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의 실마리는 정규직에게 있다

노동사회

해결의 실마리는 정규직에게 있다

admin 0 3,199 2013.05.12 08:02

지난 4월23일 우리 노동조합은 사측과 사내하청노동자 282명을 내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잠정합의했다.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시정조치를 받은 282명의 노동자들 중에서 이미 정규직으로 전환한 128명 이외에, 나머지 154명에 대해서도 결격사유가 없는 한 직접고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정규직 전환' 합의는 마구잡이로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고,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끊임없는 소통으로 만들어진 단결

거기에 간단하게 답을 하자면 이렇다. 워낙에 불법 사실이 명확했기 때문에 사측의 논리가 너무 빈약했다는 것은 일단 제쳐두더라도,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사내하청노동자와 정규직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도록, 그리고 기존 정규직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 요구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불안을 없앨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설득한 노동조합의 노력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사실 금호타이어 투쟁은 비정규직노동조합이 설립되기 이전 단계부터 정규직노동조합이 주도하면서 준비하고 있던 것이었다. 비정규직 문제 갖고는 어차피 싸울 수밖에 없고, 비정규직 노조의 일방적 독자투쟁은 현장 내에서 정규직노조 조합원과의 마찰과 사측의 탄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규직노조가 나서서 비정규직들과 연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정규직 현장조합원들의 정서를 지속적으로 파악하였고, 광주, 곡성의 각 공장별로 전반적인 상황에 맞도록 사업을 전개하였다. 

광주에서는 주1회 이상 정규직노동자들과 비정규직노조 집행부와의 간담회를 개최하였고, 월1회 비정규직조합원과의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또, 매주 수요일 열리는 비정규직 선전전에 정규직노동자들이 결합했고 비정규직 집회에는 정규직간부들이 꼭 참석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정규직조합원 과별 집회,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의 투쟁전술회의를 주1회 이상 진행하였다. 곡성에서도 광주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과 정규직들의 상시적인 모임을 진행하였으며, 비정규직 투쟁지지 서명과 모금운동을 진행해 약 900만원의 투쟁기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곡성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모여서 체육행사 같은 단결의 날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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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초에 있었던 2004 임단투 승리를 위한 연대투쟁 노동자 전진대회     - 출처: 금호타이어노동조합 ]

정규직의 불안, 정규직노조가 설득하다 

그러나 이렇게 투쟁을 준비하는 사업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진행과정에서는 투쟁을 지지하는 조합원과 반대하는 조합원간의 마찰이 자주 발생하기도 하였다. 하루는 집회를 진행하는 와중에 제품과에서 정규직조합원들이 자기들과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들을 정규직화하는데 반대한다는 것이 대의원을 통해 알려졌다. 정규직화되면 어려운 일을 피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또, 검사과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회사측의 도급화 방침에 동의한 정규직노동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갈등들은 노동조합이 구체적이고 확실한 대안을 가지고 조합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다. 제품과의 노동자들에게는 두 시간에 걸친 간담회를 통해, 현재 작업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동안 근골격계 사업 등으로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이후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인원 충원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밝혔고, 검사과에서는 집회를 통해 전환 배치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설사 전환배치를 수용하게 되더라도 그 직무에 다시 정규직인원을 충원하겠다는 노동조합의 입장을 강력하게 밝혔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현재는 마찰이 거의 사라진 상태이고, 처음에 반대했던 조합원들조차도 정규직 전환이라는 결과를 대부분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소수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조직적으로 발전하지는 못 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직접 고용된 인원들이 전원 정규직 선봉대로 가입했다는 사실이 갈등을 없애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선봉대가 활발하게 활동할 올 임단협 과정을 통해 기존 조합원들과의 마찰이나 불신은 거의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의원 심의과정에서의 진통

정규직노조에서 '비정규직 별도요구안'을 심의하는 과정 또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대의원들이 상당한 불만과 우려를 제기하였고 이에 대해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있었다. 대의원들은 주로 별도요구안의 내용 중에서 일부분을 수정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일부 대의원들은 별도요구안 자체를 폐기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정규직대의원들은 특히 정년이상자의 고용보장과 위로금지급에 대해서 많은 불만을 제기하였다. 비정규직 중에서 정년퇴직연령보다 나이가 더 많은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여 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기존의 정규직들에 대한 처우와 비교했을 때 형평성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특히 광주공장에서는 정년퇴직을 몇 년 앞으로 남겨둔 정규직조합원들이 "기존에는 정년퇴직 후 도급사로 다시 입사하여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도급사를 정규직화함으로 인해서 더 이상 퇴직 후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일견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었지만, 노동조합은 "정년퇴직자를 위해 비정규직을 계속해서 고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고용을 방조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하여 조합원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공방을 거쳐 비정규직 별도요구안은 결국 원안에서 정년이상자 고용보장과 관련된 일부분을 삭제하고 확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도급사로 남아 있는 인원에 대한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에서 제출한 원안대로 통과 됐으며, 이에 대해 정규직조합원들도 문제를 제기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현장의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설문조사에 나타난 80%의 비정규직 투쟁 지지내용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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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 5월 중순 2004년 임단투 파트별 단합대회    - 출처:금호타이어노동조합 ]

불법파견 묵인하며 '상생' 떠들지 말라

지난 5월20일에는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원들이 정규직노동조합으로 가입하였다. 그리고 21일과 22일에는 이를 환영하는 노동조합의 집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집회에서 전환인원들에게 기존 정규직조합원들의 환영과 축하의 박수가 쏟아졌다. 또 5월24일 진행된 노동조합 체육대회에서는 함께 팀을 구성하여 체육행사를 했고, 많은 조합원들이 참석하여 서로에게 격려와 응원을 하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그동안의 갈등과 우려를 말끔히 씻어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결국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이라는 것은 노동자들을 분할해서 지배하려는 자본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인 대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해서만이 깨뜨려질 뿐이다. 그리고 단결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쪽은 정규직일 것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기득권을 움켜쥐고 자기보다 더 힘든 노동자들이 내미는 손을 외면한다면, 얼마 뒤에는 자신은 더 비참하게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노동조합의 투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 현재의 파견근로는 대부분 불법이고, 착취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파견을 모든 업종에 허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들었다. 말로는 '상생'이니, '사회통합'이니 기분 좋게 떠들어대면서, 실제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저들끼리의 '상생'에 우리 노동자들이 코웃음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