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존엄을 지키는 것은 호주제가 아니다

노동사회

가족 존엄을 지키는 것은 호주제가 아니다

편집국 0 3,596 2013.05.17 09:00

 


ks29_01.jpg지난 2월3일 헌법재판소가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00년 11월 처음 제기한 위헌소송의 결과가 거의 5년 만에 나온 셈이다. 국회는 지난 연말,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호주제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은근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법 개정을 하려는 눈치였는데, 이제 더 이상 법 개정을 미룰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길게 보면 50년 이상, 짧게 보면 8년 가까이 된 여성계의 호주제 폐지운동이 종지부를 찍을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헌법불합치 결정 난 호주제, 무엇이 문제인가

여성운동에서 이토록 긴 투쟁의 역사를 가진 이슈도 드물 것이다. 호주제 폐지운동의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1950년대 초 신민법 제정 당시의 논란까지 거슬러 간다. 1953년 여성계 대표들은 법전편찬위원회에 남녀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헌법정신에 비추어 민법을 제정해 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했고, 1957년에는 국회 공청회에서도 가족법상의 남녀차별은 헌법에 위배됨을 주장하는 청원서와 호소문 등을 통해 압력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57년 12월에 제정되고 다음해 2월 공포된 신민법은 호주제를 비롯한 남녀 성차별적 조항에 대한 개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 이후 1979년, 1989년 두 차례에 걸쳐 가족법이 개정되어 호주의 권리와 의무 조항이 대폭 삭제되고, 친족 범위는 부모 양계 각 8촌까지로 조정되는 등의 개선은 있었다. 하지만 핵심적 성차별 조항인 호주제는 최근까지도 그 존폐 논란이 지속되어왔다.

두 차례의 가족법 개정 이후, 이혼 시 여성의 재산분할청구나 출가한 딸에 대한 상속권 등 경제적 부분에서의 성차별이 일정 정도 해소되었고 호주의 실질적 권한도 상당히 약화되었다. 하지만 호주제의 핵심인 남성우선적 호주승계순위나 부가(夫家·父家)입적조항, 부성강제조항은 부계혈통주의를 확고하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남성중심 문화를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조항들에 따라, 아버지인 호주가 사망하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아들이 호주지위를 승계받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동일한 책임과 권한을 갖는다. 결혼한 어머니는 실질적으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더라도 호주승계의 가장 마지막 순위가 된다. 또한 결혼과 동시에 여성은 남편(또는 남편의 家)이 호주인 호적에 강제적으로 입적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평등 의식이 높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호주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OECD 국가 중 이혼율이 2위인 우리나라에서 이혼이나 재혼한 여성이 자녀와 함께 거주하며 경제적 책임을 지더라도, 호주제 하에서는 법적으로는 동거인 밖에 될 수 없으므로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가족형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호주제는 국민 개개인이 가족을 구성하고 가족원의 지위를 정하는데 있어 국가(법)가 강제적으로 남성에게 우선적 지위를 부여한다. 그럼으로써 헌법이 정한 개인의 존엄과 남녀평등이라는 기본 가치를 위배하고 있다.

ks29_02.jpg'발끈'하게 했던 문화운동, 부모성 함께 쓰기

이이효재, 조한혜정, 고은광순, 이유명호, 오한숙희…. 여성운동계의 대모에서 페미니즘 사주를 본다는 역술인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런 이름들이 1997년 처음으로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여성연합에서 매년 개최하는 한국여성대회에서 저명인사 170명의 명단이 발표되었던 것이다. 

그 때 그, 사이버 공간의 그 치열했던, '소리 없는 전쟁'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은 거의 보급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와 같은 PC통신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었는데, 각 토론게시판마다 이 요상스런(?) 이름에 대한 비난의 글들이 쇄도했다. 글 하나를 읽고 나면 그 위로 수십 개의 글이 뒤엎을 정도였다. 그나마 유명한 전국통신망이 3개 정도였으니 망정이지, 지금처럼 수십 개도 넘는 거대 포털사이트들이 있었다면 우리가 과연 그 최악의 상황들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싶다. 변씨랑 소씨가 결혼하면 '변소'씨가 되나, '강간'씨는 어떻게 할 것이냐, 자식 세대로 가면 성이 4자, 8자가 된단 말이냐 등등 얼토당토않은 인신공격성 글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동안 아버지의 성씨만을 써온 우리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깊고 강한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오해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부모성 함께 쓰기'는 어디까지나 뿌리깊은 부계혈통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자 시작된 '문화운동'의 일환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제 이름은 이구경숙입니다."라고 했을 때, 대부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어머니 성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이처럼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은 '엄마 성을 따를 수도 있구나'라는 '상상'을 한번 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어머니와 그토록 친밀하면서도 아버지의 성만을 따르는 것에 대해서 별로 의구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부모성 함께 쓰기는 이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른 상상력을 해보도록 자극하는 문화운동인 셈이다.

수 십 년에 걸친 두 차례의 가족법 개정에 이어, 본격적으로 호주제 폐지운동을 쟁점화시킨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은, 헌법재판소의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찬반논란 속에서도 볼 수 있듯, 이처럼 그 시작부터가 요란스러웠다.

호주제 폐지는 여성문제 넘어선 가족문제

1999년 4월 여성연합, 가정법원, 여성단체협의회, 여한의사회는 호주제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의 여파가 다소 잠잠해진 뒤였는데, 이 토론회를 계기로 인터넷과 PC통신은 물론이고 언론매체를 통한 찬반토론이 또 다시 거세졌다. 통상 여성운동이 제기하는 대부분의 이슈는 거센 사회적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호주제 폐지 문제는 그 정도가 매우 심했다. 

처음엔 호주제 폐지에 대한 반대여론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러나, 차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합리적 토론이 이루어지면서 호주제 폐지에 대한 설득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여성연합은 이를 기회로 삼아 99년 하반기에 호주제 폐지를 주요사업으로 설정하여 내부에 '호주제폐지 운동본부'를 설치하고, 전국 50여개 회원단체들과 함께 호주제로 인한 불만 및 신고전화를 접수했다. 

다양한 사연들이 전국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얼마 전에 결혼했는데 혼인신고하러 갔더니 남편이 호주가 되더라면서, "기분 나빠서 호주제 폐지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겠다."는 젊은 세대에서부터, 오빠와 이혼한 올케가 재혼을 할 예정인데, 아이 성을 새 아버지의 것으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호주(전 남편)가 아이의 장례를 치르고 사망신고를 해야 가능하다고 해서 빈 시신을 놓고 장례를 치르고 한참을 울었다는 기막힌 사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이 아픔을 간직해 왔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위의 눈치 속에 숨죽이며 살고 있는 것일까.

여성연합은 또 2000년에는 호주제 폐지운동을 중점사업으로 설정하고, 사이버 호주제 폐지운동 전개, 국정감사 모니터링 등을 통해서 국회 압박에 박차를 가했다. 무엇보다 호주제는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성평등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확장시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이하, 호주제폐지 시민연대)'를 발족시켰다. 당시 113개 단체가 참여했으며 현재 137개 단체로 확대되었다. 

2000년 9월 발족한 호주제폐지 시민연대는 사업의 방향을 크게 세 가지로 잡고, 그 외 나머지 사업들은 각 단체의 역량에 맞게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세 가지 갈래는 호주제 위헌소송과 민법개정안에 대한 국민청원, 범국민 캠페인이었다. 범국민 캠페인은 전국의 호주제폐지 시민연대 소속 단체들이 매년 1차례 이상 거리에 나가 시민들의 여론 변화를 촉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국민청원은 박근혜, 이미경, 한명숙 의원의 소개로 진행했지만 국회에서는 주요하게 논의되지 못했다.

호주제 위헌소송은 민변의 이석태, 강금실 변호사가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냈는데, 이는 소송 제기 자체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될 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국회의원들에게만 민법개정을 맡기기보다는 국회 의결과 관계없이 호주제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전술이라고 판단하여 시작했다. 예상대로 위헌소송 제기 자체가 뜨거운 감자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다섯차례의 변론을 거쳐 오늘 드디어 헌법불합치 결정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헌법불합치 판결은 국가공동체가 실현해야 할 근본가치로 천명된 자유, 평등, 민주주의가 가족생활 내에서도 역시 추구되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예외가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특히 헌법 제11조(성별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36조(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양성평등)에서 보장하고 있는 성평등 가치는 그 어떤 관습과 전통, 이념 등에 의해서도 침해받을 수 없는 천부의 가치임을 다시 한번 인정한 것이다.

문패 바꾼다고 집이 무너질까

호주제가 사라지면 가족이 해체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호주에게 부과되는 일방적인 의무감이나 권위가 가족관계를 유지해주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가치는 혈연 중심의 가족공동체를 너머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공동체를 존중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공동체, 국가공동체가 공동체의 본래 가치인 배려와 협력 속에서 조화롭게 상생하는 것이다. 과거와 같이 가족 내에서 어머니 또는 아내라는 이름의 여성들의 희생과 배려로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보장하면서도 각각의 책임과 자발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곧 있을 국회의 민법 개정은 우리 사회가 양성간의 진정한 공존이 가능해질 수 있는 시대로 나아가는 중요한 열쇠를 국민 모두에게 던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제, 이를 기점으로 민주주의적, 수평적 사고방식, 자기결정권에 대한 강력한 자각 등으로 표현되는 가족구성원들의 의식변화를 수용하는 가족질서를 구축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