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비리’ 학벌주의와 사립학교 폐쇄성이 키운 독버섯

노동사회

‘성적비리’ 학벌주의와 사립학교 폐쇄성이 키운 독버섯

편집국 0 4,477 2013.05.17 09:29

2004년 교육계 가장 큰 이슈를 들라치면, 아마도 고교등급제, 수능부정, 내신성적비리, 사립학교법 개정 등일 것이다. 이 이슈들은 한국교육의 현실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이슈들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하면, 이 정도일 듯 하다. 

“한국에서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상위권 대학을 가야하고, 보다 높은 서열의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고교등급제에서 높은 등급을 차지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고, 그도 아니면 내신성적이라도 돈으로 고쳐서 진학하던지, 그래도 안심이 안 되면, 핸드폰이라도 써서 수능에서 점수를 올려 보든지….”

그래야만 한다. 한국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떵떵거리고 살고 싶으면. 한번 결정된 대학순위로 자신의 인생이 바뀐다는 것을 우리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3점만 오르면 남편이 바뀐다”라는 어느 여자고등학교 책상의 낙서가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ghong_01.jpg한방으로 인생역전, ‘돈주고 성적표 고치기’

M고 답안지 대리작성·위장전입 비리, B고 성적조작 비리, C중 답안지 대리작성 비리, S대 입시비리, A예고, S예고 편입비리 등등…. 작년 말부터 연이어서 ‘성적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교육계의 큰 이슈로 부상하였다. 수능부정이라는 대형 사건 직후에 터진 일이라서 어느 때보다도 세간의 관심이 높았으며, 그 원인진단에서부터 개선방안까지 여러 가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성적비리 문제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서열화된 대학체제로 인한 학벌·학력주의이다. 3점만 오르면 인생이 바뀌는, 즉 어떤 대학을 가느냐가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학력이 사회적 권력 구성의 핵심적 지표가 되는 사회를 우리는 학력주의 사회라고 한다. 이러한 학력주의가 일선 학교에서는 성적 지상주의로 나타난다. 즉 어떤 방법을 쓰던지, 점수만 올리면 된다는 것이다. 한국과 같이 대학이 고도로 서열화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편법, 불법적인 방법으로 점수를 올리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들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여기에 더하여 이번 성적비리의 또 하나의 특징을 든다면, 대부분의 성적비리가 사립학교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는 한국 사립학교의 폐쇄성이라는 기본적 특징에 의해서 일어난 구조적인 문제에 가까운 것이다. 사립학교의 운영은 특정 소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친인척과 지인들로 구성된 이사회와 교장, 그리고 부장 교사 등의 소수만이 학교운영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 교사, 학생, 학부모들은 결정권은커녕 학교운영의 기본 정보접근에서부터 차단된 상태이다. 

따라서 부정 부패와 비리가 있어도 문제는 제한된 소수만이 알고 있게 된다. 그 제한된 소수 또한 강력한 인적관계에 있기 때문에 비리는 외부로 밝혀지지 않고 계속 심해진다. 이러한 구조 속의 사립학교는 자체 정화기능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립학교에서도 자체 감사를 통해서 비리 문제를 발견하고 시정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다. 사학재단과 교장의 전횡 속에서 일반 교사들은 내부 고발자가 되기보다는 침묵하는 동조자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서열화된 대학체제로 인한 성적 지상주의라는 씨앗이 사립학교라는 폐쇄된 썩은 나무 속에 기생하여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점수를 향한 왜곡된 욕망 부추기는 학벌주의

이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 말들이 많았다. 몇 가지 주장들을 살펴보자. 혹자는 여러 내신비리를 내세우면서 “내신에 대한 신뢰도가 없으니, 수능 중심으로 다시 되돌려야 한다”하고 주장한다. 혹은 더 나아가서 성적지상주의가 문제가 되었으니 “‘3不정책(고교등급제, 대학별본고사, 기여입학제 금지)’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성적지상주의 때문에 생긴 일을 성적지상주의로 풀겠다는 이런 주장의 저의는 뭘까? 도대체가 ‘이열치열’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앞뒤 연결이 되지 않는 논리들이다. 아전인수라는 말은 이런 때를 두고 쓰라고 만들어진 말인 것 같다.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성적비리 사건의 원인을 고사관리 관리감독 부실, 교사와 학부모의 도덕적 해이 정도로 본다. 결국 답은 성적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관련자들의 처벌을 강화하고, 교사와 학부모의 도덕적 재무장을 요청하는 수준이다. 물론 완전히 틀린 답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성적관리투명성을 높이고 도덕적 재무장을 요청한다고 해서 성적비리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그 유혹은 교육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비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강화시키거나 유지하면서 이를 개인 차원의 도덕성만으로 해결하려 하는 태도로는 제2의, 제3의 성적 비리사태를 막을 수 없다. 

현재 우리교육 문제의 핵심은 결국 현재의 ‘학력주의 체제’에서 비롯한다. 학력이 개인의 권력 구성의 핵심적인 지표가 되어 있으며, 각 대학이 수직적인 서열화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대학에 입학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결국, 학력에 따라 서열화된 권력은 서열화된 대학을 원하고, 서열화된 대학은 고교 평준화의 해체를 꾀하게 되어 교육의 평등권은 사라지고 경제적 부가 곧 그 사람의 ‘왜곡된’ 학력을 결정하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학부모들은 언제나 걱정이다. 남의 자식은 비싼 학원 다니면서 점수 올리는데, 자기 자식은 그러지 못하면 더욱 초조해질 뿐이다. 단지 몇 점 차이로 대학이 달라지고, 그래서 인생이 달라지는 사회에서 성적비리의 유혹은 사라지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렇게 서열화된 대학구조가 흔히들 말하는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왜곡된 경쟁구조는 불필요한 경쟁만을 양산하고 있다. 

이제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대학평준화와 수능 자격고사화가 바로 그것이다. 대학평준화는 불필요한 학벌경쟁을 막고, 학습경쟁으로 대학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학의 학문생산 및 교육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기본조건이다. 그리고 수능은 자격고사화 하여 고등교육기관에서의 학업수행을 위해 필요한 기본능력에 대한 평가위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래서 단지 몇 점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교육이 아닌, 개인의 능력을 충분하게 발현할 수 있는 교육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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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조 광주사립위가 주최한 '부패사학 박람회' 출품작   - 출처:전교조 ]

비리척결의 기본은 사립재단 투명성 강화 

이번 성적비리 파동은 사립학교법 개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해서 사학관련 부정비리에 대한 종합적인 감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사학의 비리는 이사장이나 교장이 예산, 인사, 학사운영에 있어서 전권을 휘두르는 음성적인 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 구성원들이 추천하는 이사가 참여하는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 개방형 이사제는 이사회의 제대로 된 운영을 위한 감시자의 역할, 법인운영과 관련한 정보의 공유, 학교 구성원의 책임성 강화를 위한 것이다. 또한 학내 교사회, 교수회, 학부모회, 학생회 등의 자치기구를 법제화함으로써 학교운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는 비단 성적비리 뿐만이 아니라 사립학교의 비리에 대한 근본적인 근절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또한 지금도 사립교원이 되기 위해서는 몇천만원을 기부금 명목으로 내야하는 경우가 있고, 이에 따라 각종 인사 관련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인사시스템이 성적비리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원의 임면·인사 관련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원 임면권의 학교장 부여, 교원인사위원회의 투명성 강화가 필요하다. 사립학교법 개정은 사학비리 척결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기본 과제이다. 이 기본과제도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교육의 정상화를 논하기 힘들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