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사회적 연대의 길로 가야한다

노동사회

국민연금 개혁, 사회적 연대의 길로 가야한다

admin 0 3,527 2013.05.12 08:13

지난 달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글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번진 이후 정부가 임기응변식 개선책을 부랴부랴 내놓고, 열린우리당을 시작으로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이 차례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국민연금 개혁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정치권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국민연금 8대 비밀’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은 아니며, ‘안티국민연금’의 주장이 사회계층간 분열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국민연금의 소유자이자 수혜자인 국민들로부터 “그거 이 참에 없애버리자”라고 하는 극단적인 소리마저 나오게 된 데에는 정부에게 그 일차적인 책임이 있으며,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저부담-고급여’체계라는 이유로, 그리고 재정고갈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신자유주의적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상황인식을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왜 국민연금을 이야기 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높이는지에 대해 이제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국민연금의 공공적 성격을 강화시켜내는 방향이 올바른 개혁의 방향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과연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사회적 연대의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할 뿐이다.

최소한의 삶도 와르르…

‘최소한의 삶도 와르르… 극빈층 는다’라는 제하의 6월15일자 한겨레신문 경제란의 기사를 눈 여겨 살펴보자. 이 기사에 따르면 2004년 4월 현재 도시가스 요금을 내지 못해 가스가 끊긴 가구 수가 8만4천 가구이고, 전기료를 내지 못해 단전을 경험한 가구 수가 14만7천 가구라고 한다. 또한 영세자영업자들이 가입하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가운데 163만 가구가 3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하고 있고, 개인파산자는 올 초부터 5월까지만 하더라도 무려 1,995명이라고 한다. 이 기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서민들의 삶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지난 10여년 간 줄기차게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무비판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진한 결과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당장 하루하루를 넘기기조차 힘들어 목을 매고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생겨나도 이제는 신문기사에서조차 다루어지지 않는,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을 철폐하라고 외치며 분신을 해도 잠깐 동안의 관심밖에는 끌지 못하는 그런 사회인 것이다. 한해 복지예산의 80%에 육박하는 돈이 씨티파크 분양에 몰리고 있고, 백만장자 증가율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골병 속에 허우적대는 이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그런 사회인 것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미래의 노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얼마나 생산적일 수 있으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실한 공적연금, 쑥쑥 크는 사보험

나는 혹여 ‘국민연금폐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아예 국민연금제도 자체가 없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국민연금이 또다시 ‘개혁’이라는 미명아래,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적연금제도가 애초 가지고 있던 사회 연대적 성격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연금의 시장화’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것이 오히려 큰 걱정이다.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최근 사적생명보험 시장의 확대를 살펴보도록 하자. 2002년 현재 사적생명보험 시장은 정부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49조원의 보험료를 거두었다. 정부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나 몰라라’하면서 방치하는 동안 사적생명보험시장은 공적연금제도의 영역을 서서히 잠식하면서 엄청난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셈이다. 사회 연대적 성격을 갖는 공적연금제도는 무너져 가고 있는데 반해 사적생명보험시장은 급속히 커지고 있고,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그저 방치만 해왔던 것이다.

또한 지금은 조용하지만 이번 국민연금의 논란이 어떤 형태로든 결론이 나면 또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기업연금제도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보자. 정부는 현행 퇴직금제도가 전체 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으며, 중간정산제의 도입으로 인해 노후생활 준비에 대한 의미가 없어졌기에 노동자들의 퇴직 후 안정적인 노후생활 준비를 위해서는 서둘러 기업연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대체 이런 정부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연금의 시장화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세계은행(World Bank)의 연금개혁안, 즉 국민연금-기업연금-사보험의 다층체계로 연금제도를 재편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으며, 결국 국민연금제도마저도 시장화 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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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World Bank)의 연금개혁안
세계은행의 연금개혁안은 강제적인 공적연금 - 강제적인 사적연금 - 임의적인 사적연금이라는 다층체계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강제적인 공적연금은 최근 국내에서도 논의가 시작된 기초연금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조세로 재원을 조달하고 재분배와 보험기능을 갖는다. 강제적인 사적연금은 국내에서도 작년부터 논의가 시작된 기업연금 도입과 관련이 있으며 저축과 보험의 기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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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연대정신의 실종

연금제도의 위기와 개혁은 비단 우리 사회에서만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적연금제도를 갖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이러한 논란 속에 공적연금제도의 개혁 방향이 개인연금이나 기업연금 등 사적연금의 비중을 높이고 공적연금은 부분적으로 그것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 역시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공적연금제도를 모든 사회 구성원에 대한 사회적 권리의 제공이라는, 그리고 사회적 연대의 시각으로 재구축 하려는 시도가 분명 존재하고 또 그렇게 개혁을 추진한 나라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사회복지’가 정치·사회적으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IMF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상황에서 정치·사회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전시기에는 사회복지체계가 매우 취약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가 빠르게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복지 수준은 매우 낮다.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있는 사회복지체계는 지금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반영이라도 하듯, 일관된 원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공적연금제도인 국민연금의 경우 공적연금제도 자체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인 사회적 연대성의 원리마저도 크게 훼손되어 있는 상황이고, 공적연금제도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우선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지역가입자 등 이른바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이 대략 6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현재의 국민연금제도는 이들을 포괄하기는커녕 보험료 미납에 대한 가압류 조치로 오히려 ‘사회적 자살’을 강요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세제개혁과도 맞물린 문제이기는 하나 자영업자에 대한 정확한 소득파악이 되지 않아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간의 형평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어 공적연금제도가 가지는 사회 연대적 원리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의 제도 안에서 계산을 하더라도 월평균 소득이 136만원인 이들의 연금액이 올해 기초생활보장제도 1인가족 최저생계비 345,412원을 간신히 넘는 수준밖에 되지 않아 공적연금제도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 사회적 연대가 답이다

국민연금의 올바른 개혁을 위한 논의의 방향은 그 시작을 어디로 잡고 첫걸음을 내딛어야 할까? 현재만 하더라도 120조원이 넘게 적립되어 있고 2030년경에는 650조원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기금이 쌓일 것으로 추정되는 현재의 기금 적립방식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를 하는 것이 첫걸음인가? 아니면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일용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영세지역가입자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첫걸음인가?

실업자, 생계유지 곤란자, 최저생계비 이하 소득자들에 대한 개인 크레딧(credit)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첫걸음인가? 아니면 고소득 자영업자들에 대한 정확한 소득파악이 첫걸음인가?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이 첫걸음인가? 조세를 통한 무기여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그 첫걸음인가? 국민연금기금운용의 민주적 재편이 그 첫걸음인가?

지금 지적한 이러한 문제들은 이미 작년부터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었다고 보이고 또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러기에 지금 당장 이러한 부분들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국민연금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하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국민연금의 개혁방향을 논하기에 앞서 실종된, 아니 여태까지 단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식의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이러한 사회적 연대의식의 시선이야말로 삶의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이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공적연금제도 안에서 추방당한 사회적 시민권을 회복시켜낼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연대라는 철학이 부재한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개혁방향은 우려했던 바대로 신자유주의의 길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회적 연대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국민연금을 들여다보자. 답은 이미 내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