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교섭은 저지 넘어 쟁취투쟁으로 나가기 위한 '전술'

노동사회

사회적 교섭은 저지 넘어 쟁취투쟁으로 나가기 위한 '전술'

편집국 0 2,762 2013.05.17 09:15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는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 노동자로 만들어 버릴 악법중의 악법이 계류중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오는 4월이면 압도적인 숫자의 국회의원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논리를 내세우며 이 법안을 강행 처리할 태세이다. 

비정규법안은 정부의 노동시장정책 포기선언

지난 10여년 동안 정권과 정치권은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근로자파견법 제정을 추진하고 그 개악을 시도해 왔다. 우리는 1993년 근로자파견법 제정 반대투쟁, 1996년~97년에는 날치기 통과된 이 법안을 무효화시키는 총파업투쟁, 그리고 작년 겨울의 총파업투쟁 등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 법안은 1998년 IMF 외환위기를 틈타 도입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불과 6~7년 동안 한국노동시장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수를 점하는 상황에 이르는, 심각한 고용불안이 발생하였다. 국민의 상당수는 생활환경의 변화를 강요당했고, 가난과 차별의 수렁에 빠져들어 허우적대고 있다.

비정규 문제는 불안정한 고용시장과 대다수 국민의 가난, 이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 현상의 심화를 불러오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의 문제이자 모든 민중의 문제이다. 작년 8월 현재, 취업 노동자중에서 비정규직이 82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발표되어 그 심각성이 다시 한번 세간의 관심이 되었던 적이 있다. 보건·교육·주택 등 사회보장이 절대적으로 미약한 한국사회에서, 비정규 노동은 곧 '가난'을 의미한다. 적어도 2천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비정규 노동자 가정에서 가난과 사회적 소외에 맞서 전쟁터와 같은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노동부가 제출한 근로자파견법 개정안과 기간제법 제정안은 정부의 노동시장 포기선언이나 다름없다. 땀흘려 일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안정된 일자리와 생활보장을 포기하고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불안을 쥐어짜는 자본가의 손에 면죄부를 쥐어 주려는 법안이다. 

또한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태도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노동부는 약 1만명에 달하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모두가 불법파견이라는 사실을 공식 인정한 바 있다. 아니, 감추고 외면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도저히 그 덩치를 감당하지 못해 꼬리가 드러나고만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태껏 현대자동차 사용자의 불법행위를 처벌하지도 않고 있으며, 오히려 탄압하는 사용자를 도와 비정규투쟁 지도부를 구속하고 사용자의 불법적인 폭력은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부가 법안 통과에 안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본의 불법적인 노동시장 교란행위를 눈감아주고 날개를 달아 주겠다는 것이다. 대다수 노동자에게 고통은 숙명이니 인내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기조 아래에서 노동부 관료들의 생각은 자본가들의 생각과 철저하게 일치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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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5일 대의원대회 무산 후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회적교섭'을 위원장 직권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출처: 매일노동뉴스 ]

‘저지’ 넘어 정말로 세상 바꾸는 투쟁을 하자

이젠 공세적인 투쟁으로, 승리하는 투쟁을 펼쳐나가야 한다. 이것은 민주노총 70만 조합원 모두의 고민이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사회가 좀더 평등해지기를 바라고, 노동가치를 의미 있게 부여하고자 하는 모든 진보진영의 숙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10여년의 투쟁 경험을 통해 검증되었듯이, 총파업투쟁을 힘차게 전개하면 그 때마다 악법과 제도 도입을 잠시 저지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곧 승리는 아니었다. 이젠 근본적 해결, 전면적인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문제가 더 확산되고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뒷걸음질 할 곳도 없이 몰려있는 노동운동이 승리하는 투쟁을 경험하며 전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은 정부 ‘개악안 저지’를 해냈다고 하더라도 할 일을 다했다고 손을 놓을 수 없다. 비정규 노동의 확산을 막을 뿐만 아니라, 차별을 철폐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법 제도를 쟁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정규 문제를 현상유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은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고 그 원인이 되는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을 바꿔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그동안의 투쟁 속에서 뼈아픈 교훈을 갖게 되었다. 제아무리 잘 싸워도 결국 ‘방어적 투쟁’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저지하라! 분쇄하라!”는 구호로는 있는 힘을 점점 소모해 갈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그래서 이젠 공세적인 투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저지투쟁’의 역사에서 ‘쟁취투쟁’의 역사로 질적 발전을 모색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고민은 대다수 간부들도 공감하는 문제의식일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지난 1월20일 정기대의원대회를 준비하면서부터 공세적인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으로서, ‘2006년 5월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결의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파생하고 있는 민중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며 대중적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모든 민중이 떨쳐 일어서는 투쟁을 전개하자는 것이 이 계획의 핵심적 내용이다. 

투쟁은 전략이고 교섭은 전술이다

세상을 바꾸는 투쟁은 70만 조합원만을 위한 투쟁에서 벗어나 1,300여만명의 미조직 노동자와 전체 민중의 고통을 투쟁으로 극복해 나가며 공세를 펼치기 위한 의도에서 준비된 계획이다. 비록 더 많은 준비와 연구, 조합원 대중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교육선전 조직화사업이 필요하지만, 투쟁의 방향을 세워 나가는 중이다.

민주노총은 바로 이와 같은 절박한 투쟁을 책임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투쟁을 책임진다는 것은 투쟁의 주체인 조합원 대중을 통일적 요구로 일치시키고 총파업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이 함께 투쟁에 나서도록 만드는 것도 투쟁의 승패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과제로 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을 전술로서 활용한다는 것은, 민주노총의 요구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70만에 이르는 조합원 교양선전사업의 효과적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조직된 전체 노동자와 민중들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선전전술이기도 하고, 쟁점 부각을 통해 ‘노동자·민중진영 대 정권·자본’의 구도, ‘민중복지 대 신자유주의정책’의 명확한 투쟁전선을 그어 나가겠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무상의료 무상교육’과 ‘비정규 차별철폐’, ‘노동3권 보장과 산별체제 구축’ 등의 3대 의제는 단순히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 70만명의 문제가 아니며, 전체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이다. 그래서 투쟁의 동력도 일차적으로는 조직노동자가 되겠지만, 나아가서는 전체 노동계급과 민중이 함께 참여하고 지지하며 나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선 당장에는 4월에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 강행처리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선 이 문제를 놓고서라도 총파업은 총파업대로 준비하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적 대화 제의를 통해 국회처리가 아니라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 내어서, 우리가 의회 내 소수이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을 만회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총파업도 투쟁이고 교섭도 투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강력한 총파업투쟁 태세를 확고히 하는 것과 함께, 사회적 대화 시도를 통해 비정규 문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해결대책을 선명하게 부각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70만 조합원이 선출한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해 덮어놓고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조직력과 투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부족한 점이 있다면 거리낌없이 비판도 해야겠지만, 조합원 대중의 지도력으로 인정하고 허심하게 도와야 한다. 지금처럼 실천을 통해 검증되지도 않은 머릿속의 우려와 걱정을 앞세워서 조직파괴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될 일이다.

2005년 4월, 노사정관계의 분수령

3월과 4월은 올해 노사관계 노정관계뿐만 아니라, 향후 2~3년 동안의 노사정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장 올해 임단협 투쟁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정권과 자본은 비열하다 싶을 정도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 탄압으로 짓밟아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선택한 ‘저강도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파국을 의미하며, 저항과 대결이 격화되는 결과만 부를 것이다. 정권과 자본은 노동자가 죽어가고 민중 생존이 짓밟히는 속에서는 휘황찬란한 경제성장도, 2만불시대도 의미를 잃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민주노총의 총파업도 멈출 수 없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