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노동법과 비정규직

노동사회

독일의 노동법과 비정규직

admin 0 8,940 2013.05.12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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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04년 6월22일(화)
곳: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2
주최: 한국노동사회연구소·프리드리히에베르트재단
사회: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발제: 만프레드 바이스(Manfred Weiss) 교수 전(前) 세계노사관계학회(IIRA) 회장
토론: 정원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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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 이원보

지금 한국은 임단투가 최정점에 이르렀습니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이 타결되었지만, 여전히 열기가 대단히 높습니다. 올해 임단협 쟁점은 주5일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회연대기금이 핵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 이 자리는 독일의 노동법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쟁점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사회경제적 정책방향과 관련하여 어떤 선택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지 그리고 외국 사례가 우리 법제도 형성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럼 발제자의 발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forum_01_17.jpg발제자 - 만프레드 바이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이 네 번째 한국 방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올 때마다 한국의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입니다. 가능하면 강연은 짧게 하고 토론을 좀 더 풍부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럽연합의 비정규직 관련 지침

현재 유럽의 비정규노동에 대한 각국 정책의 중요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 유럽연합(EU)의 지침이기 때문에 독일의 노동법을 설명하기에 앞서 EU의 법에 가까운 지침에 대해서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1957년 창설되어 현재 25개국의 회원국을 포함하고 있는 EU는 입법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EU가 제정한 법은 개별 국가의 법보다 상위법입니다.

단시간 근로와 기간제 근로는 EU 지침에 최저 근로기준이 제시되어 있으며, 회원국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이를 통해 EU 소속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근로관계가 형성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1997년 EU는 단시간(파트타임) 근로에 관한 EU 지침을 제정했습니다. 지침을 보면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동등대우의 원칙입니다. 전일제나 단시간이나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물론 시간에 비례한 원칙 적용입니다. 이 지침은 EU 소속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단시간 근로자를 노동법으로 보호하고 있지 않던 영국은 EU의 회원국이기 때문에 EU가 정한 이 지침을 준수해야 했습니다.

둘째는 해고금지의 원칙입니다. 이것은 근로자가 단시간 근로에서 전일제 근로로 옮겨야 한다거나 그 반대로 옮겨야 하는 상황을 거부하더라도, 그 거부가 해고의 사유가 되지 않는 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인의 생활 패턴에 맞는 근로형태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1999년에 제정된 기간제 근로에 관한 지침입니다. 여기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비교가능한 상용노동자보다 불리한 방식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며 기간비례 원칙을 적용받는다는 동등대우의 원칙입니다. 이 지침도 모든 EU 회원국에 적용됩니다. 그래서 영국의 경우 법을 모두 개정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둘째는 남용방지 조치로 기간제 근로의 갱신에서 올 수 있는 오용을 막도록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기간제 고용 갱신을 정당화할 객관적 사유를 제시할 것 또는 최대 지속기간 및 갱신횟수 중 하나 이상을 도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준이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회원국 중에서는 불만스런 국가도 있습니다.

셋째는 파견근로의 지침입니다. 이 지침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며,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파견근로 지침 관련하여, '파견근로자에게도 사용업체의 노동자와 같은 근로조건을 적용해야 하는가'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EU에는 이 같은 EU지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노조연맹(ETUC:유럽노동조합총연맹)과 사용자단체(UNICE:유럽산업사용자총연합단체연합)가 맺는 기본합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지만, 국가 이해 당사자들이 법제도를 만들 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2002년에는 두 단체간에 재택근로에 관한 기본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적용하고 있는 국가는 없습니다.

독일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

독일의 노동법에 대해서 설명하기에 앞서 독일 비정규직의 현황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독일 단시간(파트타임)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25%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중에서 대부분의 근로자가 '과소 근로' 다시 말해 일주일에 몇 시간 일하지 않는 근로자이고, 절대 다수가 여성들로 저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기간제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2∼13%를 차지합니다. 파견 근로자의 비중은 아주 낮아 1.2%에 불과하지만,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독일의 노동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 노사관계에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는 종업원평의회에 대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종업원평의회는 노동조합과는 별개의 조직으로서 경영조직법(Betriebsverfassungsgesetz)에 따라 5인 이상 사업장에 설립할 수 있습니다. 종업원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구성되며, 근로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입니다. 법적으로는 이렇게 규정되어 있지만, 독일의 실태를 보면 종업원 수가 100명 미만인 사업장에도 평의회가 없는 곳이 많습니다.

대기업들은 직장평의회가 모두 구성되어 있으며, 상당한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신규고용을 하기 위해서는 신입 직원 후보의 모든 정보를 평의회에 제공해야 합니다. 평의회는 사용자가 법적 준수 사항을 지키지 않고 고용을 하려 할 때, 동의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해당 후보자를 고용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단시간, 기간제, 파견근로자를 고용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도 종업원평의회가 참여합니다.

평의회는 기업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상당한 권리를 갖습니다. 독일에는 '공동결정제도'가 있어 사용자와 종업원평의회가 어느 한 쪽을 배제한 채 일방적인 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용자는 종업원평의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합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습니다. 예컨대, 종업원평의회가 구성된 대기업에서 기간제 근로자나 파견 근로자의 사용을 원치 않는다고 견해를 피력할 경우 사용자는 가급적 고용을 피합니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기간제나 파견 근로자의 비중은 낮습니다. 반면, 평의회 구성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이 높습니다.

종업원평의회는 기간제나 파견제 고용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단시간 근로에 대해서는 선호하고 권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 앞에서 수치를 말씀드린 것처럼 단시간 근로자 비율이 높습니다.

독일 비정규 근로형태에 관한 법규정

이제 독일의 비정규 근로형태에 관한 법규정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첫째, 2000년도에 발효된 단시간 근로에 관한 법입니다. 이 법은 '사용자단체와 노조연맹은 단시간 근로를 촉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시간 근로야말로 가정과 직업을 병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기보다는 독일의 단시간 근로에 관한 법 중에서 두 가지 경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호출근로(변형근로 혹은 탄력시간근로)와 잡쉐어링(일자리나누기)과 관련된 것인데, 이것은 근로자의 착취를 불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제정된 것입니다.

변형근로 종사자의 95%가 여성이며, 주로 하는 일은 소매상의 판매원입니다. 과거에 변형근로 종사자들은 예컨대, 호출을 받으면 무조건 일을 하러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유시간이 있더라도 마음대로 시간을 계획하여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 최소 4일전에 호출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서 근로자의 자율성을 보장했습니다. 다음으로 일자리나누기의 경우, 일자리나누기로 고용된 근로자 중 일부가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남아 있는 사람들도 해고하는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단시간 근로에 관한 법이 발효됨으로써 해고를 할 수 없도록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시간 근로와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새로운 규정은 '근로자가 단시간 근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만일 전일제 근무를 하는 상용직 근로자가 단시간 근로를 요구할 경우 자기가 일할 시간의 양을 근로자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근로자의 요구에 사용자는 응해야만 합니다. 사용자가 거부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는 사업상 중요한 사유가 있을 때인데, 이 사유가 사업상 중요한 사유에 해당하는 가에 대해서는 재판을 통해서 결정합니다.

2000년도에 단시간 근로요구권이 도입되자, 근로자의 요구 분출로 인해 노사간 갈등이 빈번할 것이라는 등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갈등은 현실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실제 단시간 근로요구권의 사용이 적었을 뿐 아니라 사용한 경우에도 노사간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둘째, 기간제 근로에 대한 법규정입니다. 2000년도에 도입된 법에는 기간제 고용에 대한 규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1985년 고용촉진법(Beschaftigungsforderungsgesetz)이 제정되기까지 객관적인 사유가 없는 기간제 근로를 해고제한법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무기계약 근로로 간주하는 한편 고용 기간을 엄격히 제한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경기 침체 속에서 기간제 사용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실업 상승의 요인이 되고 있다며 완화의 요구가 대두되었고, 사용자가 기업사정이 악화되어도 해고가 어려워 아예 채용을 꺼린다는 지적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985년 기간제 근로를 촉진하도록 규제를 완화했지만, 기대되었던 고용촉진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0년도에 제정된 법에서는 신규고용의 경우 2년까지 기간의 제한을 두고 있으며, 2년 이후에는 정당한 사유를 제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 기업 창업을 유도하기 위해서 신규 기업의 경우에는 4년까지 연장하고 있습니다.

셋째, 파견근로에 관한 것입니다. 독일의 파견근로에 관한 법은 파견노동자를 사용업체의 정규 근로자와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문제와 관련해서 동일 임금을 적용하게 법을 정해 놓았지만 단체협약이 다르게 규정하고 있을 경우,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도록 예외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결국 단협을 통해서 파견노동자의 임금을 사용업체의 노동자보다 낮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의 법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원칙적으로 모든 근로자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법적 장치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단시간 근로가 그리 인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수입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보장제도에 따른 연금의 액수가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또한 단시간 근로의 경우 대부분 단순 근로이고, 주로 여성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기간제 근로의 경우도 중소기업 비중이 높습니다. 기간제 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기간제 근로는 수습기간의 연장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2년 후에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다는 기대심리로 인해서 다른 근로자들과의 연대감을 해치는 행위를 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합니다. 파견근로자는 집단적 근로자의 보호시스템, 이를테면 종업원평의회나 단체협약에 포괄되지 않습니다. 기업에 통합되지 못한 채 아웃사이더로 취급받고 있고, 노동조합에도 통합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상으로 발제를 마치겠습니다.

토론자 -  정원호

forum_02_10.jpg토론을 위해서 나름대로 EU와 독일의 비정규직 관련 법과 한국의 법을 비교하는 표를 그려보았습니다. 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이와 관련해서 교수님이 파견근로 관련해서 누락하신 부분에 대해서 한 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예외조항으로 단체협약을 얘기하셨는데, 최근에 실업자의 경우에도 동등대우 원칙을 적용받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업자가 파견근로자로 채용될 경우, 6주 동안은 동등대우를 하지 않고 실업수당 이상만 주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최근 독일도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가 완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EU나 독일의 규정과 한국을 비교하면, 한국은 파견법을 제외한다면 아예 법 자체가 없습니다. 단시간 근로(파트타임)나 기간제 근로는 근로기준법에 딱 한 조항씩만 있습니다. 최근에 단시간 근로와 기간제 근로에 관한 특별법을 만든다고 하던데 아직 가시화 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토론은 제가 발제자에게 질문을 하는 형식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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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 한국에서는 파견 기간을 1년 이하로 규정하고 있고, 1회에 한해서 1년 이내에서 연장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는 파견기간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발제자: 1972년 파견근로에 관한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파견 기간에 대해서, 사용업체 당 6개월이었습니다. 반면, 파견근로자와 파견업체 사이에서는 기간 없이 하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고용관계를 안정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파견 기간에 관한 규정은 점점 길어져 나중에는 24개월까지 연장되었다가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파견 기간이 없는 이유는 유연성을 제고한다는 목적이었지만, 지금 좋은 결과를 낳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토론자: 한국에도 차별금지 원칙이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독일의 경우는 어떤지 말씀해 주십시오.

발제자: 종업원평의회가 있는 경우에는 100% 준수됩니다. 반면, 평의회가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준수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차별금지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모든 고용형태의 근로자가 노동법원에 고소할 수 있습니다. 고소할 경우 근로자가 승소할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용자를 고소할 것인가를 놓고 근로자가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독일의 실업률은 매우 높은 편이고,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만일 기업을 고소해서 승소하더라도 나중에 기업에서 해고를 감행한다면 바로 자신이 해고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머뭇거릴 수밖에 없죠.

토론자: 비정규직 확대를 통해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독일의 경우, 비정규직의 확대가 고용증대로 나타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2003년부터는 제1차 하르츠(Hartz)법을 통하여 모든 노동청에 인력파견업체(Personal-Service-Agentur: PSA)를 설립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파견업체가 실업자를 고용하여 사용업체에 파견함으로써 실업자들에게 정규직 고용의 가능성을 높여주자는 취지였지요. 이 PSA를 통한 고용증대효과는 얼마나 큰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하르쯔법에 대해서는 『노동사회』 2004년 6월호, 정원호 글 참조)

발제자: 실업률 감소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1985년부터 지금껏 기간제 근로의 결과를 관찰할 시간이 있었지만, 기간제 근로의 비율이 12%아래에 있기 때문에 효과가 있었는가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만약에 법이 없었다면 실업률은 지금 보다 더 높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같은 사실을 놓고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거죠.

독일에서 근로자 파견업체는 2003년까지 민간이 운영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지방노동청에 인력파견업체(PSA)를 설립하고 정부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렇게 함으로써, 파견근로자 사용업체가 파견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운용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매우 미미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토론자: 질문에 앞서, 최근 독일 노동시장정책의 변화에 대해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1969년 노동촉진법(Arbeitsforderungsgesetz) 이후 독일의 노동시장정책은 고용촉진에 있어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속적으로 증대되는 실업상황 하에서 재정부족의 문제로 한계에 봉착하였습니다. 따라서 1998년부터는 '사회법전 III'이 노동촉진법을 대체하면서 고용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 특징은 국가의 고용촉진활동과 더불어 노동자(실업자)에게 의무와 강제를 부과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노동청이 소개하는 일자리를 실업자가 거부할 경우 실업수당을 중단하는 규정을 더욱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제규정을 피하기 위하여 실업자는 저임 일자리나 비정규직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에 따라 전반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약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2002년 하르쯔위원회의 '하르쯔 구상'과 2003년 슈뢰더 수상의 '아겐다 2010'을 통하여 이러한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이상 『노동사회』 2004년 6월호, 정원호 글 참조).

제 질문은 이러한 ’적극화 노동시장정책‘이 노동자보호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사회민주주의와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로부터의 일탈이라고 보시는지 하는 것입니다.

발제자: 물론 조화 가능합니다. 반면 과연 노동시장의 조건을 향상시킬 올바른 정책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겐다 2010'의 효과가 어디로 갈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할지 모릅니다. 사민주의 정신은 모든 실업자에게 다시 노동시장에 편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취하는 조치들이 제대로 된 선택인가를 논한다면 그것은 끝없는 토론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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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왼쪽)과 페터 가이 주한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소장(오른쪽) ]

종합토론

질문자: 독일 파견법을 보면 파견노동자에게 동등대우를 보장하기 위해 균등 보수청구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에서 단협이나 기존 실업자의 경우에 예외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협이 적용되지 않는 파견 노동자에게 단협이 정한 불리한 조건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 건지, 결국 단협이 파견노동자에게 법적으로 보장되는 균등 보수청구권을 박탈하는 것은 아닌지 설명해 주십시오.

둘째는 최저기준을 정하는 법에서 불리한 조건을 정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단협에 위임한 행위는 '유리조건우선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발제자: 두 번째 질문부터 답하겠습니다. 법은 최저기준을 만들고, 단협은 더 유리조건을 맺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입법자의 생각은 법의 파급효과를 모두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 최저기준에 대해서 예외적인 협약을 할 수 있도록 허가 해 준 것입니다. 왜냐면 입법에서 모든 것을 고려하지만, 어떤 업종의 상황이나 조건은 당사자들이 더 잘 알기 때문에 그 조건을 고려한 최저 기준을 정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둔 것입니다. 이것은 독일에서 많이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단협 보호권에 포괄되지 않는데, 체결된 협약에 어떻게 포괄되느냐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독일에서는 기술적으로 이것이 가능합니다. 단협이 체결되면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협약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또 파견 노동자도 조합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조 입장에서도 파견 노동자들이 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그들에게 유리한 단협을 맺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질문자: 비정규직 관련 입법 과정에 사용자단체와 노조의 역할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발제자: 유럽 차원의 경우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사용자단체와 노동조합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일은 정부가 입법 초안을 만들면, 사용자단체와 노조와 비공식적으로 토론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두 단체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질문자: 정당한 이유가 없이 2년까지 기간제 계약이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만일 정당한 이유 없이 3년 계약을 할 경우(법에서 허용되지 않는 기간제 계약일 경우), 언제부터 정규 근로자가 되는 건지, 다시 말해 계약체결 시점인지 아니면 2년이 지난 후부터인지 궁금합니다. 둘째는 독일에 파견기간 제한이 없다면, 사용업체와 맺는 파견 계약기간과 파견업체와 맺는 근로 계약기간을 일치시키는 것이 과거에는 불법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은 가능한 지 궁금합니다. 셋째는 파견근로자가 중간에 대기하는 기간 동안 휴업수당이 지급되는지 궁금합니다.

발제자: 첫째 질문의 경우에는 아예 처음부터 기간의 제한이 없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둘째 질문과 관련해서는 1972년 이것과 관련한 법 개정시에는 사민당과 노조의 요구로 인해 사용업체에서 일하는 기간만을 고용된 것으로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자단체의 요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변경된 이유는 어떻게 보면 사용자단체와 노조의 거래 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과거에 파견 근로자는 사용업체 노동자의 60% 정도의 임금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노조가 85%까지 끌어올리면서 이것의 보상으로 사용자에게 그 기간일치 금지를 양보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는 앞으로 더 시간이 흐른 후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질문의 경우, 다른 유럽연합 국가와는 달리 파견업체가 파견 기간 이외의 기간에 대해서도 보수를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협에서 파견 근로자의 최저 기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합니다. 파견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보호를 받지만, 파견업체는 높아진 비용을 사용업체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용업체가 파견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부담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노동시장정책면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 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자: 독일이나 유럽에는 생태적 전환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소비 중독과 연결된 노동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을 보다더 유연화 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노동조합은 어떤 입장이며,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발제자: 80년 중반에 금속노조와 인쇄노조가 그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이들은 실업감소를 위해서는 근로량을 여러 사람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로시간을 무조건 단축해야 한다는 입장은 이제 노조 안에서도 소수입니다. 절대적인 단축보다는 근로시간을 유연화 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를 통해 근로시간 주권을 노동자에게 부여하고 사용자도 새 근로과정에 적응토록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근로시간 단축은 항상 노동강도의 강화를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는 결과를 수반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긍정적인 것인지는 개인의 건강 등 종합적으로 평가해본다면 회의적입니다. 현재까지는 노동시장 정책의 가시적 효과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다른 한편 사용자는 근로시간 단축보다는 연장을 주장하고, 그에 따른 임금인상에는 반대합니다. 이것은 임금축소의 다른 말에 불과합니다.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저는 유연화와 근로시간 단축은 연계되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경우 최소한 실업률의 급상승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짧은 시간에 독일의 비정규직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특수고용직의 경우가 누락된 점은 아쉽습니다. 이번 포럼을 계기로 외국 사례에 대한 연구와 한국의 정책 개발과 노동운동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발제자 및 토론자 그리고 참석자에게 감사드립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