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랑스런 노동자 통일선봉대

노동사회

우리는 자랑스런 노동자 통일선봉대

편집국 0 4,146 2013.05.19 01:03

 


wychoi_01.jpg30도를 웃도는 폭염도, 14일간의 어떠한 악조건도 전국 각지에서 통일의 불바람을 일으킬 한국노총 제3기 통일선봉대(통선대)의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휴가도 반납한 채 전국 각지에서 모인 통일 일꾼들은 8월2일 한국노총 자체 발대식을 통해 결의를 다짐으로써 통선대 활동을 시작했다. 14일간의 대장정을 사수하기 위한 조직규율을 만들고 소대 편성과 업무 분장, 조직 정비를 통해 조국통일의 실천을 위한 내실을 갖추었다. 

8월3일 서울 광화문에서 진행한 통일선봉대 전체 발대식은 노동자, 농민, 학생, 여성, 청년 등 남측 민중진영을 대표하는 사회단체들이 참여하였는데 이러한 통선대 참여규모와 실천의지는 막연했던 통일에 대한 나의 염원을 부끄럽게 했다.

 분단 60년, 장벽 허물러 노동자가 간다

한국노총 통일선봉대는 진주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를 돌며, 자주통일과 반전평화를 실현하자는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6·15공동선언 발표 5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민족공조의 기운은 많은 지역 주민들의 지지와 격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각 지역에서 개최되는 많은 통일 행사들이 과거처럼 진보적 통일운동단체만의 사업이 아닌, 민·관 공동 주최의 대규모 행사로 진행되는 것을 보며 통일운동이 폭넓은 대중들과 만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직까지 공동선언 실천을 가로막는 외세의 간섭을 떨쳐 내지 못하고, 과거 냉전적·대결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도 활동 과정 내내 쉽게 접하곤 했다.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우리의 설명에 보수적 입장만을 앞세우며 눈살을 찌푸리며 버럭 화를 내는 시민들도 있었고, 외세의 지배 개입을 끝장내자는 우리의 실천적 투쟁이 폭력 진압으로 가로막히는 일도 있었다. 분단 60년간 외세 의존적 구조가 완고해질 대로 완고해진 우리 사회의 단면에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통일선봉대는 오히려 고통과 분노 속에서 더욱 강인해져 갔다. 14일간의 일정 동안 온 몸이 검게 그을리고 기나긴 장정으로 피곤이 역력했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의를 다지는 구호를 외치며 지친 몸을 추슬렀고, 8월의 폭염 아래 한 모금의 물도 나눠 마시며 동지애를 더욱 돈독히 나누었다.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동지들의 머리가 터지고 팔이 부러지는 것을 볼 때엔 가슴 찢어지는 아픔과 분노로 투쟁의 결의를 다지며 통선대로서의 강한 소속감을 느꼈다. 어떠한 폭압이 있더라도 멈추지 않을 자랑스런 통선대가 분명 조국통일의 선봉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8·15 민족대축전을 홍보하고 자주통일과 반전평화를 목청껏 외치는 우리에게 호응을 보내는 시민들을 볼 때면 통일의 길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더욱 굳세게 의지를 다졌다. 현실에서 통선대 활동 자체는 비록 미약하지만 우리를 뒤이어 터져 나오는 우리 민족 전체의 통일을 향한 단결된 목소리는 60년 분단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고도 남을 것이리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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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지역에서 활동중인 노동자 통일선봉대  - 출처 : 민주노총 ]

눈빛만 마주쳐도 설레이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많이 남는 것은 지방에서 활동을 마치고 인천으로 이동하여 전개한 ‘전쟁광’ 맥아더 동상 철거 투쟁이었다. ‘점령군’으로서 인천에 상륙했음에도 역사의 왜곡으로 마치 위인처럼 서 있는 맥아더의 동상은 우리의 투쟁 의지를 더욱 불타게 만들었다. 그리고 경찰의 병력 수송 차량을 중간에 두고 수구·보수 세력과 동시 집회를 하게 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땐 분노가 치밀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누구를 위한 분노이며 누구를 위한 투쟁인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겪었던 세대인 만큼 전쟁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가 이성을 잃을 만한 충분한 계기가 되었으며 왜곡된 반공사상까지 더해져 그들을 그렇게 움직이게 만들었을 것이라 이해하며, 씁쓸함을 뒤로하고 투쟁대오 내에서 목청껏 구호를 외쳤다.

8·15 민족대축전이 열리는 서울로 입성한 후에도 우리의 선전과 투쟁은 더욱 기세를 더해 갔다. 시내 곳곳에서 유인물과 율동과 구호와 함성으로 시민들을 만나며 광복 60년을 맞는 올해 8·15의 의의와 역사적 과제를 설명했다. 특히 8월14일엔 8·15 민족대축전 북측대표단의 숙소 앞에서 단일기를 흔들며 방남 환영을 했는데, 그 때 눈이 마주쳤던 북측 대표단의 모습은 실로 감격과 감동이었다. 

조국통일의 길목에서 지난 14일간 전국의 각지를 지날 때마다 분단 60년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0만 양민학살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했고, 분단 조국의 수많은 노동자와 학생 농민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깨달았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 땅에 모든 노동자가 통일의 주역으로 나서기 위해 나를 포함한 모든 통일선봉대 대원들이 통일운동에 앞장설 것을 결의하는 것으로 14일간의 대장정을 마감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