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노동시장 정책 이념의 전개와 함의

노동사회

독일노동시장 정책 이념의 전개와 함의

admin 0 5,902 2013.05.12 07:51

1. 머리말

실업을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은, 재정정책, 통화정책 등을 통하여 경제 전체의 수요를 증대시킴으로써 노동력의 수요를 증대시키는 “고용정책”과 노동시장에서의 지역적 및 숙련상의 수급불일치를 해소시킴으로써 고용을 증대시키는 “노동시장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글의 주제인 노동시장정책의 구체적 정책수단은, 나라마다 시기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실업수당, 직업소개, 직업훈련, 고용유지지원금, 공공근로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실업수당처럼 이미 발생한 실업에 대한 소득보상수단을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 하며, 기타 실업을 예방하거나 감축하기 위한 대책들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 한다.

이러한 대책들은 일반적으로 실업(고용)보험에 근거한 특정 법률을 통해 집행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독일의 ‘사회법전 III’(1997년까지 ‘노동촉진법’)이나 일본의 ‘고용보험법’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도 1995년에 고용보험법을 도입함으로써 본격적인 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하였으며, 그 도입과정에서 위의 두 나라는 가장 중요한 해외사례였다(유길상 1995).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 독일의 노동시장정책 이념이 노동시장의 변화과정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왔으며, 특히 최근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를 간략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와 관련하여 먼저 독일의 실업추이를 간략히 언급하면, 독일의 실업률은 1950, 60년대의 소위 “경제기적” 기간동안 1% 미만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하였으나, 1970년대 중반 1차 석유위기로 인한 경제위기 이후 30여 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3년 현재 등록실업자 수는 약 440만명, 실업률(피고용자 대비)은 약 11.5%를 기록하고 있다. 

2. 노동촉진법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독일 노동시장정책의 시초는 1927년의 직업소개 및 실업보험법으로 소급된다. 나찌시대에 일시 중단되었던 이 법은 2차대전 후 부활되어 1969년 노동촉진법으로 대체되었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실업수당을 중심으로 한 보상적,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규정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노동촉진법의 기본이념은 예방적,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특징지어 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도입되었다.

1960년대 후반 독일 노동시장의 문제는 실업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력, 특히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른 숙련노동력의 부족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기업들의 노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직업훈련(양성훈련)이 개별 기업 내지는 특정 일자리에 특수한 숙련을 형성하는 데 그칠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력 이동성을 제약할 수도 있다. 게다가 많은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의 경우 개별적으로는 향상훈련이나 전직훈련을 위한 비용을 조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시장정책이 개별 기업의 범위를 넘어서 국민경제 전체 차원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근본적인 개혁이 요구되었다.(K?hl 1982: 252)

이런 배경으로 인하여 노동촉진법은 무엇보다도 직업훈련의 촉진에 최우선을 두었으며, 이를 위해 개별적 직업훈련에 대한 법적 청구권을 인정함으로서 직업훈련은 실업수당과 마찬가지로 사유가 발생할 경우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의무급부가 되었다. 게다가 직업훈련 참가 기간 동안의 생계수당의 지급은 이 청구권을 실질적인 권리로 만들었다.(Lampert 1989: 176)

이러한 직업훈련의 역할을 숙련형성의 측면이 아니라 실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피고용자에게 일자리의 유지(향상훈련) 또는 다른 일자리로의 원활한 이동(전직훈련)을 가능하게 하여 실업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노동촉진법에는 이외에도 이처럼 실업을 예방하거나 감축시키는 적극적 수단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직업상담 및 일자리 소개, 구직비용지원, 창업지원, 채용보조금, 조업단축수당(고용유지지원금), 건설업 상시고용촉진, 공공근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적극적 수단들은 노동촉진법 내에서 모두 보상적 급부(실업수당, 실업부조, 파산수당)에 앞서 규정되어 있어 소극적 수단에 비해 명시적인 우선권을 부여받고 있다.

바로 여기에 직업소개 및 실업보험법이 노동촉진법으로 대체되어 일어난 독일 노동시장정책 변화의 본질적인 특징이 있다. 즉 당시 노동부장관이었던 카쩌(Katzer)는, “노동시장정책은 실업에 대한 단순 보장에서 노동시장의 난점들을 적시에 예방하는 대책으로, 기계적인 노동시장 균형 노력이나 직업소개를 위한 노력에서 올바른 직업 및 일자리 선택을 위한 예방적 정책으로 혁신되었다”고 그 특징을 말했다. 다른 말로 하면, 독일 노동시장정책은 노동촉진법 도입을 계기로 단순 보험원리에 입각한 보상적,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에서 “예방적 이념”(Seifert 1984: 25)을 가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3. 실업의 증가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후퇴

이러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중요한 특징은 그 예방적 성격을 실현하기 위해서 정책의 집행이 반(反)경기적 형태를 취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경제침체의 시기, 따라서 실업이 증가할 때에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지출이 증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70년대 중반부터 실업이 증대하자 독일 노동시장정책의 전개는 국면에 따라 순(純)경기적 양상, 즉 실업이 증가되었을 때 오히려 노동시장정책 지출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여 왔다.

먼저, 노동시장정책의 집행기구인 연방노동청의 총지출은 70년대 중반 이래 크게 증가해 왔지만, 1982~85년과 1994, 97년의 경우 실업률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정책 지출은 오히려 감소하였다. 특히 노동시장정책 지출의 순경기적 양상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핵심대책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그 결과 전체 노동시장정책 지출 가운데 적극적 대책들에 대한 지출의 비중도 실업수당 지출에 대한 비중보다 낮아져 평균적으로 1/3 정도에 불과하였으며, 특히 1990년대 들어서는 급격한 하락추세를 나타냈다. 

이러한 노동시장정책 지출의 순경기적 양상과 적극적 대책을 위한 지출의 낮은 비중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서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의 중점이동”(Keller/Seifert 1995: 13) 또는 “노동촉진법 제정 당시 설정되었던 목표의 포기”(Karasch 1994: 133)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노동촉진법의 기본이념, 즉 적극적, 예방적 노동시장정책이라는 이념은 노동촉진법의 수많은 개정에도 불구하고 법률적으로는 유지되었지만, 실질적인 노동시장정책 집행의 중점은 오히려 이미 발생한 실업에 대한 대처라는 소극적 성격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태 전개의 원인은 우선 실업의 지속적 증대에 따른 재정상황의 악화와 특히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실업수당)의 재원과 적극적 대책들을 위한 재원이 통합되어 있는 재정체계의 결함 때문이었다. 즉 두 재원이 통합되어 있어 실업의 증가로 의무급부인 실업수당의 지출이 증대되면, 기타 적극적 대책들을 위한 재원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소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구축(驅逐)관계).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정책적 의지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노동촉진법에는 연방노동청의 재정이 적자를 기록할 경우 연방정부가 이를 보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연방노동청의 만성적인 적자에도 불구하고 통독 이전에 연방정부의 보조가 없었던 해가 보조가 있었던 해보다 많았다. 통독 후에 연방정부의 보조가 증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보험료율 인상으로 인한 수입증가분에 비하면 매우 적었다. 결국 연방정부의 연방노동청에 대한 재정보조는 노동시장정책의 재원조달에 매우 미미한 보완적 역할에 머물렀다. 나아가 연방정부는 재정보조의 확대 대신에 적극적 대책들에 대한 급부를 지속적으로 축소시켜 왔는데, 대표적으로 1994년에는 직업훈련의 청구권을 폐지하고, 훈련참가시의 생계비를 당초 직전 임금의 90%에서 실업수당과 같은 수준인 60% 내지 67%(부양자녀 있을 경우)로 감축하였다.

결국 1970년대 중반 이후 독일의 노동시장정책은 지속적인 실업의 증대로 인한 재정위기 속에서 점점 더 “재정정책의 수렁”(Adamy 1994: 33) 속에 빠졌으며, 그 결과 노동촉진법이 당초에 목표로 했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점차 후퇴하게 되었다. 

4. 사회법전 III과 적극화 노동시장정책 

이러한 상황에서 1990년대 중반에 노동촉진법의 근본적 개혁을 둘러싼 논의가 광범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1998년부터는 노동촉진법을 대체하여 사회법전 III이 발효되었다. 그러나 이 사회법전 III 이후 노동시장정책은 후퇴하고 있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강화를 도모한 것이 아니라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게 되었다.

이 전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노동촉진을 위해서 국가의 책임 대신에 일자리의 ‘적정성’ 규정을 강화하는 식으로 노동자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 적정성 규정은 본질적으로 실업수당 및 실업부조의 수급권리에 관계되는 것인데, 실업자가 노동청이 제시하는 ‘적절한’ 일자리나 직업훈련 등을 거부할 경우 지급중단 및 수급권 소멸 등을 통해 일련의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적정성의 강화는 노동촉진에 있어 의무와 강제의 강조를 의미한다.(Rabe/Schmid 2000: 307)

이러한 강제는 필연적으로 구직자에게 “가능한 한 빨리 아무 일자리나”(Sell 1998: 539) 또는 “모든 희생을 감수한 일자리”(Huffschmid 2002)를 수용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들의 숙련 보호는 불가피하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노동자의 숙련에 맞는, 그리하여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은 저하되며, 이러한 의미에서 강제를 동반한 노동촉진은 본질적으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예방적 성격’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대신 사회법전 III이 표방하는 새로운 노동시장정책은 강제를 통하여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책임 하에 더욱 적극적으로 구직에 나서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으로 규정되고 있으며, 그 본질적 특성은 노동촉진과 강제의 결합이라는 의미에서 “촉진과 강제” 또는 일반적으로 “촉진과 요구”로 규정되고 있다.

이러한 자기책임 내지는 적극화라는 개념은 애초에 1990년대 초 서유럽의 사회보장체계 개혁과정에서 부각되었다(Lødemel/Dahl 2000: 197f.). 그 기본동기는 지속적으로 증대하는 실업으로 인해 복지국가적 지출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증대되는 상황에서 사회정책과 노동시장정책을 결합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소위 “근로연계복지 혹은 생산적 복지(workfare)” 전략이 추구되었는데, 이것은 노동을 하거나 노동할 의사가 입증된 경우에 한하여 사회보장급부를 지급하는 것을 의미한다(Dingeldey/Gottschall 2001: 33; Zilian 2000: 567). 이러한 맥락에서 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서유럽에서는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이 꾸준히 추진되었으며, 독일에서 노동촉진법의 사회법전 III으로의 대체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당초 사회법전 III은 우파정당인 기독민주당과 자유민주당 연립정부에 의해 도입되었으나, 1998년 가을에 등장한 슈뢰더정부(사회민주당-녹색당 연립정부)에서도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은 더욱 확대되었고, 특히 2002년 가을 제2기 슈뢰더정부 출범 이후 최근까지  “전후 역사상 최대의 노동시장 개혁”(WISSENTransfer 2003: 1)이라 할 만한 노동시장정책의 급격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는 2002년 8월 폴크스바겐의 노무이사인 하르쯔(Hartz)를 중심으로 한 하르쯔위원회가 제안한 소위 “하르쯔 구상”과 2003년 3월 수상 슈뢰더가 발표한 “아겐다2010(Agenda 2010)”이었는데, 그 제안들은 2002년 말과 2003년 말에 각각 노동시장에서의 현대적 서비스를 위한 법 I, II와 III, IV로 입법화되어 Hartz I과 Hartz II는 2003년 1월부터, Hartz III은 2004년 1월부터 발효되었고, Hartz IV는 2005년 1월부터 발효된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연방노동청 개편
   - 연방노동청, ‘연방노동중개소’로 명칭 개편
   - 중간단계인 지역본부의 자치행정 폐지(이상 2004부터)
   - 노동중개소에 구직 상담, 소개, 취업계약 등을 일괄적으로 담당하는 구직센타(Job-Center) 설치(2005부터)
② 파견노동의 확대 
   - 모든 노동중개소에 인력파견회사인 인력서비스중개소(Personal-Service-Agentur: PSA) 설치: PSA 설치는 Hartz 구상의 “핵심”
   - 파견노동에 동등대우원칙이 적용되지만, 단체협약으로 그 원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특히 이전에 실업자였던 파견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음.
③ 적정성 규정 강화: 임금수준, 고용보호, 통근시간, 일자리 위치 등에 있어 적절한 일자리의 규정 강화
④ 급부의 감축: 실업부조의 폐지(2005년부터)
   - 실업수당 지급기간 단축: 55세 미만 실업자 12개월, 55세 이상 실업자 18개월로 단축(“실업수당 I”)
   - 실업부조와 사회부조의 통합: 노동능력이 있는 장기실업자의 경우 실업부조와 사회부조를 통합한 “실업수당 II”를 지급하며, 그 수준은 사회부조수준으로 하향.
   - 노동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기존의 사회부조에 해당하는 “사회수당” 지급.
⑤ 저임일자리의 확대
   - “자기 주식회사”: (유사)자영업 촉진 
   - Mini-Jobs: 월보수 400유로까지의 일자리로서 노동자는 사회보험료 부담을 면제받으며, 사용자는 각종 사회보험료를 총괄하여 임금의 25%만 부담.
   - Midi-Jobs: 월보수 400~800유로의 일자리. 사용자는 사회보험료를 전액 부담하지만, 노동자는 보수에 따라 단계별로 차등 부담.
⑥ 기타 유사 대책 및 급부의 통합을 통한 단순화


이상과 같은 최근의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이라는 이념을 간략히 평가해 보면, 우선 그것은 이론적으로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즉, 적극화전략은 적정성 규정의 강화를 통해 구직자에게 압력을 가함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더욱 적극적으로 아무 일자리나 찾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구직자들이 수용하기만 한다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충분히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독일의 등록실업자만 해도 450만명에 달하고, 노동시장 대책 참가자와 비경제활동인구까지 합하면 구직자가 약 6~700만명인 데 반해, 등록, 미등록을 합한 구인 일자리 수는 불과 120만개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AAW 2002: 3) 따라서 현존하는 구인 일자리가 모두 채워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대량실업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적극화전략은 근본적인 실업극복전략이 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또 하나의 전제는 실업자들이 구직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양보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제재를 통해 구직을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업자의 8~90%가 새로운 일자리 전망이 있다면 직업전환뿐 아니라 교대근무시간제나 장거리 출퇴근도 감내할 수 있다는 실증조사(Brixy/Christiansen 2002)가 입증하듯이, 실업자들에게 “자기적극화”의 의지는 매우 확산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문제는 일할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가 없는 점이다.

이러한 잘못된 전제에서는 실업감축의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 뿐 아니라, 비정규직 확대와 사회보장 축소라는 부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 즉, 최근의 노동시장정책 개혁에서 드러나듯이,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의 일환으로 파견노동과 저임 일자리의 확대 등이 의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명시적인 의도가 아니더라도 적극화 전략 자체는 근본적으로 비정규직 확대의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구직자가 적정성 규정의 강화로 인한 제재(급부의 중단 내지 취소)를 피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파견직이든 기간직이든 저임 일자리든 자신의 숙련, 기대임금 등에 못 미치는 일자리라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비정규노동에 대한 지원의 강화는 기업들로 하여금 정규노동을 임금이나 기타 근로조건에서 유리한 비정규노동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하며, 이로 인해 정규노동을 비정규노동이 몰아내는 효과를 낳게 된다.(AAW 2002: 4)

다른 한편,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은 사회보장 수준의 전반적 하락을 초래한다. 이는 대표적으로 Hartz IV에서 규정된 실업수당 I의 급부기간 단축과 실업수당 II(실업부조와 사회부조의 통합)로 인한 실업부조의 폐지 및 급부 수준의 사회부조 수준으로의 하향조정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아울러, 명시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적정성 규정 위반으로 인한 급부의 감축, 중단, 취소 등을 고려하면 사회보장 수준의 하락은 더욱 가속화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적 기준의 파괴”(Huffschmid 2002: 160)가 진행된다. 더구나 적정성 규정의 강화는 일자리 수용의 강제뿐 아니라 그 희생자들의 경우 노동시장으로부터의 퇴출을 강제함으로서 “사회적 배제의 위험”(Trube 2002: 22)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점까지 고려하면, 결국 적극화 전략은 “집단적 위험보호의 점진적 약화"(Sell 1998: 545)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 결과 “빈곤의 가속화”(Steinfeld 2003: 14)를 초래하게 된다.

5. 한국에의 함의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독일의 노동촉진법은 한국에서 고용보험법을 도입할 당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이었다. 특히 고용보험법도 노동촉진법이 표방하고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전면에 부각시켜, 그 일환인 고용안정사업과 직업능력개발사업에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인 실업급여보다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유길상 1995)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한국도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고용보험법 도입 직전인 1990년대 초에 고숙련 기능인력이 부족했다는 사실과 “실업급여가 노동동기를 저하시킬 것”(moral hazard)이라는 실업급여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등도 존재하였다(한국사회과학연구소 1994; 김진구 1995a; 1995b). 

어쨌든 고용보험에 근거한 한국의 노동시장정책은 도입 초기인 1998년부터 급증한 실업상황에 대처하는 데 나름대로 역할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지출이 확대되고, 새로운 대책도 많이 도입되었으며, 급부 수준도 개선된 면이 있지만, 그 적극적 성격은 크게 약화되었다. 먼저 실업급증에 따른 실업급여의 급증으로 적극적 대책들에 대한 지출의 비중이 절반 이하로 현저히 저하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중 저하는 독일에서처럼 재정통합으로 인해 소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간의 구축관계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한국 고용보험의 재정체계는 고용보험 3사업의 재정이 상호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비중 저하는 그에 대한 정책적 의지의 취약함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위한 재원인 누적적립금이 고용안정사업의 경우 2002년 지출액의 무려 15배에 달하며, 직업능력개발사업의 경우도 1.3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취약한 정책적 의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독일이 처한 상황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독일에서 노동시장정책의 이념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서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으로 이행하게 된 것은 30여 년간 실업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으며, 그에 따라 커다란 재정적 곤경이 초래되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배경이었던 데 반해, 한국의 경우 실업률도 상대적으로 낮고 재정형편도 매우 양호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극복을 위한 한국의 사회적 지출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아직 한국에서는 적극화 전략이 의도하는 고용문제에서 국가책임의 후퇴가 언급될 시기는 아니며, 오히려 노동시장정책의 지출 확대를 통해 국가의 개입을 강화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조건과는 별도로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효과들로 인해 그것을 한국에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적극화전략은 사회보장 수준의 저하, 나아가 사회적 배제의 확대를 낳는다. 이러한 사회보장의 후퇴는 그나마 전통적으로 높은 사회보장을 유지하고 있던 독일이나 기타 유럽에서는 당장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 다소 확대되고는 있지만, 유럽의 "welfare"에 비해 "no-fare"(윤진호 1999: 55)라고까지 규정될 수 있는 한국의 사회보장상황에서 적극화전략의 도입은 가뜩이나 취약한 사회보장의 기반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적극화전략이 초래할 비정규노동의 확대에 이르면 더욱 심각해진다. 현재 한국의 비정규노동의 비중은 50%를 상회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노동법의 보호나 사회보험의 적용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김유선 2001)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노동의 추가적인 확대는 당사자들의 생활 악화는 물론 심각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다.

결국 최근 독일(및 기타 유럽)에서 전개되고 있는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을 한국에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 조건으로 보아 필요하지도 않으며, 그 효과를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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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