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TC도입 이래서 필요하다

노동사회

EITC도입 이래서 필요하다

편집국 0 4,267 2013.05.1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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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양극화에 따른 사회안전망 재편의 일환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에 대해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내에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빈곤탈출효과가 별로 없는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이고 저임금 노동자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의견과 근로빈곤층에 대한 정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해서 여기 찬성 주장과 반대 주장을 함께 모아봤다. 노동사회 독자들이 EITC를 보다 객관적으로 조망하고 평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래는 EITC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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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TC는 미국에서 1975년 도입되었다. 기본적인 가정은 임금 즉 근로소득이 발생할 경우,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공제해주는 방식이다. EITC가 특이한 점은 만약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해도 동일한 공제비율을 적용해서 국가가 세금환급형식으로 근로소득이 있는 빈곤가족에게 돈을 준다는 점이다. 또한 과거 복지제도와 달리 EITC는 일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세액을 공제해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EITC의 도입 목표가 노동유인을 높이고, 이에 따른 빈곤탈출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EITC는 점증구간, 평탄구간, 점감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점증구간은 일을 해서 소득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많은 세액을 공제해주는 구간이다. 평탄구간은 일을 해서 소득이 높아져도 받는 세액공제가 동일한 구간이다. 마지막 점감구간은 일을 해서 소득이 높아질수록 받는 세액공제가 낮아지는 구간이다

EITC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시행 초기에 경제학자들에 의하여 근로빈곤층의 '복지병' 방지를 위한 방안으로 주장되었다. 당시 나는 현행 제도(기초법)를 옹호하는 수세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막상 기초법을 실시해 보니 정부가 소득파악 능력부족을 역이용하여 과도한 추정소득을 부과시킴으로써, 근로빈곤층이 대거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이에 따라 나 역시 사각지대에 방치된 근로빈곤층의 소득보장을 위하여 이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게 되었다. 

수급권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간다

현행 기초법제도 아래에서 빈민들은 '소득입증의 부담(burden of proof)'을 지고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소득을 입증할 수 있겠는가? 정부에서 마구잡이로 추정소득을 부과해도 입증할 도리가 없으니 수많은 적격자들이 탈락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복지현장에서 수급권자들은 복지담당 공무원이 추정소득을 과다하게 부과할 것을 미리 짐작하고 소득을 낮게 보고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자가소득공제'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60만원의 소득이 있는 파출부가 있다고 하자. 그가 소득을 60만원이라고 보고하면 담당공무원이 그의 말을 거짓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90만원으로 소득을 추정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비하여 30만원밖에 벌지 못한다고 소득을 보고하려고 마음먹고 동사무소에 신청하러 가면, 수급권자의 마음 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담당공무원은 "사지 멀쩡한 사람이 왜 여기에 왔느냐?"고 면박을 주는 것으로 자가소득공제 가능성조차 원천적으로 봉쇄한 채, 수급권자를 신청도 못하게 하고 돌려보낸다. 

이러한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나는 빈민상담을 하면서 근로무능력자로 간주되는 '3개월 이상 요양이나 치료를 요한다'는 의사의 진단서가 발급되지 않은 실업자들에게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더 주는 것이 안타까워서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권유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이 정부의 소득파악 능력부족이 '과도한 추정소득의 부과'로 적격자들을 탈락시키는데 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EITC 제도의 도입은 근로의욕을 높이는 유인책이 될 뿐만 아니라 '없는 소득의 입증'보다 '있는 소득의 입증'이 훨씬 더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수급권자들에게 유리하다. 

신자유주의 소득보장? 없는 것보다는 낫다

실업상태에 있거나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근로빈곤층에게도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4인가족의 경우 114만원)을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8백만 빈민들 중에서 자활사업 참여자를 포함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단지 140만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방치된 6백만 수급권자의 3분의2 정도가 근로빈곤층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에서는 추정소득을 부과하여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탈락시키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근로무능력자용'이다. EITC 제도는 정책의 지향점이 노동의 상품화이고, 시장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적인 대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동시장은 완전히 신자유주의적으로 운영되지만, 그 결과로 양산된 근로빈곤층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는 우리 사회와 같은 경우, 신자유주의적 대책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더 낫다. 특히 지원액수가 적어도 2조원이 되는 상황에서 이 돈을 주지 말자고 하는 것은 빈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다. 

EITC 넘어서는 대안 정말 갖고 있나

기초법 제2조에는 유럽식 사민주의적인 이념에 기초한 사회권 보장 조항이 있으나, 제9조에 '조건부 수급'이라는 독소조항이 있다. 정부는 이 조항을 악용하여 추정소득을 가혹하게 적용하는 방법으로 근로빈곤층의 생계보장을 회피하고 있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근로무능력자용으로 전락했으며, 근로빈곤층은 대부분 공공부조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에서 내놓은 기초법 개정안에는 '조건부 수급 폐지' 조항이 없다. 노회찬 의원이 영등포의 쪽방지역을 방문한 후, "감정이 북받쳐 이런 제도적 상황을 내가 다 해결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런데 막상 그곳을 나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노 의원의 이러한 탄식과 기초법 개정안에 독소조항인 '조건부 수급 폐지'를 주장하지 못하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실업부조제도의 도입과 근로능력자에 대한 무조건적 수급을 통해서 '놀고도 최저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 혁명을 통해서라면 몰라도, 의회민주주의를 통하여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에게까지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확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EITC 제도를 통하여 근로빈곤층에게 2∼4조원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현재 기초생활보장 예산이 4조5천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이 액수는 가히 공공부조제도가 하나 더 생긴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큰 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열린우리당은 EITC 제도로서 다음 선거용 이슈를 선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당은 유권자들에게는 공허한 구호보다 손에 잡히는 '빵 한 조각'을 더 쥐어 줄 때 표를 얻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에게 EITC 제도만큼 확 끌리는, 다른 빵을 확실하게 더 줄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반대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대안 없는 반대로서는 근로빈곤층의 표가 열린우리당 쪽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반대보다는 찬성 쪽으로 돌아서서 제도가 보다 더 튼실하게 도입될 수 있도록 활발한 운동을 하는 것이 민중을 위하는 정당의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비판에 대한 반론

EITC 제도의 근간은 근로빈곤층의 ①근로의욕을 높이고 ②노동비용을 낮춤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③행정비용을 낮춤으로써 비용 효율성을 추구하는 제도이다. 근로의욕 증진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기업의 생산(노동)비용을 낮춘다는 점은 저임금을 용인한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이 부담해야 할 노동비용을 낮추어 원가를 절감시키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 세수가 증가되는데, 더 걷힌 세금을 EITC 형태로 근로빈곤층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EITC 제도는 농민들에게는 쌀을 비싸게 사서 원가를 보전해 주고 소비자에게는 저렴하게 공급하면서 그 차액을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메워 주는 '이중곡가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즉, 기업복지의 일부분을 국가복지가 분담함으로써 기업경쟁력을 높이고, 근로빈곤층의 근로의욕을 북돋우는 제도이자 소득을 보장해 주는 방법인 것이다. 

낮은 임금의 노동자들에게 EITC 제도의 도입은 노동계의 임금 교섭대상이 기업에 이어 정부 한 곳이 더 늘어나고, 임금인상 방법이 이원화되는 셈이다. EITC 제도의 도입이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협상력을 약화시킬 개연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그 자체로서 국제적인 설정기준이 있고, 이제까지 적용되어온 기준이 있는데, 단지 이 제도가 도입된다고 해서 낮춰질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EITC 제도의 도입이 비정규직을 확산시키고 비정규직의 임금을 낮출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EITC 제도의 도입과 연관지어서 협상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 것만 보아도 두 가지는 별개의 다른 사안이다. 

반대보다 연대와 정부 견제를

몇 년 전, 시민단체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고용허가제도 도입을 위하여 투쟁할 때, 노동계에서는 고용허가제도는 산업연수생제도보다는 진일보한 제도이지만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반대 입장에 섰고, 따라서 노동계는 시민사회의 연대의 힘을 약화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물론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실현 불가능한 줄 뻔히 아는 무지개를 좇느라고 개선을 향하여 계단 하나라도 더 놓으려고 발버둥치는 노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02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에서 30만명이 조건부수급자인데 그 중에서 노동부의 직업훈련, 취업알선 대상자는 11만명이었다. 그런데 그 중의 97%인 10만7천명이 근로능력이 있으나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리고 최근 정부는 저소득층 근로능력자의 9%는 실업 빈곤층이며, 57%는 비경제활동 상태에 있다고 발표했다. 즉, 기초법이 이처럼 허술한 상태에서는 정부가 EITC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9%의 실업 빈곤층과 57%의 비경제 활동 인구를 합친 근로빈곤층의 66%는 기초생활보장 혜택도, EITC 혜택도 받지 못하는, 양 제도의 사각지대로 내몰릴 위험성이 크다. 

따라서 노동계는 이 제도의 도입을 전면적으로 반대할 것이 아니라, 정부 멋대로 도저히 일할 수 없는 노인, 환자, 유아 양육자, 간병인들을 근로능력자로 분류시킨 후 이들에게 기초생활보장의 혜택도 EITC 제도의 혜택도 주지 않는 이러한 부실한 제도운영의 변화와 개선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활사업, 재활사업, 직업훈련, 창업지원, 생업자금융자 등의 사업 활성화를 통하여 근로빈곤층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가 정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소득포착률을 높여 세수가 확대된다 

한국은 시장소득 기준 불평등도는 타국에 비하여 그리 높지 않으나 조세 및 사회보장에 의한 공적이전을 고려한 가처분소득 기준 불평등도는 높은 수준이다. 2000년 자료에 따르면, OECD 주요국의 조세 및 사회보장제도의 소득불평등 개선효과는 평균 41.6%에 이르나, 한국은 4.5%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조세방식이든 예산편성 방식이든 공적부조제도를 확충하여 빈민의 고통을 줄이고 소득불평등도를 개선하는 것은 지상의 과제이다. 

그러나 예산의 벽에 부딪쳐서 제도가 개선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가운데 EITC 제도의 도입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근로빈곤층을 고용하는 가정, 자영업자와 기업의 소득포착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때문에 세수확대에 기여한다. 일용직 근로자나 자영업자의 소득포착률이 낮고 지하경제의 규모가 큰 한국사회는 EITC 제도 실시를 위한 기초인프라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EITC 제도의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전산화 수준이 높고, 부가가치세와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고 있으며 카드사용률 또한 높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가진다면 소득파악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EITC 제도의 도입으로 소득파악률을 아래로부터 높인다면 우리 사회의 숙원인 조세개혁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며, 필요한 예산은 자동적으로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탈루소득만 다 걷어들인다고 하더라도 필요한 예산의 많은 부분이 저절로 확보되고, EITC 제도는 탈루소득을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제도이다. 

절감되는 행정비용 복지재원으로 사용해야 

한국은 예산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예산부족 상황 아래에서는 예산이 수급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정책입안자, 연구자, 공무원, 자활후견기관 운영비, 국회의원의 활동, 감사활동 등에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 행정비용을 최소화하여 절감한 돈을 수급권자들에게 직접 주는 것이 가장 비용 효율적인 방법이다. 

EITC 제도는 일반재정에 편성된 예산으로 근로빈곤층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세 체계 안에서 소득세 환급금의 형태로 직접 돈이 수급자에게 지급되기 때문에 일단 환급세율만 정해지면 예산을 책정하는 복잡한 과정이 생략되고 예산이 절감된다. 

지금처럼 복지담당 공무원이 수급권자의 소득을 조사하는 것보다 EITC 제도를 통해 국세청에서 소득조사를 담당하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행 제도에서 수급권자들은 소득을 속일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되도록 소득을 낮게 보고하고, 담당공무원은 숨겨진 소득을 찾아야 하는데, 소득세 환급제도가 시행되면 수급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소득을 보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소득보고를 받는 것이 찾아다니면서 숨겨진 소득을 조사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 것은 뻔한 이치이다. 특히 EITC 제도는 급여를 일년에 한 번 목돈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매월 지급하는 방식보다 행정비용이 더 절감되며, 따라서 절감된 예산은 수급권자에게 지급될 수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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