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자’ 구호로는 양극화 해결 못 한다

노동사회

‘착하게 살자’ 구호로는 양극화 해결 못 한다

편집국 0 3,362 2013.05.17 09:40

최근 ‘사회적 대화에 기반한 사회적 합의모델’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특정계층이나 특정정당에서만 주장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가장 보수적인 한나라당조차 공공연히 ‘사회적 합의모델’의 중요성을 천명하고 있다.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는 ‘사회적 대화’ 

그러나 문제는 그동안의 불신과 갈등에 비추어 과연 진보와 보수가 타협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경제위기 해법을 둘러싼 각종 토론회를 보면, 아직도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는 식의 추상적인 담론수준의 논쟁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토론은 결국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비화되고 이는 다시 감정적 불신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왜 이러한 상황이 반복될까? 어느 쪽도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고 사회적 합의모델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무엇을 목표로, 어떠한 내용을 매개로 타협할 것인가’에 대한 그림은 어느 쪽도 내놓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합의모델을 말하는 것은 ‘착하게 살자’는 식의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전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외국의 사례를 보아도 상당기간의 논쟁을 통하여 하나씩 풀어나갔음을 알 수 있다. 시험을 볼 때 쉬운 문제부터 풀고 어려운 문제는 뒤로 넘기는 것이 정석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대화도 노동계와 재계, 진보와 보수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안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 특히 타협보다는 투쟁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풍토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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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비정규법안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전원회의를 거쳐 '동일노동 동일가치' 기준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 출처:매일노동뉴스 ]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서 시작하자 

여기서 필자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좌파적 성향의 사회민주주의자나 우파적 성향의 신자유주의자 모두 인정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실업자에게 사후적으로 소득지원을 해주는 소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노동의 신속한 재배치와 구직자를 위한 새로운 기술 및 고용 기회 개발을 추구하는 적극적이고 예방적인 대책을 의미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실업대책 및 복지 차원에서 전통적으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지지하는 반면, 신자유주의자들은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의미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지식기반경제로 급격히 이행하는 산업환경은 신자유주의자들조차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지식기반경제로의 이행에 따라 고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대함에도, 노동력의 유동화가 심해지는 노동시장은 기업이 노동자에 대한 훈련투자의 수익을 제대로 회수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업으로 하여금 인적자원투자에 소극적이게 하고, 이는 산업 전반에 있어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신규채용보다 경력자 채용을 우선시하는 기업의 채용정책이 이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청년실업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공공부문이 상당부문 흡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기는 다르지만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결과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공통분모가 되고 있다.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고사를 상기한다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매개로 한 사회적 합의는 고려해 볼만하다. 다만, 그동안 개별기업이 떠맡았던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의 상당부문을 공공부문에 전가시킬 의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조세부담의 경감을 주장하는 등 그에 걸맞은 의무이행은 도외시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이중성 및 비도덕성은 계속 비판되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정규직과의 심각한 임금격차에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또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하에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격차를 일정 비율 이내로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의 일부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시행할 경우 실업자가 양산된다며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위의 A선은 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임금결정선이고, B선과 그 위아래에 있는 점선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하의 임금결정선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고수할 경우, O의 좌측에 있는 C영역에 속한 기업은 손실을 보게 되므로 도산하게 되는 반면, O의 우측에 있는 D영역에 속한 기업은 초과이익을 보게 된다. 즉,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생산성이 낮은 기업(특히 중소기업)을 시장에서 도태하게 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실업자를 양산하게 된다. 결국, 정부여당 일부에서 제기하는 우려는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우려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계속 주장함과 동시에, C영역에서 퇴출된 노동자를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나 다른 산업부문으로 이동시키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더욱 필요함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으로 오히려 초과이익을 얻게 되는 D영역의 기업들로 하여금 노동시장정책에 필요한 재원, 예를 들면 실업급여 등을 추가로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실업급여 지급, 직업중개 등은 주로 고용안정센터에서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급여의 지급에 있어서도 비정규직은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 2004년 9월 기준으로 정규직의 경우 86.6%가 실업급여의 적용을 받는 반면, 비정규직은 35.3%만이 실업급여의 적용을 받고 있다. 고용이 불안전하여 실업급여가 더욱 절실한 비정규직이 오히려 실업급여의 혜택에서 제외되는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구성과 내용 

실업자 및 취업자에 대한 교육 및 훈련은 노동부, 보건복지부, 여성부 등 각 기관별로 나누어져 있다.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근로자에 대한 교육 훈련의 차원을 뛰어 넘어 사회적 학습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학습망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평생에 걸쳐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의 학습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평생학습체계를 말한다. 

기존의 고용창출방식은 공공근로방식의 임시직 일자리가 주류를 이루었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서 창출되는 일자리는 지속적, 안정적 일자리이어야 한다. 특히, 복지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이 사회적 서비스에 집중 투자하여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의 사회참여 및 출산장려를 위해 아동을 위한 육아(탁아) 및 교육시설에 대한 투자가 시급히 요구된다. 2004년에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투자된 돈은 835억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 

노동시장 조정정책은 노동시장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동시장 각 부문의 수요 공급 등을 예측하고 이를 중장기적인 고용창출정책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그와 같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현재 각 부처에 분산되어 부분적으로 또는 중복되어 수행되고 있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노동시장정책을 위해 노동복지 부총리를 신설하고, 그 산하에 노동시장정책 총괄기구나 위원회를 설립해야 할 것이다. 

공급 측면의 유연화는 생각 안 하는가 

현 정부는 사회적 합의모델을 말할 때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의 경험을 자주 언급한다. 또한, 이들 모델을 언급할 때에는 파트타임 근로가 매우 발달해 있음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아마 노동시장의 유연화, 근로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 등의 중요성을 암시하려는 것 같다. 

실제로 2003년 기준으로 전체 고용 중 주당 근로시간이 30시간 미만인 단시간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나라가 7.7%에 불과한 반면, 네덜란드는 34.5%, 아일랜드는 18.1%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크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네덜란드의 노동시장정책 예산은 2002년 기준으로 GDP 대비 3.62%인 반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정책 예산은 0.42%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저수준으로 신자유주의의 본국인 미국(0.7%)과 일본(0.74%) 보다도 훨씬 낮은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수요측면과 공급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수요측면은 노동의 수요자인 기업의 입장에서 보는 유연화로 주로 ‘해고의 자유’가 그 주요 내용이 된다. 공급측면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는 유연화로 주로 ‘취업의 자유’가 그 주요 내용이 된다. 취업의 자유가 보장되려면 재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교육기간 동안 생계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 여당의 노동정책을 보면 수요측면의 노동시장 유연화만 강조하고 있다. 네덜란드 수준의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장하려면 수요측면뿐 아니라 공급측면도 균형 있게 강조해야 한다. 

공급측면의 유연화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의해 담보될 수 있다. 즉, 덴마크 수준의 노동시장 유연화가 부럽다면 GDP의 3.62%에 이르는 노동시장정책 재원을 만들 각오도 해야 함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서 GDP의 3.2%(우리나라 노동시장정책 예산과 네덜란드 예산의 차이)는 약 25조원이 된다. 이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탈세만 막아도 재원 마련 

우리나라의 경우 각 연구결과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2005년 3월에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GDP의 약 21% 정도가 지하경제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금융실명제의 실시로 인하여 1993년 이후에 감소하던 지하경제규모가 1999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선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반면, 스웨덴의 경우 지하경제규모는 GDP의 3.0~4.5%로 추산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경제를 스웨덴 수준으로 투명하게 할 경우, GDP의 17%가 추가적인 세원으로 포착된다는 결론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순조세부담률 약 20%를 적용하면 GDP의 3.4%가 추가적인 재원으로 확보된다. 즉, 현재의 세율을 그대로 두고 탈세만 막아도 선진국 수준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필요한 재원이 확보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선진국 수준으로 경제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제도개혁이 필요할까? 

경제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①부동산 ②주식 및 채권 등 유가증권 ③예?적금 등의 금융자산 ④실물거래 등의 흐름이 정확히 포착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다음 다섯 가지의 제도개혁이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개인이 보유한 주식을 정확히 파악하고 평가하기 위해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 제도를 전면 도입해야한다. 둘째, 부동산의 실거래가 평가를 위한 개혁법안으로서 1세대1주택 비과세 제도를 주택양도소득공제 제도로 전환, 양도소득세를 실거래가 기준으로 과세, 취득세 및 등록세의 과세표준을 실거래가로 전환, 부동산 이전등기시 실거래가를 등기부에 기재하는 방안 등을 도입해야한다. 셋째, 예?적금 등의 금융자산 보유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금융소득종합과세를 강화해야한다. 넷째, 차명거래를 금지하기 위해 금융자산의 명의신탁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금융실명법을 개정해야한다. 다섯째, 자영업자의 세원을 노출시키기 위해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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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합의를 통한 재정개입을 위해 노사정의 대화가 필요한 만큼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를 통한 노동운동의 대표성 확립도 필요하다. 지난 4월 5일 함께한 노사정 대표들   -출처:매일노동뉴스 ]

총파업과 단식농성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 

사회적 대화의 주체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노사정 및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범국민적 기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이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1%에 불과하다. 이는 노동조합대표가 참여해도 나머지 89%의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뜻한다. 노동조합조차 조직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 및 실업자들이 양극화 해결을 위한 사회적 타협에 가장 목말라 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에 가장 목말라 하는 계층이 사회적 대화에서 배제되는 현재의 모순된 구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현재의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조직화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기업별 노조체계를 서둘러 산별노조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과도기적으로는 비정규직을 위한 대리교섭의 수행이나 단체교섭의 확장 적용 등을 검토할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 사회적 교섭의 참가 여부를 둘러싸고 노동계에 많은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로서는 현재의 국면에서 참가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하여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만, 협상의 테이블에 나갈 경우에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갖고 있어야 유리하다는 점과 협상의 테이블을 영원히 외면할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민주노동당의 부유세 공약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진보진영에서는 복지제도를 위한 재원마련 방안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민주노총에서도 조세제도 개혁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문제는 진보진영에 걸맞은 사회적 합의모델이나 조세개혁 방안은 총파업이나 100일 단식농성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9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