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소중한 후배 활동가들에게

노동사회

너무나 소중한 후배 활동가들에게

편집국 0 3,238 2013.05.19 01:13

요즘 활동가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얼마 전에도 몇몇 단위노조에서 상근할 활동가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백방으로 수소문 해봤지만 일할 사람을 찾지 못했다. 최근의 노동운동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바로 상근활동가 기근이 아닐까? 노동운동이야말로 사람을 키워 내는 운동이다. 돈과 기획만 가지고는 사업을 벌일 수 없다. 올바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나서야 사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긍정형 활동가’

몇 년 전 내가 속했던 노조가 파업을 준비하면서 목적의식적으로 우리 조직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 상근활동가를 뽑았다.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단위노조 간부들의 판단의 폭이 좁아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학문의 근친상간처럼 조직내 근친상간도 조직을 정체시키기 때문이다. 집행부와 상근활동가 간에 의견 대립과 충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파업을 완수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상급단체도 마찬가지로 조직을 활성화시키고 운동을 발전시키는 데는 인적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최근의 인력난에도 사람을 구하는 쪽의 요구조건은 대단하다. 헌신성, 성실성, 사명감, 친화력에다 개인기까지 바란다. 그만큼 후배들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근무조건이나 급여는 형편없다. 활동가를 바라보는 현장조합원의 시각도 편차가 크다.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애쓴다”는 격려부터 “너무 많은 것을 누리는 것 아니냐”는 질타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현장경험이 없는 후배들은 조직에 적응하기까지 질려버리기 쉽다. 엄청난 업무량과 조직의 기대, 그리고 현장의 관심은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새내기는 힘들다. 일이 힘들고 박봉이라는 건 현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을 넘어설 수 있으면 활동가는 행복하다. 과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나는 이런 일은 죽어도 못한다고는 하지 말자. 부족한 부분은 차차 채우면 된다. 정 안되면 동지들과 함께 조직적 힘으로 보완할 수 있다. 개개인의 장점은 끌어내고 단점은 서로 보완해 낼 수 있는 살아 있는 조직을 만들자. 그 길에 나부터 나서자

전염성 강한 매너리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선배 활동가들의 대다수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이가 듦에 따른 자기 전망의 불투명, 경제적 불안, 건강악화, 가족부양의 책임감 등으로 몸도 마음도 고달프다. 일에서 얻어지는 성취감은 젊었을 때의 얘기고 지금은 점점 매너리즘에 빠져들게 되고, 자연스레 몸담고 있는 조직도 관성화된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후배들까지 이러한 매너리즘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내 일만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뭐 이리 시키는 게 많아”, “매년 똑같은 일이니깐 ‘Ctrl C+V(한글 프로그램에서 복사, 붙여넣기)’ 하지 뭐”, “조직은 어차피 굴러가게 돼 있어”, “조직의 성과는 나와 상관없어”, “맡은 일만 하면 돼”, “의견 내봐야 되지도 않아”, “그래! 각개약진으로 가는 거야” 등등. 이게 지금 현장의 모습이다. 

여기다 선배와 후배, 임원과 간부, 남성과 여성 사이에 다툼도 잦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는 운동 내부에 깊숙이 자리잡은 개인주의와 분절화, 개별화 때문일 것이다. 

이제 다들 폭넓게 생각하자. 운동은 결코 개인기만으론 되질 않는다. 나보단 우리가 중요하지 않는가. 내 주장이 조직의 이해와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따져 보는 성숙한 자세를 갖자.

활동가의 여유와 공부, 호사가 아니다 

주변의 선후배를 막론하고 많은 동지들의 건강검진 결과가 ‘빨간 불’이고, 심지어는 우울증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동지들에겐 여유란 찾아 볼 수가 없다. 아니 여유란 단어를 호사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여유란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자.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

물론 격무와 경제난, 그리고 투쟁 사업장의 안타까운 상황을 바라보면서 마음은 편치 않을 수밖에 없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전방위의 노동탄압과 노조 죽이기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 게다가 내부의 갈등까지! 이런 것들이 우리를 ‘부정형 감정노동’으로 몰아간다.

이런 때일수록 나 자신을 돌이켜보자. 내겐 젊음의 열정과 패기가 있다. 적어도 10년 간은 부단하게 활동해야 하지 않는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자. 혼자 어려우면 동지들과 함께 찾아보자. 진보진영의 선봉장인 내가 스트레스에 갇혀 버린다면 얼마나 쪽 팔리는 일인가! 

그렇지만 우리들에게 가장 손쉬운 전통이 돼 버린 음주는 지양하자. 술은 결국 더 큰 고독과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이다.

한편, 수많은 회의를 지켜보면 너무나 획일적이다.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만 냅다 말한다. 나머지는 눈만 깜빡거린다. 어찌된 일인지 활동가들의 회의에 토론은 없다. 다들 회의가 어떻게 끝날지 뻔히 알기 때문이다. 괜히 얘기해 봤자 득 될 게 없다. 그러니 ‘의견개진’이란 건 교과서에만 존재한다. 

이런 점이 바로 조직문화의 문제다. 혁신의 대상인 것이다. 그렇지만 조직문화는 결국 구성원들이 만든다. 선배들은 말한다. 전노협 시절에 정말 열심히 학습했다. 밤새워 공부하고 토론하고 정말 진지했다. 그런데 요즘은 진짜 공부들 안 한다. 

맞다. 인정하자. 이제부터라도 공부를 시작하자. 사회공공성투쟁이니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니 하는 것들을 알아야 조합원들에게 설득할 것 아닌가. 그리고 내 분야만 공부하지 말고 폭넓게 공부하자.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그러나 공부만으론 ‘2%’ 부족하다. 토론을 통해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자. 그래야 현장에서 막히지 않는 자신감에 찬 활동가로서 자리 매김 할 수 있을 테니까.

감히 부탁드립니다!

두서 없는 글 내용에 많은 동지들이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는 동지들에게 감히 부탁드린다. 너무나 소중한 후배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자고.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