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정책 빠진 노숙자 대책은 ‘포장지’일 뿐

노동사회

주거정책 빠진 노숙자 대책은 ‘포장지’일 뿐

편집국 0 4,386 2013.05.13 11:28
 

dhlee_01.jpg찬 바람이 든다 싶으면 언론들은 노숙인에 대한 ‘그림 되는’ 르포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정부 역시 잘 포장되었으나 속 빈 ‘동절기노숙자특별보호대책’이란 것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 둘의 공동목표는 ‘노숙인을 통한 반사이익’이라는 데 있다. 게다가 2004년에는 이례적으로 정부와 언론의 합작품도 있었다. 바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하루노숙체험. 노숙인을 직접 만나 민생을 체험한다는 의도였는데, 아쉽게도 뒤통수 따가운 질타 외엔 별 소득이 없었던 것 같다.

겨울이라고 그리 호들갑 떨 일 없다. 노숙인에게 1년 365일은 언제나 희망하고는 상관없이 사회의 외딴섬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법은 어디서 바라보고 있는가

- 일정한 주거 없이 상당기간 거리 등에서 생활하는 18세 이상의 자(노숙인쉼터 입소자 포함)

올 해 입법 예고된 사회복지사업법 하부 시행규칙에 나와 있는 노숙인의 정의이다. 통상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노숙인 개념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노숙인 쉼터에 입소해 있는 사람을 우리는 ‘노숙인’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법률이 정하는 대상의 정의는 정책 실행으로 직결되는 행정적 준거가 된다는 데 주목하고 이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즉, 대상의 법적 정의가 ‘드러나는 형태’만으로 좁게 정의될 때, 그 정책 역시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다루는 응급적인 성격을 보이게 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노숙인 지원정책의 한계가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복지 선진국들의 공통적인 ‘홈리스’ 개념은 공통적으로 ‘정규적인 주거가 없는 사람’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는 그간의 선험적인 결과물들에 의해 개념지어진 것으로서, 노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해결은 주거불안층에 대한 정책으로 확대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숙인 역시 절대 다수가 노숙에 이르기 전 주거불안에 시달렸다. 2000년 8월부터 10월까지 전국실직노숙자종교시민단체협의회와 한국도시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거리노숙인의 약 20%만이 노숙생활 이전의 주거형태로 ‘자가·전세’ 등 안정적 주거가 있었다. 최근 실태조사 결과들에서도 당사자들의 주요 욕구는 적정 수준의 주거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노숙인’이란 말을, 굳이 유럽이나 유엔에서 쓰는 것처럼 ‘홈리스’로 바꿀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숙인은 주거불안의 극한에 서 있는 계층이라는 인식의 명료함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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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리스에 대한 국제적인 기준

-국제연합(UN): ① 집이 없는 사람과 옥외나 단기보호시설 또는 여인숙 등에서 잠을 자는 사람 ② 집이 있으나 UN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 ③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과 교육, 건강관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
-노숙자문제 유럽 국가기구연맹(FEANTSA): ① 지붕이 없는 상태(rooflessness) ② 집이 없는 상태(houselessness) ③ 불안정한 주거에 살고 있는 상태, ④ 부적절한 주거에 살고 있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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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우 리 현실에서 주거를 박탈당하고 노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적·사회적 관계들과 단절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재진입 기회마저 박탈당했다는 것과 동일하다. 흔히 노숙생활을 ‘한계상황’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럼에도 노숙인들의 거리생활이 길어지고 만성화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제약들 때문이다. 첫째, 노숙인들의 건강상태나 근로능력에 대한 문제를 차치해두더라도, ‘주민등록 문제’는 노숙인들이 노동을 통해 사회진입을 하는데 가장 큰 장벽이 되고 있다. 노숙인의 절반 가량이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다(2003년 서울 자유의 집 노숙인 조사결과 주민등록 말소 비율 40.7%, 2004년 대구 홈리스지원센터 거리노숙인 실태조사 결과 거리노숙인 주민등록 말소 비율 46%). 주민등록 말소자는 취업은커녕 일용노동시장에서도 배제되기 일쑤다.

둘 째, 노숙인은 각종 범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범죄조직은 노숙인의 특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주 노숙지인 공공역사를 중심으로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거나 신분도용을 통한 경제사기에 노숙인을 이용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향후 노숙인의 경제활동을 원천 봉쇄시켜 노숙탈출의 싹을 잘라버리는 악랄함을 보이며, 최근 극성을 부리고 있다. 셋째, 노숙인들이 지불하는 것이 가능한 수준의, 노숙 탈출을 가능하게 하는 주거자원이 우리 사회에 없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2.3%(그 중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가 23%)에 불과하며, 그나마 있는 공공임대주택에서조차 노숙인은 입주자 선정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숙인은 자력으로 어떻게든 비공식 노동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범죄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주거공간을 획득하여 사회로 복귀해야 한다. 결코 쉬워 보이지도 않고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부의 노숙인 지원정책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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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의료구호비 중단 방침에 항의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농성중인 모습   - 출처: 노숙인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

핵심은 주거대책이다

노 숙인 지원체계는 ‘거리’와 ‘쉼터’의 지원체계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시설이 존재한다. 거리 노숙인에게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정절차를 거쳐 쉼터에 입소시키고, 쉼터를 통해 사회에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 현재의 노숙인 지원체계다. 그러나 지난 7년 동안 지속되었던 이러한 노숙인 지원체계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거리 노숙인의 50%이상이 쉼터를 경험하였지만, 거리 노숙인의 증가는 점차 두드러지고 있으며, 한 해 평균 300명 이상의 노숙인이 거리에서 사망하고 있다. 쉼터 입소를 중심으로 한 지원정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노숙인에게 쉼터는 왜 환영받지 못하는가? 골자는 바로 ‘주거’다. 우선, 쉼터는 인간이 살 만한 ‘주거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공동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쉼터는 개인의 사생활을 전혀 보장해 주지 못할 뿐더러, 물리적 공간 역시 협소하다. 쉼터별 입소정원은 쉼터 개소당시 시설의 규모에 따라 ‘몇 명이나 들어 갈 수 있는가’라는 작위적 기준으로 책정된 것이다. 실제 이 인원에 맞춰 입소를 받게 되면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된다는 게 쉼터 실무자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원기준에 따른 공실률을 운운하며, 상담활동을 강화하여 쉼터에 입소시키겠다고 한다. 그것을 ‘동절기 대책’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쉼터 퇴소 후 연결되는 주거대책이 없다. 물론 ‘자활의 집’이라는 일부 주거지원제도가 존재하나 프로그램식 임시사업으로 물량이 적고, 조건이 까다로워 극소수의 노숙인만이 이용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현재 상태로는 기본 입소기간 6개월이 지나면 자력으로 주거지를 확보하여 독립해야 한다. 주거비 부담이 턱없이 높은 우리 사회의 실정에서 노숙인들이 입소기간 동안 취업하고, 저축하고, 주거지를 확보하여 독립한다는 일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노숙인들이 거리를 선택하는 것은 거리생활에 강한 내성을 갖고 있어서도, 집을 마다하는 별종이기 때문이어서도 아니다. 거리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의 숨통을 틔우는 방향은?

무 엇이 필요한가? 첫째, 노숙인 지원정책은 주거정책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영국에서는 1977년에 ‘홈리스 법’을 제정하여 노숙인 지원정책의 중심을 주택정책으로 이동시켰으며, 현재 역시 노숙인의 특성에 따른 다양한 주거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술한 바 있듯, 현재 우리나라의 노숙인 지원체계가 갖고 있는 한계는 ‘주거정책’이 빠져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주거불안으로 시달리는 노숙인에게 주거정책이 우선 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주장이다. 이러한 주거정책은 크게 △쉼터의 주거기능 강화 △쉼터 퇴소 후 이주 가능한 중간주택 설립 △독립주거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정책 등을 포괄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이러한 주거대책의 기반 위에 각종 사회복지 서비스가 결합되어야 한다.

둘째, 공공역사 중심의 현장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공역사는 기본 생활 유지에 필요한 ‘편의시설, 인근의 노동시장, 교통, 정보’등의 요소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노숙인 뿐 아닌, 모든 위기계층의 이동관문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점을 상쇄시킬 만한 위험요소 역시 공존하는 게 현실이다. 즉, 많은 범죄조직들에 의한 이용은 물론, 공공역사로부터 노숙인을 몰아내기 위한 철도청 공안원에 의한 폭행사건은 이미 관행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문제는 다른 나라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프랑스에서도 공공역사를 삶의 거처로 삼는 노숙인이 증가하자 각종 문제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접근 방법은 달랐다. 1993년 국철, 공공교통공사 등을 중심으로 ‘국철연대위원회’를 조직되어 상담·숙박·고용 등의 노숙인 자립 지원책을 실시하였고, 현재 이 정책은 노숙인 뿐 아닌, 모든 위기계층의 현장지원체계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공 공역사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공공재로서 철도역의 기능을 일정부분 훼손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적절한 지원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마찰은 점점 더 커지고 말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노숙인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크 게 두 가지의 정책적 변화를 요구하였으나, 노숙인들을 둘러싼 문제들은 너무나 복잡 다단하다. 현재와 같이 보건복지부라는 단선적 지원으로서는 결코 풀릴 수가 없으며, 정부의 각 부처간 긴밀한 협조를 통한 지원책이 강구되어야만 한다. 더 이상, 노숙인이 겨울이라고 사회의 동정을 한 몸에 받거나 게으르고 무능력하다는 지탄을 받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하거나 떠밀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주는 일이다. 우리가 그렇듯 노숙인도 자본주의라는 대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끊임없이 분절되고 양극화되는.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