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노동사회

구조조정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admin 0 3,029 2013.05.12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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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의 계간지인 『금융과 발전(Finance & Development)』의 2004년 6월호에 IMF의 경제자문위원이자 조사연구 책임자인 라그후람 라잔(Raghuram Rajan)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Straight Talk)'라는 고정란에 쓴 '구조조정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Why Are Structural Reforms So Difficult?)'라는 글이다. 세계화가 강제하는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과연 뭔지, IMF와 초국적자본이 꿈꾸는 것은 무엇인지를 노골적이고 상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구조개혁'을 꿈꾸며 자문을 한고 있다는 경제학자들이 무슨 걱정을 하며 계획을 세우는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글이라 여겨 번역해서 소개한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맞이한 한국에 들어왔던 IMF가 제시했던 조건(conditionality)들이 과연 어떠한 비전을 품고 있었는지 이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 번역자(윤영모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국제정보센터 추진위원 
beard@kls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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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제적 문제들은 자원부족이나 총수요의 과잉 또는 부족보다는 시장의 작동에서 나타나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의 눈에는 구조개혁 -시장 행태를 총괄하는 제도와 규제틀을 바꾸는 조치들- 의 필요성이 쉽게 드러난다. 이러한 개혁은 단기적으로 소수에게 비용을 강제할 수도 있지만 잠재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장기적인 혜택을 가져다 준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소수의 반대는 정부가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쉽게 해결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왜 그런 것일까?

개혁을 파는 일은 어렵다

첫 번째 이유는 개혁에서 발생하는 혜택은 대개 간접적이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의 경우와는 다르게 일반 대중의 눈에는 결코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출 금리 상한선을 철폐하는 경우로 예를 들어보자. 일반 대중은 이러한 개혁을 대부자(貸付子)들이 과대한 금리를 챙길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으로 여기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쟁적인 금융체제 하에서 금리 상한선이 철폐되면 대출이 위험을 정확하게 반영하여 대출 자금이 보다 효율적으로 배정될 것이다. 금리 상한선이 야기하는 왜곡양상은 금융체제 내에 존재하는 대부자들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그 대부자들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민간 은행일 경우, 이들은 손익분기점이 금리 상한선 위에 확립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대출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가치 있는 사업이라 하더라도 위험한 사업은 대출에 대한 접근을 차단 당하게 된다.

그런데, 대부자가 이윤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거나 위험도를 평가할 능력이 없다면 이들은 재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사업을 계획하는, 위험한 대출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휩싸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한선 위의 금리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자들은 대출해 줄 사람을 선택하기 위해서 금리 이외의 다른 기준을 적용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뇌물을 가장 많이 주겠다는 사람을 선정할 수 도 있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할 때 가장 큰 혜택이 기대되는 경우는 실현 가능성이 형편없는 사업에 가장 많은 보조를 받으려는 사람이다. 따라서 특히 국영 대출기관은 부패에 빠지게 될 뿐만 아니라 가장 위험한 대출을 하게 될 것이다.

금리 상한선이 존재할 때는 대부자가 이윤을 극대화하려 하는가 또는 아닌가와 상관없이 대출 배정은 최적의 상태를 실현하지 못한다. 경제가 너무 높은 또는 너무 낮은 위험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출기관들은 경제에 필요한 만큼 저축을 확보할 수 있도록, 예금자에게 높은 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정도의 이익을 대출에서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금리자유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러한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나아가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명쾌한 단문으로 설득할 수 있는, 보다 큰 것을 볼 줄 알고 자기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 그렇지만 정치인에게는 고리대금업자를 공격하고 금리상한선을 유지하겠다고 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인 것을 어쩌겠는가!

구조개혁을 설득하는데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특정 소수 집단에게 단기적인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을 쉽게 하는 것은 기업이 노동력을 필요에 맞추어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고함으로써 채용 의지를 높이게 된다. 기업은 새롭게 확보한 자유를 단기적으로 죽은 가지를 쳐내는데 사용할 것이다. 개혁이 가져올 고용불안 증대를 걱정하는 노동자들은 소비를 줄이게 되고 이는 나아가 성장을 위축시키게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기업이 보다 많은 해고의 자유를 누릴수록 고용과 소득이 증대하게 된다.

개혁의 비용과 혜택이 각각 다른 집단에게 집중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개혁이 전체 차원에서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원칙적으로 개혁에 의해 피해를 입는 집단을 보상할 수 있다고 여긴다. 만일 이러한 보상이 실제 이루어진다면 피해자들은 반대를 철회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모두가 혜택을 볼 것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보상을 실시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노동시장 개혁은 기업과 새로 직장을 구할 수 있게 될 실업자에게 도움이 되지만, 해고당할 노동자에게는 피해가 된다. 해고된 뒤 현재 임금 수준에 근접한 임금을 제공하는 직장을 다시는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기 직업을 좋아하는 철강노동자에게 어떤 보상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해고된 뒤 새로운 직장을 찾고자 하는 선량한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불량한 노동자를 어떻게 구분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전자로 하여금 노동시장에 남아있도록 하는 수준으로 보상할 수 있는가? 노동자가 자기 일자리를 포기한다면, 어떻게 자기가 힘이 없는 상황에서 보상혜택을 받는 것에 우호적인 여론이 유지되리라 확신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잠재적 피해자로 여기는 -누가 잘릴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해당될 텐데- 사람들은 개혁을 반대할 것이고 이들의 응집력은 강력한 로비 집단이 되게 한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정책입안자들은 구조개혁을 실제로 시행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2004년 4월, 『세계 경제 전망(World Economic Outlook)』은 선진 산업국가에서 언제, 어떻게 금융, 노동시장, 재화시장, 무역 그리고 조세 부문에서 개혁이 이루어졌는지를 분석하는 꼭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조사 분석의 결과를 여기에 간략하게 소개하고 약간의 설명을 하고자 한다. 

첫째, 성장이 둔화되었을 때 또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때가 개혁을 하기에 적기이다. 그러한 상황 자체가 사람들이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하거나 반대하는 이해집단을 약화시킨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심층적인 구조 개혁을 단행한 뉴질랜드와 영국은 당시 그들이 겪고 있던 고질적이고 열악한 경제 조건이 변화에 대한 지지의 기반을 형성한 것이었다.

둘째, 정부 예산에 재정적 여유가 있을 때 개혁이 보다 원활하게 추진되었다. 이해 집단을 돈으로 사야한다면 이러한 유연성을 갖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노동시장 개혁은 상당한 수준의 예산 지원으로 가능했다. 실업, 질병, 장애 등에서 수당을 삭감하면서 노동자들에 대한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 부담률을 같이 축소함으로써 개혁의 쓴 약을 삼키는 것을 쉽게 만들었다.

셋째, 특정 개혁은 다른 개혁에 이어져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재화시장의 개혁은 노동시장의 개혁을 보다 쉽게 만드는 영향이 있다. 이는 재화시장의 개혁으로 인해 경쟁 압박이 증대하게 되면 조직된 노동이 보다 많은 유연성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기업이 위험에 쳐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외부의 압박이 도움이 된다. 한 국가의 3대 거래 국가들이 개혁을 할 경우 이 나라에서도 개혁의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한 나라에서 단행되는 개혁이 다른 나라의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지게 하여 변화하지 않으면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압박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외부적인 정책 경쟁은 바닥으로 향한 질주로 이어지기보다는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나라가 국제경제기구에 가입하면 그 기구가 또 다른 외부압박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에게 무역과 재화시장의 개혁을 촉진했으며 통화연합은 유로지역에서 금융시장 개혁을 가속화시켰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IMF의 감시감독 역할도, 지구적 차원에서 정책 개선을 위한 국제적 압박의 한 형태이다.

다섯째, 비례투표 체제에서 소수이해 집단은 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여길만한 증거들이 많이 있다. 최다득표자 체제에서는 하나의 정당은 집권하기 위해서 최다득표자 지위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특정 규모의 집단의 지지만 얻으면 된다. 모든 이해 집단을 다 아우르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는 최다득표자 체제에서 개혁이 보다 쉬울 것이라는 가정을 성립시키는데, 이는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최근 최다득표자 체제가 확립된 앵글로색슨 국가에서 많은 개혁이 단행된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이러한 국가들 중에 가장 강력한 개혁주의자들은 의회에서 다수를 확보하고 있는 정당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개혁은 항상 혜택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노동시장 개혁은 매우 어려운데, 이것은 단기적으로 성장과 고용의 위축을 가져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비용이 특정 집단에게 비례적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개혁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는 교훈

이러한 분석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교훈이 있는가? 있다. 그러나 두 개의 단서를 달아야 할 것이다. 각각의 나라는 고유한 조건에 쳐해 있다. 그리고 선진산업 국가의 개혁추진세력은, 위기에 처한 국가나 개도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혁의 시점을 조절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단서 조건들을 염두에 둔다면, 다음과 같은 교훈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경제 불황에서 회복이 시작되는 시점에 개혁을 가동할 것. 이 시기가 좋은 점은 불황이 사람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복기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은 개혁의 결과를 빨리 나타날 수 있도록 한다.
* 예산 흑자를 개혁을 하는 데 사용할 것. 개혁은 상황이 좋을 때에도 어려운 작업이다.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은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
* 보다 즉각적인 혜택이 많은 개혁부터 시작할 것. 예를 들어 무역과 금융시장 개혁은 단기적으로도 혜택을 창출한다. 이러한 개혁이 성공하게 되면 이는 학습 효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경쟁의 압박을 증대시킴으로써 추가 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 외부 지원을 확보할 것. 국제협약을 체결하는 것 또는 국제클럽에 가입하는 것은 개혁의 속도를 촉진하는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규율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은행들은 중국이 WTO에 가입할 때 약속한 조건의 일환으로 2007년부터 외국 은행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 관행을 뜯어고쳐야 하는 압박을 크게 받고 있다. 
* 투표 제도를 고치는... 죄송, 죄송, 이 마지막 말은 없던 것으로 해주세요.
자 흥겹게 개혁에 나섭시다.

출처: 국제통화기금의 계간지 『금융과 발전(Finance & Development)』 200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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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