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한국의 산별운동과 산별교섭

노동사회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한국의 산별운동과 산별교섭

편집국 0 3,017 2013.05.13 11:25

"한국에서 이렇게 빨리 산별교섭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성사는 한국 노동운동사에 있어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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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8월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조인식 모습     - 출처:보건의료산업노조 ]

2004년 10월 25∼26일, ILO와 양대 노총 공동주최로 개최된 '산별교섭 워크숍'에 참가했던 외국 연구자의 말이다. 작년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산별총파업 투쟁은 다양한 측면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매일노동뉴스』, 『데일리메디』, 『청년의사』등 노동, 보건의료 전문지는 보건의료의 산별교섭을 2004년 10대 뉴스에 선정하기도 했다.

새해 들어 민주노총은 지난 1월20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2007년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2006년까지 산별노조 건설과 산별교섭, 산별협약 쟁취를 핵심 조직과제로 확정했다. 1월 중순에는 보건과 금속, 증권, 건설엔지니어링 등 (소)산별노조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 노조별로 산별교섭 추진 현황을 공유하고 2005년 산별교섭 정착을 위한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공공연맹 신임집행부는 2006년까지 공공대산별 건설을 핵심과제로 내세웠고, 최근 산별노조로 전환한 화학섬유노조도 산별교섭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바야흐로 산별노조, 산별교섭이 '당위'를 넘어 '현실'의 과제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기업별노조, 기업별교섭의 관행과 틀에 얽매여 있는 우리 노동운동 진영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산별운동의 전망과 일정을 내오지 못하고 있다. 각 조직들이 몇 년째 사업계획서에 산별노조 건설과 산별교섭 쟁취를 주요 과제로 올리고 있지만, 현실에서의 구체적 진전은 쉽지 않고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아직 우리에게 낯선 산별교섭과 산별투쟁을 한꺼번에 '풀코스'로 경험한 보건의료노조 2004 산별교섭 투쟁을 돌아보면서 보다 실천적인 관점에서 한국에서의 산별교섭의 전망과 과제를 알아보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새롭게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을 준비하는 조직들은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을 보면서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보다 더 빨리 산별노조와 산별교섭 시대로 갈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2004 산별교섭의 성과와 한계

먼저 보건의료노조 2004 산별교섭은 몇 가지 점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고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은 초기에 사측 대표단 미구성과 산별교섭 진행 방식에 대한 견해차이 등 노사간에 현격한 인식 차이로 한치 앞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난항을 거듭했다. 98년 산별노조 건설 이후 다년간에 걸쳐 진행된 산별교섭 성사투쟁, 특히 2004년에는 실질적인 산별 총파업투쟁을 배수진으로 친 강력한 투쟁 끝에 마침내 산별교섭은 성사되었다. 내용적으로는 병원 규모와 자본의 특성을 뛰어넘어 121개 병원을 포괄하는 사측의 단일 교섭단 구성, 임금과 단협, 산업별 요구를 포함한 산별 단일 합의안 쟁취, 산별적 요구를 교섭대상으로 온전히 확보, 121개 지부 전체가 참여한 14일간의 산별 총파업을 진행하여 단숨에 기업별 노사관계를 뛰어넘어 가장 산별교섭과 산별투쟁에 가까운 전형을 보여 주었다. 이는 분명 한국 노동운동 100년 역사 속에서 경험이 일천했던, 산별교섭과 산별총파업 경험 속에 분명 눈에 띄는 대약진이었다. 더구나 서울대병원지부의 산별합의안에 대한 거부와 조건부 탈퇴, 이로 인한 조직 내부의 갈등 발생은 산별교섭 완성으로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성장통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산별교섭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남김없이 그대로 다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년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투쟁을 제대로 '복기'만해도 한국적 특수성에 기초한 산별교섭의 발전경로와 미래를 예측하면서 각 조직이 무엇을 사전에 고민하고 준비할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서울대병원지부에서 제기하여 유명해진 10장 2조 논쟁은 '10장 2조 환원론' 또는 '10장 2조 유령론'으로 불릴 만큼 모든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10장 2조 탓으로 돌리면서 산별교섭 평가와 논의를 협소하게 몰고 갔다. 10장 2조를 둘러싼 과도한 비난과 왜곡된 논쟁, 언론에서의 수박 겉핥기식 평가는 첫 산별교섭을 둘러싼 풍부한 논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10장 2조 논쟁은 조직 안팎으로 많은 이들에게 산별교섭과 산별협약 문제를 정면으로 고민하게 만들었고, 산별교섭 논쟁을 풍부하게 한 측면도 있었다. 더불어 10장 2조 폐기를 내건 과도한 행동은 산별노조 내부에서 민주 집중제와 단결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면서 지도부 중심의 더 큰 단결을 가져왔다. 
다음으로 지난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과정에서 나타난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알아보자.

산별협약의 성격과 위상 논쟁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이 대외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10장 2조 논쟁으로 나타난 산별협약의 성격과 기준 문제였다. 보건의료노조가 임금과 주5일제를 묶어 우선적용을 하면서 일괄타결을 시도한 것은 임금보다는 주5일제 동시 시행과 표준 근로조건 확보에 비중을 둔 전략적 판단이었다. 실제 이 합의안은 임금과 주5일제 주요 조항을 하나의 기준으로 타결하는 대신, 인력충원과 기타 노동조건 개선, 지부 단협 요구 등에 있어서는 병원별 지불능력에 따른 지부 교섭을 열어놓았다. 하지만 이후 막무가내로 모든 지부교섭을 막았다는 과도한 공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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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산별합의안 10장 2조는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산별합의안 중 마지막 제10장 <협약의 효력> 에 명시된 조항이다. 이 조항은 10장 1조 '산별교섭 합의 내용을 이유로 기존 지부 단체협약과 노동조건을 저하시킬 수 없다' 는 조항에 이어 2조 '단, 제9장(임금), 제3장(주5일제 노동시간단축), 제1조(노동시간단축), 제5조(연·월차 휴가 및 연차수당), 제6조(생리휴가)는 지부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지며, 동 협약 시행과 동시에 지부의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을 개정한다.' 는 조항을 말한다. 이것은 산별합의의 일부 조항이 지부합의보다 우선하여 효력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이 조항은 내용적으로 '산별 통일협약'에 대한 강력한 지향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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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비판은 산별협약이 최저기준이 되어야한다는 논리로 발전하면서 산별협약 성격 논쟁으로 이어졌다. 즉, 산별협약이 최저기준이냐 통일기준이냐의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산별협약이 '최저기준이냐? 표준기준이냐?' 하는 논란은 한국적 현실에 맞지 않았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의 예를 들면서 산별교섭은 최저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독일처럼 임금에서 최저기준은 80∼90% 수준의 통일된 합의를 의미하고, 나머지 10∼20% 수준에서 자율적인 현장 보충협약을 하는 것이다. 산별교섭의 영향을 80% 이상 받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임금격차가 2∼4배가 나는 상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산별협약을 최저기준만으로 합의한다면, 독일처럼 80:20의 비율이 아니라 거꾸로 20:80 또는 10:90의 비율로 가게 된다. 즉 최저기준의 영향 범위가 10∼20% 밖에 안 돼 산별교섭을 하나마나 한 것이 된다. 

이렇게 되었을 때 무엇을 위한 산별교섭이냐는 문제제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산별협약을 최저기준으로 했을 때 산별운동의 주요 모토인 내부 격차해소 방안이 없다. 격차는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기업별 격차가 심한 조건에서 완성된 산별교섭으로 가는 길은 지금 당장 기준협약, 통일협약 어느 하나만을 양자택일하는 문제는 아니다. 산별정신에 따라 통일협약을 지향하되 내부 격차를 감안하여 조항에 따라 최저기준과 통일기준을 적절하게 적용하면 될 것이다. 결국 이는 우리 스스로 선택의 문제이다. 실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볼 때 산별협약이 최저조건을 규정하는지 통일조건을 규정하는지 일률적으로 답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즉, 각 나라마다 산별협약의 기준과 성격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산별노조의 운동철학과 맞물려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었다. 10장 2조 폐기 주장은 나아가 지부교섭을 완전히 열어놓아야 하며, 이것이 현장투쟁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이 주장은 산별교섭으로의 집중과 내부격차해소를 지향하기보다는 지부교섭 강화라는 원심력으로 작용했고, 기업별 의식을 부추기면서 산별로의 집중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했다.

10장 2조 관련 일부 우선적용 조항은 내부격차를 해소하고 통일기준을 만들려는 노조내부의 노력과 사용자측이 이중교섭을 막고 교섭의 효율화를 위해 산별교섭에 얼마나 더 힘을 실어나갈 것인가에 따라 유지, 확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단체 구성에 대하여

안정적인 산별교섭 구조 확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측의 대표성 확보, 나아가 사용자단체 구성이 관건이다. 보건의료노조 2004 산별교섭도 초기 사측의 대표단 구성과 내부 조율이 재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교섭 초기에 사측은 교섭도중 10분 정회를 요청한 후 내부 이견 때문에 조율이 어렵다며 3시간을 넘기고서야 나타나기도 했다. 노조와의 교섭보다 사측 내부의 이견 조율이 더 어렵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업이 임박하면서 결국 특성별 대표를 기본으로 해서 전체교섭단(총 20명)-대표교섭단(9명)-축조교섭단(7명)-실무교섭단(3명)으로 내부 교섭단위가 꾸려졌다. 병원계를 대표하는 병원협회는 초기 눈치보기로 일관하다가 막판 사립대병원만 위임을 받아 산별교섭에 나섰으나 교섭력 부재로 교섭 기간 내내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막판 타결이후 병원협회는 회장이 직접 조인식에 참석하여 합의서에 서명하고, 이후 노사협력본부를 강화하고 상임이사회에서 2005년 산별교섭 관련 교섭권을 위임받기로 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05년 산별교섭을 앞두고는 병원협회 중심의 교섭단 구성방안과 현장 특성별 대표 중심의 교섭단 구성방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안정적인 사용자단체 구성을 위해 정부차원의 법·제도적인 유인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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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교섭과 이중파업의 문제

노조가 산별교섭을 하자는 제안만 나오면 사측은 교섭비용 절감, 현장단위 분규 축소를 위해 이중파업은 없어야 하며, 그래야 산별교섭 참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에서 사측은 교섭 막판까지 '이중쟁의금지' 조항을 합의안에 넣자고 강력히 요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교섭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이중교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구안 작성을 작성하면서 지부 요구를 최소화하고 산별교섭 요구에 '올인'하였고, 쟁의조정 신청 시에도 산별요구를 중심적으로 부각하였다. 그리고 교섭방식도 교섭 기간을 단축하고 논의의 효율화를 위해 과도기적으로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을 동시에 병행해서 진행하고, 막판 동시타결을 제안했다. 

하지만 사측은 말로는 이중파업은 안 된다고 강조해놓고는 실제 교섭에서는 산별교섭에 집중하지 않아 노조가 다시 지부교섭과 지부파업을 할 수밖에 없게끔 몰고 가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교섭방식도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산별교섭 타결 이후 지부교섭을 진행하는 2단계 교섭방식을 고수했다. 이런 태도의 배경에는 산별교섭에서 모여진 투쟁 열기를 지부교섭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책략이 숨어 있었다. 결국 사측의 주장대로 2단계 교섭으로 진행되었지만, 곧바로 진행되지 못하고 상당한 시간 간격을 두고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현재 병원간 근로조건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산별교섭을 통해 요구안을 한꺼번에 타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이중교섭은 불가피하다. 더구나 사측이 산별교섭에 힘을 제대로 싣지 않는 조건에서 지부교섭은 여전히 비중이 줄어들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이중교섭, 이중파업의 문제는 교섭 당사자간의 의지 문제로서 특히 사측의 태도가 가장 큰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즉, 이중교섭이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사측이 산별교섭에 얼마나 힘을 싣고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측이 산별교섭에 힘을 싣고 가능한 모든 안건을 여기서 해결하면 지부교섭은 문자 그대로 보충교섭 수준으로 노사가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여기서 짚고 넘어갈 문제는 서울대병원지부가 산별합의를 거부하고 지부 파업을 이어간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해서 이중파업 문제를 부각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보건의료노조 2004 산별교섭은 절대다수의 지부에서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태도에도 불구하고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이 연이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이런 과정 속에 산별교섭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산별교섭을 하면 대병원이 손해본다? 산별교섭 = 하향식 평준화?

이번 산별합의안 가운데 '대병원 임금 2%, 중소병원 임금 5% 차등 인상'과 10장 2조를 둘러싼 논쟁과정에서 '산별교섭=대병원 손해' 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한겨레신문을 포함한 일부 언론에서는 이것이 마치 연대임금정책의 전형인 것처럼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임금의 차등 인상은 대병원의 주5일제 선 시행에 따른 사측의 비용부담 증가를 감안한 차이였고, 일부 미흡한 산별 합의사항도 중소병원 때문에 양보해서 낮게 타결된 것이 아니다. 이는 인건비 비율이 50%가 넘고 교대근무자가 다수인 관계로 인원충원 없는 주5일제 시행이 불가능한 바 대병원의 현실조건을 감안하여 타결한 결과이다. 따라서 산별교섭을 하면 하향식 평준화가 불가피하고, 대병원이 무조건 손해를 보고 상대적인 피해를 본다는 것은 보건의료 사례를 볼 때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이며 실제 대병원의 양보와 손해를 전제로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조직 민주주의와 내부 조율 문제가 쟁점으로

산별 합의이후 서울대병원지부가 산별합의안을 거부하고 별도 파업을 진행하였고, 조건부 탈퇴까지 결의하면서 중앙 집중성과 조직 민주주의 문제가 노사 모두에게 현안 과제로 떠올랐다.

산별교섭이 정착되고 교섭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노사가 각각 내부 이견과 갈등 조율을 통해 중앙 집중성을 높여야한다. 민주적 토론 문화가 보장되고 그 이후 조직적 결과에 승복하는 규율이 절실하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안건 상정까지 시도되고, 거기에 200여명의 대의원이 찬성할 만큼 외부에서 보건의료노조 산별합의에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실제 내부에서는 조합원 78'%의 찬성으로 합의안이 통과되었고, 대의원대회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10장 2조 폐기 요구가 대의원 75%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하지만 조합원 투표는 조합원 무지의 결과로, 대의원대회 통과는 대의원 배정 기준의 문제로,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다수의 횡포로 치부되면서 조직의 모든 공식결정을 부정하고 승복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조직 민주주의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내부 조율의 문제는 노사간을 넘어 노-노간, 사-사간, 그리고 중앙과 현장간의 복잡한 논의지형을 만들고 있다. 

그밖에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에서는 특성별교섭 주장 등 교섭 방식과 교섭 원칙 합의, 연대임금 정책의 방향, 산별총파업 전술, 산별파업에 이은 지부 파업의 합법성 논쟁, 조합원 투표 방식과 범위, 효력 등이 쟁점으로 대두되었다.

2005 산별교섭 노사정 제각각, 성사 여전히 불투명

작년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투쟁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인 산별교섭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산별교섭은 대단히 불안정한 구조이다. 그리고 2005년 산별교섭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사측은 대한병원협회지 1·2월호에서 2005년 산별교섭을 전망하면서 사측 대표단 구성과 내부 조율, 그리고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문제, 산별교섭과 지부교섭간의 이중교섭과 이중쟁의 발생으로 교섭비용과 파업비용 증가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 세 차례나 진행된 2005년 산별교섭 준비를 위한 병원노사 실무위원회에 참석한 사측 대표는 2005년 교섭준비관련 사측 대표단 구성에 있어 병원협회와 현장 특성별 대표단간의 조율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보다 안정적인 사용자단체가 구성되려면 사측 내부에서 작년 같은 이중교섭을 극복하면서 산별교섭이 지금보다 더 낫다는 확신이 서야한다고 강조했다. 
경총은 지난 해 12월29일 발표한 2005년도 노사관계 전망조사 결과에서 2005년 노사관계 불안 요인 중 '산별노조 확대와 산별교섭 추진'을 비정규직 문제, 대 정부 요구에 이어 3위로 꼽으면서, 전체 응답자의 80%가 산별교섭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로는 이중교섭에 따른 교섭 장기화와 교섭 비용의 증가, 상급단체의 불필요한 개입, 총파업 등 강경투쟁 증가, 내부 갈등 증폭을 들었다. 그리고 경총은 노동계의 산별노조 중심의 투쟁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업종별 단체와 공동대응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노사 양측 모두를 비판하고 있다. 노동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월간 『노동리뷰』 1월호 창간호 특집에서 배규식 연구위원은 '2005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 라는 글에서 2005년 노사관계의 주요 이슈중의 하나로 산별교섭을 언급하면서 노사 각각은 기업별교섭과 산업별교섭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한 점만을 취하고 불리한 점을 거부하는 이중적, 기회주의적 전략을 취하고 있고, 각각 내부 조직의 이해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산별교섭의 불안정성은 여전히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노조 내부문제도 만만치는 않다. 산별교섭 추진의 이면에는 여전한 기업별 의식과 경제주의, 단기이익 위주의 조합주의 의식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산별교섭 의제보다 눈앞의 기업별 임금에 더 매몰되어있다. 그리고 중앙과 현장, 지도부와 조합원간에 산별교섭을 바라보는 인식 차이와 간격도 산별교섭 정착의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5년 산별교섭 준비에 바쁘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월 18∼19일 '중앙은 현장을 중심으로! 현장은 중앙을 중심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전체 전임간부 수련대회를 열었다. 250여명의 전임 간부가 참여하여 2004 첫 산별교섭에서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루어내면서 발생한 중앙과 현장의 간격을 좁히고, 성과와 의미를 전 조직적으로 공유하였고, 나아가 2005년 산별교섭, 산별투쟁의 기조와 방향을 집중 토론하였다.

사실 작년은 노사가 모두 처음 가는 길인만큼 모든 사안이 '0에서 100 까지' 예측 불허였다. 하지만 2005년은 작년에 비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노사간 쟁점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좀더 원만하게 진행될 수도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산별교섭 정착을 둘러싸고 노사간 더 치열한 '샅바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사측에서는 그동안 산별교섭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는데, 최근에 와서는 말문이 트이면서 병원협회 기관지와 각종 매체에 관련 글과 주장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노조는 올해 무엇보다 산별요구안 준비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보다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산별협약은 크게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눠진다. 먼저 '산별중앙협약'에는 기본협약, 보건의료협약, 임금협약, 고용협약, 노동과정협약 등 5개 틀로 요구안을 만들고 있고, 기존의 지부 단협을 '산별현장협약'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에서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재편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내부 격차해소를 위해 산업별 최저임금제 확대, 보건연대기금 조성 등 산별연대임금정책을 강화하려고 한다.

산별교섭단 구성 관련해서 작년 평가에서 제기되었던대로, 현장 간부를 더 참여시키고, 교섭결과를 현장까지 신속히 공유할 수 있는 의사소통구조를 확보하려고 한다. 산별교섭 요구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보건의료산업 전체를 망라하는 각종 조사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산별교섭 쟁취라는 새로운 국면을 열어젖힌 보건의료노조는 그 여세를 몰아 산별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미조직 비정규 사업 전면화로 연대와 확산의 산별운동 전개, 무상의료를 내건 의료공공성투쟁으로 산업정책 개입 확대, 지역지부 재편과 산별 특별기금 모금, 정책예산할당제 도입, 정치, 통일, 법률, 국제 사업 강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가능'을 넘어서 '경로'와 '속도'를 고민할 때

이제 산별교섭 문제는 그것이 한국 노사관계에서 가능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뛰어넘어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될 것인가 하는 '경로'의 문제와 얼마나 빨리 정착할 것 인가하는 '속도'의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물론 그것은 기업별 의식과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노조의 사회적 역할을 높이려는 노동 현장의 실천에 달려있다. 단순히 기업별교섭의 합이 아닌 질을 달리하는 산별교섭이 본격화될 수 있도록 산별정신과 산별교섭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산별 연구가 질적, 양적으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자료를 보면 산별노조에 대한 당위적 필요성을 주장하는 글, 외국 산별노조 활동을 소개하는 글 이외에 현실에서 진행되는 산별운동의 쟁점을 해석하고, 발전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연구결과를 보기가 쉽지 않다. 보건의료노조 산별투쟁 이후 각종 교육과 평가토론회에 참석한 교수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고백을 했다. "그동안 외국 사례 몇 개를 들이대며 이것이 산별운동이다는 식의 교육과 연구를 해왔다. 하지만 이런 내용으로는 이미 현실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산별교섭과 산별운동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이제 이전의 것은 다 무용지물이 되었다. 새롭게 더 공부하고 연구해야한다"라고. 바로 지금 산별운동의 전진을 위해서 현실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춰 산별운동의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

임금을 2%밖에 못 올렸고, 투쟁기금으로 7만원을 내고, 파업기간에 무노동 무임금까지 적용받는 등 비싼 수업료를 물었다. 하지만 산별적 연대의식 확보와 유무형의 조직적 성과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는 어느 현장 간부, 그동안 산별 흉내만 내다가 작년 산별교섭 투쟁 전 과정을 거치면서 산별운동이 무엇인지, 계급적 임투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는 조합원, 우리 지부 조합원은 150명이 아니라 4만명이라고 자랑하는 현장 지부장이 있는 한 우리나라 산별운동의 미래는 밝다.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산업적 단결을 지향하는 건강한 산별운동은 가능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