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의 손을 들어 줄까

노동사회

역사는 누구의 손을 들어 줄까

편집국 0 3,345 2013.05.19 01:10

‘미국노동총동맹-산별회의(AFL-CIO)’ 설립 50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2005년 7월25일, 미국의 몇몇 노동운동지도자들은 반세기에 걸친 연대를 축하하는 대신에 AFL-CIO로부터의 공식적 탈퇴를 발표했다. 이 분열은 예견된 일이었다. 분리와 관련하여 지난 몇 달 동안 끊임없이 공개적으로 열띤 논쟁이 진행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파장은 매우 큰 것이었다. 서비스연맹(SEIU)의 위원장인 앤드류 스턴과 팀스터스 노조(IBT)의 위원장인 제임스 호파가 AFL-CIO로부터 탈퇴한다고 했을 때, 그 파장은 미국 노동운동을 뒤흔들었으며, 전 세계의 노동운동으로까지 퍼져나갔다. 

곤두박질치는 노동조합의 힘

‘승리를 위한 개혁(The Change to Win)’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발표를 50주년 총회의 첫 날로 잡았다. 그리고 4일이 지나자 식품상업노조(UFCW)도 발표를 통해 자신들도 ‘승리를 위한 개혁’의 동지들을 따를 것이며, AFL-CIO를 탈퇴할 것을 발표했다. 세 개의 거대 노조가 AFL-CIO를 탈퇴함에 따라, AFL-CIO는 4백만명의 조합원과 1억2천만 달러에 달하는 연간 예산 가운데 2천8백만 달러를 잃게 됐다.

1935년, AFL의 5개 노조가 CIO를 건설하기 위해 떠났던 이후 미국 노동운동 내에서 이처럼 큰 분열은 처음 있는 일이다. 당시의 분열은 노동조합 조직화를 직능을 기준으로 해야 되는가 아닌가를 두고 일어났다. 즉 직능, 업종, 산업 가운데 무엇을 기준으로 조직화를 할지를 두고 분열이 있었다.

CIO의 지도자들은 차이를 해소하고 내적으로 정책을 변화시키려고 했지만, AFL 측에서 조직화 방향을 두고 어떤 변화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AFL을 떠난 노조들은 CIO를 통해 조직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자동차, 철강, 광산 산업과 같은 핵심산업의 노조들이 참여하여 높은 조직화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20년이 흘러서야 두 조직은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의 거대 연합으로 통합되었다.

AFL-CIO의 현재 내적 갈등은 섬유-호텔노조(UNITE-HERE), 북미건설현장노조(LIUNA), 목수연합(UBC) 그리고 SEIU가 AFL-CIO 내부의 비공식 연합인 ‘새로운 단결을 위한 파트너십(NPU)’을 설립한 2003년부터 꿈틀거렸다. NPU는 내부 논쟁을 제기했고, 노동운동은 조직률 하락과 급변하는 세계화란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전환이 필요하다고 활발하게 주장했다. 왜냐하면 현재 미국의 노동조합 조직 또한 위태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30%대였던 노조조직률은 2000년대 들어 12%까지 떨어졌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민간부문의 노동자 열두 명 가운데 단지 한 명만이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논쟁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업은 대통령 후보였던 존 케리가 당선에 실패하자 한층 가열되었다. 더 중요한 점은 2004년 대선에서 노동측이 방대한 재원과 인적 자원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싹쓸이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우울한 2004년 대선 참패에 곧이어 노동 내부의 분리가 한층 공론화되고 강도를 더해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5년 6월15일, 미국노동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대규모의 캠페인을 조직한다는 목적 하에 ‘승리를 위한 개혁’ 연합이 만들어지자, 한때는 비공식이었던 그룹이 공식조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LIUNA, UNITE-HERE, UBC, UFW같은 노조 조직이 SEIU, IBT 그리고 UFCW의 동지가 된 것이다. 이 7개 조직을 합하면 미국 노동자의 6백만여 명을 대표하는 조직이 된다. 이로써 비록 53개 연합으로 구성된 AFL-CIO가 대표하는 9백만명보다 3백만명이 적지만 이들은 노동운동의 막강한 세력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7개 연합 가운데 3개 조직-UNITE-HERE, UFW, LIUNA-은 다른 노조들과 달리 여전히 AFL-CIO 가입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목수연합은 2001년에 탈퇴했다.

‘대안’ 찾기를 위한 분열?

분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현재의 상황은 아마도 반세기의 미국 노동 조직 역사상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몇몇은 이 갈등의 본질을 ‘조직화 대 정치’의 차이, 즉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들은 더 많은 자원을 조직화에 집중하려 하는 반면, AFL-CIO는 정치에 집중한다는 차이로 설명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이 주장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4년 선거에서 SEIU는 AFL-CIO의 어느 노조보다도 더 많은 재원(6천5백만달러)과 인력(2000여명의 상근인력과 5만명의 자원봉사자)을 투여했다.

jslee_01.jpg2004년 SEIU 총회에서 스턴 위원장은, “정치력이 없다면 우리의 요구는 실현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치 영역에서 노동계급의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스턴은 정치 행위는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 혹은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라 옳은가, 그른가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SEIU의 정치 아젠다가 AFL-CIO의 아젠다와 차이가 있음을 암시했다. 다시 말해 SEIU는 민주당에게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체 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던 팀스터스와 목수노조가 열렬히 주장했던 바로 그 생각이다. 사실 최근까지도 제임스 호파는 부시행정부의 통상정책 및 협상 위원회의 일원이었다. 그는 부시가 중앙 아메리카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후에야 사임했을 뿐이다.

요컨대 이 분열의 핵심은 승리를 위한 투쟁의 성공 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느 진영이 미국 노동운동의 쇠퇴를 막기 위한 전략적 무기를 갖고 있는가? 미국 노동운동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어떻게 노동운동의 출혈을 막을 지는 갑론을박만이 있을 뿐이다.

SEIU의 탈퇴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스턴 위원장은 “세계가 변화하고 있으며, 경제도 변화하고 있다. 사용자도 변하고 있다. 그러나 AFL-CIO는 근본적 변화를 꺼려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SEIU야말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SEIU는 9년 동안 90만명 이상의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것은 전략적 조직화 캠페인에 충분한 자원들을 투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헌신과 목표가 ‘승리를 위한 개혁’ 연합의 “심장”이라는 것이다.

‘승리를 위한 개혁’의 노동조합들은 조직화를 혁신할 수 있는 일련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했다. 신규 조합원을 조직하는 것이 이 연합의 핵심 사업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소속 노동조합들이 역량을 동원하여 신규 조합원을 조직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에서부터 월마트처럼 반노조 성향의 글로벌 기업에 대항하여 전체 운동차원의 혁신적인 캠페인을 조직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이 연합은 AFL-CIO의 관료제도를 혁신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리고 소규모 노조들을 산업별로 몇몇 거대 노조에 통합시켜 모든 산업 전반에 걸쳐 조직화를 추구해야 하며,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고 선출된 관리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좀 더 책임을 질 수 있도록 AFL-CIO의 관료기구를 탈집중화 하고 축소하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의’인가, 개인의 ‘영달’인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것이 결코 헛된 요구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해 AFL-CIO는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이 제안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대표들은 AFL-CIO가 노조간 전략적 통합을 하기 위해 적극적인 산업별 계획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또한 AFL-CIO 집행위원회의 수를 46명으로 축소하는 안과 일년 내내 정치 캠페인을 하는 안도 승인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직화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는 안을 승인한 것이다. 그렇지만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이 요구한 조직화 사업에 예산의 10%를 지출한 노조들에게 의무금 가운데 절반을 환불해 주자는 것은 기각을 했다.

분열의 가장 큰 요인은 아마도 전략을 짜는 데 있기보다는 지도자 선출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 같다.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들은 다음 AFL-CIO 위원장을 결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싶어한다. 1995년 존 스위니는 AFL-CIO의 첫 경선에서 개혁적 연합을 이끌어 위원장의 자리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스위니가 미국 노동운동을 21세기로 인도하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많은 중요한 구조개혁에도 불구하고 스위니 집행부는 노조조직률 하락을 멈출 수 없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두 가지 면에서 자신감에 차 있는 개혁연합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째, 조직률 감소를 멈출 전략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 둘째, 분쟁을 잘 해결하는 ‘유능한 조정자’로 알려진 스위니는 노동운동을 부활시키기 위해 필요한 근본개혁을 수행할 정도로 과감한 리더십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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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AFL-CIO 존 스위니 위원장, SEU 앤드류 스턴 위원장, 팀스터스 노조의 제임스 호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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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존 스위니가 3선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노조지도자들이 만일 내부 논쟁이 너무 격렬해진다면 양쪽 진영 사이에서 조정을 할 능력이 있는 지도자로서 다시 한 번 그가 입후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또 혹자는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 내부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SEIU가 스위니의 출신 노조라는 개인적 상황 때문에 경선에 나갈 거라고 생각한다.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이 AFL-CIO의 칼자루를 쥔 위원장을 바꾸고 싶어해도 그들이 ‘쪽수’에서 밀리는 게 현실이다. 그들이 AFL-CIO 조합원의 35%를 대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의원 가운데서는 고작 20%에 불과하다.

이러한 정황 때문에 많은 이들이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이 총회를 불참하고 AFL-CIO를 떠나거나, 3선에 도전하려는 존 스위니에 맞서 입후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SEIU와 팀스터스노조가 탈퇴한다는 공식 결정을 발표했을 때, 많은 대의원들은 충격에 휩싸이거나 분노했다. 그리고 전체 상황에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진영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다. 총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은 노동운동에게 “비극의 날”이라고 한 반면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의 대표들은 “열광의 날”이라고 맞받아 쳤다.

몇몇 대의원들과 지도자들은 매우 적대적이어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그들은 연합 세력 가운데 목소리가 가장 큰 앤드류 스턴이 “민주적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AFL-CIO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며 개인의 야망을 공격했다.

예측할 수 없는, 그러나 기회일 수 있는

AFL-CIO 규약에 따르면, 단지 가맹 노동조합만이 시 또는 주 단위의 노총 조직에서 활동할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전국단위에서 탈퇴를 한다면 지역지부들도 또한 시나 주 단위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퇴한 노조들의 조합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캘리포니아, 뉴욕, 네바다 같은 주들의 노총 주본부(state federation)와 지구협의회(Central Labor Councils)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분열로 인한 피해를 가라앉히기 위해 AFL-CIO는 최근 들어 탈퇴노조 소속 지부들이 “연대강령”에 서명한다면, “특별가입조직”으로서 시나 주의 지역본부/협의회(labor federation)에 재가입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발표문에 따르면, “특별가입조직” 노조는 계속해서 회비를 납부해야 하며 동등한 투표권을 갖지만 선출직 지도부 자리를 차지 할 수는 없다. 이 제안은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들은 “단결”을 위한 제안이 본질적으로 “말장난에 불과하고 불필요한 분리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열의 영향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의 한 핵심 간부는,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과거에 미국 노동운동에서 개혁세력의 분열을 겪은 경험이 없다. 따라서 우린 이것이 어떻게 전개될 지 정말로 알 수 없다”며 “AFL에서 CIO가 떨어져 나갔을 때, 조직화가 급상승했다. 아마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적 예상을 했다.

국제적 시각에서 본다면 현재의 분열은 미국 노동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나가는 것 아니냐고 볼 수 있다.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은 국제연대가 립서비스(lip service)나 수사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국제연대는 전 세계의 노동조합에게 이익이 되는 전략적, 국제적 조직화 캠페인을 발전시키는데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연히도 AFL-CIO도 이 전략을 새로이 강조하고 있다. 최근 들어 AFL-CIO는 노총 본부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국제사업본부는 전략적으로 세계적 조직화 캠페인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간부들을 해고하거나 지역본부의 다른 부서로 재배치했다.

미국 노동운동은 어디로

‘승리를 위한 개혁’ 연합에 대해서 경계하는 눈초리도 꽤 많다. 왜냐하면 그들이 노동운동이 국제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자본주의’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문제제기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을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동지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제임스 호파는 팀스터스 노조 안에서 민주적 요소들을 “쫓아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이들 연합 소속 가운데서 SEIU나 의류-호텔노조 같은 곳들은 진보적인 사안들을 지지하며 과격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가령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위한 사면 문제, 이민법에 대한 찬성,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 등등의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들 내부에는 노동조합들이 사회적, 외교적 이슈에 접근할 때는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생존을 위한 핵심이 ‘조직화’라는 데에는 한마음 한뜻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그들은 AFL-CIO가 미적거리거나 마지못해 대처하는 곳에 진출하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흔쾌히 들어올 수 있도록 전략적 조직화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발전시켰다고 생각한다.

‘승리를 위한 개혁’ 그룹이 옳았는지는 오직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미국 노동운동의 분열이 옳은 일이었는지도 오직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변화와 전략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미국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높아진다면 그것은 후에 정당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란 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