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경제성장·노사관계·노동조합

노동사회

칠레의 경제성장·노사관계·노동조합

admin 0 3,575 2013.05.07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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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Peter Gey 소장이 쓴 「Economic Growth, Industrial Relations, and Trade Unions in Chile」를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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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과 고용

1990년과 1998년 사이, 칠레는 연평균 GDP 증가율이 7.9%에 이를 정도로 대단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이 수치는 싱가포르(8.0%)와 베트남(8.6%) 다음이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위기의 영향은 (대외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칠레 경제를 비켜가지 않았으며, 17년 만에 첫 경제 침체를 가져왔다. 1998년 3.3%의 GDP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1999년 경제는 마이너스(-) 1.1% 성장을 기록했다. 

기독교민주당, 사회당, 급진사회민주당, 민주당의 연립여당1)을 대표하는 세 번째 대통령으로 2000년 3월에 집권한 리카도 라고스 정부는 경제가 6.0% 혹은 6.5%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실망이 커짐에 따라 예상치도 수정되어야 했다. 2000년 말, 성장률은 5.4%를 기록했다. 성장률에서, 칠레는 남미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높다. 

지난 20년 동안 이뤄진 다각화에도 불구하고, 칠레의 경제성장은 주로 원자재 가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칠레 수출의 40∼50%를 구리가, 15∼20%는 셀룰로오스가 차지하고 있다. 

peter_01.jpg 칠레는 농업 생산물의 생산·가공·마케팅에서 세계 제일의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것은 구리·목재업에 대한 유례 없는 자본집약적 개발에서 시도된 현대화 조치들과 함께 경제성장을 위한 토대인 노동집약성이 역전되게 만들었다. 1980년대 말, 1% 포인트 성장할 때마다 4만5천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지만, 1995년∼98년 사이에, 이 비율은 1만5천 개로 떨어진다. 2010년에는 1만개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수치들을 근거로 1998년 경제침체기에 연평균 6.4%에서 11%까지 치솟은 실업률이 계속 증가할 거라는 우려가 있다. 실업률이 2000년 말 9.4%로 떨어졌지만, 새로 일자리가 생겼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구직을 포기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 시장에서 물러나 이른 바 "침묵의 저수지"(Quiet Reserve)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5.4%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2000년 말까지 일자리 2만 개가 사라졌다. 지난 몇 해 동안의 인구통계적·사회적 흐름이 계속 된다면, 추가로 매년 10만 명이 구직에 나설 것이다. 

우리는 그 수가 늘어날 거라는 것말고는, (상대적으로 좋은 건강상태로 더 오래 살) 여성과 노인층의 장래 실업률에 미칠 영향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학생인 젊은이 160만 명이 다음 10년 동안 구직에 나설 것임은 분명하다. 연 1% 포인트 성장이 일자리 1만2천 개를 뜻하는 현실은 칠레 경제가 매년 구직자 10만 명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8.0∼8.5%의 연평균성장을 이뤄내야 함을 뜻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현재의 실업률을 낮출 수 없다. 마찰 실업자 20만 명을 감안하여 향후 10년 동안 매년 4만 명씩 채용해야 구직자 60만 명을 줄일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연 성장률 3.0∼3.5%를 추가하여 연평균 11.5∼12%의 경제성장을 이뤄야 한다. 

현재의 발전 수준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의 연 성장률은 불가능하다. 원자재에 기반한 현재의 경제성장을 고려하면, 지난 15년 동안과 마찬가지로, 7%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경제 및 사회정책과 관련하여 정부·기업·노조에 엄청난 도전을 던지고 있다. 이미 15∼19세 청소년 1/3과 20∼24세 청년층 1/4이 실업상태에 있다. 

실업률 증가 추세와 더불어 인구 노령화도 사회 문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유럽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 경우처럼, 칠레의 출생률은 1960년대이래 하락해왔다. 반면 의료혜택과 생활조건의 개선으로 평균 수명은 늘어나 남자는 72세, 여자는 78세에 이른다. 노령자를 위한 보험과 의료체계가 직면한 문제는 심각하다. 노동조합은 전체 국민의 평균 연령이 늘어남에 따라 조합원 연령도 늘어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의 높은 경제성장률은 외국인 직접투자 덕택이었다. 1980년대 말 이후 자본 순유입은 GDP의 10%에 달했다. 2000년 칠레에 대한 외국인 투자액이 칠레 자본의 해외 투자액보다 11억 달러 정도 모자라자 외국인 투자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2000년 6월, 칠레 통계청은 1996년/1997년 국민소득 분배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전체 국민소득에서 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1987년/1988년과 비교할 때 56.1%에서 50.4%로 떨어졌다. 반면, 하위 20% 계층의 그것은 4.8%에서 6.3%로 늘어났다. 

칠레의 소득분배가 대단히 불균등하지만, 1987년∼1997년 조사 결과는 높은 경제성장과 1990년이래 중도좌파 정부가 채택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빈곤퇴치 등 공공 프로그램이 소득 격차를 줄일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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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칠레의 정치 상황은 노동조합 성장에 상당히 우호적이다. 사진은 수도 산티아고에 모인 칠레 노동자 ]

노사관계

2000년 11월 초, 칠레 정부는 피노체트 독재 시절 만들어진 노동법을 대폭 개정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연립정부 안에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사용자들은 노동법이 없는 게 가장 좋다고 주장하면서 외부 파업파괴자를 불법화하고 기업간(inter-companies) 임금교섭을 합법화하려는 노동법 개정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은 덜 논쟁적인 영역의 노동관계도 규제하는 다음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종업원 5인 이하의) 영세사업장 노동자, 건설업의 파트타임 노동자, 농업의 계절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둘째, 조직 노동자와 그 선출직 대표자의 권한이 강화되어야 한다. 셋째, 경직된 주 48 노동시간을 보다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 

현재 칠레의 정치 상황은 노동조합 성장에 상당히 우호적이다. 독재에 대항한 공동투쟁 때문에 라고스 정부와 Concertacion 연립을 구성한 정당들은 노동조합운동과 연계되어 있으며, 접촉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노총(CUT) 지도자들이 외국 간부들과의 모임에서 제기한 문제, 즉 칠레에서 노조 활동가가 탄압받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 무근이며, 노동조합의 인식 능력 부족을 드러낼 뿐이다. 

조합원수 하락과 조직력 약화

칠레 노동부에 따르면, 현재 칠레에는 노동조합이 1만4천 개 있으며, 그 가운데 50%가 실제로 활동하고 있다. 나머지 절반은 조합원이나 지도부가 없다. 

1990년대 초반 민주주의 이행 국면에서 노동조합은 영향력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조합원수는 줄어들었다. 군사독재의 마지막 10년간(1980년∼1990년) 조합원수는 386,000명에서 700,000명으로 거의 두 배 늘었다. 하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된 Concertacion 연립정부 하에서 조직 노동자 수는 1992년 724,000명에서 2000년 600,000명으로 줄었다. 이 가운데 약 35만명이 CUT 산하 노동조합에 속해 있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칠레의 노조 조직률은 19.7%에서 15.3%로 떨어졌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남미의 원뿔(Cono Sur) 국가(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역자) 가운데 노조 조직률이 가장 낮다. 남미공동시장( MERCOSUR) 회원국의 경우, 조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4%에 달한다. 아르헨티나는 40%를 넘으며, 브라질은 25%를 넘는다. 

 전체 노동자의 1/3인 150만 명이 공공부문(public administration)에서 일하고 있는데, 노조 결성은 여전히 금지되고 있다. 하지만, 1천 개가 넘는 공무원협의회(employee associations of public servants)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상 노동조합으로 기능하고 있는데, 이는 현행법 위반이다. 이 가운데 중요한 조직은 회원 45만 명을 거느린 전국공무원협회(ANEF)이다. ANEF는 국제공공노련(PSI)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6년 칠레 노총(CUT)의 지도자인 마누엘 부스토스가 8년 임기를 마친 다음 선거에 나서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노총은 내부 분열이 일어나 사회적 영향력과 조직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Concertacion 연립여당 지지파와 공산당 지지파 사이에 발생한 정치적 분열은 CUT의 조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CUT 규약은 새 집행부가 4년 간격으로 선출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CUT는 혼란스런 내부 상황을 잠재우기 위해 1998년에 이어 2000년에 집행부 선거를 실시했다. 1998년 선거가 대규모 부정으로 얼룩짐으로써(Concertacion 연합은 공산당을 비난했다), CUT의 의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항의 속에서 사회주의 인터내셔날(SI) 소속 3개 정당은 기독민주당이 합류한 가운데 자기당 후보를 사퇴시켰고, 선거 결과에 따라 자기당 후보들에게 배정된 직위를 거부했다. 35%를 얻은 공산당은 승리를 선언했고, 공산당을 대표한 모라가(Etiel Moraga)가 CUT 위원장이 되었다. 1999년 상당수 노조가 집행기구를 공산당의 도구라 비난하는 가운데, 사회당·기독민주당·급진사회민주당 소속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CUT 집행기구로 복귀했다. 

2000년 8월 24일 열린 선거에서, 공산당 분파가 지지한 전(前) 사회당 당원 아르투로 마르티네즈가 Concertacion 후보를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마르티네즈가 공산당의 지지에 대해 찬사를 보낼지, 아니면 노동조합운동의 중도파로 옮겨갈 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사회적 대화 

peter_03.jpg전통적으로, 칠레의 노동조합은 기업별노조(company union)이다. 노동조합 조직과 정책이 기업 규모에 따라 제한받고 있다. 노동자의 40% 정도가 영세기업(1∼4인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으며, 비슷한 비율의 노동자가 중소기업(5∼49인 사업장)에서 일한다. 전체 노동자의 10%만이 노동조합이 있는 종업원 200명 이상의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다. 전체 노동자의 10%만이 임금협약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전체 기업의 3%만이 임금협약을 갖고 있다. 

칠레 체제의 특이점 가운데 하나는 같은 기업에 있는 노동조합들이 각기 따로 사용자와 교섭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칠레통신회사에는 노동조합이 19개나 있으며, 따로 교섭한다. 

노동조합이 수천 개의 단일노조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입장에서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책을 제안하고 (사용자 혹은 정부와 - 역자주) 교섭할 역량 있는 상급조직(umbrella organization)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CUT는 이러한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CUT 위원장인 마르티네즈는 라고스 대통령이 노동자의 편에 설 지, 사용자의 편에 설 지 결정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또한 CUT 집행위원은 정부는 실업을 없앨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갖고 있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라고스 대통령은 2000년 3월 11일 취임하자마자, 노사정위원회(Council for Social Dialogue) 구성 법령에 서명했는데, 이는 CUT의 조직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뤄진 것이었다. 무엇보다 라고스는 노동개혁 문제를 둘러싸고 국회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재계와 노조가 사전 합의한 다음 개정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임을 강조했다. 

노사정위원회는 실업보험, 노동법 개혁, 근로여성, 사회적 대화의 제도화 등 4개의 소위원회를 두었다. 실업보험 논의는 정부가 이 문제를 전체안에서 떼어내 별도로 하원에 제출하자 중단되었다. 실업보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유야 다르지만, 재계와 CUT 모두 실업보험 도입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칠레공산당의 강력한 영향력, 개인적 음모, 고질적인 재정 문제는 상급단체를 중앙 정치판에서 보잘 것 없게 만들었다. CUT는 2001년 3월 8일 여성의 날 행사를 무시했으며, 동료 여성들에게 보내는 연대사도 없이 지나갔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칠레 노동조합은 경제·사회 정책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해왔다. 피노체트 체제 하에서는 민주주의 회복이 노동조합의 우선 과제라는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회복되자 노동조합은 자기 사업으로 바빠졌다. 참여·투명성·교섭력·조직력이 현대 노동조합의 트레이드마크라면, 칠레의 노동조합과 상급단체는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