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에너지체계와 노동운동의 미래

노동사회

지속가능한 에너지체계와 노동운동의 미래

편집국 0 2,730 2013.05.17 09:49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 노동운동의 미래와 관련해 간단치 않은 과제를 제기한 두 자리가 있었다. 먼저 4월6일에는 노동조합과 환경단체의 간부들이 8개월 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새로운 에너지체계 수립을 위한 공동의 기구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후 4월12일 열린 다른 자리는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의 미얀마 천연가스 개발사업이 현지 군부독재의 인권유린과 환경파괴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 경고하는 현지 활동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토론회였는데, 국내 노동?인권?환경단체가 두루 참여해 그동안 축적된 넓은 시야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이 두 자리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가는 속에 자연스럽게 에너지 문제, 전면적인 시장화 압력과 초국적 기업의 횡포에 대응하는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의 대응,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와의 연대 등 핵심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에너지문제, 노동운동에게도 발등에 떨어진 불

이러한 자리들이 던져주는 고민을 되새겨 볼 때, 에너지 문제에 대한 대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른 것 같다. 노동조합에게는 당장 ‘공기업 민영화’로 요약될 수 있는 에너지 산업 구조개편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최근의 에너지 정세 역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넘어가기에는 심상치가 않다.

사실 동남아시아의 유일한 군부독재 국가인 미얀마에서 대우인터내셔널과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 천연가스 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런 에너지 정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천연가스 개발사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국내 시민사회의 반향을 받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에너지 자원이 없는 ‘자원 빈국’에 대한 국민들의 위기감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럼 도대체 지금 에너지 정세가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지난 2월 발효된 기후변화협약 교토 의정서가 상징하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현재 국제 에너지 정세는 아주 불안정하다. 우선 떨어질 기미를 안 보이고 있는 유가부터가 걱정거리다. 아직 과거의 오일 쇼크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1980~90년대와 같은 ‘저유가 시대’는 다시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에너지정보국(EIA)이 올해 2월 내놓은 ‘오일 피크(Oil Peak)’ 연구 보고서이다. 향후 몇 년 내에 세계 석유 생산량이 정점에 이른 뒤 점차 감소할 것이라는 오일 피크에 대한 경고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기돼 왔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일축해 왔다. 그런데 미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 EIA가 이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EIA는 보고서에서 그간 제기된 오일 피크에 대한 3~4개의 시나리오를 검토한 뒤, 2020년경에 실제로 오일 피크가 도래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ygkang_01.jpg
[ 지난 1월 아라칸 지역의 쉐 가스개발사업에 대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는 방글라데시 주민들  - 출처: 국제민주연대 ]

생태계까지 고려한 ‘공공성’이어야 한다

에너지 문제와 관련하여, 초고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중국 또한 무시 못할 악재다. 오일 피크가 여전히 논쟁 중이라면 ‘중국 변수’에 대해서는 국내외 에너지 전문가들 누구나 한 목소리로 우려의 목소리를 던지고 있다. 오죽하면 중국에 ‘에너지 블랙홀(black-hole)’이라는 딱지를 붙였겠는가.

현재 중국의 성장세가 2010년 이후까지 계속 이어진다면 가장 경제성 있는 석유 매장지인 중동 생산량의 20% 정도를 중국이 수입하게 될 전망이다. 여기에 인도까지 합하면 2010~2020년에는 중동 수출량의 약 25~30%를 이 두 나라가 차지하게 된다. 이 경우 국제 석유 시장에서 석유가격은 급상승할 수밖에 없고, 다른 나라에는 심각한 공급 장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끔찍한 것은 미국 EIA의 오일 피크 예상 시점과 중국, 인도의 성장세에 따른 석유 수요량이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이 겹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말 그대로 ‘에너지 대란’이 올 수밖에 없다. ‘에너지 대란’ 속에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을 계층이 노동자, 서민임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정부를 비롯한 많은 주류 에너지 전문가들은 또 다른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그 동안 경제성이 없어서 개발이 보류됐던 수많은 숨어 있는 화석연료를 염두에 두면 결코 ‘에너지 대란’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독도 인근 심해에 엄청난 양이 묻혀 있다는 메탄하이드레이트도 그 중 하나다. 메탄하이드레이트는 온도가 낮은 극지방이나 심해 밑바닥에서 천연가스의 중요한 성분인 메탄이 높은 압력 하에 물과 결합해 고체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한다. 독도 인근 밑바닥에만 6억톤 가량이 묻혀 있다고 하니 전 세계의 메탄하이드레이트만 캐내면 최소한 한 세기 동안 에너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1970~80년대 아이들에게 널리 읽혔던 조악한 과학만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이런 ‘장밋빛 시나리오’를 최고의 정보력을 갖춘 정부의 에너지 전문가들이 떠들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바다 밑바닥에서 메탄하이드레이트를 캐는 시설을 구축하고, 거기서 캐낸 메탄하이드레이트를 가공해서 메탄가스를 얻어낸다고 하자. 그렇게 캐낸 메탄가스가 과연 비용에 비해 ‘경제성’이 있을까?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면 이제 에너지 문제에 관한 한 우리의 좁은 시야를 넓힐 필요성이 절박하게 요구되는 듯하다. 마침 4월6일 노동조합과 환경단체가 마련한 자리에서도 ‘에너지 공공성’의 개념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기존의 공공성은 전면적인 시장화 압력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논의되었다면 이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삶은 물론 지구 전체 생태계를 고려하는 ‘새로운 에너지 공공성’으로 관심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 공공성’에 부합하는 에너지 체계를 꾸리는 일이 바로 노동운동을 비롯한 지금 세대의 새로운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산업 구조개편과 초국적기업의 횡포

21세기 벽두부터 발전부문의 분할매각으로 시작되었던 에너지산업 구조개편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미 그간의 시도에서 보이듯이 정부는 시장에 에너지 산업을 맡기는 식의 정책 방향을 고수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노동운동은 온갖 출혈을 무릅쓰고 이에 저항해 왔지만 사실 대세를 꺾기엔 힘이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지만 가장 힘 빠지게 하는 것은 에너지산업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일 것이다.

솔직히 이런 냉담한 시민사회의 반응에는 그간 에너지산업의 또 다른 수혜자였던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안이한 대응에도 책임이 있다. 그동안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은 에너지산업의 독점 공기업 체제가 야기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눈감아 왔다. 에너지 관련 공기업의 관료성 등은 시민의 불신을 낳았으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개혁 노력은 미흡했다. 특히 환경운동에서 원자력?화력 중심의 독과점 에너지산업 구조의 문제점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지만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진지한 답을 찾기 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가장 단적인 예는 지난 2003년 ‘부안 사태’ 때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이 자발적인 신문 광고까지 내가며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경영진의 입장을 반복했던 것일 테다.

한편 이렇게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에서 초국적 기업의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이나 1990년대 미얀마 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주도했던 미국 우노칼(UNOCAL)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초국적 기업이 세계 곳곳에서 에너지 산업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4월12일 토론회에서 미얀마 현지의 소식을 들려줬던 활동가들은 우노칼의 사례에 대해서도 자세한 정보를 전했다. 우노칼은 이미 1990년대 미얀마 천연가스 개발 사업 과정에서 현지 군부에 의한 주민들의 강제노동과 강제이주, 여성에 대한 성폭력 등 인권 유린과 환경 파괴의 전모가 드러나 최근 막대한 피해 보상에 합의한 상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우노칼은 지난 4월2일 미국의 초국적 석유기업 쉐브론 텍사코에 인수됐다.

쉐브론 텍사코가 어떤 기업인가? 세계 2위의 석유 메이저인 이 기업은 바로 GS칼텍스(LG칼텍스의 후신)의 지분을 50% 가진 대주주이다. 이미 국내 에너지 산업에도 초국적 기업이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세계 굴지의 초국적 기업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는 에너지산업 구조개편에 대해서도 입맛을 다시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은 물론 당연하다. 이들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 서민에게 돌아온다. 노동조합은 물론 시민사회 역시 에너지산업 구조개편을 수수방관할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두면 에너지문제와 초국적 기업의 횡포에 대한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의 공동대응은 생존을 위해 절박한 과제이다. 그런 점에서 대우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천연가스 개발사업에 대한 우리 시민사회의 국제연대는 에너지문제와 초국적 기업의 횡포를 나눠 보지 않는 통합적인 안목을 기르는 좋은 계기로도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태적 전환?에너지 기본권?공공성

그렇다면 어떻게 지혜를 모으고 새로운 실천의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난 6일 토론회에서 발표된 민주노동당의 에너지 기본법안은 반갑게도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유용한 원칙을 제시해 줬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기본법에 대응하기 위하여 마련된 이 법안은 크게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풍력, 태양광 등 재생가능한 에너지의 확대를 통해 에너지 체제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기존 에너지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재생가능한 에너지의 공급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설정, 획기적인 수요관리, 에너지 절약형 경제구조로의 전환 등을 통해 사실상 ‘에너지 체제전환’을 이끌어낼 것을 천명한 것이다.

특히 이 법안은 이 과정을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시장이 아닌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가 주도하도록 못박음으로써 그동안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비판해온 ‘민영화 지상주의’식의 전면적인 시장화 움직임과도 선을 확실히 그었다. 더 나아가 빈곤층에 대한 에너지 생활 기본권을 보장해 인간다운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 기본권’을 의제화한 것도 눈에 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전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기존 에너지 산업의 구조 개편과 그로 인한 실업 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대응이 공백으로 빠져 있다는 점이다. 6일 토론회에서 이상훈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이 잘 지적했듯이 이 법안과 관련하여 “환경단체는 시민을,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설득하는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기존의 에너지 산업 노동자들에게 이런 에너지 체제 전환이 당장 내 밥그릇을 없애는 것이 아님을 설득하면서 동참을 이끌어내는 것은 이 법안이 꿈꾸는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준비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 수립을 위한 노동?사회 네트워크(준)’가 이런 공백을 어떻게 채워갈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노동운동이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며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군부 독재 밑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 나라 주민들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스스로의 과제로 자리매김하고 대응을 모색하는 모습이나, 자기 이해관계를 넘어 환경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와 손을 잡은 모습은 분명히 지난 몇 개월 동안 노동운동이 과격한 내부충돌에서 보여줬던 과거에 얽매여 있는 낡은 모습과는 다른 것이다. 미래는 이렇게 스스로 찾는 자에게 활짝 열려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9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