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어른을 위한 '야한' 동화 붉은다리 아래 따뜻한 물

노동사회

지친 어른을 위한 '야한' 동화 붉은다리 아래 따뜻한 물

admin 0 7,205 2013.05.12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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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이란 동화는 부모가 가난 때문에 숲에 버린 오누이가 주인공이다. 오누이는 배고픔과 추위에 떨다 과자로 만든 마녀의 집을 발견하고 우여곡절 끝에 보물을 얻어 집으로 돌아간다. 크리스마스, 어린이날이면 과자로 만든 집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매년 빠짐없이 그런 이야기가 들리는 것을 보면 사실 과자로 만든 집을 갖고 싶은 것은 어린이가 아니라 각박한 현실 속에서 판타지가 필요한 어른인 것 같기도 하다. 

movie_02%20%283%29.jpg“이봐 쪼잔하게 굴지 말라구”

경제 불황으로 인한 실업시대. ‘오륙도’, ‘사오정’은 옛말이고, ‘삼팔선’, ‘이태백’이 일상적인 한국사회. 마흔이 넘어 회사는 부도나고, 사장은 퇴직금도 안주고 도망가고, 기술은 없고, 이혼위기에 몰리고…, 이런 남자가 갈 곳은 어디일까?

중년 남성의 실직과 이혼은 일본에서도 영화소재가 될 만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칸느영화제에서 두 번이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라는 일본의 늙은 거장은 평소 샐러리맨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는 어르신들께서 함직한 근엄한 말씀 대신 한껏 웃음을 짓고 능청을 떨며 중년 실직자들과 인생의 진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요스케는 회사에서 실직하고 돈 벌어오라는 재촉에 가정에서도 내몰린 중년의 가장이다. 그는 마음의 위로 차 노숙자이며 ‘파란 텐트의 철학자’라는 별명의 친구 타로를 찾아가지만 이미 숨을 거둔 후이다. “강을 따라 가다보면 붉은 다리가 있는데 그 옆집에 두고 온 보물을 찾아 대신 가지라”는 타로의 유언을 따라 요스케는 붉은 다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집에서 몸에 물이 차오르는 수상한 증세를 가진 미모의 여인에게 이끌려 엉겁결에 그녀와 섹스를 하게 된다. 이제 그는 때때로 몸에 꽉 차는 물을 섹스로 빼야하는 사에코를 도와주겠다는 ‘책임감’으로 이 마을에서 어부로 취직을 하고 그녀가 신호를 보내기만 하면 어디서든 총알같이 달려가곤 하는 기이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타로는 붉은 다리 옆집의 늙은 할머니와 젊은 날 연인관계였다. 그러나 사람을 살해하고 징역살이를 마친 후엔 차마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아다닌 것이었다.

어쨌건 요스케는 사에코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 갖고 싶은 것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구원을 얻게 된다. “싫어”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영업맨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부인 앞에서 고개 숙인 가장으로 살아왔던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여자를 위해 건달에게 주먹을 날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타로가 요스케에게 했던 “쪼잔하게 살지말고 욕망에 충실하라”는 충고는 젊은 날의 자신의 실수에 대한 책망이며, 자신이 얻은 인생의 교훈이고, 또 바로 이것이 감독이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다. 

삶이 진절머리나는 어른들을 위한 환상 

회사에 충실한 일본 사람을 ‘회사형 인간’이라고 부른다면 월차, 연차를 수당으로 받는 게 당연시되는 우리나라 노동자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끈적한 욕망의 세계를 그리는데 탁월했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 영화에서 아주 코믹하고 판타스틱한 어른들의 동화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몸에 물이 차오르는 병에 걸린 여자, 그녀를 위해 달려가는 남자, 절정의 순간 분수처럼 솟아올라 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와 그 따뜻한 물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떼. 

이 황당하고 야한 이야기는 “과자로 만든 집”처럼 달콤하고 환상적이다. 감독은 이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 어른들에게 웃음이 가득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현재를 즐겨라”, 그리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져라” 라고.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