두가 누려야할 몫 아닐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