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단체 쌈짓돈, 민주주의 풀뿌리로 흐르게 하라

노동사회

관변단체 쌈짓돈, 민주주의 풀뿌리로 흐르게 하라

편집국 0 4,679 2013.05.17 09:52

독도 문제로 사회가 들끓고 있는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온갖 현수막을 구경할 수 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현수막의 아래에는 “○○동 새마을부녀회”, “○○동 ○○전우회”라고 적혀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소위 관변단체라고 불리는 국민운동단체까지 독도 지키기에 함께 나서서 기분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도 저런 단체가 있나 하며 의아심을 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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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곳곳에 내걸린 정부보조단체들의 독도관련 펼침막 ]

관변단체 가운데서도 새마을단체, 바르게살기운동본부, 자유총연맹을 일컬어 ‘빅3 국민운동단체’라고 한다. 이 단체들은 “내 집 앞 눈은 내가 치우자”는 대 국민 교화용 표어를 적은 현수막이나 70년대 풍의 “자연을 보호하자”는 현수막을 떡하니 잘도 길 한복판에 갖다 걸어 놓는다. 얼마 전에는 언뜻 수도이전 반대의 현수막을 본 것도 같다.

그런데 그 단체들이 자주 애용하는 현수막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 지 문득 궁금해진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돈이 그렇게 많아 현수막을 자주 사용할까. 자발적으로 회원들의 돈을 걷어서 내는 걸까? 짐작하겠지만, 대답은 천만의 말씀이다. 이들은 각 구청에서 사회단체보조금이란 명목으로 지원을 받는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수 변호사는 전국으로 지급되는 사회단체보조금의 액수가 1,2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행정자치부의 예산편성지침을 근거로 추정한 액수이기 때문에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수치다. 구체적으로는 18개 광역지자체가 각각 18억원을 지급해 총 288억원, 141개 시 및 자치구가 평균 4억 7천만원을 지급해 총 662억 7천만원, 91개 군이 평균 3억 4천만원을 지급해 총 39억 4천만원 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사회단체보조금이 이 정도이고 보면, 현수막 값에 연연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금세 깨달을 것이다. 이 금액이 제대로 심의되고 지원되는지, 지원된 이후 결산보고는 정확하게 이뤄지는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자, 그렇다면 일단 우리는 사회단체보조금이 무엇인지 알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 흔히 듣는 단어는 아닐 테니 말이다.

배부른 정액보조단체와 눈치보던 임의보조단체

사회단체보조금 제도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복지서비스, 시민교육, 생활환경운동 등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는 제도이다. 외국의 경우 투명한 절차를 통해 지원하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단체에 편중해서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공정한 절차 없이 무분별하게 지원한다는 문제가 여러 차례 제기되어 왔다.

사회단체보조금은 지자체 별로 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한 뒤 지급하도록 정해져 있다. 심의위원회는 지역의 각 민간단체가 공모한 사업의 내용을 평가하고, 어느 정도 금액을 책정해서 지원할지를 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보조금이 지금껏 새마을단체, 바르게살기운동본부, 자유총연맹과 같은 ‘정액보조단체’라고 불리는 특정 단체에 편중되어 지급되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2003년까지만 해도 빅3 국민운동단체를 포함해 13개의 정액보조단체는 사업계획이나 공모절차 없이 미리 정해진 액수를 무조건 받았고, 나머지 임의단체만 사업공모를 지자체에 올린 후 심의를 거쳐 지원을 받았다. 정액보조단체와 임의보조단체의 형평성 논란이 일자, 2004년 행자부는 정액보조단체와 임의보조단체의 구분을 없애고, 정액보조단체도 사업을 공모해 심의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변경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은 약 두 달 동안 서울지역 15개 구에 사회단체보조금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정보공개청구 이후 각 단체별로 지원액수를 분류해 보니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행자부가 정액보조단체에 편중된 사회단체보조금을 개선하고자 하는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액단체 중심의 지원 관행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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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15개 자치구의 사회단체보조금 총액을 비교한 결과를 보면, 사회단체보조금 총액은 2003년 58억 7,133만원에서 2004년 68억 8,451만원으로 10억 1,338만원(17%↑)이 늘었으며, 같은 기간 정액보조단체는 37억 4,133만원에서 41억 1,531만원으로 3억 7,399만원(10%↑)이 증가했다(표1]참조). 정액단체보조금의 비중은 60%로, 전년의 64% 보다 다소 줄었으나 이는 임의단체 지원대상이 2003년 361개에서 2004년 438개로 대폭 늘어나면서 총액이 다소 증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작년 임의단체 1개당 보조금은 632만원으로 2003년 590만원과 비교해 42만원이 늘어난 데 그쳤다. 각 자치구별 현황을 살펴보면, 중랑구를 제외한 14개 자치구의 정액단체보조금이 모두 늘어났지만 특히 강북구(70%), 서초구(73%), 송파구(73%)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행자부의 개선지침은 정액보조단체와 임의보조단체를 통합하여 심의위원회를 통해 합리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려는 것이었으나, 일선의 자치구들이 기존의 관행대로 3개의 국민운동단체를 포함한 13개 정액보조단체를 편중지원하고 있는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빅3’가 가져간 총액의 40%, 어디다 썼을까

정액보조단체 가운데서도 3개 국민운동단체인 새마을운동단체, 바르게살기단체, 한국자유총연맹에 대한 편중 지원이 특히 심각했다. 2004년 국민운동단체는 15개 자치구로부터 총 26억 3,557만원을 지원받아 정액단체 대비 66%, 전체 대비 40%를 차지했다. 특히, 새마을단체는 새마을운동지회, 새마을부녀회, 새마을지도자협회, 새마을문고 등으로 2003년 총 16억 429만원을 지원받아 전체 사회단체보조금의 24%를 차지해 압도적인 비율을 보여줬다. 

국민운동 3개 단체의 경우 전국적인 지역조직을 갖추고 있어 광역시도, 시·군·구에 상응하는 각 조직별로 각각 지원을 받고 있어 이를 합할 경우 3백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된다(사회단체보조금개선 네트워크 자료). 또한 새마을단체, 바르게살기, 자유총연맹 3개 단체는 보훈, 체육, 문화단체와 달리 임의보조단체와 비슷한 성격의 사업을 하고 있는데도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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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들 단체는 어떤 사업을 심의위원회에 올려 보조금을 받는 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만하다. 사회단체보조금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지역에서 주민을 위한 사업을 하라고 지원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소위 국민운동단체는 사업비가 아닌 운영비로 많은 부분을 쓰고 있는 것이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서울 중구의 사례를 보면 보조금 지원 실태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중구 새마을운동지회는 사무국 운영 등(2,944만원), 동 협의회 활동(3,010만원), 지도자 수련대회(220만원), 새마을지도자 평가(205만원) 등 내부 행사를 포함해 사실상의 운영비가 6,379만원으로 총 지원액 7,200만원의 89%를 차지했다. 바르게살기협의회도 임원진 수련회, 홍보물 및 회의비, 송년회 및 경상비 등 운영비 성격의 항목에 보조금을 사용하고 있었다. 자유총연맹을 비롯해 노인회, 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전몰군경미망인회, 대한무공수훈자회 등 대부분의 정액단체들이 회의비 등 단체운영비에 보조금을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밖에 해병전우회의 건물관리 및 보수 4,804만원, 중구토박이의 공공요금 등 1,200만원 등 일부 임의단체에게 경상적 경비를 지원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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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의 경우 보조금 신청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한 결과, 새마을운동지회는 정기총회, 전국·서울시 새마을지도자대회 참석, 서울시장기 새마을지도자 체육대회, 새마을지도자 한마음 수련대회, 동대문구 새마을운동 종합평가대회 같은 내부 행사는 물론 태극기, 새마을기 게양과 새마을 조끼 및 모자 구입 등 자본적 성격의 경비까지 보조금 사업으로 신청했다. 바르게살기협의회도 총 9개의 신청사업 중 대회 행사는 불우이웃돕기 행사와 불우시설 방문, 선행상/효행상 시상식 단 3개였고 나머지는 전부 교육, 결의대회, 보고대회, 수련대회 등 내부 행사였다. 자유총연맹도 조직원단합전진대회, 홍보요원 양성연수, 핵심조직간부 자유수호 다짐대회, 자유수호 웅변대회 등을 신청했으며, 태극기 달기 캠페인은 새마을운동지회와 중복됐다. 나머지 정액보조단체들도 운영비 및 회원사업으로 지원금을 받았으며, 민주평통, 해병대 전우회 등도 각종 회의비, 장비구입, 식대 등 일상적 운영비를 보조사업으로 신청했다.

풀뿌리 민주주의 제대로 다지려면

아직도 자유수호 웅변대회가 있냐며 의아해 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향수마저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단체보조금에 대한 개선방향은 무엇일까.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은 사회단체보조금의 형평성, 공공성,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3개 국민운동단체 육성법을 폐지하고 지자체의 조례를 개정해 민간위원의 공모 및 확대, 회의록의 투명한 공개, 운영비 지원 제한 등 세부기준 마련, 실질적인 심의 보장 등을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지역에서 보수단체의 뿌리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지방선거는 어렵다. 추상적인 선거준비가 아닌, 실질적으로 사회의 진보를 이루는 길은 바로 이런 토호세력들의 돈줄을 끊어 놓는 일이다. 지난해 연말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처절한 단식농성을 전개했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수호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누구인가. 바로 지역에서 사회단체보조금으로 연명하면서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들이다. 사회단체보조금은 건강한 지역의 풀뿌리 시민단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사회단체보조금 개선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지역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는 그들만의 분권과 자치에 머물게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이 이 운동에 나서는 이유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