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사회

아직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편집국 0 3,119 2013.05.17 09:18

 


jcmoon_01.jpg을지로 인쇄골목의 어느 인쇄업체(성진애드컴)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그때가 작년 5월29일로, 정식 명칭은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인지역인쇄지부 성진애드컴분회이다. 현재 단체교섭이 진행 중에 있으나 난항을 겪고 있고 조합원에 대한 징계 처분 등으로 교섭이 결렬되어 1월11일 이후 파업투쟁 중에 있다. 

사실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것은 ‘비인격적 대우’에 대한 시정과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근로조건의 단체협약 명시, 근로기준법 준수, 근로시간의 명시, 그밖에 노조활동 보장과 관련된 기본적 사안 등 매우 평범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교섭은 계속 결렬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느끼는 우리사회 중소영세 사업장에 있어서 노동관계의 문제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결코 새삼스러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요즘 을지로 인쇄골목 노동자들의 상황 

일단 이 업체와 을지로 일대 인쇄골목의 현황을 잠깐 설명하겠다. 을지로 일대는 중소영세규모의 인쇄업체가 모여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200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인쇄산업에는 17,944개사에 약 69,000명이 종사하고 있고 사업체 중 47%가 서울에 입지하고 있다. 한편 중구청의 1998년 자료에 따르면 인쇄·출판 산업에 26,000명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통계청 자료 등으로 종합하고 실제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을 감안하면 을지로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인쇄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통계자료를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300인 이상 업체의 종사자 수는 줄어든 반면 영세 규모의 업체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대기업의 정리해고자가 적은 자본으로 영세자영업으로 전환하여 을지로 일대에 입주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몇 년간 시장상황의 변화가 있었는데 소위 ‘합판업체’라 불리는 업체의 출현이 바로 그것이다. 

예전에는 구석에 자리를 차지한 기획실에서 고객의 요구에 따라 명함, 전단 등을 편집·디자인해주고 인쇄와 후가공까지 맡아 인근의 업체에 작업을 의뢰하고, 다시 완제품을 고객에게 발송하는 시스템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력을 앞세운 일부 대형화된 업체(일명: 합판업체)가 출현하여 소프트웨어 등 시스템의 개발로 인터넷 등을 통해 대량으로 물량을 수주하고, 방계 혹은 하청업체에 작업을 발주하여 완제품을 고객에게 발송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러한 업체들에서는 당연히 영세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한다. 그럼으로써 가격 경쟁력에서 뒤지는 영세업체들을 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실제로 을지로 일대에서 명함가게(기계 한대로 명함을 한 장씩 인쇄하는)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며 웬만한 규모의 기획실도 문을 닫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소위 ‘합판업체’들의 경우에도 초기 단계에서는 영세업체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자본을 투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을지로 일대의 인쇄골목에서는 ‘합판업체’에 대한 반감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기 때문에 폐업에 이르게 된 업체나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인쇄업체와 후가공 업체들은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이러한 ‘합판업체’에 줄을 대야하기 때문에 외상이 깔리더라도 거래를 유지하는 등 전형적인 원·하청 관계를 맺기도 한다. 성진애드컴도 이러한 전형적인 합판업체이다.  

사장 아들의 ‘욕설 노무관리’  

그런데 성진애드컴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된 데에는 일반적인 사업장과는 좀 다른 원인이 있다. 노동자들이 인격적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비인간적인 노무관리에 대한 저항이 바로 그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나이 어린 이사(사장의 아들이다)가 반말과 욕지거리를 일상적으로 내뱉고, 출퇴근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수시로 근무시간을 변경시키거나 작업과 인사에 있어서 비합리적인 전횡을 일삼은 것이 노동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핍박받은 노동자들이 결국 노동조합의 결성으로 자구책을 찾았던 것이다.  

사용자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몰지각한 행동이 회사가 창립될 당시 고교3학년의 취업반 학생들을 데려다 일을 시키던 그 때 버릇이 몸에 배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앞으로는 고쳐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되려 이런 무식한 변명은 이 회사가 설립 초기부터 값싼 노동력과 장시간 노동을 기반으로 이윤을 만들어냈고, 그로 인하여 성진애드컴에 소속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줬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영세업체들도 도산시켰다는 것을 드러낸다. 

상황이 이런지라 성진애드컴의 사용자들은 처음부터 노조 결성을 단순히 심정적 거부감을 자극하는 사업주의 권위에 대한 도전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의 ‘자본축적 양식의 근본’을 뒤흔드는 매우 심각한 일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합리적인 노사관계의 정립은커녕 노조활동 자체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왕적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상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동자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와 폭력적인 노무 관리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대체적으로 한번 이상씩은 경험하게 되는 것일 게다. 성진애드컴의 경우는 그런 짓을 ‘사장의 어린 아들’이 저질렀다는 것 때문에 더욱 분노를 자극하는 상황이었을 뿐이다.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것은 범죄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노동조합을 통제하는 기준만이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상태에서는 이런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인식이 뒤집어져야 한다. 평등한 노사관계의 사회적 준거가 마련되고 이를 위반하는 것은 ‘반사회적인 범죄’라는 인식이 상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거창하게 논할 것도 없다. 자본가들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임금을 떼먹어도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 형편에서 도대체 뭘 기대하겠는가?

규모가 영세하고 조직률이 매우 낮은 형편인 인쇄사업장에서는 근로기준법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법제도적 원칙은 버젓이 있는데, 그걸 어기는 사업주들을 처벌하고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게 문제다. 인쇄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에 보장되어 있지만 사용자들이 지키지 않는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사표를 쓸 각오를 하거나 퇴사 이후에나 소급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시정하라고 ‘근로감독관’이라는 자리가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위반사업장에 대한 감시감독과 예방활동은 전혀 손도 못 대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지방노동청 말로는 감독관 1인당 사건 접수가 60건 이상이 되면 업무의 하중 때문에 접수되는 사건처리 이외에는 다른 업무를 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감독관 1인이 100건 이상의 사건을 접수·처리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그렇지만 근로감독관이 더 늘어난다고 상황이 확 달라질까? 물론 근로금독관의 증가는 꼭 필요하지만 이것만이 답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 처방은 노동관계법 위반, 특히 의도적 임금체불, 부당해고 등 약한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행위는 ‘원조교제’ 만큼이나 악질적인 범죄라는 사회적 상식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진애드컴의 투쟁처럼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시정조치를 강제해내는 투쟁이 성공하는 것은 주변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웃기지도 않은 게 성진애드컴에서 노조가 만들어지고 기본적인 연월차 휴가제도를 실시하게 되니까 사용자들이 너무 억울해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근로기준법을 조금 지킨다고 마치 노벨 평화상이라도 탈 일을 하는 냥 뻐긴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전까지 자신들이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언제나 소중한 연대와 단결의 원칙

노동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연대투쟁이라는 것을 성진애드컴분회의 조합원들은 투쟁의 과정 속에서 온몸으로 체득했다. 성진애드컴 전체직원 70여명 중에서 현재 투쟁하고  있는 조합원은 해고자 1명을 포함하여 10명 정도이다. 이 상황을 깨고 나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연대투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합 결성 당시에는 ‘투쟁’이라는 말조차 생소하게 여겼던 조합원들이 이제는 다른 사업장의 투쟁 상황을 자신의 문제처럼 바라보고 비정규직 철폐투쟁에도 열심이다. 

3월18일에는 사업장 앞에서 ‘성진애드컴분회 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3·18투쟁문화제’가 열렸다. 이는 3월의 집중투쟁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는 성진애드컴분회의 투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들이 모여서 서로 기운을 북돋고 연대의 의지를 다지는 축제자리이기도 했다. 확실히 요즈음 장기투쟁사업장들은 중소영세사업장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은 생존권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거나 악덕자본가의 정말 악랄한 탄압에 놓인 경우가 많다. 장기투쟁사업장들의 사례들은 하나하나의 상황만을 떼어놓고 보면 노동자들이 승리하기에 역부족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연대투쟁을 한다. 연대투쟁 속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가 하나의 사업장에서 한명의 자본가와 관계된 우연한 문제들이 아니라, 계급적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당차게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노동운동진영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불투명해 보이기도 하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지켜야 할 원칙은 연대와 단결로 언제나 투명하다. 아무리 어려워도 이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