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자녀가 노동자가 되기까지

노동사회

노동자 자녀가 노동자가 되기까지

편집국 0 3,848 2013.05.17 10:35

 


book.jpg그래도 한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정말 어느 정도는 먹혔던 것 같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평균적으로 공부 잘한다. 너도 더 열심히 해라”는 상투적인 훈계 말이다.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는 채찍질이, 그리고 지금은 여기서 주저앉아 있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더 나은 미래를 쟁취할 수 있다는 희망과 위로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참말인 적이 과연 있었을까? 

어떤 실증적인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가장 발달된 나라라는 미국에서의 계급 이동은 카스트 제도 하의 인도만도 못하다고 한다. 아무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자녀들은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등수도 밑바닥이고 행동거지도 ‘모범’적인 길에서 ‘빗나가리라는’ 것은 ‘의무교육’을 다한 이들에게는 굳이 통계가 없어도 체험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왕후장상의 씨앗이 따로 있어서? 어떻게? 학교는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데!

노동자의 자녀는 ‘어떻게’ 노동자가 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라는 제도는 공정한 경쟁과 이를 통한 계층 이동이라는 실력주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약간 예외가 있긴 해도, 대부분 학력은 세습된다. 교수 자식은 의사가 되고, 의사 자식은 교수되고 노동자 자식은 거의 다 노동자 된다. 『학교와 계급재생산』은 이렇게 노동자들의 자녀가 노동자가 되는 계급 고착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당사자들의 문화적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의 전형적인 중소공업 도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칭 ‘싸나이들’이라는 ‘문제아 집단’의 일상과 문화적 패턴을 면접과 현장기술지 등을 통해 촘촘하게 관찰하고 이를 이론화한다. 이를 통해 개기기, 거짓말하기, 까불기, 익살떨기,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등 ‘싸나이들’의 문화적 행동 양식이 어떻게 학교라는 시공간을 일상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권력 네트워크에 저항하여 파열구를 내는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문화적 패턴이 ‘남성 중공업 노동자’라는 지위에 어떠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며 이것이 어떻게 이들이 자발적으로 자부심을 갖고 노동자가 되도록 이끄는지를 치밀하게 보여준다. 학교 체제에 대한 저항이 결국은 계급 재상산에 기여하는 결과를 낳는 맥락을 지적하는 것이다. 

보수건 진보건 간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골칫덩어리다. 이 책이 한국 사회의 학교 제도를 성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물론 1970년대 영국 중소 공업도시의, 그것도 어느 고교에 국한되는 특수한 사례 속에서 우리가 읽고 싶어하는 우리 현실의 심층을 금새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 속의 ‘싸나이들’뿐만 아니라 ‘범생이’들에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처럼 ‘사교육’이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을 테고, 무엇보다도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에서는 한국 사회와는 달리 자식이 노동자가 되는 것이 ‘저주’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이를 조밀하고 정확한 개념의 그물로 잡아채는 솜씨, 그것으로 설득력 있게 얼개를 짜는 솜씨 등은 읽는 이들의 지적인 상상력을 매력적으로 자극한다. 교육 문제를 노동자의 관점에서 보다 심층적으로 고민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여서, 이 책은 1989년에 『교육 현장과 계급재생산: 노동자 자녀들이 노동자가 되기까지』라는 제목으로 민맥출판사에서 나왔던 것을 절판된 이후에 새롭게 재간한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