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 원리 실현하는 조세개혁투쟁

노동사회

연대의 원리 실현하는 조세개혁투쟁

편집국 0 3,164 2013.05.17 09:39

노동자에게 ‘세금’은 부담스러운 것이다. 가뜩이나 가벼운 호주머니를 털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을수록, 깎을수록 좋은 것’으로 느끼기도 한다. 작년 국민 한 사람이 납부한 세금이 316만원이라고 하니, 이 정도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전혀 다른 한편에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감세를 추진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외국의 어느 학자처럼 극단적으로 “세금징수는 강제노역”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세금을 더 적게 내거나 깎을 것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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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공조하고 있다.   -출처: 매일노동뉴스 ]

대한민국 세금은 ‘공공의 적’?

지난 2월 이후 세금을 깎아주자는 법안이 국회에 14건이나 접수됐다고 한다. 특히 한나라당은 4월30일 보궐선거를 앞두고 특소세 폐지와 소득세 및 법인세 인하, 부동산 관련 양도소득세 외 거래세의 인하 등 적극적인 감세정책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또한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들 중 53%가 세금감면과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조성’이 경제정책 중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할 과제로 뽑았다. 그리고 작년 강남일대 부자 자치구를 중심으로 재산세 인상률을 반대했던 ‘부자들의 반란’은 최근 경기도 일부 지자체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이런 보수정당, 거대기업, 부자들이 세금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노동자들의 그것과 같은 것일까? 그래서 세금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서 힘을 합쳐야할까? 그렇지 않다. 이들이 감면을 추진하는 세금은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과는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서민가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행한다”던 근로소득공제확대는 대부분의 노동자민중이 면세점 이하에 해당되기 때문에 오히려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크게 경감하는 효과만 있었다. 무조건 낮춘다고 능사가 아닌 것이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덜 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떤 항목의 조세에서 얼마나 부담하며, 마련된 재원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활용되는가 하는 점이다.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사회임금’의 확충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사회임금’은 실제 가처분소득을 늘려주기 때문에 임금인상과 같은 효과를 지니고, 이를 통해 사회 전반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를 지닌다는 점에서 ‘연대주의적 복지전략’의 핵심정책으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세금과 마찬가지로 사회임금도 단순히 ‘얼마나 우리가 받게 되는가’만을 중심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노동자들은 국가에 조세뿐 아니라 준조세로 분류되기도 하는 사회보장세도 부담하기 때문이다. 즉, 사회임금의 수혜자인 동시에 부담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조세의 부담구조가 어떠한가에 따라 노동자 민중에게 유리하게 재원이 형성되어 지급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 민중의 부담을 오히려 크게 할 수 있다. 특히 부담구조의 고려 없이 사회임금의 양적 크기만을 강조하거나 이를 위한 확대에만 매몰될 경우, 생산성의 범위 안에서 기업의 부담이 결정되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임금이 시장임금의 인산을 억제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임금’을 주장하는데 있어서도 조세는 반드시 함께 고려하고 판단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조세정책,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조세정책은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하는가. 노동자가 세금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세금이라는 형식 그 자체보다는 우리나라 조세체계의 문제점 때문에 생긴 것이다. 따라서 조세체계를 진보적으로 개혁하여 소득재분배를 높이고 노동자 민중을 위한 재원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첫째, 직접세의 비율을 늘리는 것이다. 2001년 기준 OECD 국가의 평균 일반조세율 27.5% 중 직접세의 비중이 16.1%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2.2% 중 11.4%에 불과하다. 그리고 광범위한 종합소득세 탈루액, 부가가치세 탈루액을 징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 변호사를 비롯한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이 30%밖에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를 위해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하고 소득파악을 더욱 강화하여 조세의 형평성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주식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강화해야한다. 소득이 있는 곳에는 세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지분이 3% 이상인 대주주로서 시가총액이 100억원 이상의 경우에만 적용된다. 부동산과 비상장주식에 대해서는 양도차익 과세가 이뤄지고 있지만, 유독 상장주식에 대해서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이유로 과세를 하지 않고 있다. 주식거래를 통해 수억원, 수십억원의 소득을 올리고서도 몇 푼의 증권거래세만 내면 되는 상황에서 사회형평성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한편 주식양도차익세는 주식 보유기간에 따라 차별적인 주식양도차익 과세율을 적용하여(장기보유 할수록 낮은 과세율) 주식시장의 투기성을 제어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셋째,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 부유세 도입은 민주노동당의 핵심 선거공약으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총액에서 부채총액을 뺀 순자산총액에 대해 과세하는 세금이다.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11개국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아시아권에는 인도, 스리랑카, 중남미에서는 우루과이, 콜롬비아 등에서 시행중이다. 부유세는 공평과세에 일조하고 사회복지 재원마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고시가 기준으로 10억 이상의 자산소유자에게 부유세를 적용하면, 연11조원의 세금을 걷을 수 있다. 우리나라 2005년 사회복지 일반회계 총액은 13.6조원이다. 부유세를 사회복지예산으로 활용하면 복지예산을 거의 2배로 늘릴 수 있는 것이다. 

넷째, 국방비를 삭감해야 한다. 정부는 2005년 긴축예산을 편성하면서도 국방비는 1조6천억원을 증액하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식으로 계산하면 전체예산 중 국방비 비중은 3%가 넘는다. 이는 NATO 평균인 2.2%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이다. 현재 국방비는 정부 내에서도 비판받았던 무기를 수입하거나, 형편없는 협정결과였던 용산미군기지를 이전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증진을 통해 국방비를 단계적으로 축소해 나가야 한다. 

넷째, 이렇게 세제개혁과 국방비 삭감 등을 통해 확보된 예산을 사회복지 부문에 사용해야 한다. 정부는 2005년 사회복지예산을 4조6천억원 증액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속에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수급자의 자연증가분과 실업급여 대상자가 증가함에 따라 당연히 지출해야할 사회보험지출 확대분 2조6천억원이 포함되어 있다. 어쨌건 그렇게 늘렸어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지출 수준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낮은 편이다. 2001년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GDP 대비 국가복지지출 비중은 멕시코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서구 국가들은 보통 예산의 30~40%를 복지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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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열린 2005 한국사회포럼에서는 '두 개의 국민, 두 개의 의료를 넘어'라는 주제로 무상의료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출처: 매일노동뉴스 ]

당위 현실 괴리 더이상 허용해선 안돼

이러한 요구들이 실현된다면 조세제도는 빈부격차해소를 위한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모든 것을 시장의 원리로 바꾸려는 신자유주의 공세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조세감면을 확대하고, 국가재정을 축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얻은 노동권뿐 아니라 자본주의 틀 안에서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생산하는 ‘비시장, 비이윤’ 영역도 이러한 신자유주의 압력으로 점점 시장화, 상품화되어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탈시장 영역이었던 필수사회서비스, 사회복지, 교통, 전력, 가스 등 기간산업서비스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재편의 첫 번째 먹이감이 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도 조세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인 입장에서 봐야 한다. 사회적 빈곤과 빈부격차가 IMF 경제위기 때보다도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 노동운동이 사회연대의 원리에 입각해 민중의 보편적 이해를 대변하고자 한다면 빈곤해결과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투쟁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조세개혁 또한 반드시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세제도의 진보적 개혁은 1995년 민주노총 준비위원회 시기에 정식화됐던 ‘사회개혁투쟁’에서부터 2003년 ‘사회공공성투쟁’으로 확장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용은 조금씩 바뀌었을지라도 민주노총의 중심 의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이런 당위적 요구를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구체적인 실천을 하기에는 아직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다. 고용문제를 비롯해 보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문제에 언제나 우선순위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서구처럼 노동자계급이 한때나마 상대적인 풍요로움을 느껴봤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조세를 통한 사회개혁을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다. ‘사회복지’를 둘러싼 투쟁을 자본주의 사회의 개량적 요소로 치부하면서 이를 폄하하는 경향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혁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미흡한 수준이지만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등의 틈새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조건의 격차문제를 극복할 방안으로 사회공공성강화 투쟁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는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고민들이 모여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의제로 하는 사업계획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2006년 계획되어 있는 모든 조합원이 함께 하는 총파업, ‘세상을 바꾸는 큰 투쟁’의 중심 슬로건 중에 하나다. 

출발신호는 이미 울렸다

지금 민주노총이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전면적 요구로 내걸게 된 것은 교육과 의료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중포화 속에 놓여있는 가장 대표적인 필수사회서비스 영역이자, 민중의 요구와 분노가 결집되어 있는 지점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이 의제만으로 현 시기 표출되거나 제기해야하는 모든 문제를 다 담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책작업은 이제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구체성과 현실성이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를 중심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구조조정 저지’ 등 주로 반대투쟁에 머물렀던 수세적 차원의 대응을 넘어 보다 공세적으로 민중의 요구를 의제화함으로써 공고한 신자유주의의 지배에 균열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조세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 없이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조세개혁투쟁은 그 자체의 의의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재원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의 수준으로만 상정되고 있는 감이 없지 않다. 조세라는 다소 딱딱한 주제를 보다 대중적인 실천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노총이 2006년 세상을 바꾸는 큰 한판 싸움을 준비해야하기 위해서는 이를 피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출발선에 서 있고, 출발신호는 이미 울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9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